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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12010
2004.05.10 (14:50:55)
세브란스 병원 설립자의 자손이기도 하면서 그 동안 소리나지 않게 북한에 대한 의료지원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던 인요한씨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북한이 의료지원을 거부한 데에 대하여 비판이 적지 않은데, 우리는 이 인터뷰에서 북한이 거부한 것은 '인력' 지원일 뿐이며, 또 그 거부는 그렇게 사시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 대한 그의 애정과 비판 그리고 북한에 앞서 우리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그의 지적, 혹 북한 사람들을 경멸하는 마음이 있다면 큰 걱정이라는 그의 얘기는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연합뉴스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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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03 04:50 송고   


<연합초대석> 인요한 외국인진료소장



인요한 외국인진료소장


"물적지원 시급해...인력지원은 반대"
對北 의료사업 주도한 `碧眼의 허 준'
   
    (서울=연합뉴스) 이명조 기자 = "평소 북한을 꾸준히 도와 그 곳에  소모품이나 의약품이 많이 비축돼 있었더라면 이번처럼 대형참사를 당해도 사정이 훨씬  나았을 겁니다."
    북한 결핵퇴치 및 의료 사업차 지금까지 열두 차례 방북해 북측 보건의료  실태를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는 인요한(45.미국명 미국 존 린튼.의학박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외국인진료소장은 룡천 폭발사고 후 이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남한의 보수.진보세력이 모두 룡천 동포돕기 대열에 동참한 데 대해 가정의학과 부교수이기도 한 그는 "열악한 보건의료 현실을 타개할 수 있도록 인도적  차원에서 장기 지원이 필요하다"며 `일회성' 이벤트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했다.

    1997년부터 형 스테판 린튼(한국명 인세반)과 `유진벨 재단'의  북한  결핵퇴치 사업을 주도해와 `벽안(碧眼)의 허 준'으로도 불리는 그는 TV, 라디오의 룡천  피해민 돕기 성금모금 특별생방송 출연 등으로 눈코 뜰새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4월 29일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해외파견 의사를 상대로 교육을 마치고 나오는 그를 만나 북한의 의료현주소를 짚어보고 선교사의 후손으로  5대째  한국에서 살고 있는 가족사를 들어봤다. 그의 한국 성(姓)인 인(印)은 린튼의 린을 우리 말로 바꾼 것이다.

    19세기 말인 1895년 미국의 남(南) 장로교 소속 초대선교사로 입국한 조지아 주 출신의 유진벨(한국명 배유지)이 그의 외증조부로, 유진벨 재단은 유진벨  선교사가 한국에 첫발을 디딘 지 10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기 위해 1995년 설립됐다.

    "이번 룡천 참사를 계기로 드러난 북한의 열악한 보건 의료현실만 보더라도 `북한에 퍼주었다'는 말이 사실과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는 그는 "북한이 어려우면 (남북) 누구한테도 좋은 일이 아닌 만큼 북한이 근본적으로 해결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에는 무엇보다 의료장비와 소모품 등이 없어요. 수액을 사이다 병에  담아 쓰고 목화를 재배해 붕대를 만들어요. 북한 용어로 자력갱생하려 하지만 그게  한계가 있어요."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단계적 지원방안의 일환으로 북한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물품지원이 우선돼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 것이다. "북한 의료진 손에 장비, 소모품을 쥐여줌으로써 대규모 참사 피해의 큰 불을 끌 수 있도록 해야죠."
    --당장 지원이 시급한 게 무엇일까요.

    "화상치료제 등 전문 의약품과 링거액에서부터 X-레이 필름, 멸균된 물은  물론 이불, 먹을 것, 덮을 것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약품, 장비, 소모품이 필요하겠죠. 화상환자는 많은 인력과 장비를 투입해 돌봐야 합니다. 만약 서울시내에서도 어느날 갑자기 100-200명의 화상환자가 한꺼번에 발생하면 어려움을 겪을 겁니다. 이번에는 대북 의료지원의 투명성을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은 잠시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남측인력이 북측으로 몰려가는 데 대해서는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다들 북한의 사고 현장으로 가겠다고 하는데, 그 쪽도 나라예요.  `내가  가서 해야 한다'는 것은 철학적으로도 맞지 않아요. 미국의사가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 없이 세브란스병원에 와서 수술을 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선천, 신신의주 등 환자들이 후송돼 있는 병원을 중점적으로 도와야 합니다. 북한 의료진은 아주  우수하지는 않지만 잘 합니다. 아프리카 후진국처럼 의사가 없는 나라가 아니잖아요."
    자신을 북한에서 애프터서비스(AS) 활동을 한 `AS맨'이라고 몸을 낮추는 인  박사는 "북한은 1995-1996년 수해와 1997년 가뭄 등 자연재해로  인프라가  무너졌고, 동구권 붕괴로 무역이 단절돼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왔다. 이런 가운데  이번에 대규모 참사까지 당했다"고 북한사회의 어려움을 전했다.

    --중장기적으로 북한을 지원하는 방안은 어떤 게 있을까요.

    "비정부기구(NGO)를 많이 활용해야 합니다. 다양한 NGO들이 다각적으로 돕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이웃사랑회, 굿네이버스, 월드비전 등 NGO들에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어요. 의학적으로 설명하면 상대방의 열도 재보지 않고, 어디가 아픈지 진찰해 보지도 않고 `이게 도움이 되겠다'고 지레짐작해  도와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보건의료 지원사업은 점차 긴급 구호 차원에서  장기적이면서도 지속적인 개발지원쪽으로 방향이 바뀌어야 합니다. 북한도 남측 정부만 상대할 게 아니라 각종 학회, 언론계 등의 다양한 인사들을 만나야 합니다."
    --북한 의료체계 등 실태는 어떻습니까.

    "도별로 의대가 있어 의대생을 배출합니다. 이들 가운데 절반 가량은 바로 전국의 현장에 파견돼 일정 수의 주민을 담당하는 의사가 됩니다. 북한에서는 특히 예방의학이 중시됩니다. 주민들이 예방접종을 하지 않으면 의사가 주사기를 들고 집앞에 서 있어요. 미리 병을 막자는 아이디어는 아주 좋아요. 만약 약품, 수술기기,  의료소모품 등이 부족하지 않다면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나라에서 무상치료를 해주는  제도이니 좋은 점도 많아요. 문제는 약품이 떨어지고 장비가 노후화했고, 소모품이 없어 병원에 가더라도 큰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데 있죠."
    --유진벨 재단의 북한 지원은 어떤 식으로 이뤄지고 있나요.

    "설립 후 초기에는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 사업을 벌였어요. 그  후  1997년부터 북한의 최대 보건문제인 결핵을 퇴치하기 위해 결핵 진단 및 치료 사업에  주력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어요. 유진벨 재단은 기증인의 심부름꾼으로 그들의 사랑과 정성이 담긴 지원품을 북한동포에게 대신 전달하는 나귀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북한 전역의 결핵병원과 요양소에 전달되는 외부지원의 주된 통로가 `유진벨  나귀'라고 할 수 있죠.

    유진벨 재단은 현재까지 북한의 결핵환자 15만명 이상을 치료했고, 300억원  상당의 의약품 등을 전달했습니다. 또 1억5천만원 상당의 결핵검진차를 지원했고,  현재 35대의 검진차가 북한 전역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어요. 그러나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경제난에다 질병과도 싸워야 하는 북한 주민을 돕고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는 차원에서도 의료지원은 계속돼야 합니다. 물론 물자장비 지원으로 체제의 근본적인 결함을 보완하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활동하는 유진벨 재단의 근원적 한계는 미국단체라는  점이다. 대북 의료지원 통로를 다양화해 이런 한계를 극복해 보겠다는 그의 의지는  `등대복지회'라는 북한지원단체 설립으로 가시화했다. 올 초 출범한 등대복지회는 영양  결핍에 시달리는 북한 어린이들에게 두유를 공급하는 `두유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북한의 5세 미만 영유아들이 하루 1-2잔의 두유를 섭취할 수 있도록  콩과  콩 짜는 기계를 지원해 주는 사업입니다. 하루 1-2잔 섭취하면 성장에 필요한 기본  단백질 등 영양을 보충할 수 있어 정신박약아가 되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지금  1만명의 아이들이 두유를 공급받고 있지만 앞으로 10만명의 어린이들이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할 겁니다."
    북한에서 이처럼 결핵치료에 큰 공을 세우고 있는 그의 남한에서의  업적으로는 응급의학의 정착을 빼놓을 수 없다. 전남 순천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그의 아버지 휴 린튼(한국명 인 휴)을 1984년 교통사고로 여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농촌교회 건축자재를 옮기던 중 관광버스에 들이받혀 응급처치를 받지 못한 채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 하나님 품에 안기셨어요. 그때 한국의  응급의료체계에 화가 났고, 또 다른 피해자를 막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계기가 돼 1991년 세브란스병원 외국인진료소장을 맡은 직후 15인승 승합차량을 직접 개조해  첫 한국형 구급차를 만들었고 3천여명의 119 구급대원을 대상으로 응급구조 교육을  실시했어요."
    이런 억척스러움은 연세의대에 입학한 1980년 광주민주화 운동의 현장을 둘러보다 시민군의 외신기자회견을 통역했다는 이유로 강제출국될 위기를 겪은 데 이어 같은 해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동료학생들과 함께 문무대 생활을 하겠다며  입소를 자원한 데서도 엿볼 수 있다.

    그 해 같은 대학 치의예과 여학생 이지나(42.이지나 치과의원  원장)와  결혼한 그는 연세의대 졸업과 의사고시 패스 후 몇 년 간의 미국 수련의  생활을  제외하곤 평생 한국인들과 부대끼며 살아왔다. 그래선지 특히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고향땅 순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순천에서 또래의 한국아이들과 어울려 자치기, 땅따먹기, 구슬치기,  연날리기 등을 하며 컸어요. 촌놈이어서 촌이 좋아요. 어린 시절 어려웠던, 그러나  인간적인 한국의 모습을 보았고 그 기억이 내 머릿속에 박혀 있어요."
    오늘날 물질문화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에 대해서는 예전과 같은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선을 그은 그는 어린 시절 친근감을 안겨준 산천의 모습을 북한에서  찾았다고 한다.

    "물질적으로 풍요해진 한국은 싫어요. 북한에 가보면 우리가 잃어버린 옛 모습, 따뜻한 정과 가족, 문화가 살아 있음을 실감합니다. 통일이 되면 그걸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오겠죠. 그러나 흡수통일은 싫어합니다."
    한때 북에서는 스파이로 오해받고, 남에서는 간첩이란 소리를 듣고 적잖이 마음고생도 했다. "어린시절 보고 느낀 한국과 지금의 한국이 너무 달라져 싫긴  하지만 한국인을 좋아하고 한국을 사랑한다"는 말에서는 `토종한국인'의 정체성이 풍겨났다.

    "우리 어릴 땐 학교 끝나면 친구들과 놀기 바빴다"며 옛추억을 거듭 더듬어가다 한국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교육제도를 비판하고 교육시장 개방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 끝나도 이 학원 저 학원 다니기 바쁘잖아요. 옛날에는  여유가 있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이제 교육시장의 빗장을 풀어 개방해야 합니다. 개방을 무서워 하지 말아야 해요. 교육인적자원부가 컨트롤 못합니다."
    오늘날 우리사회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지 궁금해 물어봤더니 `어머니'와  `기업'을 문제의 근원으로 꼽았다.

    "우리를 그 동안 잘 살게 해준 이 땅의 기업과 어머니들이 타락했어요.  어머니는 치맛바람으로 교육을, 기업은 정경유착으로 정치와 기업을 다 망쳐  놓았잖아요. 교육시장은 개방하고 부패상이 드러난 재벌에 대해서는 극약처방을 해야 합니다."
    --북한이 이번 사고를 계기로 어떻게 변할 것으로 예상하세요.

    "다들 북한이 변해야 한다고 하는데 사실은 우리(남한)가 변해야 합니다.  우리가 요즘 조선족을 무시하듯이 통일 후 북한 사람을 무시할 게 뻔합니다. 염려스러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어요."
    mingjoe@yonhapnews.net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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