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한국어

연구회 마당

시평

 

민주법연 회원들이 작성하는 시평입니다.
이 게시판은 RSS와 엮인글이 가능합니다.
로그인을 하시면 댓글을 쓰실 수 있습니다.
이 게시판은 최근에 변경된 순서로 정렬됩니다.
* 광고성 글은 바로 삭제되며, 민주주의법학연구회의 설립취지에 어긋나는 글은 삭제 또는 다른 게시판으로 이동될 수 있습니다.
글 수 194
조회 수 : 10715
2000.08.14 (00:00:00)
특권층을 위한 사면놀음


김순태(방송대, 교수)



죄지은 자를 용서해준다는 것은 아무튼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권력과 아름다움은 서로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즉 이러한 아름다운 일을 권력을 쥐고 있는 자에게 맡긴다는 것은 어딘가 어색하고 걸맞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모든 죄가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면 권력자의 사면이란 그 자체가 모순이다. 그러나 현실은 최고권력자에게 사면권이 부여되어 있다. 그러니 남은 일은 그가 사면의 아름다움에 걸맞게 사면권을 아름답게 행사하는 일이다. 대통령은 그렇게 해야 할 사명이 있다.

사면이란 단어를 대하면, 우선 사형수에 대한 감형조치로써 이들의 목숨을 구해주는 일이 떠오르게 된다. 죽음의 문턱에 서있는 사람을 살려낸다는 것은 그 사형수가 어떠한 죄를 지은 사람일지라도 숭고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다음은 양심수들에 대한 석방이다. 기성권력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옥살이를 하고 있지만 기성권력자 '못지 않게' 이 나라 이 겨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으니 이들을 풀어주겠다고 한다면 이 얼마나 관대한 일인가?

광복절 사면은 연례행사이지만, 새천년 국민화합의 시대에 3만여명이 은혜를 입는다고 하니 이번에는 40여명의 사형수가 광명의 은총을 누리고, 125명의 양심수들이 모두 여기에 포함되어 풀려나오고, 500여명의 정치수배자들에게 수배해제의 은혜가 베풀어지지나 않았을까 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그야말로 소박한 자의 어리석기 짝이 없는 망상이었다.

이번 사면의 핵심은 이원조, 박희도 등 사면의 혜택을 아직 받지 못했던 '불운한' 5.6공 인사들과 문민정부 당시 잘 나가던 인물들이다. 김현철은 불과 2년형을 선고받고 형기의 4분의1만 채우고 작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오더니, 이번에 형선고실효 및 복권조치가 이루어졌다. 얼마 전 국회법날치기로 자민련에 대한 애정을 지나치게 과시하더니 이젠 김영삼 전대통령에게 때늦은 구애의 손길을 뻗치나보다.


사면을 이처럼 추하게 만든 청와대측에서는 이를 미화하느라 급급하니, 오히려 그 때문에 더욱 악취가 난다. '역사상 최대규모의 사면복권을 단행한 것은 새천년 민족화해의 시대를 맞아 화해와 용서의 정신에 따른 것이고, 김현철.홍인길씨 등과 15대 선거사범도 이미 충분한 벌을 받았거나 16대에 출마하지 못한 불이익을 당했기 때문에 새로운 기회를 부여키로 결정한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심수와 사형수에 대해서는 인색하기 그지없고, 다만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이번 사면조치로 풀려난 양심수는 21명에 불과하다. 왜 양심수에 대해서는 화해와 용서의 정신이 발휘되지 않는 것일까. 그들은 이미 충분한 벌을 받지 않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16대 총선에 출마하지 못한 불이익을 받지 않았기 때문인가? 감격적인 남북정상의 만남으로부터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던 그 분위기의 여세를 몰아 8.15특사 때에 모든 양심수를 석방하고 모든 정치수배자들을 수배해제하는 감격을 맛 볼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번 8.15 광복절은 남북이산가족이 상봉하는 날이기도 하다. 남북의 가족들도 만나는 날 남한의 양심수들과 수배자들도 그들의 가족과 만나게 해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양심수에 대한 사면에 인색한 점에서는 옛 버릇을 조금도 고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이번 광복절사면에서 무기로 감형된 사형수는 겨우 2명뿐이다. 사형수 중 감형조치의 은총을 입은 사람의 기쁨이야 이루 형용할 수 없겠지만 여기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의 심정은 오죽할까?

특권층에 속한 사람들이 대거 사면.복권의 혜택을 입는 것을 보고, 양심수와 사형수들은 아예 사면제도가 없었더라면 마음 아픈 일은 덜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남들이 은혜를 입는 것을 보고 속 상해하도록 만드는 사면놀음은 얼마나 잔인한가?

요컨대 이번 사면도 정략적.당략적 차원에서, 특권층에 대한 시혜로서 행해진 추악한 이벤트일 뿐이다. 특권계층은 벌을 받는 일도 드물지만, 혹시 벌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풀려 나오고 복권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니, 역시 이 나라는 가진 자만의 '천국', 악취 풍기는 '천국'임에 틀림없다는 것이 이번 사면놀음에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 민주법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7-12 11:27)
* 민주법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7-12 11:27)
* 민주법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7-12 17:04)
* 민주법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7-12 17:05)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14 no image "천국의 신화, 한국사회의 이해 그리고 사법개혁" 시평에 대하여
김가람
13440 2000-08-23
13 no image 김대통령에게도 응원을!
정태욱
9651 2000-08-15
12 no image 김정일 위원장의 확고한 군부지도력을 반기며
정태욱
10950 2000-08-14
Selected no image 특권층을 위한 사면놀음
김순태
10715 2000-08-14
10 no image 재벌개혁, 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곽노현
10711 2000-08-07
9 no image 사법개혁의 필요성
조우영
11821 2000-08-01
8 no image "시평을 읽고" 란이 개설되었습니다.
운영자
11004 2000-07-31
7 no image 천국의 신화, 한국사회의 이해 그리고 사법개혁
김종서
11031 2000-07-31
6 no image 조용한 교정에서 학생들을 생각한다
이은희
11627 2000-07-24
5 no image 토니 블레어의 아이와 우리 어머니
김민배
11622 2000-07-10
4 no image 노동인권의 사각지대 "비정규직 노동자"
조경배
11863 2000-07-03
3 no image 또 다시 국가보안법철폐투쟁에 나서자
김순태
10220 2000-06-26
2 no image 남북 정상회담과 매향리
임재홍
11686 2000-06-19
1 no image 세금 없는 삼성의 3세 승계, 그대로 둬서는 안된다
곽노현
8481 2000-06-12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