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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9383
2003.08.29 (10:19:00)
가을 심포 요약문을 아직 작성하지 못하였습니다. 면피 용으로 대신 얼마 전에 쓰게 되었던 "노무현 정부의 대미외교"라는 글을 올립니다.

먼저 맺음말만 소개하겠습니다. 이어서 전문을 첨부합니다.

어쩌면 6자회담의 시간은 우리 민족의 운명에서 결정적인 순간일지도 모른다. 참으로 주체
적이고 슬기로운 외교역량이 절실한 때이다. 실용적인 대미외교의 중요성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낭만적인 반미는 국가지도자가 취할 바가 못 된다. 그러나 진정한 실용외교는
단순한 한미공조는 아닐 것이다.
과거 냉전시대 대미외교는 우리 생존의 축이었으며 우리 군의 작전지휘권을 미군에 헌납하
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통하여 우리 영토에 관해 미군에게 백지수표를 준 것은 그것을 위한
당연한 대가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대미 종속성이 오히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역설적인 상황으로 가고 있음을 직시할 때이다.
원래 미국의 대한반도 전략은 동북아 및 세계 패권이라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의한 것이었
을 터이나, 6.25 전쟁과 이후 공산권의 팽창주의가 지속될 동안 그것은 동시에 한국의 평화
와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모험주
의는 자국에는 이로울지 모르나 한반도의 생존과 평화에는 오히려 위험요소가 되고 있다.
한미동맹관계는 지속될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평화를 위한 것이어야 한
다. 이제 미군의 존재는 분단과 전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통일과 평화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이는 한민족에만 좋은 것이 아니라 미국에게도 명예로운 일이며, 군산복합체라면 모
르지만, 미국 일반의 이익에도 반하는 것이 아니리라. 원칙에 대한 충실성과 사태에 대한
통찰력에 기한 대미 실용주의 외교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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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의 대미외교

영남대학교 법학부 정태욱

한반도의 전쟁위기

한미외교는 한민족의 '사활의 맥(脈)'이라고 할 것이다. 미국이 세계무대에 강대국으로 등장
하고 동아시아가 그 패권에 편입되면서 미국과의 관계는 우리의 숙명이 되어 버렸다. 일본
의 패망에 따른 미군의 진주, 6.25 전쟁 그리고 북핵 문제로 불거진 지금의 전쟁위기에 이
르는 우리 현대사는 곧 대미 외교사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현재 한반도의 정세는 몹시 불안하다. 정전 5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평화가 도래하기는
커녕 오히려 제2의 한국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사람들
은 현재의 위기를 '북핵문제'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사태의 일면일 뿐, 사태의 본질은
북한과 미국 사이의 '전쟁위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 핵문제는 미국의 위협에 대해
북한이 느끼는 공포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사실 북한의 핵개발이 처음부터 핵무장을 위한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공격용'으로 보
기에는 무리가 있다. 탈냉전 시대 북한이 국제적으로 거의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고, 대내적
으로도 북한의 사회경제 체제가 붕괴 지경에 이른 마당에 북한이 계속 호전적 팽창주의를
취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북한의 핵개발은 오히려 미국의 위협에 맞서고 남한의 흡
수통일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용으로 보는 것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이렇듯 북한의 핵개발이 안전과 체제 보장의 수단이라면 미국과 우리는 군사적 대응이 아니
라 협상을 통하여 그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또 그것이 보다 바람직한 것임에는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북한이 곤경의 나락에 떨어지면서 최후로 붙잡고 있는 것이 핵이라고 한다
면, 북한을 군사적으로 압박함으로써 그것을 포기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
이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을 주도한 미국 부시 정부의 이른바 '네오콘(neo-conservative)'들은 협
상이 아니라 북한에게 일방적 굴복을 강요하고 있다. 마치 이라크를 '정벌'할 때처럼 북한을
범죄시하며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들은 체제보장과 관계개선만 이루어지면 핵은
궁극적으로 포기할 수 있다는 북한의 제의를 무시한다. 아주 위험한 오만함이 아닐 수 없
다. 물론 북한의 핵무장은 용인될 수 없으며, 우리는 과거의 전쟁을 반성하지 않고 개혁과
개방보다 군부 권위주의를 강화하는 북한을 비판할 자격이 있다. 그러나 현재 시급한 것은
오히려 미 강경파의 군사적 모험주의에 대한 경계일 것이다.

한반도 평화와 대미외교

다행히도 한반도에는 전쟁위기만이 아니라 냉전의 궁극적 해체라는 평화의 흐름도 또한 면
면히 흐르고 있다. 미국에도 강경파들과 달리 협상을 통한 외교적 해결을 선호하는 온건파
들이 적지 않다. 물론 북한에도 핵개발을 협상카드로 활용하려는 실용주의자들이 있다. 실
제로 1994년의 위기에서 극적으로 타결된 북미 제네바합의는 그러한 세력들에 의하여 성사
된 것이고, 1999년의 '페리보고서'의 한반도 평화안도 그런 흐름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의 대미외교도 일찍이 그러한 방향으로 많은 진전을 이루었다. 특히 노태우 정부 때에
남북간에 불가침 등에 관한 기본합의서를 채택하고,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을 발표하여 남
한에 있던 모든 핵무기를 철수한 것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커다란 성과였다. 김영삼 정부
때의 일탈(逸脫)로 1994년 심각한 전쟁 상황과 이 후 몇 차례 위기 국면에 빠지기도 하였
으나, 김대중 정부의 대북 햇볕정책과 미 클린턴 정부와의 효과적인 공조외교는 다시금 한
반도에 평화의 흐름을 정착시켰다. 남북정상회담 등 김대중 대통령의 과감한 대북정책은 흔
들리던 제네바합의를 유지시켰고, 북미간의 관계정상화를 기약한 2000년 10월의 북미 공동
코뮤니케의 초석이 되었다.
이러한 대미외교는 결국 북미간의 불신과 적의(敵意)를 해소하여, 미국을 한반도 탈냉전의
보증인이자, 남북의 화해와 협력의 후원자로 삼는 전략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었으니, 북미간의 오해가 충분히 해소되기 전에 미국의 정권이 바뀌어 북한
에 대한 혐오와 일방주의로 무장한 강경파들이 득세하게 되었다. 이들은 클린턴 정부 때의
온건 노선을 백지화시켰음은 물론 우리의 햇볕정책에도 제동을 걸었다. 이는 다시 북한의
강경대응을 불러 왔으며 결국 한반도 정세는 다시 위태로워졌다.

대미외교의 과제

두려운 것은 국내에서도 미국 강경파에 편승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들은 북
한에 대한 '유화책'을 어리석고 비겁한 정책으로 매도한다. 북한과의 협상은 핵개발의 시간
만 줄 뿐이며, 북한의 부정하고 잔인한 독재는 당연히 제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제재와 봉쇄를 통한 북한붕괴론 그리고 나아가 핵위험의 제거를 위한 전쟁불사론
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강경론은 근거가 매우 약하며 오히려 위험하다. 우선 그런 주장은 북한이 미
국이 적대정책을 청산하고 관계정상화를 이룬다면 핵은 완전히 포기할 수 있음을 누차 밝혀
왔으며, 실제로 제네바합의가 북한의 핵동결에 효과가 있었다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 그리
고 북한의 유일수령체제가 부당하고 대기근의 원인이라고 하여도, 현재 북한은 새롭게 체제
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을 전혀 평가해 주지 않고 있다. 나아가 설사 북한을 붕괴시
킬 수 있다고 하여도 그것이 바람직한 해법인지는 의심스럽다. 민중들의 자발적인 정치세력
화가 결여된 상태에서 외부에서 강요된 체제의 붕괴는 오히려 내전이나 무정부적 혼란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며, 그것은 결국 주변국들의 군사적 개입을 불러 올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 강경파와의 공조를 외치는 이들은 우리와 미국의 처지가 다르다는 점을 간과
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에 대한 강경론은 일리가 있는 정책일 수 있다. 최악
의 경우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미국으로서는 잃을 것이 많지 않다. 반면에 기대되는 이익은
훨씬 클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해법은 그 정당성을 차치하고라도 우리 민족에게는 사형선
고라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1990년대 이후 한반도의 정세를 보면 이제 우리의 대미외교는 새로운 차원에서 민족의 사
활이 걸린 문제가 되었다. 즉 과거에는 미국에의 의존이 우리 생존의 축이었다면, 이제는
미국에 대한 설득과 견제가 생존의 축이 되는 셈이다. 물론 미국의 복합적인 성격을 도외시
한 무조건적인 반미는 곤란하다. 미국을 적대시하는 것은 한반도에서의 무제약적 군사작전
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자살행위일 따름이다. 나아가 한반도 주변에 포진한 열강들을
생각할 때, 원거리에 있는 미국이라는 견제장치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한반도의 탈냉전과 동북아의 평화공동체를 위한 우리의 대미외교의 과제는 다중적인
것이다. 우선 미국의 강경파를 제어하고, 북한과 미국 사이의 불신과 오해가 증폭되는 것을
막아야 하며, 아울러 미국을 적대시하지 않으면서도 미국의 일방주의를 견제하고 한반도 평
화의 이니셔티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기대

새 시대의 희망을 안고 출범한 노무현 정부에서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자주적이며 능동적인
외교에 대한 가능성을 엿보았다. 미국도 새로운 한미관계를 생각할 정도로 긴장하는 분위기
가 역력하였다. 그가 여당의 유력한 후보로 부상할 때 이미, 미 국무부 동아시아 차관보인
켈리는 "한국의 차기 지도자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전통적 역할에 도전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한미관계 재정립을 시도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하여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노무현 대통령 자신도 후보 시절은 물론이고 당선된 후에도 한반도 문제에서 당당한 발언들
을 계속하여 그러한 기대와 예상에 부응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직
전 상공회의소 초청 간담회에서 "대등한 국가로서 수평적인 관계, 상호수혜적인 관계로 가
야한다.", "전쟁을 막을 수 있다면 미국과 다른 얘기할 수 있다."고 하였고 (연합뉴스
2003-02-19일자),  뉴스위크와의 회견에서는 "미국이 요구하는 새로운 질서는 주로 정의
지만 그것은 또한 일방주의적 성격도 지닌다.",  "나는 미국에 지나친 모험을 삼가라고 요청
하는 것"이라며, "북한을 범죄자가 아닌 협상의 상대로 대우해야 한다."고 밝혔다(연합뉴스
2003-02-24일자).
노무현 대통령은 단지 미국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북한에 대하여도 직언을 하는 데에 주저하
지 않았다. 역시 취임을 앞두고 CNN과의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은 미국에게 북한과 대화를
할 것을 주문하면서도 동시에 북한의 인권상황에 김정일 위원장이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하
였다(연합뉴스 2003-01-26일자). 이러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들은 김대중 대통령의 외교
반경을 뛰어넘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었다. 동북아 중심 국가라는 구호도 그렇듯이, 평화
와 인권의 새로운 한반도 시대를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셈이었다.

이라크 파병

그러나 취임 후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이 정비되어가면서 미국 강경파들과 우리 수구냉전세
력의 견제는 심화되었다. 특히 미국의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우리나라의 신용등급
을 하향조정한 것은 큰 타격이었다. 결국 노무현 정부의 자주적이고 능동적인 대미외교는
냉엄한 현실을 감안하여 보다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야 할 터였다.
그 첫 번째 시험대는 이라크 파병의 문제였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불의(不義)한 것이었
고, 따라서 미국의 요구에 따른 파병은 굴욕적인 대미외교로 인식될 소지가 많았다. 하지만
한미관계를 생각할 때, 비전투부대의 파병 요청까지 거부하기란 어려운 문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얘기처럼, 미국의 요구를 거절할 경우 미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희
생할 수도 있다는 점, 그리고 파병이 북핵문제의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다면, 파병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라크 전쟁 지지와 파병 결정은 곧 미국의 '선제적 방어전쟁(preemptive strikes)'의
논리를 강화시켜주고 따라서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성급한 군사전략에도 면죄부를 줄 수 있
다는 점에 좀 더 유의했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전쟁을 지지하고 파병은 하되 전쟁의 정
당성에 대하여 우리가 '유권해석'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단지 동맹국인 미국의 판단을 존중
하고 그 안보 우려에 공감한다는 차원에서 임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나아가 유엔의 일원
국으로서 유엔의 권위와 국제적 공론의 중요성에 대하여 전혀 언급할 여지가 없었는가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러한 것들은 특히 향후 한반도 문제에서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하여 국제주의로써 견제하
고 또 미국의 한반도 전략에서 동맹국인 우리의 의견을 보다 진지하게 청취하게 하는 근거
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요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선준영 유엔대사가 유엔 안보리에서
미국의 전쟁의 정당성을 공공연히 지지하는 연설을 한 것은 과잉외교가 아니었나 여겨진다.

한미정상회담

이렇듯 이라크 전쟁 지지와 파병의 결정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굴종외교'라기보다
'실리외교'라는 평가가 옳을 것이다. 그러나 2003년 5월에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 방미외교
는 '소신있는 노무현'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우선 정상회담의 공식 성과인 공동성명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여기서 한미 양 정상은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이 증대될 경우 "추가적 조치"의 검토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고
하여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였음은 물론, "향후 남북교류와 협력을 북한 핵문제의 전개상황
을 보아가며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하여 남북교류의 제한까지 시사했다. 그러나 반대로 북
한의 안보위협을 해소시켜주는 대목은 전혀 없었다.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언급 속에
그런 내용이 들어 있다고 보기에는 아무래도 미흡한 것이었다.
대화의 문제가 소홀히 취급된 것도 문제였다. 대화의 중요성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
다. 북미간의 문제가 기본적으로 상호 불신과 편견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할 때, 대화가
없다면 일방적 상상 속에서 오해가 증폭되어 사태가 악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동
성명에는 대화에 관한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나아가 방미 중에 보인 노무현 대통령의 언행
은 우려를 자아냈다.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에 대한 찬양과 북한에 대한 비난으로 일관하였
는데, 미국에 가서 미국의 체제와 지도자를 칭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북한을 그렇게 노골
적인 비난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 불신과 폄하는 결국 미국 강경
파들의 북한 정권교체론에 힘을 실어주게 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외교는 김대중 대통령 때의 정상회담과 퍽 대조적이었다. 김대중 대통
령은 부시 정부가 막 출범하던 2001년 3월 초 급히 미국으로 날아가 제네바 합의의 지속과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었다. 그리고 대테러전쟁으로 세계가 뒤숭숭하
던 2002년 2월 부시 대통령이 방한하여 이루어진 정상회담에서도 김대중 대통령은 부시 대
통령으로 하여금 북한을 군사적으로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밝히도록 설득
하였다.
북핵문제의 원칙적 해법은 '동시이행'에 있다. 즉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을 포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명제에는 북한에 대한
요구만이 아니라 미국에 대한 요구도 담겨 있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북핵문제의 해법에서
대화의 효용성은 아직 다하지 않았다. 서로의 진의를 보다 잘 이해하고, 또 위험을 관리하
여 파국을 막을 수 있다는 차원에서 대화는 소중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를 위한 노력을 보여준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특별한 '평화 이니셔티브'를 보여주지 못했
다.

대미 실용외교

물론 그 정상회담의 초점은 북한에 대한 대응보다 한미관계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즉 언론
에 의해 부풀려진 노무현 대통령의 '반미' 성향에 대하여 미국이 품고 있던 커다란 의구심을
해소하고 양국 정상이 우의를 돈독히 하는 것을 최대의 과제로 삼았을 수도 있다.  그런 관
점에서라면 한미 정상회담은 평가해줄만 하다. 그리고 북핵문제의 '평화적 수단에 의한 해
결'을 재차 확인한 것도 소중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노무현 대통령 자신도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부시의 약속을 얻은 것에 만족하고 더 이상 다른 얘기를 할 필요가 없
었다고 말하였다.
사실 우려했던 바와 달리 정상회담 이후 우리의 대미 외교와 남북 관계의 기조는 흔들리지
않았다. 반기문 외교보좌관은 공동성명에서 언급된 "추가적 조치"가 결코 군사적 대응으로
이해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으며, 이후 우리의 외교부는 한미일 고위정책협의회
(TCOG) 등에서 미국의 대북강경책을 효과적으로 견제하였다. 미국은 북한 핵문제에 관해
6월 중으로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을 이끌어 내려고 시도하였으나, 우리와 일본은 그에 대하
여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여 결국 안보리 결의안 상정은 미루어졌다. 또 경수로 건설 문제에
서도 미국은 행정분담금의 납부를 지체하고 케도(KEDO) 이사회에서 탈퇴를 검토하는 등
건설 중단을 종용하였으나, 우리는 그 결정을 계속 미루도록 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또한 정세현 통일부 장관의 노력도 주목할 만하다. 통일부는 한미 공동성명에서의 남북관계
를 북미관계에 연동시키는 구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양자의 '병행방침'을 천명하였다. 이후
비록 그 행사는 조촐하게 치뤄졌지만 역사적인 남북 철도와 도로의 연결이 성사되었고, 북
한에 40만톤의 쌀의 지원도 이루어졌다. 또한 남북장관급회담에서도 "핵문제를 적절한 대화
의 방법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여 진전된 합의를 보았다.

6자회담에서의 대미외교

이렇게 볼 때, 노무현 정부의 대미외교는 이른바 '실용외교'라고 평가해도 크게 부족함은 없
어 보인다. 지금까지 햇볕정책의 계승,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견제, 북한과의 대화의 중요
성 등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정책기조가 바뀌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
다. 올 가을이나 겨울 전쟁위기설까지 나왔던 한반도의 정세는 8월 현재, 6자회담으로 새로
운 전기를 맞고 있다. 물론 6자회담의 미래는 낙관할 수 없다. 그럴수록 회담의 한 당사자
가 된 우리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ABC 방송사와의 회견에서 북한의 불가침 조약의 요구
에 대하여 "공식적, 법적인 서류로 안보보장을 해줄 필요는 없다."(연합뉴스 2003-07-28일
자)고 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었다. 부시 대통령과 통화를 한 이후에 나온 얘기라는 점에서
그 파장도 적지 않았다.
물론 노대통령의 의중에는 불가침 조약이 아니라 '의회의 결의안'이라는 파월 미 국무장관의
구상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불가침 조약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다른 방도도
있다'는 것과 '법적인 형식이 필요 없다'는 얘기는 다른 것이다. 물론 그 발언 직후 청와대
에서 "북한의 안전보장과 관련한 형식 자체보다는 실질적 보장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라고
해명함으로써 파문은 곧 진화되었지만, 개운치 않았다.
6자회담은 단지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회담이 아니라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중대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 실제로 6자회담의 당사국의 면면을 보자. 모두 우리 민족의 분단과 전
쟁에 책임이 있는 강대국들이다. 우리는 오히려 그들에게 평화와 통일에 협조할 것을 요구
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6자회담은 한반도의 전쟁상태의 종식과 동북아의 공동안보체제
의 형성이라는 발전적 과제까지 담을 수 있고, 또 그래야 할 것이다.
따라서 비록 그 시작부터 어떤 확고한 법적 보장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파월의 구상
과 같이 행정부가 불가침을 약속하고 의회의 결의로써 인증한 후 6자회담에 참여한 다른
나라들이 그것을 공동으로 보증하는 형식, 혹은 웰든 하원 의원의 평화안에서 나온 1년의
한시적인 불가침 조약도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그러한 보장들은 당사국들의 적
대관계 청산 즉, 북미의 수교와 북일의 수교로 이어져 정전상태를 끝내고, 나아가 동북아
공동안보체제를 구성해야 할 것이다.

맺음말

어쩌면 6자회담의 시간은 우리 민족의 운명에서 결정적인 순간일지도 모른다. 참으로 주체
적이고 슬기로운 외교역량이 절실한 때이다. 실용적인 대미외교의 중요성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낭만적인 반미는 국가지도자가 취할 바가 못 된다. 그러나 진정한 실용외교는
단순한 한미공조는 아닐 것이다.
과거 냉전시대 대미외교는 우리 생존의 축이었으며 우리 군의 작전지휘권을 미군에 헌납하
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통하여 우리 영토에 관해 미군에게 백지수표를 준 것은 그것을 위한
당연한 대가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대미 종속성이 오히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역설적인 상황으로 가고 있음을 직시할 때이다.
원래 미국의 대한반도 전략은 동북아 및 세계 패권이라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의한 것이었
을 터이나, 6.25 전쟁과 이후 공산권의 팽창주의가 지속될 동안 그것은 동시에 한국의 평화
와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모험주
의는 자국에는 이로울지 모르나 한반도의 생존과 평화에는 오히려 위험요소가 되고 있다.
한미동맹관계는 지속될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평화를 위한 것이어야 한
다. 이제 미군의 존재는 분단과 전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통일과 평화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이는 한민족에만 좋은 것이 아니라 미국에게도 명예로운 일이며, 군산복합체라면 모
르지만, 미국 일반의 이익에도 반하는 것이 아니리라. 원칙에 대한 충실성과 사태에 대한
통찰력에 기한 대미 실용주의 외교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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