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한국어

토론 마당

로그인 후 자유로운 글쓰기가 가능한 게시판입니다.
이 게시판은 RSS와 엮인글이 가능합니다.
이 곳의 글은 최근에 변경된 순서로 정렬됩니다.
* 광고성 글은 바로 삭제되며, 민주주의법학연구회의 설립취지에 어긋나는 글은 삭제 또는 다른 게시판으로 이동될 수 있습니다.
* 관리자에게 글을 쓸 때, 옵션의 "비밀"을 선택하시면 관리자만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 글을 쓰실 때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주소지 등)이 유출되지 않도록 주의해주십시오
조회 수 : 7896
2003.02.10 (09:36:09)
대북 송금 문제가 터졌습니다. 거의 모든 법률가들이 그에 대한 사법적 심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의견도 들어 볼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저도 이번 사건이 한나라당과 민주당 신파의 주도권 다툼 속에서 과잉된 파장을 낳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됩니다.

아래 김승환 회원(전북대 교수)의 오마이뉴스 기고문을 인용합니다.

-----------------------------------------------------


대북 자금지원에 대한 헌법적 판단
서독연방헌법재판소의 '접근의 이론'에서 교훈 얻어야

김승환 기자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 직전 현대상선이 2235억원을 북한에 송금한 사실을 두고 연일 논쟁이 일고 있습니다. 지난 3일 재미 언론인 김민웅씨는 이번 사안에 대해 사법적 판단보다는 역사적 평가에 맡겨야 한다는 논지의 글을 <오마이뉴스>에 실었습니다. 이에 대해 재미 작가 조화유씨가 보내온 반론을 4일자로 소개한 바 있는데 이번에는 다시 전북대 법대 김승환 교수(헌법 전공)가 재반론을 보내와 소개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번 사건에 대한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소개함으로써 공론의 장을 마련코자 합니다....<편집자 주>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운영자금으로 대출받은 4000억원 중 2235억원을 대북사업에 이용한 사건이 정치적 법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사건이 제기하고 있는 법적 쟁점은 대출 자체가 대출규정에 위반하는 부실대출이었는가, 박상배 산은 부총재가 외부의 대출압력을 받았는가, 현대상선이 북한에 자금을 보내면서 외환관리법이 규정하는 절차를 지켰는가, 대출 사후관리와 관련하여 금융감독원과 산업은행 관계자들의 배임혐의는 없었는가 등이다.

이와 함께 제기되는 정치적 쟁점은 현대상선이 문제의 돈을 북한에 보내는 일에 청와대가 개입했는가, 이 돈은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뒷거래용 돈이었는가이다. 이 부분은 그 동안 김대중 대통령이 청와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주장했던 터라 대통령의 도덕성과도 맞물려 있다.

이 문제들을 전체적으로 보면, 현대상선이 북한에 송금한 문제의 돈이 청와대와 현대상선이 주장하는 바대로 순수한 경협자금이냐, 아니면 정상회담 대가성 자금이냐라는 것이다. 또한 이 돈이 정상회담 대가성 자금이라고 볼 경우 그것이 정상회담이라는 일회성 정치적 이벤트를 위하여 지출한 돈인가 아니면 넓은 의미에서 남북협력의 차원에서 지급된 '한반도 평화자금'인가라는 점도 쟁점의 하나이다.

법적 관점에서, 위에서 제기된 문제들에 대하여 부정적인 결론이 내려질 때 거기에는 형사법적 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 그러한 제재 속에는 국가보안법에 따른 제제도 포함되는 것은 물론이다.

우선 실정법적인 잣대로 이 문제들을 재단해 보면, 외환관리법, 형법, 국가보안법 위반 가능성이 발견된다. 이러한 범법사실에 따른 법의 제재를 피해나가기 위해서 간단히 '통치행위'라는 이론을 들이댈 것은 아니다.

이미 헌법재판소는 통치행위라 하더라도 그것이 '기본권침해와 관련될 때'에는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그렇다고 하여 헌법재판소가 '통치행위'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통치행위에 해당한다 할지라도 기본권침해의 문제가 발생하면 헌법재판소가 심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헌법재판소의 이러한 판례가 국가행위는 어떠한 것이건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이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읽어서도 안된다.

예를 들어 헌법 제64조 제4항은 국회가 행한 국회의원에 대한 자격심사나 징계에 대하여는 법원에 제소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이론상으로도 대통령이 국무위원을 임명하는 행위,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임명하는 행위, 외국과 국교를 맺는 행위 등의 위법성을 문제삼아 법원에 제소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현대상선의 대북자금지원 및 이에 개입한 청와대 등 권력기관의 행위를 김대중 대통령의 표현대로 '통치권 차원'의 결단으로 볼 수 있는가?

김대중 대통령이 '통치행위'라는 표현 대신에 '통치권 차원'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의도적인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대통령이 이 문제를 법원의 심판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뜻을 밝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과거 우리와 같이 분단국가의 운명 속에서 살았던 독일의 경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1950년대부터 분단 서독의 정권 담당자들은 연합군에 의한 점령상태를 신속하게 종식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실정법에 위반하는 조치들을 취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치들에 대해서 실정법 위반을 문제삼아 법적 제재를 가해야 하는지, 정치적 도덕적 비판을 받아야 하는지, 아니면 헌법적 정당성을 부여해 줘야 하는지에 관한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급기야 이 문제는 서독연방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올려지게 되었다.

독일의 '자르'(Saar) 지역은 베르사이유조약을 통하여 1919년 이후 국제연맹의 신탁통치를 받게 되었다. 그 후 1935년에 베르사이유조약에 규정되어 있는, 자르 지역의 최종적 정치적 운명에 관한 주민투표가 행해졌고, 압도적 다수로 자르 지역은 독일로 되돌아갔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자르 지역은 프랑스 점령지역에 속하게 되었다. 1947년에 자르 지역에서는 프랑스 화폐가 통용되었고, 1948년에 프랑스와 관세동맹이 맺어졌다. 1947년 12월 자르 지역은 점령군의 명령에 근거하여 선출된 입법기관을 통해서 자신의 헌법을 제정하게 되었다. 자르 지역 헌법의 전문(前文)과 여러 원칙적인 조항들에는 자르 지역의 미래는 프랑스와 경제적인 관련을 맺으며, 독일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한다는 토대 위에 서 있었다.

이 헌법의 시행 이후 자르 지역에서 점령정부는 공식적으로 그 끝을 맺었다. 그러나 독일은 1949년 이후 프랑스에 의해 자르 지역에서 창설된 정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1951년 이후 영국과 미국의 중재로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자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이 이어졌다. 그 결과 1954년 10월 23일에 서독연방 수상과 프랑스 수상이 서명한 '자르의 지위에 관한 협정'이 맺어지게 되었다. 이 협정은 자르 지역에 유럽연맹 내에서의 “유럽적 지위”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 협정으로 독일과 프랑스 두 나라는 자르 지역에서는 평화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일정한 “지위”가 존재해야 한다는 데 합의하였다. 자르 지역의 이러한 지위는 유럽연맹 각료회의에 책임을 지는 감독관의 감독을 받도록 하였다.

서독과 프랑스 사에에 맺어졌던 이 협정이 헌법위반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연방헌법재판소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였다. 이 협정은 자르 지역에 유럽적 지위를 부여하고 있고, 적어도 그러한 지위가 유지되는 기간 동안 자르 지역이 독일에서 배제되는데, 이는 독일 기본법(헌법)이 1937년 12월 31일의 국경선 내에 들어 있던 모든 독일 국민을 포괄하면서 현재에도 계속 존재하고 있는 그러한 국가를 전제로 한다는 정신에 위반한다는 것이었다.

1955년 5월 4일 서독연방헌법재판소는 서독연방의 자르 지역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점령군의 점령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체결한 프랑스와의 조약이 그 이전에 존재하던 상태(즉 점령상태)보다 더 기본법(헌법)에 접근해 있는 경우에는 그것을 위헌이라고 보아서는 안된다고 선언하였다. 이를 가리켜 소위 '접근의 이론' Annaehrungstheorie)이라고 한다.

서독연방헌법재판소가 이 사건에서 정치적으로 취해지는 어떠한 조치이건 접근의 관념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본 것은 아니었다. 포기할 수 없는 헌법원칙들이 침해되어서는 안되고, 헌법에 더 접근하는 새로운 조치들은 잠정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1955년 12월 1일부터 효력을 발생한 '점령손해의 보전에 관한 법률' 제6조는 1948년 6월 21일의 화폐개혁을 기준으로 화폐개혁 전에 행해진 작위 또는 부작위를 통한 손실 또는 손해의 전보('점령손해'란 점령군의 서독 점령으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를 가리킴)에 관한 계산방법을 규정하고 있었다.

이에 따르면 1) 사망 또는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해가 야기된 경우에는 1 제국 마르크 당 1 서독 마르크의 비율로 계산하고, 2) 그 밖의 손실 또는 손해의 경우에는 10 제국 마르크 당 1 서독 마르크의 비율로 환산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여기에서 '제국'이란 서독 정부가 세워지기 이전의 독일을 가리킴). 이 규정과 관련하여 손실을 입게된 사람들이 서독연방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서독연방 헌법재판소는 1969년 12월 3일에 내린 결정에서 관련 법률조항이 기본법(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재산권이나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점령군의 서독점령으로 인하여 발생하게 된 청구권을 제한하는 것이 헌법에 더 접근하는 상태(즉, 점령상태의 종식)에 도달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으로 보아 이를 합헌이라고 본 것이다.

이를 통하여 판례는 접근의 관념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조건들을 더 구체화시켜 나갔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도달된 것'과 '법적으로 희생된 것' 사이에는 균형관계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 법적으로 희생된 것은 '사소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때 우리나라에서 유신헌법이 이 '접근의 이론'에 의할 때 정당화된다고 본 헌법학자가 있었다. 그러나 유신헌법은 접근의 이론에 의해서 결코 정당화될 수 없었다. 유신헌법은 우리 헌법의 기본원칙들을 침해하고 헌법을 파괴하는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는 등 독일연방 헌법재판소가 설정한 접근의 이론에 의한 정당화 조건을 전혀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위에서 소개한 서독연방 헌법재판소(현재는 독일연방 헌법재판소)가 내린 두 개의 판례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문제되고 있는 현대상선의 대북자금지원과 사실관계를 같이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독일에서 발생한 사건들과 우리나라에서 문제되고 있는 사건들의 본질적 쟁점은 동일하다. 조약의 형식이건 법률의 형식이건 아니면 사실적 행위이건 정권담당자가 내린 정치적 성격을 띠는 결단들이 실정법에 위반하는 경우, 그것을 곧바로 위법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그러한 결단들이 헌법의 기본가치들에 더 접근하는 경우 헌법적 정당성을 부여해야 하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대상선의 대북자금지원이 접근의 이론에 의해서 정당화될 수 있는가? 우리 헌법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헌법이 실현해야 할 중요한 가치로 설정하고 있다(헌법 제4조 등).

조국의 평화적 통일이라는 헌법적 가치에 더 접근하는 길은 무엇인가? 외국환관리법, 국가보안법, 형법 등 실정법의 엄격한 테두리 내에서 통일을 모색하는 것인가, 아니면 헌법의 기본원칙들을 지키면서 잠정적인 기간 동안 다소간의 실정법적 희생을 감수하면서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조치들을 취하는 것인가?

필자는 이 경우 후자가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평화적 통일이라는 가치에 더 접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통일은 때로는 실정법의 굴레를 벗어나면서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들을 더 소중히 여기는 정치적 결단들이 감행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현대상선의 대북자금지원은 헌법적으로는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2003/02/04 오전 10:58
ⓒ 2003 OhmyNews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