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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7.31 (00:00:00)
천국의 신화, 한국사회의 이해 그리고 사법개혁

김종서(배재대 교수, 헌법학)



만화 '천국의 신화'의 저자 이현세씨에 대한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미성년자보호법 위반(불량만화 제작)이란다. 그로부터 약 일주일 후 '한국사회의 이해' 대표집필자인 장상환, 정진상 두 교수에 대한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이적성이 없어서라는 것이 판결의 이유였다. 이 두 건의 매우 상이한 판결에서 한국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처한 기구한 운명과 함께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발견한다.
천국의 신화 판결에서 판사는 문제가 된 집단성교와 수간, 잔혹한 전투장면 등 장면을 청소년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음란'문서를 자녀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다는 판단 끝에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그는 음란성의 판단은 작가의 주관적인 생각이 아니라 일반인을 기준으로 해서 내려져야 한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일반인의 판단이 어떻게 내려지는 것인지에 관하여 아무런 객관적 기준도 제시하지 않은 채 내려진 음란성 판단은 외형적으로는 일반인의 생각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은 판사 개인의 생각일 뿐이다. 이런 만화를 자녀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판단 역시 판사 개인의 생각일 뿐이다. 어떻게 이 시대의 대표적인 만화가의 작품에 대하여 어떤 객관적인 기준의 제시도 없이, 일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여 그토록 무모한 판결을 선고할 수 있게 되었을까? 이 판결로써 한국사회에서 표현의 자유, 예술창작의 자유는 미성년자 보호라는 명분하에서 또한번 숨통을 틀어 막히게 되었다.
민주주의 사회의 필수적 구성부분이라 할 표현의 자유를 내치면서 법관이 제시한 근거라고는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밖에 없다. 그러면서 "피고인의 경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만화가로서 작품이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점을 감안,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대표적인 만화가의 창작의 자유에 대하여 족쇄를 채우면서 그것이 표현의 자유라는 불가결의 인권에 대하여 미칠 영향은 왜 전

혀 고려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답해야 했다. 그것도 이미 판결 선고 당시에는 폐지되고 없던 조항을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하여야 하는 입장(미성년자보호법은 1999년 개정 청소년보호법의 시행으로 폐지되었다)에서라면 더더욱 그랬어야 했다. 비록 부칙에서 폐지된 미성년자보호법 위반의 벌칙의 적용에 대해서는 종전의 규정에 의한다고 하고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일 뿐 이미 폐지된 법률을 적용해야 하는 판사의 입장에서는 과연 폐지법률을 적용해서 처벌해야 할만큼 사안이 심각한 것인지에 대하여 충분하고도 납득할만한 설명을 했어야 한다. 그러나 판사는 "일반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들에게 이 만화를 보여주어서는 안된다고 판단했다"고 하였을 뿐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와 같은 일이 이 땅에서는 전혀 놀랄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이해 사건에 대한 무죄판결은 일단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94년 당시에 공소제기가 되지 않고 기소유예로 처리되었던 공동집필자들로 봐서는 매우 억울한 구석이 있다. 무죄가 될 것이 기소유예로 되었으니 말이다. 그들에 대한 기소유예 역시 무죄판결의 취지에 맞도록 교정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놀랍게도 무죄판결의 이유는 "이적성이 없다"는 것이다. "적을 이롭게 하는"이라는 표현이 국가보안법에서 사라진지 벌써 9년이 되었다. 형벌법규에서 문구 하나의 변경은 참으로 조심스럽게 그 의미를 밝혀내어야 한다. 더구나 항상 그 남용이 문제되어 온 국가보안법임에야! 그러나 법원은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한다는 등의 이유로, 존재하지도 않는 문구를 판결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법원 스스로가 형사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가 존립 자체를 뒤흔든다거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은 없다"는 것은 또 어떤가? 그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이 있었다면 유죄란 말인가? 체제에 대한 비판마저 허용하지 않는다는 암시가 이 무죄판결의 배후에 깔려 있다. 그런데 이리저리 살펴보았더니 한국사회의 이해라는 책의 내용은 요행히도 체제비판에는 해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자신에 대한 비판조차 허용하지 않는 체제가 과연 자유민주주의 체제인가? 만약에 그렇다면 그 순간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하나의 종교가 된다. 그리고 그 종교에 대한 비판은 이단으로 간주되어 화형되어야 마땅하다. 이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는 대법원판결에 근거하여 판단을 한다고 했지만 그렇게 하는 순간 그들은 법관이 아니라 종교의식을 집전하는 제사장이었던 셈이다.

이상의 두 판결에서 내가 보는 것은 법조인의 오만이다. 우선 법조문에도 없는 이적성을 문제삼으면서도 "우리가 법관이기에" 아무 문제가 안된다는 법관의 오만이 거기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종교화하면서도 그게 대법원 판례니까 '우리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고 '우리가 받아들였으니 그렇게 알라'고 한다. "법관은 판결로만 말한다"고 했던가? 이런 판결이라면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좋으련만, 그래도 법관의 오만한 판결은 계속된다.
검사는 또 어떤가? 성인용 천국의 신화를 형법상 음란물 제조 등 죄로 기소한다고 공언했다가 슬그머니 미성년자보호법으로 꼬리를 내려 약식기소를 했다가 미성년자보호법이 폐지되었음에도 이를 철회하지 않는 용기(?), 청산되어야 할 냉전논리에 휩싸인 채 애초에 해서는 안될 공소제기를 해서 무려 6년을 끌고 이 사건이 무죄로 결정되자마자 즉각 항소하겠다고 한 검찰의 뻔뻔함이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왜 이와 같은 법관과 검찰의 자의와 오만이 버젓이 살아 숨쉬는가? 그것을 구조화시켜주며 부추기기까지 하는 제도적 장치가 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현대판 과거제도인 사법시험이다. 공적 직무를 수행하는 법관으로서 또는 검사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공인의식, 인권의식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암기식 시험성적에 의하여 3%에 지나지 않는 합격자에게 권력과 돈과 명예를 보장해주는 보증수표인 사법시험이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가장 똑똑하다는 것을 공인받았다는 헛된 망상이 그토록 자의적이고 오만에 가득찬 법관과 검사들이 백주에 고개를 뻣뻣이 쳐들고 다닐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 혼자만의 생각을 곧 만인의 생각으로 여기고 자기 생각과 다른 생각은 다 오류가 아니면 허위이며 자기야말로 이 나라의 발전에 헌신하고 있고 또 그에 합당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아무런 부끄럼없이 내뱉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법관, 검사를 그나마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경쟁이라는 지

극히 자본주의적인 원리를 이 '법조'라 불리는 시장에 도입하는 것이다. 진입장벽을 허물고 법에 대해 웬만큼 배웠고 웬만큼 안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다 변호사를 시켜버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의사시험이나 약사시험처럼 그렇게 자격시험으로 사법시험을 치르는 것이다. 그리고 변호사 직무를 어떻게 수행하는가를 몇 년간 지켜보다가 범죄의 공정하고 엄정한 수사와 소추라는 검사의 직무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자를 검사로 뽑고 헌법과 법률의 규정뿐만 아니라 그 정신에 따라서 공정하고 중립적인 재판을 수행하여 국민의 인권을 충실히 지켜낼 수 있는 자를 법관으로 임용하면 되는 것이다. 변호사로 성공하기 위해서건 검사가 되고 판사가 되기 위해서건 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사법시험이 아닌 직접적인 업무 수행을 통하여 검증받아야 하므로 자의와 오만과 편견에 가득찬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법무부는 사법시험법 제정안을 발표하면서 정원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니 얼마나 시대착오적이고 한심스러운가? 사법개혁운동에 다시 한번 박차를 가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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