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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8.07 (00:00:00)
시사저널 2000.8.11자 게재

        
재벌개혁, 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곽노현(방송대, 법학)



재벌체제의 취약성과 악취가 도처에서 드러남에 따라 재벌개혁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는 상황이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 재용씨에게 3조원대가 넘는 계열사 재산을 변칙증여한 사실이 밝혀져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중이다. 엘지그룹은 대주주 지분정리 차원에서 지난 4월 엘지화학과 전자를 앞세워 총수일가의 보유주식을 무려 1조2천억원 어치나 부당 고가매입한 바람에 주식시장의 호된 질책을 당했다. 현대그룹 역시 거듭되는 자중지란에 건설부문의 유동성 위기가 겹쳐 심히 휘청거리며 한국경제의 최대 악재로 등장했다. 덩치가 훨씬 작은 중하위 재벌들도 못하지 않다. 지난 10일 발표된 공정거래위원회의 롯데 등 7개 중견재벌의 부당내부거래 조사결과는 이들이 여전히 부실계열사 지원, 친족독립회사 지원, 총수재산 부풀리기 등의 못된 구태에 매달려왔음을 알려준다. 그밖에도 한국재벌들은 부당하도급, 부당노동행위, 담합입찰, 주가조작 등 시정잡배나 조직폭력배의 사업행태와 다를 게 없는 각종 불법과 편법에 길들여져 있다. 그 결과 이제 재벌체제에 대해서는 누구도 환상이나 기대를 품지 않는다.  

절박한 위기상황을 등에 엎고 지난 3년간 다양한 방식으로 재벌개혁 드라이브를 걸어보았건만 한국재벌의 고질적 취약점들은 치유된 것이 거의 없다. 최근에 공표된 결합재무제표에 따르면 30대 재벌의 평균 부채비율은 여전히 200%를 훨씬 넘고 4대 재벌의 업종 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사업구조 및 재무구조 개선노력이 실패한 셈이다. 초창기에 떠들썩했던 이른바 빅딜은 아직도 완료되지 못한 채 불확실성으로 남아있다. 워크아웃에 들어간 부실재벌의 경우 부실경영주가 그대로 차고앉은 까닭에 심각한 도덕적 해이현상을 보인다. 공적자금을 쏟아붓지만 성공사례는 드물다. 거세게 몰아부친 지배구조 개혁은 실효성이 의심된다. 사외이사는 총수일가의 공인 로비스트로 인식되고 그렇게 행동한다. 대부분의 사외이사들이 지배주주 관련 사안이 걸린 이사회에 아예 참석 자체를 기피했다는 상장사협회의 조사결과가 좋은 증거다. 소유구조에 대해서는 그나마 개혁시늉도 내지 못했다. 그 결과 평균 내부지분율은 종전보다 높아진 상태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연일 비상대책을 쏟아낸다. 검경, 국세청, 금감위, 공정위를 한데 묶어 기업비리 합동조사반을 꾸리는 방안을 검토하다 금감위의 현장조사권 및 계좌추적권 강화로 물러섰는가 하면, 공정위는 작년에 이어 또다시 오는 16일부터 4대 재벌에 대한 강도높은 부당내부거래 조사에 들어갈 방침이다. 이번에는 분사기업의 위장계열사 여부, 총수일가가 소유한 벤처기업에 대한 부당지원 여부, 구조조정본부의 회장비서실화 여부가 중점적으로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이쯤되면 검찰도 내부자주식거래와 주식헐값발행 등 재벌의 배임성 경제범죄에 대해 기획수사를 벌일 법한데 왠지 조용하다. 아마도 '정치검찰'의 한계일 것이다. 금감위 역시 금융위기에 대처하느라 바쁜 탓인지 내부자거래 단속에 나서지 않는 모습이다. 국세청은 툭하면 증여세 추징의 칼날을 세웠지만 한번도 칼을 뽑아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먼저 대기업의 행태를 이해당사자 및 전체사회의 공동선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압력과 법적 규제, 그리고 내부견제장치의 삼위일체적 균형발전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당연히 무분별한 시장주의나 규제주의는 금물이다. 다음으로 재벌체제는 오랫동안 이 세 가지 요소의 발전을 저해해온 반시장적, 반법치적, 반민주적 기업체제라는 확고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우선 재벌체제는 금융계열사 소유, 순환출자, 상호보증, 내부거래 등의 다양한 '내부시장'에 의존해온 반시장적 기업체제다. 또한 정경유착을 획책하여 기업규제 입법의 집행과 신설을 막아온 반민주적이고 반법치적인 기업체제다. 마지막으로 재벌체제의 해체는 일거에 혹은 단시간에 이뤄지기 어렵다는 진실을 수용해야 한다. 물론 이미 진행중인 악순환의 심화를 방치할 여유는 우리에게 없다. 재벌개혁의 지름길은 따라서 재벌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한 후 정권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이 문제에 대해 종합적으로 대처하는 데 있다.  

재벌문제의 핵심은 그룹회장으로 불리는 '황제'의 존재 및 그 배후에 있는 순환 피라미드식 소유구조다. 재벌기업의 부실화는 그 최종결과이고 문어발경영과 선단식경영은 그 발현형태일 뿐이다. 문어발경영은 '황제'가 군림하는 이상 필요 이상으로 추구될 수밖에 없다. 황제의 만족은 기본적으로 영토의 확장에 있기 때문이다. 그룹회장직과 비서실의 존재로 표현되고 피라미드식 순환출자, 상호지급보증, 부당내부거래 등으로 관철되는 선단식 경영 역시 '황제'가 실재하는 이상 계속 시도되게 마련이다. '황제'가 살아있는 이상,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해줄 기업구조와 행태를 끊임없이 개발하기 때문이다. 선단식 경영에 대처하는 차원에서 정부가 급하게 밀어부친 지배구조 개혁이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는 토대가 되는 소유구조 개혁으로 받쳐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흔히 지적되듯이 총수의 개인지분율은 1% 내외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1%는 순환 피라미드식 재벌기업집단의 정점에 서있는 핵심계열사의 지배지분이다. 따라서 재벌총수는 누가 뭐래도 합법적이고 실효적인 그룹지배력을 갖는다. 그럴듯해 보이는 지배구조 개혁조치들이 자칫 껍데기만 남는 이유는 이 힘이 법적으로 워낙 공고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소유구조 개혁 없는 지배구조 개혁은 구조적 한계에 봉착한다. 그렇다 해도, 1% 안팍의 보잘 것 없는 총수개인 지분율과 50%의 상속증여세율을 감안할 때 '황제' 지위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세습이 불가능하다. 실제로 총수권 대물림의 비법은 총수의 지휘감독과 비서실의 기획연출 아래 그룹 최고경영진들이 총대를 메고 계열사 재산과 지분을 총수 아들에게 헐값에 넘겨주는 데 있다. 한마디로 재벌총수는 '날강도질'을 통해 탄생한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전래의 비법들은 현행법 아래서도 모두 반시장적, 반기업적, 반노동적 경제범죄로 엄단될 수 있다. 시장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기업을 범죄소굴화하며,  일할 의욕을 없애는 이런 범죄행위들을 방치하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주도면밀하기로 소문난 삼성의 3세 승계작전의 전모를 낱낱이 드러냄으로써 재벌승계의 악취나는 비밀상자를 열어보였다. 그렇다면 이제 검찰이 나설 차례다. 이미 공지의 사실이 된 삼성사안부터 철저히 수사함으로써 총수권력의 영구화를 위한 재벌가의 '그룹내 친위쿠데타' 음모에 법의 철퇴를 가해야 한다. 공정위는 재벌그룹의 총수일가 부당지원행위에 대해 과징금만 물릴 것이 아니라 원상회복명령을 내리고 바로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 국세청은 포괄적 증여의제(擬制)조항을 신설하여 변칙증여수법의 고도화에 대비하는 동시에 비상장주식의 평가방식을 현실화하여 상속증여세를 실질화해야 한다.  

다행히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 부당내부거래 근절, 재산의 편법상속 차단을 재벌개혁의 추가 3대원칙으로 천명함으로써 처음으로 소유구조에 대한 본격적 개혁의지를 내비쳤다. 이에 따라 재벌의 제2금융권 소유한도를 설정하고 총수일가의 계열사 약탈행위만 엄벌해도 '황제'의 그룹지배력 약화 및 세습차단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나아가서 '차입형 우리사주제'(leveraged ESOP)를 도입하여 종업원소유를 정책적으로 육성하고 우리사주조합과 노동조합에 사외이사 추천권을 부여하면 소유지배구조의 선진화가 앞당겨질 것이다. 요컨대, 재벌개혁이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무엇보다도 추가 3대원칙의 적극적 구체화 및 강력한 추진이 요구된다. 지난 시절 군부독재와 싸웠던 그 열정과 의지로 소유구조 중심의 재벌개혁에 달려들지 않으면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고통스런 진실을 직시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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