logo

한국어

토론 마당

로그인 후 자유로운 글쓰기가 가능한 게시판입니다.
이 게시판은 RSS와 엮인글이 가능합니다.
이 곳의 글은 최근에 변경된 순서로 정렬됩니다.
* 광고성 글은 바로 삭제되며, 민주주의법학연구회의 설립취지에 어긋나는 글은 삭제 또는 다른 게시판으로 이동될 수 있습니다.
* 관리자에게 글을 쓸 때, 옵션의 "비밀"을 선택하시면 관리자만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 글을 쓰실 때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주소지 등)이 유출되지 않도록 주의해주십시오
조회 수 : 7907
2002.10.08 (12:54:39)
동국대 대학원신문 10월 원우논단에 실린 내용을 퍼서 옮깁니다.
북한학과 석사과정 "유병규"씨의 글입니다.



---------------------------------------------------------------------


북한의 경제 개방 정책의 변화와 '신의주 특구'

Ⅰ.신의주 특구의 설치 배경
지난 9월 12일 북한이 신의주를 '특별행정구'로 지정하고, 26일에는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신의주 특별행정구 기본법’(특구 기본법)을 공표함에 따라 북한 경제체제의 변화 가능성과 그 성공 여부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기본법은 '획기적인 조치'들을 가득 담고 있다. 기본법에 따르면, 신의주 특구는 자체적인 입법·행정·사법권을 가지며 외교업무를 제외하고는 중앙기관으로부터 특구 사업에 대해 일체의 관여도 받지 않는다. 또한 독자적인 여권 발행과 임대 기간(50년)이내에서 독자적인 토지 개발·이용·관리 권한을 부여받고 있는 것은 선전 등 중국의 경제 특구에 비해 손색이 없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북한의 이번 '신의주 특구' 지정은 7월 1일부터 시행중인 '새로운 경제관리 개선조치'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7·1 경제관리 개선조치'로 북한은 물가·임금 및 환율 대폭 인상, 부분적인 배급제 폐지, 공장·기업소의 자율성 및 인센티브 제도 확대 등과 같은 시장 요소들을 북한 전역에 시행했다. 이는 심각한 경제난과 공식 경제 부문의 생산성 저하로 인한 파산 그리고 사경제 부문의 증가에 뒤따른 대증요법이라 할 수 있다. '7·1 경제관리 개선조치'는 북한 내에서 사경제가 존재하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공식 경제 부문을 활성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북한이 신의주 특별행정구를 지정한 배경이 바로 7월 1일 단행한 경제개혁의 성공을 위해 외국자본 유치를 통한 생산력의 대폭 확대가 시급함에도 불구하고 1991년 말에 설치한 나진·선봉지대 개발이 극히 부진한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Ⅱ. 북한의 경제개방 정책의 경험과 '신의주 특구'에 대한 전망

북한이 폐쇄적인 체제에서 초보적인 형태지만, 외자 유치의 노력을 처음으로 기울인 시기는 1970년대와 1980년대였다. 1970년대 초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기 시작하면서, 북한은 경제발전에 필요한 새로운 설비와 기술을 서방 선진국가들(유럽, 일본등)에게서 대대적으로 도입했다. 그러나 경제개방 시도는 오일쇼크와 북한의 비철금속 가격 하락으로 결국 북한에게 모라토리엄(지불유예)선언만을 남겨주었다. 이후 북한은 1984년에 상환부담도 없고 개방으로 인한 정치적 부담도 없는 합영법을 제정하여 시행했다. 1993년 말까지 성사된 합영사업은 총 144건으로 금액으로 환산할 경우 총투자액은  불과 1억 5천만 달러에 머물렀다.
북한은 외화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정책의 일환으로 1991년 12월에 중국의 선천을 모방해서 라진·선봉지구를 경제 특구로 지정했으나 제도적 미비, 지정학적 불리, 열악한 국제 환경, 남북관계의 교착 등으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당시 라진·선봉지대의 외국인 투자 계약 규모는 총 1백 11건, 7억 5천 77만 달러였지만 1997년 말 현재 투자가 실제로 집행된 것은 77건, 5천 7백 92만 달러 뿐으로 북한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후 북한이 과거와 달리 해외홍보나 투자설명회 조차 중단함으로써 라진·선봉경제지대는 거의 유명무실화됐다.
북한 당국은 신의주 특구를 국제적인 금융, 무역, 상업, 공업, 첨단과학, 오락, 관광지구로 조성하고 싶어한다. 이를 위해 북한은 "특구에서 투자가들의 투자를 장려하며 기업에 유리한 투자환경과 경제활동조건을 보장"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신의주 특구의 성공은 외국인 투자 유치 여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특구 개발 전략에 많은 외국인투자가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신의주 특구가 기대와 같이 성공을 할 것인지 여부는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신의주 특구와 라진·선봉경제지대는 모두 동해와 서해에 면해있어 물류(物流)에 이점이 있고, 국경지역이라는 지리적 측면에선 유사한 점이 많다. 그러나 10여년 동안 실질적인 개방 효과를 나타내지 못한 라진·선봉과는 달리, 신의주 특구는 성공의 조건들을 지니고 있다.
우선 북한은 나진·선봉의 경우 '중앙무역지도기관'과 해당 중앙기관이 직접 통제한 반면, 신의주 특구는 독자적인 입법·사법·행정에 대한‘완벽한’재량권을 부여받았다. 여기에다 라진·선봉이 화학, 철강 등 중공업 중심의 산업도시라서 외국자본이 진출할 가능성이 낮았지만, 신의주는 경공업 중심의 공업이 주력산업이어서 외국기업들이 들어와 임가공 등의 사업을 활발하게 펼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1991년 라진·선봉지대는 단순히 외자 유치만을 의식한 특별지대 설정에 그쳤지만, 이번에는 북한이 '7.1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통해 점진적이기는 하지만 내부적으로 시장 지향적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개방과 개혁의 시너지 효과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을 둘러싼 국내외 정치환경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라진·선봉지대가 실패한 주된 이유는 경제적 측면이라기 보다는 정치적 측면이 훨씬 강했다. 1993년 미국의 핵사찰 압력이 두드리지게 강화됐고, 1994년에는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그리고 1994년 김일성의 죽음으로 체제 붕괴가 우려됐다. 김일성이 죽은 뒤 2∼3년은 북한 체제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으로 외국 자본들이 투자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이번에는 남북 장관급 회담의 재개와 경의선 철로 연결, 대북 지원 재개, 이산가족 상봉, 북한 선수들의 아시안게임 참가 등 최근 남북관계의 개선과 북한이 러시아·중국은 물론이고 일본과 적극적으로 관개개선에 나섬으로써 이전과 다른 환경에 놓여 있다.
위의 요인들이 신의주 특구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줄 지라도 성공 자체를 보장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여전히 외국 투자가들이 느끼는 북한의 투자위험도가 높고 신의주의 인프라 여건도 별로 좋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개방정책의 상징인 심천 특구의 경우 개발초기에 기본건설투자의 경우 중앙정부의 투자비중이 26%, 국내금융기관의 대출비중이 35%인 반면, 외자의 비중은 25%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장기간 지속된 불황으로 내부 자본이 고갈된 북한이 인프라 구축을 위한 자금을 조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서방 기업들도 투자에 열의를 보이기보다는 당분간은 관망하는 자세를 취할 것이다. 남한 기업들의 경우도 북한 내 투자 지역으로 신의주에 대한 관심이 낮은 편이다. 대부분은 남포, 평양 또는 개성공단을 선호하고 있다. 따라서 개성 공단 조성이 가시화될 경우 대다수의 남한 기업들은 개성 공단 입주를 선택할 것이며 신의주로 진출하는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신의주 특구 개발 초기에는 신의주가 중국의 단둥시와 인접하고 있고, 중국계 기업인 양빈이 장관으로 임명되고, 북·중간의 전통적 우호관계를 고려할 때 주로 중국기업과 화교기업들의 진출에 의존할 것으로 보인다. 중장기적으로 신의주 특구의 성공 여부는 북한 당국의 의지에 달려 있을 듯 하다. 신의주 특구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축적된 자본들이 인프라 개선에 재투자되는 등 전반적인 투자 환경이 개선될 때 서방 및 남한 기업들의 진출이 본격화 될 것이다. 이와 달리 투자환경이 꾸준히 개선되지 않는다면 신의주 특구는 라진·선봉과 동일한 역사적 경로을 밟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Ⅲ. 신의주 특구 성공을 위한 과제

북한이 발표한 ‘신의주 특별행정구 기본법’은 앞으로 신의주를 북한의 ‘홍콩’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기본법에 의거하면, 신의주 특구는 영토와 국민, 독립적인 주권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 북한이라는 '국가 속의 국가'와 같은 지위를 갖게 되었다. 뉴욕 타임스는 신의주 경제 특구의 설치는 "북한 건국 이래 경제정책의 최대 반전이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거대한 도박"(2002년 9월26일치)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개혁과 개방 쪽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거대한 도박'판에 도사린 무수한 위험들을 줄이기 위해 체제를 옹호하는 사상 무장을 강화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북한의 개방을 두고 '개혁 지향적 개방보다는 체제수호적인 개방'이라고 부른다.
북한 경제정책 변화의 수준과 속도를 결정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변수는 바로 대외 환경이 될 것이다. 대외 관계는 북한의 산업정책에 있어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반도 내에서 긴장관계가 지속되는 한 북한은 군사적 부문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도록 압박을 받을 것이다. 또한 이는 군수공업을 위해 중공업 우선 노선을 계속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도록 할 것이다. 제한된 자원속에서 소비재 생산의 정상화나 외부 지향적 경제정책은 한계에 이룰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수출지향형의 경제체제로의 전환은 북한을 둘러싼 적대 환경이 개선되고, 북한 당국의 체제 위협 의식이 약화될 때 가능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북·미관계 개선이다. 경제 개방 측면에서,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가 지속될 경우 북한산 제품의 수출은 어렵다. 1974년 통상법에 의거, 북한 제품에 대해 'Column 2' 관세를 적용하고 있으며, 동 관세는 수출을 거의 불가능하게 하는 금지관세적 성격을 띠고 있다. 또한 기술 집약적 장비의 도입도 불가능하다. 신의주 특구와 같은 대규모 산업 공단의 전망도 불투명해진다. 북미 관계 개선이 안되면, 북한의 경제 개방은 질적 도약을 하기 힘들다.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