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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94
조회 수 : 3023
2010.05.16 (16:39:20)

대전일보 2010.5.5자 법조칼럼에 게재된 것입니다.

 

()법치의 책임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54일 자정을 기해 자신의 홈페이지에 공개했던 전교조 등 교원단체 구성원 명단을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이렇게 정리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사적 정보를 공공연히 유포하여 기본권을 침해하고 법치의 상징이랄 수도 있는 법원의 판결을 내놓고 무시·조롱하는 행위를 거침없이 해 대는 법치주의 파괴가, 기본권 보호의무를 지는 국가기관인 국회의원()에 의해서 저질러졌기 때문이다.

조 의원은 명단 공개가 국회의원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일이라면서 법원의 판결은 정치에 대한 사형선고이고 삼권분립을 흔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웠다. 과연 그런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두 아니다.

첫째, 교원의 노동조합 가입·결성권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이며, 노동조합에 가입할 것인지는 교원 개인이 결정할 사항이고, 그 가입 여부는 교사 본인이 스스로 밝히지 않는 한 보호되어야 할 사적 사항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적 사항에 대해 우리 헌법 제17조는 불가침을 천명하고 있다. 국회가 갖는 국정감사·조사권을 발동하는 경우에도 개인의 사생활에 관련된 사항은 그 한계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법원의 금지결정에도 불구하고 강행된 이번 명단 공개는 헌법상의 기본권인 사생활의 비밀과 단결권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여당 국회의원()자충수가 될지는 몰라도 자율적 결정사항은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다.

둘째, 남부지법의 판결은 권력분립 원리에 어긋나기는커녕 권력분립 원리를 충실하게 실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분립 원리의 궁극적 목표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것인데, 법원의 두 차례 결정은 모두 사생활의 불가침과 교사의 단결권이라는 헌법상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 의원과 한나라당은 법원의 판결이 삼권분립을 흔드는 것이라고 강변하지만, 오히려 법원의 판결은 국회의원의 권력남용을 적절히 견제한 것으로서 권력분립 원리의 빼어난 실천행위라고 평가해야 마땅하다.

셋째, 명단 공개는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굳이 외국의 예를 들 필요도 없이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개인정보보호법안 3건을 보기만 해도 이 점은 명확해진다. 2008년에 정부,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과 민주당 변재일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하여 국회에 계류 중인 3건의 개인정보보호법안 모두가, 노동조합의 가입·탈퇴에 관한 정보는 당사자의 동의가 있거나 법령에 의하여 허용되거나 공공기관의 법률상 소관업무 수행을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 등이 아니면 수집·공개 등 처리가 금지되는 대표적인 민감정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민감정보는 알 권리 충족이란 명분으로 그 수집과 공개 등이 정당화될 수 없는, 알 권리의 한계에 속하는 영역이다.

이에 대해 조 의원은 지난 3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전교조 조합원 명단의 국회 교과위 제출 금지 가처분신청을 기각했음을 내세운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의 결정은 교과부 장관이 국회 교과위의 정보제출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것이지, 국회의원이 교과부 장관으로부터 제출받은 명단을 일반 국민에게 공개해도 좋다는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위 3개 법안에서 보듯이 노동조합의 가입·탈퇴 여부는 민감한 개인정보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판단을 전제로 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민감정보를 국가기관도 아닌 일반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이처럼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도 터무니없어서인지, 아니면 지난 교육감선거에서 톡톡히 재미를 본 이른바 전교조 프레임이 잘 먹히지 않아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조 의원은 지난 4일 명단을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명단의 삭제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며, 지금 필요한 것은 반법치의 책임을 엄중하게 묻는 일이다.

대통령이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던 법치를 무력화하려는 행동이 국회의원들에 의해 공공연하게 저질러졌다는 것은, 이번 사태가 조 의원 개인이나 한나라당만의 문제가 아님을, 국민에 대해서는 법치를 강요하면서 국가기관은 버젓이 반법치를 자행해 온 현 정권 전체의 문제임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부든 여당이든 이를 어물쩍 넘긴다면 두 번 다시 국민 앞에서 법치를 거론할 생각은 말아야 한다. 그래도 법치를 주장하고자 한다면, 조 의원도, 한나라당도 기본권을 침해당한 전교조 등 교원단체와 교사들, 근거 없는 폄하와 공격에 시달려 온 법관과 사법부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사과한 후 깨끗이 의원직을 반납해야 한다. 그것이 잔해만 앙상하게 남은 법치나마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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