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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18737
2006.01.09 (18:21:35)
1994년의 북미 제네바합의의 핵심인 경수로 사업이 사실상 종말을 맞았군요. 매우 애석한 일입니다. 소모된 비용만이 아니라 그것이 계속 이어졌으면 한반도 평화에 큰 전기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지난 해 9월 6자회담에서 다시 경수로가 의제로 오른 것은 과거의 그러니까 지금 종결된 KEDO의 경수로는 아니고, 다른 것을 말합니다. 북한으로서는 경수로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었다는 점에서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KEDO의 경수로 사업은 클린턴 정부 당시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을 용인할 수 없다고 하니까, 김일성은 자신들은 전력생산을 위하여 핵발전을 하는 것인데, 미국이 의심을 하니, 경수로를 대신 지워주고, 그것이 완공될 때까지 중유를 제공해 주면, 영변 등의 흑연감속로는 중단하겠다고 하여 성사된  것입니다. 경수로는 핵무기로 전용되기 어려운 핵발전소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볼 때 지당한 그 합의는 미 강경파들이 볼 때는 북한이라는 깡패정권과 타협한 것으로 매우 자존심상하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나마 의회에서 그 합의가 통과되고 중유제공의 예산이 집행된 것은 북한이 곧 붕괴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하여튼 미국의 정권이 부시의 공화당으로 바뀌게 되면서 미국은 더 이상 그러한 거래를 계속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고, 농축우라늄 문제를 들고 나와 사실상 제네바합의를 무효화시키는 쪽으로 나간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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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로 인력, 북 금호지구서 완전 철수(종합)


경수로사업 종료..현장에 455억원 상당 자재.장비 남아

    (서울=연합뉴스) 지일우 정준영 기자 = 북한 함경남도 금호지구  경수로(신포경수로) 부지에 시설 유지.보수를 위해 남아 있던 한국과 미국 인력이 모두 철수했다.

    이에 따라 북한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간에 1995년 12월 경수로공급협정이 체결된 지 10년여, 1997년 8월 공사가 시작된 지 8년4개월여만에 신포 경수로 사업이 사실상 완전 종료됐다.

    8일 통일부에 따르면 신포경수로 유지.보수를 위해 남아 있던 한국인과  미국인 등 모두 57명은 이날 오전 10시50분 대아고속해운 소속 선박인  `한겨레'호를  타고 현장을 떠나 오후 2시20분께 강원도 속초로 귀환했다.

    철수한 인력은 KEDO 금호사무소(KOK) 소속 미국인 1명을 포함해 5명의 KEDO  대표와 한전 관계자, 시공단 관리인력, 시설유지 관리업체 직원 등 유지.보수를  위해 남아있던 `최소한'의 인력으로, 이들이 철수함에 따라 경수로 현장에는 KEDO와 한국측 관계자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게 됐다.

    인력 완전 철수는 지난 해 7월 우리 정부의 200만kW의 대북 송전계획인 이른 바 `중대제안' 발표와 같은 해 11월 KEDO 이사회의 경수로 사업 종료 합의에 따른 것으로, 북측의 동의하에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신포경수로 사업이 2003년 말부터 `일시중단' 상태로 KEDO 이사국인  미국과 일본이 더 이상 사업을 지속할 의지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이 같은 양측의  입장과 북측의 경수로 사업에 대한 집착을 절충, 북핵 포기를 유도하기 위해 지난  해 7월 `중대제안'을 발표했다.

    KEDO측은 2002년 하반기에 불거진 제2차 북핵 위기를 계기로 이듬 해 12월 경수로 사업을 `일시중단'하기로 결정한 이후 한때 최대 1천500여명에 달했던  현장인력을 줄여왔으며 작년 중반 120여명이었던 인력도 12월에는 절반인 57명으로 줄였다.

    경수로기획단 관계자는 이날 "신포경수로 사업을 종결한다는 KEDO의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이사회에서 사실상 종결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기 때문에  현지  인원을 계속 줄여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93대의 중장비와 190대의 일반 차량, 그리고 공사자재 등 455억원  상당의 장비와 자재는 북한측의 반출 반대로 현장에 그대로 남아 있다.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미국으로 구성된 KEDO 이사국들은 현장 인원 철수에 이어 장비를 포함한 기자재와 사업 청산에 따르는 법적.재정적 문제를 놓고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

    기획단 관계자는 "청산비용과 절차 등 법적.재정적 문제들이 많이 남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사국들간에 협의를 활발하게 계속하고 있다"면서 "합의가 빨리  이뤄질 수도 있으며 아무리 늦어도 올 상반기를 넘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은 경수로 사업 청산 비용이 대략 1억5천만∼2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번 철수를 위해 현장에 다녀온 장선섭(張瑄燮) 경수로기획단장은 속초항에 도착한 직후 "아무런 문제 없이 철수가 이뤄졌으며 북측 관계자들이 손을 흔들며 아쉬워 하기도 했다"고 설명한 뒤 청산비용에 대해 "클레임은 이제부터 시작이고 변수가 많아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날 현재까지 신포경수로 사업에 들어간 비용은 총 15억6천200만달러며, 이 가운데 우리가 11억3천700만달러, 일본이 4억700만달러를 각각 부담했다. EU가 나머지를 부담했고 미국은 사업비는 부담하지 않는 대신 북한에 중유를 제공했다.

    ciw@yna.co.kr
    prince@yna.co.kr
(끝)



2006/01/08 16:3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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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의 11년 KEDO경수로사업>


북핵으로 시작됐다가, 북핵 때문에 끝나

    (서울=연합뉴스) 정준영 기자 =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대북 경수로  제공사업이 현장인력의 전원 철수에 따라 사실상 그 마지막 국면에 이르렀다.

    1994년 10월21일 제1차 북핵 위기를 봉합하는 북미 기본합의(제네바합의)에  따라 탄생한 KEDO경수로가 웅장한 원전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 채 한낱 콘크리트  더미로 그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2002년 10월 2차 북핵 위기가 불거진 게 이번 종말의 직접적인 배경이 된  만큼 이 경수로는 핵 문제 때문에 생겨났다가 다시 핵 문제 탓에 생을 달리한 셈이 됐다.

    그런 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11년여의 세월이었다.

    이 경수로는 제네바합의 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등장했다. 북한이  핵시설을 동결하는 대신 2003년까지 100만kW급 경수로 2기를 제공하고 그 완공 전에는  대체에너지로 중유를 제공한다는 게 합의의 골자였다.

    당시 북한은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경제가 내리막을 걷는 가운데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정권붕괴가 시간 문제라는 관측이 많았던 상황이었다.

    1995년 치열한 협상을 통해 한국 표준형 원자로를 쓰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나갔고 그 해 12월에는 KEDO와 북한이 경수로제공협정에 서명하면서 구체화됐다.

    1997년 8월4일에는 금호지구 현장과 주계약자인 한국전력 사이에 8회선의  전용선을 개통한 데 이어 같은 달 19일에는 북한의 허 종 외교부 순회대사와 장선섭  경수로기획단장, 스티븐 보즈워스 KEDO사무총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착공식을 가졌다.

    제네바 합의 이후 첫 삽을 뜨기까지 만 3년이 걸린 것이다. 이 때만 해도  경수로는 북핵 문제의 해결을 통해 한반도 안정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남북협력을  통한 통일과정의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사업비용 문제에 대한 협상의 결과로 KEDO이사회는 1998년 11월 우리가  총공사비 46억달러의 70%, 일본이 22%를 각각 부담하고 미국은 중유공급과 나머지  부족분 조달에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쪽으로 비용분담 결의안에 합의했다.

    우리 정부는 전기료에 이를 부과하는 방법을 검토하다가 부정적인 반응이  많자 결국 국채 발행을 택했다. 지금까지 국채로 조달한 자금은 2조7천억원이 넘는다.

    2000년 10월에는 속초와 함경남도 양화항을 잇는 정기선이 다니기 시작했고 2001년 3월부터는 우즈베키스탄의 노무인력을 투입, 그 해 8월 정지공사를 마무리했다.

    2002년에는 금호항 및 여객터미널 공사가 끝나고 금호병원이 준공되는 등  기반시설이 제모습을 갖춰가고 1호기의 콘크리트 작업에 처음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2호기에 콘크리트 타설을 시작한 다음 달인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국 특사의 방북과정에서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계획을 시인했다는 미국측 발표와 함께 제2의 북핵 위기가 터지자 경수로사업은 송두리째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이는 1996년 강릉앞바다 잠수함 침투사건이나 1998년 8월 북한의 이른바  `대포동1호 미사일' 발사, 1998∼1999년 금창리 지하핵시설 의혹 등처럼 그 전까지  경수로사업 과정에 겪었던 악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을 몰고 온 것이다.

    더욱이 미국에는 제네바합의를 일궈낸 민주당 정권이 떠난 자리에 제네바  합의 당시에도 경수로 제공에 부정적이었던 공화당 정권이 들어서 있으면서 `경수로 불가론'이 확산됐다.

    KEDO의 미국측 프리처드 집행이사는 2002년 12월 북한이 HEU계획을  포기하더라도 원전을 재래식 발전소로 대체해야 한다고 했고 2003년 1월 당시 콜린 파월  국무장관도 제네바합의를 대체할 새로운 합의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북미 간에는 대결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한반도 긴장은 고조될 수 밖에 없었다.

    KEDO는 2002년 11월14일 제네바합의에 따른 미국의 대북  중유공급을  중단하고 경수로사업을 재검토하기로 결정했고 북한은 이에 12월12일 핵동결 해제를 선언하고 이듬 해 1월10일에는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것이다.

    이에 따라 KEDO는 2003년 2월부터 공사속도를 늦췄고 북핵 문제의 진전이  없자 그 해 11월에는 12월부터 1년간 공사중단(suspension)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북한은 이에 반발, 11월6일 외무성을 통해 "미국이 중유 제공 중단에 이어 경수로 건설공사까지 그만두면서 조(북)미 기본합의문을 일방적으로 완전히 파기했다"며 "이에 대해 끝까지 계산할 것이며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금호지구에 들여온 장비, 설비, 자재와 기술문건의 반출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보상을 요구했다.

    KEDO는 또 2004년 11월 공사중단 조치를 1년간 연장했다. 미국은 사업을 완전히 접겠다는 입장이었지만 북핵 문제 해결시 사업이 재개돼야 한다는 반론에 따라 죽어가는 경수로 현장에 다시 한번 보존.유지(P&M)조치라는 `인공호흡기'를 단 것이다.

    이에 따라 2002년 중반 1천500명을 웃돌던 현장 인력들은 점차 줄기 시작했고 2003년 12월 우즈벡 인력에 이어 2004년 2월에는 북측 인력 100명도 모두 철수해 120여명만이 잔류하게 됐다.

    사업비도 2000년 4억1천300만달러를 비롯해 2000∼2003년에는  매년  3억달러를 웃돌았지만 2004년 9천800만달러로 줄고 2005년에는 3천만달러에도 못 미쳤다.

    현장 상황을 보면 종합공정률 34.45%에 취.배수 방파제와 용수 및 전력공급설비, 진입도로, 복지시설 등 원전 건설에 필요한 기반시설은 완공됐지만 발전소 본관  구조물은 21.6%의 공정률에서 멈췄다.

    이 가운데 경수로 1호기는 원자로 건물의 외벽 및 보조건물 기초공사 등 구조물 작업까지 들어갔지만 2호기는 원자로 건물의 기초 콘크리트만 타설하고 2003년 12월 중단돼 콘크리트 더미로 남아 있다.

    국내외에서 이뤄진 원자로설비 제작은 69.5%, 터빈발전기 제작은 47.5%, 보조기기 구매 및 제작은 20.6%의 공정률에서 더이상 진척되지 못했다.

    KEDO는 그러나 청산비용 분담 문제를 놓고 이사국 간에 협의를  진행  중이어서 어느 나라가 얼마 만큼을 부담하게 될 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

    prince@yna.co.kr
(끝)



2006/01/08 14:03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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