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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8530
2003.01.14 (16:19:08)
티콕(TCOG) 공동성명은 정당한가?


정태욱 기자 tuchung@yumail.ac.kr 

제네바합의의 문제는 왜 빠져 있나?

많은 사람들이 이번 티콕의 공동성명을 환영하고, 북한으로 하여금 대화에 응할 때가 되었다고 충고한다. 하지만 이번 공동성명은 미국이 완강한 태도를 조금 누그러뜨렸다는 데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뿐, 내용적으로 정당한 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티콕의 성명은 북한 핵개발 혹은 핵동결해제가 국제조약 위반임을 강조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소위 미국이 밝혔다는 대화의 의사도 단지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어떻게 포기할 것인지에 대한 것으로 국한되어 있다.

여기서 나는 이번 공동성명에서 어째서 제네바합의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없는가 묻고 싶다. 미국은 북한이 국제조약을 위반하였다고 비난하고 있으나, 북한은 미국이 제네바합의를 먼저 위반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핵관련 국제조약과 북미 제네바합의는 어떠한 관계에 있나?

사람들은 제네바합의는 북미간의 양자 조약이고, NPT나 핵안전협정은 다자간 국제조약이므로 설사 양자간의 문제가 있더라도 북한이 가입한 다자간 국제조약은 준수해야 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한 주장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핵관련 국제조약은 사실상 미국 중심의 강대국이 주도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이 타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핵강대국이 먼저 약소국들에 대하여 핵위협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이른바 소극적 안전보장(NSA)이 그것이다. 그러한 안전보장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약소국들에 국제조약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그저 얌전하게 무장해제하라는 강요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제네바합의의 성격과 미국의 책임

동국대 이철기 교수가 얘기하는 대로, 북미 제네바합의는 바로 그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실제로 북한이 그 제네바합의에서 역점을 둔 것은 단순히 경수로와 중유공급만이 아니고, 미국과의 관계개선과 미국의 위협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북한은 미국으로부터의 안전보장이 안 된다고 생각하였을 때, 1993년 3월 NPT를 잠정 탈퇴하였으며, 같은 해 6월 미국과의 뉴욕 공동성명에서 미국으로부터 안전보장과 주권존중을 받고, NPT 탈퇴를 유보하였다. 그리고 그 뉴욕 공동성명의 연장선상에서 1994년 북미 제네바기본합의가 이루어졌는데, 그 제2항에서 양측은 "정치적 경제적 관계의 완전 정상화를 추구할 것"이라고 하였고, 제3항에서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무기 불위협 및 불사용에 관한 공식적인 보장을 제공할 것"임을 명시하였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체제의 강화를 위하여 노력한다"는 제4항은 그러한 조항들에 이어서 나오는 것이다.

적어도 북한의 입장에서는 제네바합의와 핵관련 국제조약은 무관한 것이 아니다. 북한은 제네바합의를 핵관련 국제조약의 준수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생각하는 것이며, 자신들이 국제조약을 준수할 의무는 오직 미국이 제네바합의를 준수할 때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북한으로서는 제네바합의의 타결로서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도 그러한 점에 동의하였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이번 티콕의 공동성명은 북미 제네바합의의 문제를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불만족스럽다. 미국은 종래 북한이 제네바합의를 먼저 파기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북한은 오히려 미국이 먼저 제네바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나도 제네바합의의 파기에 대한 책임은 미국이 더 크게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들 아시다시피, 부시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클린턴 정부가 제네바합의의 연장선상에서 북한과 합의한 2000년 북미공동코뮤니케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었으며, 이어서 북한을 악의 축에 포함시키고, 핵 선제공격의 대상국의 하나로 지정하였다. 이는 명백히 북미 제네바합의는 물론 핵비확산체제의 전제인 소극적 안전보장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제네바합의의 이행사항인 중유공급마저 중단하고, 심지어 북한 화물선을 무력으로 강제나포하기까지 하였다.

사람들은 그래도 북한의 농축우라늄에 의한 핵개발은 부시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이미 시작되었으므로 북한이 먼저 제네바합의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것은 클린턴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도 이미 미국 강경파들의 대북압박은 계속 있어 왔다는 점이다.

제네바 합의 직후 실시된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자, 대북 강경파들은 제네바 합의의 파기를 지속적으로 주장하였으며, 1998년에는 대북중유공급에 필요한 예산집행을 한 때 거부한 바도 있었다. 1999년 슐레진저 전 미국방장관이 상원 청문회에서 증언한 바와 같이 미국 강경파는 제네바 합의에 대한 실천에 관심을 두기보다 북한의 조기붕괴를 기대하였던 것이다. 심지어 브루스 커밍스 교수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1998년에 미국 본토로부터 북한에 대한 장거리 핵공격의 모의 군사연습까지 실시하였다고 한다.

사정이 그렇다면 북한에게만 제네바합의의 미래에 대하여 낙관하고 그냥 앉아 있으라고 할 수 있겠는가? 미국의 잠재적 위협(그리고 부시 정부가 들어서면서 현실화된)에 대하여 예방적인 차원에서 (영변 핵시설은 동결한 채) 또 다른 자위수단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 과연 비난받을만한 의무위반인가?

이번 티콕의 공동성명에서 미국은 국제조약만을 거론하며 자신들의 관련성은 배제하고 북한의 일방적 의무 위반만을 부각하고자 시도하는 것 같으나, 사태의 본질은 제네바합의를 접어 두고서는 얘기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미국 자신도 국제조약 위반책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북한의 체제안전보장의 요구가 전혀 부당한 것도 아니다. 한국과 일본이 그 점을 지적하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이번 공동성명은 불만족스러운 것이다.

티콕 공동성명의 발전적 해석

그러나 애써 좋게 보자면, 한국과 일본이 제네바합의 및 미국의 책임에 대하여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는 점을 아주 찾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한미일이 함께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데 어떤 안보적 근거도 없다는 점을 공동으로 확인하였다는 점, 그리고 부시 미 대통령이 북한을 위협하거나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거듭 천명하고 한국과 일본 대표단은 이 발표에 대한 강한 환영의사를 재확인했다는 것은 의미있는 성과로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미국에게 제네바합의의 책임과 핵비확산체제의 요구사항인 소극적 안전보장을 요구하고 확인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북한이 위협을 느낄 안보상의 이유가 없다는 문구는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북한 선제공격에 반대하고 그것을 북한에게 보증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하고 싶다.

북미 대화에 대한 기대

요컨대 이번 티콕의 공동성명은 북미 간의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는 점에서 하나의 발전으로 볼 수도 있고, "핵프로그램 포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위한 대화"라는 해법은 미국으로 하여금 체면의 손상을 입지 않고 대화의 테이블로 나오게 하는 묘수라고 평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북한의 책임만 일방적으로 거론하였다는 점에서 공평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즉, 미국이 대화의 의제를 북한 대한의 책임추궁만으로 한정하고 있으므로 북한으로서는 선뜻 그에 응할 명분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우리로서는 북한이 일단 미국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들인다는 실용적 관점을 중시하여 그에 호응해 오길 기대한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북한이 공식적으로 얘기하듯이, 이번 핵파문이 단지 미국 강경파들에 의하여 연출된 과장된 소동에 불과하다면 북한은 이번 기회를 역이용하여 자신들의 무고함과 미국의 책임을 국제사회에 증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 1998년부터 2년 가까이 끌었던 금창리 핵의혹시설에 관한 논란에서 북한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겼듯이 말이다. 

2003/01/09 오후 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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