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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12834
2004.10.07 (11:43:56)
미국에서 인사 드립니다.


지난 9월 10일 대구평화통일시민연대의 청탁으로 써 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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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과 한반도의 평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민주당에 이어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리고 대선 후보들의 공식 수락 연설이 있음으로 해서 이제 본격적인 선거판이 시작되었다. 11월 미 대선에서 누가 당선될까? 이는 단지 정치 호사가의 의문만이 아니라 세계와 한반도의 평화를 걱정하는 이들의 공통된 관심사일 것이다.

2000년 미 대선과 한반도

우리 한반도의 정세가 미국 정권의 향배에 직결되어 있음은 엄연한 사실이다. 잠시 지난 2000년 대선의 경우를 회고해 본다. 클린턴 정부 시절 미국과 북한은 우여곡절 끝에 핵은 물론이고 미사일 문제에서도 포괄적인 타협을 성사시키려는 순간에 있었다. 클린턴의 북한 방문과 북미 정상회담이 그 화룡점정(畵龍點睛)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해 말 미 대선에서 개표 문제로써 당선자의 향방이 유동적으로 되고 클린턴의 정책을 계승할 수 있는 고어가 당선되지 못하자, 클린턴은 북한 방문을 포기하게 되었다.

새로 들어선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은 단지 악당국가(rogue state)의 하나에 불과하였다. 부시 주변에는 미국의 안보를 위한 전쟁을 선과 악의 싸움으로 규정하고 위험국가들에 대한 군사력의 사용을 마다하지 않는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이 즐비하였다. 그들에게 한반도의 고난의 역사와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과 남북정상회담 등 평화를 위한 노력은 알 바 아니었다. 주지하듯이 김대중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 취임 이후 외국 정상으로서는 처음으로 워싱턴으로 날아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흐름을 유지하려 애썼다. 파월 국무장관은 그에 화답하여 새 정부의 대북정책은 클린턴 정부가 해 놓은 것을 출발점으로 삼을 것이라고 공언하여 잠시 우리를 기쁘게 하였다. 그러나 하룻밤 사이에 럼스펠드와 체니 등 강경파들은 부시로 하여금 대북한 정책을 전면 재검토할 것을 설득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이로써 바로 눈  앞에 있던 북미 간의 관계개선과 한반도의 평화정착의 기회는 다시 저 멀리 지평선 밖으로 밀려나 버렸다.

6자회담의 교착상태

이제 다시 미국 정권의 향배를 결정할 시간이 오고 있다. 부시와 케리, 이들 가운데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정세는 또 달라질 것이다. 불안과 기대가 교차한다. 우선 당장 진행 중인 6자회담의 장래가 걸려 있다. 주지하듯이 그 동안 6자회담은 3차에 걸쳐 열렸다. 지난 6월의 3차 회담에서 미국은 북한의 요구에 따라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라는 용어를 고집하지 않았고, 의장 성명에서도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이라는 북측 용어가 수용되었고, “비핵화를 위한 초기 조치”와 “그에 대한 상응 조치”를 언급함으로써 상당한 진전을 보았다.

북한은 미국이 1)다른 나라와 함께 2백 메가와트 규모의 에너지를 제공하고 2)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삭제하는 한편 3)경제제재를 해제할 경우 핵시설 및 재처리 플루토늄에 동결 조치를 취하겠다는 제안을 내놓았고, 특히 핵동결에 미국이 보상에 나선다면 경제제재나 테러지원국 해제 등의 요구에서는 융통성을 보일 것이라며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하였다. 미국도 그 동안 어떠한 협상안도 제시하지 않던 입장을 누그러뜨려 처음으로 나름대로의 제안을 내놓았다. 즉 북한 측에 일정한 핵동결 준비 기간을 제안하는 한편 북한이 핵 동결 약속을 이행할 경우 북한에 대한 에너지 지원 및 잠정적인 다국적 안전보장에 동의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호 접근은 무엇보다 한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이 미국과 북한을 설득한 결과라고 할 수 있으며, 문제의 해결에 긍정적인 진전으로 평가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북미간의 불신의 골은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특히 미국 강경파들은 이른바 리비아 식 해법과 북한의 일방적 핵폐기를 강조하며, 미국의 협상안을 타협이 아닌 강압의 한 종류로 만들어 버렸다. 미국은 북한의 그릇된 행위에 대한 보상은 있을 수 없다며, 북한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핵 동결에 대한 에너지 지원에 대하여 미국 자신은 직접 참여하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 하였다. 단지 한국 등 주변국이 지원하는 것을 막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핵동결에 미국의 직접적인 상응 조치가 없다는 것은 북한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을 것이다.

대북 안전보장의 문제에 있어서도 미 강경파는 핵동결의 시점이 아니라 핵폐기의 시점을 고집하고 있고, 그 밖에 동결해야 할 핵의 범위, 핵의 평화적 이용 그리고 농축 우라늄의 문제 등에서 북미간의 이견은 여전히 크다. 또한 북한 인권법안이 미 하원을 만장일치로 통과한 것도 북한의 불신과 경계심을 가중케 한 것으로 평가된다. 마침대 북한은 부시 대통령에 대하여 유례없이 강한 표현으로 비난을 퍼부었고, 제4차 6자회담의 전망은 불투명해졌다. 제3차 회담에서 다음 회담을 9월 중에 열기로 합의를 하였지만, 9월 10일 현재까지 실무회의조차 열리지 않고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어렵게 마련된 6자회담은 교착상태에 빠진 듯이 보인다. 북한으로서는 새롭게 어떤 양보안을 제시하여 부시의 재선에 기여할 치적을 선사할 일도 없을 것이며, 부시로서도 대북정책에서의 어떠한 방향전환도 그 이전의 대북정책의 오류를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니 달갑지 않을 것이다.

부시와 테러와의 전쟁

그러면 이런 상태에서 부시가 재선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부시가 재선되면 우리는 어쩌면 다시 한 번 큰 홍역을 치룰 각오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주지하듯이 부시의 재선 전략은 테러와의 전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9.11테러는 공화당에게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와 같은 것이다.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테러의 희생자 가족들의 연설이 프로그램의 한 꼭지를 차지하였다. 부시는 아프간의 전쟁으로 테러분자들을 단호하게 응징하였고 또 이라크 전쟁으로 미국에 대한 잠재적 위험을 과감하게 제거하였다는 점을 내세우며, 자기야말로 전시 최고사령관으로서 적합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화당 전당대회에 맞추어 뉴욕에서는 수 십 만 명이 부시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9.11 유가족들은 “우리들의 고통은 전쟁에의 호소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으나, 이라크 전쟁의 당위성과 미국인의 애국심을 부추기는 공화당 전당대회는 군중심리를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누가 테러와의 전쟁에서 최고지휘관으로 적합한가하는 것이 대선의 주요 쟁점이 되어버렸으니, 공화당이 전략은 효과를 보았다고 할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도 일단 그렇게 나오고 있다. 많은 미국인들은 부시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의 존재와 알 카에다와의 연계에 대하여 거짓을 얘기한 것에 대하여 관대하다. 오히려 사담 후세인의 폭력적 전제통치를 종식하고 미국에 대한 잠재적 위험을 제거한 것에 대하여 자부심을 느끼고 격려하는 분위기이다.

특히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맥케인 상원의원 출연은 매스컴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미국 정치인 가운데 가장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는 2000년 공화당 대선 후보 지명전에서 현 대통령인 부시와 치열한 대결을 벌였고, 부시보다는 오히려 케리와 더 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는데, 이번에 부시 지원 연설에 나선 것이다. 그의 실리는 2008년의 대선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나 그 명분은 테러와의 전쟁이다. 그는 유명한 행동주의자로서, 1994년 제1차 북한 위기 당시에도 클린턴 정부의 대북 강경책(전쟁을 포함하는)에 대하여 초당적인 지원을 보낸 사람이기도 하다. “가장 오도된 사람들만이 이 전쟁(이라크 전쟁)의 불가피성을 의심할 것이다. 이러한 전쟁에는 부침이 있을 수 있으나, 우리는 싸워야만 한다. 반드시...”라며 결연한 전쟁 의지를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오늘날 미국 보수 사회를 풍미하고 있는 어떤 자기도취적 애국심을 보는 듯하였다.

따라서 부시가 재선된다면, 테러와의 전쟁 혹은 악당 국가에 대한 단호한 대처 방식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 부시 정부는 북한과의 양자 협상을 계속 거부할 것이고, 미 국무부의 외교파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며, 북한에 대한 제재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의회에서는 북한 인권법안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 강경한 북한 자유법안이 상원을 통과하고 나아가 북한 해방법안 같은 것도 만들어질지 모를 일이다. 그에 대한 북한의 반발도 불을 보듯 뻔하다. 북한은 기회 있을 때마다 핵 억지력을 강화시켜 나가겠다고 공언하였으며, 현재 핵개발이 어느 정도 나가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 한국 등 주변국들이 비상한 노력을 기울이거나 북한이 동시 행동의 원칙을 양보하고 먼저 행동에 나서거나 아니면 영국과 같은 나라가 극적인 중재에 성공하지 않는 이상 한반도의 정세는 다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케리와 외교의 영역

사정이 그렇다면 우리로서는 부시가 아니라 케리의 당선을 바라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민주당과 케리의 진영이라고 하여 부시와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이른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라는 목표는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민주당은 부시의 이라크 전쟁이 시급하거나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고 비난하는 가운데 북한을 거론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북한의 위험성 혹은 사악함을 오히려 부각시키는 면도 있다. 그리고 케리가 당선된다고 해도 미 의회에서 여전히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한 대북 유화정책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기본적으로 북한을 협상의 상대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시 진영의 강경파들과 차이가 있다.

케리가 집권한다면, 현재 6자회담의 진전에 고비가 되고 있는 북한의 핵동결과 그에 대한 미국의 보상에 있어서도 민주당은 전향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다. 부시 정부는 부정하고 있으나, 사실 클린턴 정부에서 성사된 북한의 핵동결과 미국의 에너지 지원은 효과적인 거래와 협력이었다. 또한 케리가 6자회담과 병행하여 북한과의 양자 협상을 추진할 것을 천명한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누가 보아도 미국이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미국을 제외하고 어떤 나라도 북미 양자 협상에 반대하지 않는다. 반대로 북미간의 불신과 적대관계가 누그러지지 않는 이상 나머지 국가들이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북핵문제 해결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더군다나 북한과 미국은 과거 전쟁의 당사자로서 이제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지 않은가.

민주당이라고 하여 그들이 자국의 이익보다 한반도의 평화를 더 중하게 생각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나, 다행인 것은 민주당에는 미국의 이익을 일방주의가 아니라 국제주의에서 찾고, 전쟁의 필요성만이 아니라 전쟁의 위험성에도 비중을 두고, 강압만이 아니라 외교적 협상을 존중하는 인사들이 많다는 점이다. 1994년 제1차 북한 위기를 무사히 넘기게 해 준 카터의 방북을 생각해 보자. 당시 카터는 일개 시민의 자격으로 김일성과 회담을 하고는 전격적으로 평화적 해결에 합의를 해버렸다. 그러한 월권에도 불구하고 당시 부통령 앨 고어 등은 카터의 중재 노력을 존중하였으며 결국 제네바합의를 탄생시켰다. 마찬가지로 1994년 위기 당시의 강경파로 분류되었던 국방장관 페리가 이후 대북조정관으로서 북한을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고 평화적 해결의 모범적 로드 맵인 페리보고서를 작성한 것도 그 좋은 예이다. 현재 페리는 케리의 자문역을 맡아 북한 문제에 대하여 조언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쟁과 평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있었던 카터의 연설은 몇 번 반복하여 들어도 좋았다. 카터는 미국이 진실과 신뢰를 상실하고 미국의 지도자가 미국과 세계를 잘못 이끌고 있음을 고통스럽게 토로하였다. 카터는 미국의 영혼(soul)이 걸려있다고 말하였다. 카터는 불필요한 전쟁을 피하는 것이 대통령의 덕목이며, 절제와 정확한 판단이 중요함을 역설하였다. 그러나 절제와 판단력은 대중을 냉정케 하는 반면, 단호함과 결단력은 대중을 환호케 할 것이니 애석할 따름이다. 공화당 전당대회의 두 번 째 날의 구호는 바로 ‘용기있는 나라(The Nation of Courage)’였다. 용기는 분명 덕목이고 비겁은 분명 악덕이다. 하지만,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이 저렇게 용기를 내세우고 흥분하는 것은 단지 만용과 무절제를 뜻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이라크에서의 전쟁은 끝을 모르고, 아프간의 전화(戰禍)도 계속되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 속에서 오히려 참혹한 테러가 오히려 빈발하고 있으며, 미국의 강압책은 북한과 이란의 핵개발을 도리어 가속화시키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모든 위험과 불안정이 다시 미국인들로 하여금 전쟁에의 의지를 강화시켜줄 지 모른다는 것이다.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으로 미국과 세계가 보다 안전해졌다고 강변하나, 나에게 그것은 단지 미국인들에게 안보의식을 부추겨 그의 군사주의를 정당화하는 선동처럼 보인다. 21세기는 정말 상시적 전쟁의 세기로 가고 있는 것인가?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미국인들의 보편적 정서인 개인주의가 국제적인 차원에서의 자기중심주의로 나아가기보다 국내적 차원에서 정부와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자주적 성찰로 발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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