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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교수님의 법과 예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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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법과 영화

제1장 재판 영화

1. 사회파 재판 영화 35편

재판 영화는 재미있고 유익하다


사진 8: <평결>내가 제일 좋아하는 재판 영화인 폴 뉴먼Paul Newman 주연의 <평결Verdict>(1982년)은 변호사가 등장하는 재판 영화 가운데 최고로 평가되는 작품의 하나이다. 우리 나라 비디오 제목은 <폴 뉴먼의 심판>으로 번역되어 있으나 잘못된 것이다.  

폴 뉴먼이 연기하는 변호사 프랭크 갈빈은 똑똑하기 짝이 없는 칼같은 변호사가 아니다. 그 반대로 알콜 중독에 빠져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한다. 아침부터 맥주에 생달걀을 넣어 마시는 것이 식사의 전부이고, 장례식에나 찾아다니며 사건을 찾다가 쫓겨나기 일수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일류 법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유능한 변호사였으나, 모함을 당하여 거대한 법률회사에서 실직 당한 것이다.  

그런 그에게 4년전 출산을 위해 입원한 여자가 병원의 마취 실수로 식물인간이 된 사건이 맡겨진다. 우리 나라에도 흔히 볼 수 있는 의료사고이다. 엄청난 합의금이 건네어지나, 병원에서 비참하게 누워있는 피해자를 본 변호사의 심경은 변한다. 그는 사건이 병원측의 실수로 생겼으니 재판에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여 합의를 거부한다. 그러나 노련한 병원측 변호인단의 작전에 말려 패배하기 직전까지 몰려간다. 판사도 피고 편이고, 사랑하는 로라(샤로트 람프링)도 피고측 변호사로부터 돈을 받은 스파이이다.

마지막으로 기대했던 증거가 무효로 판단되고 마침내 최종 변론의 시기가 다가온다. 보통의 재판 영화라면 뭔가 극적인 반전이 있을 것 같으나, 거꾸로 그는 <누구의 마음에도 정의는 있다>고 조용히 연설한다. 그런데 그것이 배심원의 마음을 울려 자신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승리를 맛보게 된다. 폴 뉴먼은 이 영화에서의 탁월한 연기로 아카데미상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받지는 못했다. 주연남우상만이 아니라 작품상, 조연남우상, 감독상, 각본상의 후보로도 오른 수작이다.

재판 영화의 이데올로기

그러나 이 영화를 단순히 재미로만 볼 수는 없다. 이 영화의 숨은 이데올로기인 미국식 자유주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타락된 사회와 그것에 대항하는 개인을 대립시키는 그 기본 구도, 즉 세상에 지친 주인공이 참을 수 없는 사회의 타락에 분노하여 단호한 행동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미국식 영웅상이 여기서도 영락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는 세상은 너무나 썩어서 사회 변화는 개인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허무주의 또는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의 한계 등을 우리는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여성 변호사가 등장하는 재판 영화가 늘고 있기는 하지만, 재판 영화의 주인공은 압도적으로 남성 변호사이다. 그런 남성 변호사는 흔히 상징적인 아버지이나 법의 수호자이며 담지자인 우월한 남성 권력자로 등장한다. 여기서 법과 정의는 언제나 카리스마적인 개인을 통하여 구현된다. 그리고 아름다운 여성 주인공은 그 남성을 도우거나 방해하는 입장으로 묘사되고, 남성 변호사가 변호하는 죄수는 언제나 권력자를 비호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살인의 누명을 쓴 순진한 젊은이로 나타난다. 여기에 종교나 법학이 양념으로 첨가된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의 차원에서 영화를 평가하는 입장에 대해서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제2편에서 하잘 것없는 오락 재판 영화라고 평가된 <내 사촌 비니>에 대해 서울대 영문과의 김성곤 교수는 <포스트모던 인식에 근거한 수작>이라고 하면서 <억압적인 법질서에 대한 통쾌한 저항>이라고 평가했다(주:   김성곤, 헐리웃 20세기의 거울, 웅진출판, 1997, 91쪽).  그러면서 어떤 법대 교수가 반드시 학생들에게 보기를 추천한다는 사실까지 덧붙였으나, 나는 그런 추천의 의사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평가를 할 생각도 없다.        

또한 김 교수는 내가 단순한 오락 영화라고 평가한 <타임 투 킬> 역시 대단한 작품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백인 변호사가 불행한 흑인 죄수를 묘한 변론으로 구원한다고 하는 그 영화의 기본 구도는 역시 백인 중심주의이다. 그 변론이란 유죄가 거의 확정되는 순간에, 죽은 소녀를 백인으로 바꾸어 생각해보라고 하는 변호사의 부탁이다. 그래서 유죄가 별안간 무죄로 바뀐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구도는 <알라바마에서 생긴 일> 이래 미국 재판 영화의 기본구도가 되어 왔다.  

우리는 제2편 <법과 영화>에서 이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100여 편 영화 모두에 대해 할 수는 없다. 독자들은 스스로 그 영화들을 보면서 이런 문제점을 주의해야 한다. 예컨대 <크레이머 크레이머>라는 영화는 이혼을 한 어머니가 아이를 데려가려고 소송을 했다가 전 남편이 진실한 아버지임을 깨닫고 아이를 데려가지 않는다는 이야기인데, 이에 대해 마이클 라이언처럼 <교활한 수사학>(주: 아이클 라이언 외, 백문임 외역, 카메라 폴리티카, 상권, 시각과언어, 1996, 260쪽)이라고까지는 말하지 않더라도 여성에 대한 편견을 전제로 한 남성주의 내지 가부장주의가 이 영화에 숨어 있음을 역시 주의해야 한다.

우리에겐 왜 재판 영화가 없는가?

우리 나라 영화와는 달리 외국 영화에는 재판을 다룬 영화가 많다. 특히 미국 영화에서 그렇다. 물론 최근 우리 나라에도 재판 영화가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 식의 재판이 외국의 재판에 비해 전반적으로 드라마틱하지 않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 특히 재판을 다루는 경우 그렇다. 외국에서는 재판 자체가 재미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 재판은 재미 없다. 간단히 말하자면 굴비 엮듯이 줄줄이 등장한 피고들에게 간단한 질문 몇 마디로 우리 재판은 평균 5분도 안걸려 끝난다. 그러나 외국의 재판은 몇일을 두고 많은 증인들을 등장시켜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영화의 경우 그런 드라마성은 더욱 더해진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도 영화의 소재가 될만한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영화인들이 알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해서 훌륭한 영화로 못만드는 것이다.  

재판 영화의 백미는 법정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변호사와 검사가 배심원을 설득하는 장면이다. 특히 재판의 최후를 장식하는 검찰 측 논고와 피고인 측 변론은 배심원들이 유․무죄를 토의하기 직전에 행해지기 때문에 백열전같이 뜨겁다.

그래서 법정 영화만큼 지적으로 흥분시키는 것은 없다. 그런 점에서 미스테리의 변형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스테리보다 더욱 재미있다. 법정 영화는 미스테리를 두뇌와 화술의 게임으로 벗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실은 몇 꺼풀의 베일에 싸여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재판이 진행됨에 따라 그 하나하나가 벗겨진다. 변호사와 검사에 의해. 여기서 관객은 배심원의 입장에서 추리에 참여한다. 특히 화려한 화술과 마지막 역전이 재판 영화의 백미이다. 그런 걸작 중의 하나는 고전으로서 빌리 와일드가 감독한 아가사 크리스티 원작의 <검찰측의 증인>, 최근작으로서 알란 파큘러가 감독한 스코트 터로 원작의 <의혹> 등이 있다.

단순히 미스테리에 그치면 재미는 있을 지 모르나 영화로서의 가치는 없다. 미스테리에 사회비판이 가미되어야 한다. 즉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사회파 재판 영화의 최고 걸작으로는 위에서 본 <평결>을 감독한 시드니 루멧Sidney Lumet(1924-)의 처녀작 <성난 12인>을 들 수 있다. 우리는 이를 이 책의 제1편 처음에서 볼 것이다.  

그러나 <검찰측의 증인>이나 <성난 12인>의 비디오는 없다. 우리는 비디오로 볼 수 있는 여러 여러 재판 영화를 이 책의 제1편에서 살펴보게 된다. 사람이 사람을 재판한다는 것의 어려움. 그것을 치열한 인간 드라마로 만들어 내는 것이 재판 영화가 갖는 최대의 매력이다. 소송을 제기하는 원고와 검사, 재판받는 피고인, 원고와 피고의 주장을 대변하는 변호사, 쌍방의 증인, 유죄인가 무죄인가를 결정하는 배심원, 형벌을 선고하는 판사, 이런 감정을 갖는 인간들이 법정이라고 하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현장에서 격렬하게 싸우고 다투는 것을 연기하기 때문에 재판 영화는 재미있다. 영화적 흥분을 북돋우는 스릴, 긴장도를 드높이는 지적인 서스펜스, 마음을 밑바닥으로부터 흔드는 인간적인 요소가 응축된 재판 영화는 그 어떤 영화의 장르보다 재미있다.  

그러나 우리는 재미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단 한번이라도 우리의 재판정에 가본 사람이면 왜 우리의 재판은 이렇게도 재미가 없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재미>라고 하는 말에 기분 나빠할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죽고 사는 문제가 걸렸는데 재미를 느낀다고 하다니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재미>라는 말은 장난처럼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진지해서 깊이 빠진다는 정도의 뜻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재판은 진지하지 못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판검사는 물론 변호사 수가 지극히 적어서 재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대부분 겉핥기로 지나간다. 더욱 중요한 이유는 외국처럼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없기 때문이다. 유무죄를 결정하는 배심원단은 외국 재판제도와 우리 재판 제도의 근본적인 차이이다. 그들에게 유무죄를 증명해야 하는 외국의 법률가는 그것을 증명하는 증거와 증인을 찾기에 동분서주하고, 배심원들을 설득하기 위하여 쉬운 말로 변론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그런 과정이 매우 소흘하고, 특히 법률가들만이 알아듣는 어려운 말을 사용하기에 일반인이 알려고 해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재판은 재미없고, 더욱 중요한 문제는 제대로 재판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국 영화를 보면 하나의 재판에 보통 몇 일이 걸리나 우리는 초 스피드로 끝나는 것도 그런 문제점을 낳는 요인이다.    

나는 외국의 재판 영화가 우리의 사법제도를 개혁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사법제도는 철두철미 관료적이고 기계적이며 도식적이다. 사람의 목숨이 걸린 문제인데 전혀 진지하지가 못하다. 특히 시민이 상식으로 유무죄를 판단하는 민주적인 절차가 전혀 없다.

재판 소설

재판 영화와 마찬가지로 재판 소설도 재미있다. 외국에서는 재판 소설도 재판 영화처럼 하나의 장르로 되어 있다. 예컨대 과거의 스탠리 가드너Stanley Gadener나 아가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1890-1976), 그리고 최근의 죤 그리샴John Grisham(주: 번역본은 『가스실』, 『파트너』, 『사라진 배심원』, 『타임 투 킬』, 『레인메이커』,『의뢰인』, 『펠리칸 브리프』,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거리의 변호사』 등, 모두 시공사)이나 스코트 터로Scott Turrow(주: 최근의 작품으로는 Pleading Guilty, 이종인 역, 증발, 시공사, 1995)의 소설이 그렇다. 그것들은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고, 즉각 영화화되어 전 세계에 보급된다.

특히 아가사 크리스트의 추리 소설은 그 양이나 질에 있어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장편 66권, 단편집 20권의 대부분이 우리 말로 번역되어 있다. 단편 중의 걸작이 영화화된 <검찰측의 증인Wittness for the Prosecution>과 <쥐덫The Mouse Trap>이다. 그밖에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배우들이 출연한 영화들로 만들어진 <오리엔트 특급살인Murder in the Orient Express>, <나일강의 살인Death on the Nile>, <깨진 거울The Mirror Crack'd> 등이다. 우리는 그 중에서 <검찰측의 증인>을 영화로 제2편에서 감상한다. 나머지는 탐정 영화이기는 해도 재판영화는 아니기 때문에 이 책에서 소개하지는 않는다.  

탐정 영화와 마찬가지로 탐정 소설도 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탐정소설은 근대 산업사회의 형성과 동시에 성립하여 사회의 발전과 함께 성장하여 왔다. 1840년대 미국의 에드가 알란 포Edgar Allan Poe(1809-49)를 선구자로 하여 미국, 영국 그리고 프랑스에서 그것은 대중문학의 중요한 장르로 확립되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는 재판 문학 내지 추리 문학이 그다지 발전되지 못하고 있다. 재판 영화와 함께 재판 문학이 왜 발전되지 못하고 있는지는 우리 예술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관건이 된다고 생각하나, 여기서는 이런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룰 여유는 없다. 그러나 중요한 점 하나만 지적한다면 우리의 예술가들이 재판이나 법률 문제에 대단히 무관심하다는 것, 그리고 법률가와 예술가 사이에 교통이 거의 없다고 하는 점이다.  

재판 영화의 명배우들

1930년대의 유성 영화 출현 이래, 말로 다투는 재판 영화는 하나의 장르가 될 정도로 많이 제작되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영화 관련 책에서는 보통 드라마나 미스테리 속에 재판 영화를 포함시킨다.

사진 8: <자유로운 영혼> 말로 먹고 사는 변호사는 재판 영화의 히어로이다. 그 최초의 걸작은 라이오넬 배리모어Lionel Barrymore(1878-1954)라는 배우가 14분간에 걸친 연설조의 독백을 한 술취한 변호사 연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1931년의 <자유로운 영혼A Free Soul>이다. 그 연기는 지금까지도 영화사에서 가장 위대한 연기의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69년 전의 그 작품을 우리는 영화관에서는 물론 비디오로도 볼 수 없어서 유감이다.

재판 영화에 등장한 변호사 중에서 최고의 명성은 1959년의 <협박Compulsion>이라는 영화의 오손 웰스Orson Wells이나, 우리는 역시 그 영화를 비디오로 볼 수 없다. 이 영화는 1920년대의 레오폴드와 로엡 사건을 다룬 것으로서 웰즈는 피고인 브레드 딜만과 딘 스톡웰을 위한 웅변적인 변호로 배심원들을 압도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 영화를 보기 어렵다.
사진 9: <협박>

내가 배리모어, 웰즈와 함께 영화 속 10대 변호사로 꼽는 연기를 한 배우들은 <젊은 링컨>의 헨리 폰다, <살인의 해부>의 제임스 스튜어트, <알라바마에서 생긴 일>의 그레고리 펙, <평결>의 폴 뉴먼, <리갈 이글>의 로버트 레드포드,  <톱니 바퀴의 칼날>의 글렌 클로즈, <의혹의 밤>의 쉐어, <최후의 판결>의 리챠드 드레이퍼스, <필라델피아>의 댄젤 워싱턴, <뮤직 박스>의 제시카 랭이다. 반면 악역 변호사도 많다. 예컨대 <워트프론트>에 나오는 부패한 변호사를 연기한 로드 스타이거나, <권력자 콘>에 나오는 멕커시 의원의 오른팔격인 출세주의자 변호사를 연기한 제임스 우즈이다.

그리고 그들이 변호하는 피고인을 연기하여 역시 10대의 목록에 드는 배우들은 <아버지의 이름으로>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 <톱니 바퀴의 칼날>의 제프 브리지스, <제1급 살인>의 케빈 베이시, <젊은이의 양지>와 <뉘른베르크 재판>의 몽고메리 클리프트, <데드 맨 워킹>의 숀 펜, <행운의 반전>의 제레미 아이언스, <크리미날 로>와 <일급 살인>의 케빈 베이컨, <최후의 판결>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이다. 민사사건의 원고와 피고를 연기한 배우들로는 <크레이머 크레이머>의 더스틴 호프만과 메릴 스트립, 그리고 <필라델피아>의 톰 헹크스를 꼽을 수 있다.    

그외 판사나 검사, 증인 또는 배심원 중에는 명연기가 없는 것은 아니나,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다. 아마도 본래가 조연급인 탓이리라. 판사가 돋보이는 경우는 <뉘른베르크 재판>의 스펜서 트레이시 정도이고, 검사가 돋보이는 대표적인 영화는 <피고인>의 켈리 맥길리스와 의 케빈 코스트너 정도이다.

그러나 재판 영화 중에서 배심원만이 등장하는 독특한 영화, 그것도 재판 영화 중에서도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있다. 그것부터 감상해 보도록 하자. 우리 비디오가 없어 유감이지만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지금까지도 인기있는 비디오 중의 하나로 출시되고 있다. 이는 우리 비디오 시장이 얼마나 척박한 지를 보여주는 일례에 불과하다. 그러나 가끔은 텔레비전의 주말 영화에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아직은 비디오가 없다고 해도 독자들이 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작품들은 소개하기로 한다.

재판 영화 또는 법정 영화는 여러 차원으로 분류될 수 있다. 나는 단순하게 사회적인 것과 추리적인 것으로 분류한다. 즉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것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여 지적 흥분을 극대화시키는 것으로 나누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런 구분은 상대적이다. 왜냐하면 모든 법정 영화에는 그런 두 요소가 병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그 분류는 어느 것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른 구별에 불과하다. 우선 내가 최고의 재판 영화라고 평가하는 사회적 법정영화인 <성난 12인>부터 보자.  

최고의 재판 영화 - <성난 12인>

사진 10: <성난 12인>재판 영화가 하나의 장르가 된 것은 1950대 후반에 와서였다. 그 최초의 걸작은 1959년의 <성난 12인12 Angry Men>이었다. 위에서 본 <평결>을 감독한 시드니 루멧의 데뷔 작품인 그것은 주연을 한 헨리 폰다가 스스로 제작하기로 결심하기까지 아무도 손대지 않은 것이었다. 원래는 텔레비전 드라마로 성공한 작품이었다. 영화는 사회성을 강조하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무대는 처음부터 끝까지 작고 질식할 것듯이 밀폐된 배심원실. 마지막 장면 외에는 사람들이 한번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야말로 밀실 드라마다. 그러나 강렬한 사회성이 있고 나아가 현대 문명에 대한 예리한 비판이 있다. 인간이 인간을 옳게 재판한다는 것의 어려움과 부조리를 이 드라마는 이상할 정도로 집요하게 호소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전신이 물에 젖은 솜처럼 피로에 젖는다.  

어느 여름 무더운 뉴욕 법원의 법정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12명의 배심원이 별실에서 재판장의 자문을 받아 유무죄 결정을 위한 평결에 들어간다. 배심원들은 모두 하루 빨리 집에 가고 싶다. 사건은 비행 소년이 칼로 아버지를 죽인 사건. 이 살인사건을 다루는 배심원들은 모두 다 유죄라고 생각한다. 피고인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표결에 들어가자 11 대 1로 유죄 의견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배심원의 결정은 전원 일치여야 한다.

단 1명의 반대자는 제8번 배심원인 헨리 폰다이다. 배심원들은 서로 이름도 직업도 모르고 단지 번호로만 불려진다. 제8번 배심원은 피고인이 유죄일지도 모르나, 의심이 가기 때문에 1시간 정도 심의하자고 말한다.

제1회의 심의. 살인 현장 아랫방에 사는 노인의 증언으로는 그날 밤, 죽인다고 고함치는 소년의 목소리를 들었고, 사람이 넘어지는 소리가 들려 급히 복도로 나가자 계단으로 내려오는 피고인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피고인은 그 시간에 영화를 보았다고 증언했다. 제목은 잊었지만. 그리고 고가 철도 쪽에 사는 노처녀는 철도를 지나는 빈 열차의 창으로 살인 현장을 목격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살인의 흉기인 칼은 분명 소년의 것이었다. 그러나 제8번 배심원은 꼭같은 칼을 지녔기에 그것이 증거가 되기에는 불충분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제2회 평결에서는 무죄파가 1명 늘어 10 대 2가 된다.

다시 심의. 노인이 범죄 현장의 소리를 들었다고 했으나, 그 당시 기차가 지나고 있었으므로 과연 소리가 들릴 수 있었을까 하고 제1번 배심원이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그런 증언은 혼자 사는 노인의 자기 과시일 수도 있겠다고 제9번 배심원이 주장한다. 그래서 제3회 평결에서는 8 대 4로 무죄파가 다시 2명이 더 는다.

새로운 심의에서 제4번 배심원이 자신도 며칠 전 본 영화 제목을 잊었다고 말하면서 소년이 영화를 본 것이 사실일 수도 있고, 키가 작은 소년이 찔렀다면 상처가 아래에서 위로 찢어져야 하는데 실제 상처는 그 반대라고 말한다. 그 결과 제4회 평결에서는 무죄파가 9명이 되어 9대 3으로 역전된다.

별안간 큰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친다. 모두 프로 야구 중계가 중단될까 걱정하며 각자의 일도 있어 빨리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제3번, 광신적인 제10번, 냉정한 제4번 배심원들은 완강하게 유죄를 주장한다. 제4번이 땀으로 안경을 닦자 안경 없이 창 밖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밝혀져 고가철도 넘어 현장을 목격했다는 안경 쓴 노처녀의 증언이 허위로 판정된다. 안경을 쓰고 자지 않았다면 현장을 목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11 대 1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 유죄파인 제3번은 자신이 아들로부터 배신당한 경험 때문에 불량 소년은 사형시켜야 한다고 소리쳐 스스로 패배를 인정한다. 결국 12 대 0. 소년의 무죄가 결정된다. 그러나 진범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제8번 배심원은 편견을 무너뜨리고 <의심이 있으면 처벌하지 않는다>고 하는 신념을 관철하여 무죄로 끌고 가서 소년을 사형 의자에서 구출한다. 이럭저럭 시간이 지나 저녁. 배심원들은 모두 바쁘게 집으로 돌아간다. 거리에는 비가 내린다.

사진 11: <의혹의 함정>시드니 루멧 감독은 보통 세계영화사에서 100대 감독 정도에는 들지만 10대 감독에는 턱도 없다. 그러나 나는 그를 10대 감독에 넣어도 손색이 없다고 본다. 그가 만든 영화는 상당수 우리말 비디오로 나와 있다. 그의 작품은 세 가지로 대별된다. 첫째는 연극을 영화화한 것들로서 예컨대 <에쿠우스Equus>(1977년)가 그것이다. 둘째는 가족에 대한 것들로서 <허공에의 질주Running on Empty>(1988년), <도시의 제왕Prince of the City>(1981년) 등이다. 세 번째는 사회문제를 다룬 것들로서 예를 들어 <네트워크Network>(1976년), <오리엔트 살인사건Murder on the Oriental Express>, <의혹의 함정>(1993년) 등이다. 그 어느 것이나 사회비판적인 작품이므로 법학도로서는 한번쯤 감상할 필요가 있다. 그가 만든 영화는 상당수 우리말 비디오로 나와 있다.

그러나 시드니 루멧이 1993년에 만든 <의혹의 함정Guilty as Sin>은 1980년대 이후 유행처럼 대두한 여자 변호사 하인즈(레베카 드 모네이)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으로서 아내살해범 그림힐(돈 존슨)을 변호하며 사랑하게 된다는 상투적인 스토리로 루멧의 작품치고는 졸작을 면하지 못하나, 완전범죄의 서스펜스와 스릴을 느끼게 한다.
* 민주법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7-11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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