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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10044
2003.09.09 (15:17:34)
*셀리그 해리슨 선생님이 6자회담 이후, 특별기고로 한겨레신문에 쓴 글입니다. 참고가 될 듯 해서 올립니다. 출처: 인터넷한겨레- 편집 2003.09.07(일) 18:41


러·중과 더 가까이 하라

중국 베이징에서의 6자회담 직전인 지난달 20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미국의 대북한 정책 전환 의지를 확인할 것이며, 미국의 진심과 가식을 명백히 가려 보고 그에 대응한 행동조처를 취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따라서 미국 대표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가 미국 정책은 바뀌지 않았음을 분명히 했을 때, 북한 대표 김영일 외무성 부상이 핵 실험을 하겠다는 위협으로 “대응한 행동조처”를 취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북한의 협상스타일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민족주의에 바탕해 권력을 유지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그가 초강대국 앞에 굴복하는 것처럼 비칠 경우 억압통치를 유지해야 한다고 더이상 주장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켈리는 베이징에서 또다시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끝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핵시설 해체까지 4단계에 걸쳐 서로 동시양보를 하자고 한 북한의 솔직한 제안을 거부했다. 1단계에서 미국이 중유 제공을 재개하고 인도주의 식량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동시에 북한은 핵계획 포기 의사를 선포한다. 2단계로 미국이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2003년 목표일까지 경수로 완공이 지연된 데 따른 전력손실을 보상하는 시점에서 북한은 핵시설과 핵물질 동결 및 감시 사찰을 허용한다. 3단계로 북-미, 북-일 외교관계가 수립되는 동시에 북한은 미사일 문제를 타결하며, 마지막 단계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케도)의 경수로가 완공되는 시점에서 북한은 1994년 기본 합의 틀에서 합의된 대로 핵시설을 해체한다는 것이다.

북한으로선 외교주도권을 지키고 자신의 화해 제스처를 미국이 무조건 거부한 것에 대응하기 위해 핵 실험을 하겠다고 위협할 필요가 있었다. 북한이 정권창건 55돌인 9일 이런 실험을 할까 아니면 핵 보유 선언만을 하는 데 그칠까 미국이 미사일·마약 수송용으로 의심되는 북한선박을 차단한다거나 하는 위협적인 군사적 자극을 계속한다면 핵 실험 가능성은 커질 것이다.

남한은 △미국의 해상차단과 군사적 자극을 방지하고 △미국이 케도를 해체하지 못하게 하며 △케도가 지난해 12월 중단됐던 기본합의 틀에 따른 중유 선적을 재개하도록 하는 등의 세 가지 목표에 외교의 초점을 둬야 한다.

나아가 서울은 미국의 안전보장 필요성을 공공연히 강조하면서도, 평양과의 협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미국 정책으로부터는 거리를 둬야 한다. 이런 독자적 자세는 지금의 위기 분위기를 녹이고 협상재개 가능성을 여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남-북 관계의 악화를 피하게 해줄 것이다.

서울은 위기를 걷어내기 위해 미국·일본보다는 러시아·중국과 더 가까이 해야 한다. 이들 나라는 안전보장을 하도록 미국을 압박할 뜻이 있음을 나타내 왔기 때문이다. 중국은 중재자로서 많은 구실을 했다. 그러나 이제부터 모스크바가 북한과의 협상에서 똑같이 결정적 구실을 할 것이다. 이는 러시아가 미국에 의해 기본합의 틀에 이른 협상과 이후 미국 주도의 한반도 외교로부터 배제됐던 것과는 크게 대조된다.

더 중요한 점은, 러시아가 때때로 한반도에서 불화를 일으키는 미국의 구실을 약화시키면서 남북의 경제적 연계를 촉진하는 데 핵심 구실을 할 것 같다는 것이다.

모스크바는 냉전종식으로 상실했던 외교적·군사적 지위를 다시 획득하려고 결심한 것이 분명하다. 러시아는 지난달 중순 오호츠크해와 베링해, 동해에서 남한·일본도 소수 참가한 가운데 대규모 해상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이는 러시아 해군이 재건됐음을,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균형을 이루는 데 미국과 동등한 지위를 주장할 것임을 전세계에 과시하려는 것이었다.

북한이 베이징 다자 틀을 받아들이는 전제조건으로 러시아 참여를 주장한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모스크바는 평양의 ‘정권 교체’를 끌어내려는 부시 행정부의 시도를 막아줄 양자 또는 다자 안전보장에 대한 가장 강력한 지지자다. 둘째, 북한에게 러시아는 미국 동맹국인 남한·일본 뿐아니라, 한국전쟁 이후의 젊은 지도부가 들어서면서 이전 어느 정권보다 예측하거나 의지하기 힘들게 된 중국에 대해서도 균형추 구실을 할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평양은 북한을 관통할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및 시베리아횡단철도(TSR)의 연장계획을 가속화하기 위해, 모스크바와 관계를 개선하기를 원한다. 평양이 7월31일 다자 틀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발표한 곳으로 베이징이 아니라 모스크바를 선택한 것도, 중국에는 의도적으로 냉대를 나타낸 것이었다.

알렉산더 로슈코프 외무차관은 8월12일 모스크바에서 남한과 북한 대표단을 나란히 붙은 방에서 잇따라 만남으로써, 러시아가 이번 회담에서 주도적 구실을 할 의지가 있음을 내보였다. 남한과 일본, 러시아 모두 일반적 용어로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을 지지한다고 밝혔지만, 특히 러시아는 가장 솔직하고 명확하게 지지를 나타냈다. 남한은 비공식적으로는 북한을 만족시키는 데 필요하다면 미국이 양자 안전보장을 제공할 것을 촉구하면서도, 평양이 받아들일 경우 다자 보장도 지지해 왔다. 그러나 서울은 공식적으로는 부시 행정부에 압력을 가하지는 않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러시아는 양자 보장과 다자 보장의 결합을 공공연히 지지하고 있다.

로슈코프 차관은 8월12일 회동에서 “북한이 안전보장을 원하는 건 절대적으로 논리적”이라며 “미국이 제시한 안전보장이 북한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러시아와 중국이 추가 보장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미국의 동의 아래, 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명확한 의지를 갖고 베이징회담에 참가한 것은, 미국이 94년 핵 위기로 시작된 한반도 상황에 러시아 개입을 최소화했던 과거에 비춰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94년 3~6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 경제제재에 대해 토론하던 당시 러시아는 9개국 회의를 제안했는데 미국과 한국은 이 제안은 물론 러시아의 후원 아래 다자협상을 하자는 두 차례의 러시아 쪽 제안도 외면했다.

모스크바는 94년 핵 합의에서 나온 2기의 경수로 건설에 참여할 수 있도록 로비했으나 이 시도도 성공하지 못했다. 러시아는 몇 차례 케도 이사회 참가를 요청했으나, 재정적 기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시됐다. 96년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은 러시아는 빼놓고 중국 등 4개국이 참가한 제네바회담을 시작해 다시 한번 러시아에 모욕을 안겼다. 모스크바는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한반도를 분단시켰던 나라로서 한반도 관련 외교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강력히 항의했다. 네 차례의 제네바회담이 결론 없이 끝난 뒤 주한 러시아 대사는 99년 초 러시아와 일본을 포함한 6자대화로 확대할 것을 제안했고, 그 제안은 이제 결국 실현됐다.

셀리그 해리슨 미국 국제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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