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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진보연대

 

<4월 15일 목요일 대개봉!>
노근리 사건을 영화화한 꼭 봐야할 영화!
  
 
 [ 작품 개요 ]

이 영화는 1950년 7월, 노근리의 철교 밑 터널 (속칭 쌍굴 다리) 속으로 피신한 인근 마을 주민 수백 명이
미군들의 무차별 사격으로 무참히 살해된 ‘노근리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 사건 보도 ]

1999년 9월 30일 AP 통신의 ‘노근리 사건’ 특종 보도!
2000년 퓰리처상 탐사보도부문 수상!!

‘노근리 사건’처럼
세상에는 의외로 언론이 직접 나서서 취재해 그들의 하고 싶은 말을 전해주지 않으면
자신의 말을 전달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
… 그런 이들의 이야기에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 대한민국 국적자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AP 통신의 최상훈 기자 인터뷰 中 -


[ 사건 증언 ]

“소대장은 미친놈(madman)처럼 소리를 질렀습니다. 발포하라. 모두 쏴 죽여라(kill’em all). 저는 총을 겨누고 있던 사람들이 군인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거기에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목표물이 뭐든 상관없다. 여덟 살이든 여든 살이든, 맹인이든 불구자든 미친 사람이든 상관없다. 모두에게 총을 쐈습니다.”
- 제 7기병연대 참전군인 조지 얼리의 증언


“다리 밑은 모래와 자갈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빗발치는 총알을 피하기 위해 맨손으로 구멍을 팠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은 사람들을 바리케이드처럼 쌓아 그 뒤에 숨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엄마가 죽은 줄도 모르고 계속 울었습니다. 우는 소리를 듣고 그 아이가 있는 곳을 향해 사격이 가해져 또 많은 사람이 희생을 당하자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를 개울물에 넣어 질식 시켰습니다.”
- 노근리 사건’의 생존자 양해찬씨의 증언


[ 사건 개요 ]

한국 전쟁의 숨겨진 악몽
1950년 7월, 한국전쟁 당시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서 피난민 속에 민간인으로 위장한 적군이 침투하고 있다는 미확인 정보가 입수되자 극도의 혼란에 빠진 미군은 저지선으로 접근하는 피난민을 모두 사살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게 된다. 이로 인해 미군은 무차별한 공중폭격과 기관총 사격을 가하여 민간인 300여명을 학살하였다. 이는 베트남 밀라이 사건과 더불어 20세기 최대 규모의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노근리 사건의 비극
1950년 7월, 전쟁초기 북한군에게 밀린 미군은 전선을 후퇴시켜 대전에서 부산으로 가는 유일한 길목인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일대에 저지선을 구축하게 된다. 노근리 주변 마을인 주곡리, 임계리에는 미군에 의해 소개령이 내려지고 500여명의 주민들은 미군의 강압적인 인솔하에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미군은 피난민 틈에 민간인으로 위장한 적군이 침투했다는 미확인 정보를 확신하여, 피난민들의 저지선 통과를 저지하라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남쪽으로 무작정 내려가던 피난민들을 향해 비행기 폭격을 감행한다. 미군의 저지선이 후퇴하기 전, 7월 26일부터 29일까지 3박 4일 동안 폭격에 살아남은 300여명의 생존자들은 기차길 밑 쌍굴 다리에 갇힌 채 제 1기병사단 7기병연대 2대대 병력으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300여명에 달했던 쌍굴 다리 안의 피난민들 중 최후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25명. 이들은 시체를 방패 삼고 핏물로 갈증을 달래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사건의 폭로
이후 생존자를 중심으로 한 주민들의 끊임없는 진상규명 요구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에 50년간 부정되었던 이 사건은 1999년, AP 통신 기자들을 통해 그 진상이 밝혀졌다. 그들은 비밀 해제된 미(美) 군사문건을 검토, 사건 발생 당시의 미군 이동경로와 현장에 주둔했던 미군부대를 찾아내고 당시 가해자인 미군과 피해자인 한국의 생존자들의 증언으로, 잊혀졌던 사건의 궤적을 맞춰내는 등 수년간의 노력을 통해 ‘노근리 사건’의 전모를 밝혀냈다. 이 보도는 2000년 퓰리처상 보도부문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AP통신의 보도 이후 2002년, 영국의 BBC 방송은 다큐멘터리 〈Kill’em All>을 제작해 ‘노근리 사건’을 다시 한 번 전세계에 알린다. 이후 ‘노근리 사건’은 한국전 당시 미군에 의해 벌어진 60여건의 민간인 학살 중 진상이 밝혀진 유일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 작품 소개 ]

세계가 주목한 ‘노근리 사건’을 다룬 최초의 작품
마침내, 봉인된 시간의 비극이 드러난다
한국 전쟁의 비극적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노근리 사건’. 그 시절 생지옥을 경험하고 부모, 자식, 형제를 잃은 최후의 생존자들은 억울하게 죽은 망자의 넋이라도 위로하고 싶어 세상에 작은 목소리를 내어보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무관심과 냉대뿐이었다. 그렇게 소리 없이 묻힐 것이라 예상됐던 사건이 1999년 AP 통신의 최상훈, 찰스 J. 핸리, 마사 멘도자 기자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본 사건에 대한 취재 보도로 2000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The Bridge at No Gun Ri’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했다.
반세기 동안 ‘운 나쁜 소수의 비극’으로 치부되며 여전히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로 외면 받았던 ‘노근리 사건’이 마침내 가장 보편적인 매체인 영화를 통해 대중에게 소개된다. 영화 <작은 연못>은 그날의 비극을 생생하게 담아낸 AP통신의 보도자료와 생존자들의 살아있는 육성을 토대로 전쟁의 악몽을 극적으로 재구성 한다. 허망한 영웅담이 아닌 전쟁의 최전선에 선 하얀 옷의 민간인들을 통해 보여지는 전쟁은 그 어떤 스펙터클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길 것이며 동시에 묵직한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제작기간 8년, 사건 발생 60년 만에 영화로 완성된 역사적인 프로젝트
영화 <작은 연못>은 최상훈 기자를 포함한 AP통신 기자들의 ‘노근리 사건’ 특종보도 기사를 토대로 영화화를 검토하여 기획을 시작했다. 그 해 11월 AP통신 최상훈 기자와의 첫 만남을 가진 이후, 4년에 걸쳐 노근리 현지 답사와 생존자 및 유가족 인터뷰 등의 자료조사를 철저하게 진행했다. 그와 함께 2003년 국내에 번역본으로 출간된 ‘노근리 다리’와 노근리 대책위원회 위원장 정은용씨의 저서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를 원작으로 하여 3년여 간의 시나리오 작업, 6개월 간의 촬영 준비와 3개월 간의 촬영, 3년여 간의 후반 작업이라는 기나긴 공정을 거쳐 <작은 연못>은 완성되었다. <작은 연못>은 사건 발생 60년 만에 영화로 완성되며 세상에 빛을 보게 된 역사적인 프로젝트이다. 1950년 7월 사건 발생 이후, 50여 년 만에 진실이 널리 알려지고 또 다시 8년의 세월을 거쳐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이들의 관심과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화 <작은 연못>의 오랜 제작과정은 노근리 사건을 경험한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이 60년 동안 가슴 속에 간직해온 이야기를 통해 1950년 한국전쟁의 숨겨진 악몽을 재조명하고,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고스란히 담아내기 위한 시간들이었다.


영화계 최고 배우, 최고 스탭들의 자발적 참여
그리고 대안적 제작 방식이 만들어낸 감동
영화의 본격 제작 단계에 들어가기 앞서 2006년 5월, 영화 <작은 연못> 제작만을 위한 특수 목적회사 (유)노근리 프러덕션(대표 이우정)이 설립되었다. ‘노근리 사건’이 영화화 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영화계 최고의 스탭들이 동참의사를 밝혔고, 문성근, 강신일, 故 박광정, 김승욱, 이대연, 김뢰하, 전혜진 등을 비롯한 국내 연극, 영화계에 기라성 같은 배우들 역시 자발적으로 출연에 나섰다. (유)노근리 프러덕션은 스탭 및 배우들의 자발적 참여에서 한발 더 나아가 후반작업 업체 및 장비관련 업체에도 참여를 제안하고 동의를 얻었으며, 이에 따라 약 40억 원 규모의 영화를 10억 여 원만을 조달하여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 <작은 연못>의 제작방식은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려는 영화적 성취를 넘어서 전세계인을 향하여 전쟁의 본질을 알리고자 하는, 평화를 향한 한국 영화인들의 의지가 만들어낸 하나의 사건이다. 이처럼 진심으로 시작된 감동적인 제작 방식은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전무후무한 사례가 될 것이다.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프리젠테이션 초청작 <작은 연못>
영화 <작은 연못>은 지난 2009년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프리젠테이션 초청작으로 선정되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제작 출발 7년 만에 최초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개막작 만큼이나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갈라프리젠테이션은 거장들의 신작 또는 그 해의 화제작이 소개되는 부문으로 2007년 신설된 이래 왕가위, 서극 등 대형 감독들의 작품을 소개해왔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 <작은 연못>이 ‘노근리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을 민중의 시선으로 보여준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상영 전 진행하는 레드 카펫 행사에서도 19인의 주연 배우가 모두 참여해 주목을 받았으며, 영화를 본 관객들은 객관적이고 깊이 있는 고찰이 돋보이는 새로운 전쟁 영화였다라고 벅찬 감상 소감을 전했다. 관계자들은 故 박광정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에 다시 한 번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꼭 알아야 하는 비극적 역사를 진심 어린 시선으로 담아낸 영화 <작은 연못>이 한국 전쟁 영화 역사의 한 획을 그을 것을 기대해 본다.


[ 제작 노트 ]

문성근, 송강호, 문소리, 한국 영화계와 연극계를 주도하고 있는 연기자 총출동
배우들의 배우자, 자녀, 부모까지 총동원된 이색적인 가족 캐스팅
문성근, 송강호, 문소리, 강신일, 故 박광정, 김승욱, 이대연, 김뢰하, 전혜진, 유해진, 박원상, 정석용, 박노식 등 출연진 모두가 이상우 감독과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대학극을 함께 하던 선후배들, 대학로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공연을 해 온 동료들, 그리고 연극원의 제자들까지 모두가 이상우 감독과 함께 작업하기 위해 모였다. 이상우 감독과 길게는 20년, 짧게는 3~5년에 걸쳐 연극을 함께 만든 그들의 자발적인 출연과 끈끈한 유대감은 촬영 현장에 따뜻한 기운을 더했다. 연극무대와 스크린,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새로운 연기자 세대로 평가 받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 만으로도 영화 <작은 연못>은 주목을 끌기에 충분할 것이다. 특히, 우정 출연한 송강호, 문소리, 유해진, 박원상, 정석용, 박노식 등의 배우들 또한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유명 배우들이지만, 이상우 감독의 전화 한 통에 바로 출연을 결정했다.
영화 <작은 연못>은 이에 그치지 않고 영화 속 대문 바위골 사람들처럼 배우들에게서 실제 주민 같은 유대감과 친밀감을 만들어내기 위해 가족 캐스팅이라는 특별한 방식으로 영화에 사실감을 더 한다. 주요 배우들의 친 가족들을 실제 영화에 등장시켜 한 살 박이 영아에서부터 까까머리 고등학생까지, 주연 배우들의 금쪽 같은 자식은 물론이고 그들의 아내, 칠순의 노모까지 등장하는 영화 <작은 연못>만의 이색적인 캐스팅은 또 하나의 감동이 된다.


국내 최고의 CG 기술로 재현해낸
1950년대의 서정적인 풍광과 숨막히는 무차별 폭격씬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50년에서 60년이나 지난 지금, 영화 <작은 연못>이 그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낼 수 있었던 데는 CG의 힘이 가장 컸다. 영화 <작은 연못>의 CG는 국내 최고의 특수디지털시각효과 제작 회사인 ‘모팩 스튜디오’에서 작업했다. 국내의 CG 팀 중에서도 손꼽히는 실력파 회사인 모팩 스튜디오는 1950년 대한민국의 산천과 들판, 마을의 느낌부터 피난민들을 생사의 갈림길로 몰아넣었던 기찻길 위 무차별 공중 폭격과 쌍굴 총격 현장을 생생한 영상으로 되살려냈다.
이러한 그들의 의지와 노력으로 1950년 6.25 전쟁 당시의 피난민들의 소박한 모습과 그 피난길의 고요하고 서정적인 풍광이 영화 안에서 펼쳐지며, 그와 동시에 영문도 모르는 채 무차별 공격을 받는 참혹한 학살 현장의 모습 또한 사실적으로 만들어 냈다.


철저한 고증과 치밀한 작업으로 이루어진
33일간의 특별한 쌍굴 제작기
실제 노근리 사건이 일어난 충북 영동군의 쌍굴은 2003년 문화재청에 의해 등록문화재 59호로 등록되었다. <작은 연못>의 미술 감독인 윤정섭 교수는 TV, 연극, 영화, 무대 미술, 디자인 등 다방면에서 활동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 쌍굴에 대한 분석과 자료조사를 통한 철저한 고증을 거친 후, 촬영의 효율성을 고려해 실제 쌍굴의 70% 크기의 쌍굴 세트를 디자인 했다. 제작팀은 쌍굴 현장에서 멀지 않은 충북 영동군 매천리에 적합한 공간을 섭외 했고, 국내 최고의 세트팀인 ‘난든집’이 세트의 재료비를 모두 투자하여 또 하나의 쌍굴을 만들어 냈다.
세트가 완성된 뒤에는 영동군청의 지원을 받아 30톤 트럭 20대 분량의 자갈을 흙 바닥 위에 덮었다. 쌍굴 앞에 맑은 물 웅덩이를 만들기 위해 제작팀이 일일이 돌을 씻었고 풀 한 포기를 배치할 때에도 감독을 비롯한 전 스탭의 고민과 회의를 통해 이루어졌다. 또한, 쌍굴씬을 촬영할 때에는 만들어낸 웅덩이에 영동중앙소방서의 지원을 받아 소방차 한 대 분량의 물을 매일 채워 넣어야 했다. 이러한 제작진의 치열한 노력과 영동군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완벽한 공간의 재현은 배우들의 생생한 감정 재연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격동의 시대 아이콘 김민기, <작은 연못>에 자신의 모든 음악 사용 허가
가수 김민기는 영화 <작은 연못>을 위해 자신의 모든 음악을 선뜻 내어주었다. 한 명의 아티스트가 자신의 모든 음악의 사용을 조건 없이 허락한 일은 ‘김민기 음악사’는 물론 ‘한국 영화사’에 있어서도 전례가 없던 일이다. 본 영화와 동명 타이틀곡인 ‘작은 연못’은 본인이 직접 작사, 작곡하여 1993년 김민기의 4집 앨범에 실린 노래이다. 이 곡은 이후 양희은, 이승철, 델리스파이스 등 후배 가수들을 통해 다시 전해진 바 있어 세대를 초월한 그의 음악의 힘을 다시 한번 확인 시켜주었다. 영화 <작은 연못>의 영상은 ‘나비’, ‘작은 연못’, ‘천리길’ 등 김민기의 주옥 같은 음악들과 어우러진 슬픈 역사의 진실이 관객들의 눈과 귀에 깊은 인상을 남길 것이다.


[ 작은 연못 ]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 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오르고
그놈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 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 것도 살지 않죠

푸르던 나뭇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져
연못 위에 작은 배 띄우다가 물속 깊이 가라앉으면
집 잃은 꽃사슴이 산속을 헤매다가
연못을 찾아와 물을 마시고 살며시 잠들게 되죠

해는 서산에 지고 저녁 산은 고요한데
산허리로 무당벌레 하나 휘익 지나간 후에
검은 물만 고인 채 한없는 세월 속을
말없이 몸짓으로 헤매다 수많은 계절을 맞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 것도 살지 않죠

김민기, 작은 연못 中에서

<작은 연못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이곳에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
 
작은 연못 홈페이지 www.alittlepond2010.co.kr/
작은 연목 블로그  blog.naver.com/alittlep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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