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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7.03 (00:00:00)
노동인권의 사각지대 "비정규직 노동자"

조경배(순천향대학교 교수)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몰라 한시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다. 그래서 회사의 눈치만 보며 죽어라 열심히 일만 한다. 하지만 같은 직장에서 남들과 똑같은 일을 해도 정식 직원이 아니라고 임금은 거의 절반밖에 되지 않고 야근수당도 월차, 연차휴가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의료보험이나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도 직장에서 제외된다. 같은 직장의 정규직 직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에서는 자신들의 밥그릇이 작아질까봐 가입신청을 받아주지도 않는다. 따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노동조합을 만들어볼 생각도 해보지만 이런 저런 법적인 제약과 노조를 만들면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사용자의 위협 앞에 그만 움츠려들고 만다.

  이것이 오늘날 '비정규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700여 만명 노동자들의 실상이다. 우리 나라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는 90년대에 들어서 큰 폭으로 늘어나기 시작하여 정부의 공식통계에 따르더라도 이미 전체 노동자의 과반수를 훌쩍 넘어섰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임시직, 일용직, 계약직, 파견근로, 사내하청, 단시간근로 등 그 고용유형이 매우 다양하지만 법적인 권리나 보호로부터 전면 또는 부분적으로 배제되어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 점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격한 확산을 가져온 노동유연화 전략이 노리는 것중의 하나이다.     요즈음 기업들은 '노동유연화'란 이름으로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노동시장을 이원화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즉 사업의 핵심적인 부분만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그외 나머지는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임시직, 일용직 등)이나 파견근로 등의 간접고용을 통한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통하여 기업들은 고용조정을 용이하게 하고 노무비용을 최대한 줄일 수 있게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기업들이 근로자를 고용함으로써 당연히 부담해야 하는 노동법 또는 사회보장법상의 여러 가지 의무를 직접 근로자에게 떠넘기거나 아니면 다른 사업자를 중간고리로 하여 간접적으로 떠넘기는 것이다. 결국 값싸고 해고가 손쉬운 비정규직의 이용 바로 이것이 소위 '노동유연화론'의 요체인 것이다.

  비정규직의 탈법적이고 무분별한 이용과 확산은 노동이 가진 인간적, 사회적 가치를 훼손한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사람의 노동은 물건처럼 시장에서 사고 파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또한 노동과 그 실현과정은 그 소유자인 사람의 인간성의 발현이자 그 인격의 표현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체제아래서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팔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노동시장에서 사람이 상품으로 취급되는 상황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인간노동은 단순히 물건의 교환을 매개하는 시장원리에 종속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반대로 노동의 인간적, 사회적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적절한 규범원리에 의하여 규율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때문에 ILO헌장의 부속서인 필라델피아선언(1944)에서 인간의 노동은 상품이 아니라고 선언하였고 오늘날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이를 주요한 법 원리의 하나로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존엄의 원리에 기초하여 노동력의 매매와 그 실현과정을 규율하는 규범이 바로 노동법이고 이를 다시 노동자를 주체로 파악한 것이 안정적인 고용의 권리와 인간다운 근로조건을 누릴 권리 및 넓은 의미에서 단결활동의 권리로 표현되는 노동인권인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은 이러한 노동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의 규제를 위반하거나 회피할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오늘날 비정규직 노동의 확산과 고용불안의 심화는 이윤추구라는 기업의 탐욕에 의하여 초래된 인간노동의 극단적인 '상품화'의 결과이자 노동인권의 최악의 위기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인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또한 우리가 해야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은 국가에 의한 행정감독의 철저와 법의 엄격한 해석·적용을 들 수 있겠다. 현재 비정규직의 상당부분은 탈법적인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즉 해고제한법규를 회피하기 위하여 기간제 고용을 반복하여 사용하거나 실질적으로는 근로관계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계약형식을 노무도급이나 위임계약 등으로 위장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는 법의 해석·적용과 행정감독을 보다 엄격하고 철저하게만 해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들이다.  

  다음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통일적인 입법제정운동을 들 수 있다. 최근 근로자파견법의 개정을 위한 자본측의 적극적인 공세가 진행중이다. 자본측의 의도는 현재 최장 2년으로 제한되어 있는 파견근로자의 사용을 연장해 달라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오히려 역으로 파견근로자를 포함한 비정규직 노동 일반의 고용 및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파견근로자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유형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고용불안정, 차별적 근로조건, 노동3권의 제약 등 노동인권의 모든 영역에서 동일한 법적 지위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따라서 비정규직 노동의 보호에 관한 통일적인 법안의 마련이 급선무라고 하겠다.

  나아가 노동인권, 특히 단결권을 억압하는 노동악법의 지속적인 개정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김영삼 정부하에서 불평등 교환의 노사합의로 개정된 현행 노동법은 과거 군사정부의 억압적 노동통제정책의 유산을 그대로 안고 있다. 최근 롯데호텔파업에서 보여준 경찰의 폭력적인 파업 파괴행위는 현행 노동법이 여전히 파시즘적 권력행사의 무기로서 변함없이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사법부의 보수적인 법 해석과 법이데올로기에 대항하기 위해서도 역시 노동악법의 개정투쟁이 갖는 의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계급적 연대의식에 바탕을 둔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이다. 현재 양대 노총에서도 이 문제를 향후 노동운동의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고 한다. 과거 국가와 자본의 노동통제전략이 노동자의 힘을 기업별로 분산시키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여기에 덧붙여 노동시장 전체를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가르는 중층적·위계적 통제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산별노조의 건설과 정규직, 비정규직의 구분을 초월한 단일한 연대조직의 창출이 노동운동의 필연적인 과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인권의 회복과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은 현재의 가장 시급하고도 당면한 과제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진보적인 법 해석이론의 개발 및 새로운 법제정의 노력과 함께 고용보장투쟁과 조직화를 위하여 싸우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지혜와 힘을 모으는 것이 민주법연의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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