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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교수님의 법과 예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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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조회 수 19301 추천 수 36 2004.06.11 15:40:06

머리말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도시나 시골의 모습은 다르다. 우리와 서양의 그곳들이 다른 점은 서양에는 그 어디에나 도시나 시골의 중심에 시장과 시청, 그리고 교회가 하나의 세트로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곧 경제와 정치 그리고 정신이 한 곳에 모여 있고, 그 주위로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다. 시장에는 지금도 아침이면 부근의 농촌에서 가져온 식품이나 꽃을 파는 노점상이 열리고, 낮이나 밤에는 시장이 사람들이 만나거나 집회를 여는 광장으로 사용되어 그곳 사람들에게는 생활의 중심이 된다. 서양의 중요한 정치 집회나 혁명은 이 시장의 광장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사진 1: 정의의 여신상, 독일 브레멘 법원 서양의 시장을 좀더 주의해서 둘러보면 그 어디에나 <정의의 여신상>이 서 있음을 알게 된다. 시장의 중앙에, 또는 시청이나 교회 옆에 그것이 서 있고, 가까운 법원이나 학교에도 서 있다. 예컨대 우리 나라에서도 책표지로 자주 소개되는 것으로 독일 브레멘 법원의 <정의의 여신상>(사진1)이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를 모방하여 1995년에 신축된 대법원에 <정의의 여신상>이 그 대법정 출입문 위에 설치되었다(사진2).
사진 2: 박충흠, 정의의 여신상, 100x100x180cm, 청동, 대법원 대법정 출입문

그런데 사진으로 보듯이 여신의 모습은 한국인이나, 저울을 높이 들고 있는 모습은 서양의 그것이다. 단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는 점이 다르다. 칼은 본래 법의 강제력을 의미하나, 우리의 그것에는 칼이 없다. 그래서 우리의 법은 그다지 힘이 없는 것일까?

그것은 조각만이 아니라 회화나 벽화 또는 유리창을 장식하는 스테인드글래스로 대부분의 공공 건물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시청 앞문 위 대리석에는 <정의의 여신> 이름인 JUSTITIA가 반드시 새겨져 있다. 우리 나라처럼 매일같이 바뀌는 정치 구호가 페인트로 칠해져 걸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구호로 <정의>가 돌 위에 새겨져 있다.  

여하튼 이런 서양의 풍경을 보면 서양에서는 정치는 물론 경제나 사회, 정신까지도 <정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법원 앞에 <정의의 여신상>이 서 있는 것이야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시장과 시청, 심지어 교회나 학교까지 <정의의 여신>을 숭배하는 것에 대해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서양에는 법원이 참으로 많다. 우리처럼 수 백만 명이 사는 도시에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몇 만 명이 사는 도시에도 여러 개가 있다. 그것도 슈퍼마켓 2층이나 골목처럼 사람들이 언제나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곳에 있다. 또한 어느 골목에도 변호사 사무실이 있어서 조그만 도시에도 수 백개가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는 도시의 법원 옆에 몇 몇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그 수도 너무나 적다.

서양에서는 정의가 사회를 지배한다는 느낌을 단지 삶의 공간에서만이 아니라 생활과 문화의 구석구석에서도 느낄 수 있다. 책방에는 법률 문학이나 추리 문학이 넘쳐나고, 영화관이나 극장에서, 심지어 오페라 극장과 대중 음악 공연장에서도 법과 정의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공연된다. 모든 가정의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상도 <불의>에 의해 죽임을 당한 예수를 사람들에게 매일 아침저녁 생각하게 하는지 모른다.

서양 사람들이 매일처럼 읽는다는 성경에는 법과 재판의 이야기로 그득하고, 성경처럼 서양에서는 영원한 베스트셀러 작가들인 셰익스피어, 디킨즈, 괴테,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등은 법과 정의를 소재로 하는 작품들을 썼으며, 여러 저명한 화가들이 그런 주제의 그림을 그렸다. 프랑스에서는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이나 볼테르의 『관용론』또는 룻소의 『사회계약』이 문학으로 다루어진다. 라신느는 『소송광』을 썼고, 위고의 『레 미제라블』은 역사소설이자 애정소설이고 나아가 추리소설이며 사회적 서사시이다. 우리말로 세 번이나 번역된 『앵무새 이야기』 역시 재판소설이다.

그런 소위 <고급 예술>이야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향유될 지도 모르지만, 일반 대중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그런 작품들이 더욱 많다. 제법 고상한 사람들도 그런 대중적 <법률 예술>을 즐긴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추리 소설의 광이었다고 하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우리에게도 수많은 서양 추리소설들이 번역되고 있다.  

서양에서는 재판이 생활 속에 있다. 곧 사람들은 재판을 이웃 사람과 함께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배심 또는 참심 재판이다. 배심은 12명의 시민이 유․무죄를 결정하는 것이고, 참심은 2명의 시민이 1명의 재판관과 함께 재판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시민은 평생에 몇 번이나 배심원 또는 참심원이 된다. 이렇게 시민들이 직접 재판에 참여하므로 재판은 시민의 생활 속에 있는 중요한 관심사가 된다.  

서양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자. 서양의 모습이 그렇다고 해서 서양이 반드시 정의가 구현되는 사회라고 할 수는 없다. 특히 근․현대사에서 서양이 비서양 사회에 가한 불의의 행각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악독한 짓이었다. 서양 안에서도 사람들은 끝없는 전쟁을 벌였고, 강자와 부자는 약자이자 빈자인 대부분의 사람들을 끝없이 괴롭혔다. 그래서 서양의 어디에나 걸려 있는 <정의의 여신>은 사실 그러한 침략과 착취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기능까지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가 사회의 기본 믿음이 되고 있고, 생활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정의>가 단순히 정치가나 법관의 손에 맡겨져 있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일상의 관심사가 된다는 것은 <정의 사회>를 구현하는 데 참으로 귀중한 밑거름이 된다. <정의>가 단순히 <법전>이나 <법원>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 속에 깊게 스며들어 있다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본받고 배워야 할 점이다.        

서양에 비해 우리는 재판을 생활 속에서 느끼고 생각하며 바라보지 않는다. 도리어 재판은 우리 시민과는 멀리 떨어진 대단한 권위인 양 생각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그것을 멀리하고자 하고, 그것이 닥치면 당혹하여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이러한 것의 근본적인 해결은 사법제도를 시민의 참여에 의한 것으로 바꾸어야 하나, 당장 그것을 기대하기란 힘들다. 그래서 보다 우회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예술을 통한 법과 정의의 이해를 시도해 볼 수도 있다.  

이 책은 그런 이해를 시도하는 하나의 작은 노력이다. 영화, 문학, 미술 등 예술이 다루는 인간의 삶은 법이 다루는 삶보다 더욱 깊고 넓다. 그 중에는 법과 관련되는 것도 상당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소재를 몇 개 모아 설명한 것이다. 이런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예술에서 법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보여주어 법과 삶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이다. 법조문에 대한 교조적인 해석에만 의지하여 삶을 재판하는 교만으로 실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종래 법은 언어로 쓰여진 법전이나 법학 문헌을 통해서만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소설이나 시와 같은 문학, 영화나 미술 작품 등에서도 법에 대한 이야기가 그득하다는 점에서 그 모든 것을 함께 다루어야 법을 입체적으로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 법의 이념인 정의는 법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정의는 법과 다른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법과 정의를 따로 생각하기도 한다. 특히 우리 나라처럼 악법이 많은 나라에서는.

법을 다룬 예술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것이 영화이다. 최근 우리는 비디오의 시대에 살게 되어 영상을 통한 법과 정의의 이해가 가능하게 되었다. 영화에는 <재판 영화> 또는 <법정 영화>라고 하는 독자적인 장르가 있고, 꼭 그런 영화가 아니라도 법과 정의의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다루는 영화는 많다. 문학은 그보다 더욱 오래전부터 법과 정의를 다루어 왔고, 문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던 그 전 시대에는 그림이 그런 역할을 했다. 따라서 영화, 문학, 미술 등에 숨은 법과 정의의 의미를 읽어내고 이해하는 것은, 인간이 법과 정의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해왔고 하고 있는 지를 아는 데 매우 중요한 일이다.

사진 3: 작센슈피겔, 1300-1315년경, 양피, 30X23.5cm, 하이델베르크대학 도서관 역사적으로 보면 14세기 초의 작센 슈피겔Sachsen Spiegel(사진3) 처럼 법이 시의 형식으로 그림과 함께 쓰여진 적도 있고, 동양에서도 과거 시험에 시작(詩作)이 포함되었다. 오늘날에도 뛰어난 법률가라면 당연히 뛰어난 예술가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책에서도 다루어지는 셰익스피어는 그 작품의 대부분에 법정 장면을 묘사했다. 괴테나 하이네, 톨스토이나 카프카는 법학도였다. 물론 법학도가 아니면서도 법과 정의를 주제로 한 걸작품을 쓴 작가도 많다. 예컨대 셰익스피어, 도스토예프스키, 디킨즈, 브레히트 등이다. 게다가 화가들이나 영화인들은 거의 법학과는 무관했으나, 법과 정의를 묘사했다.

그런데 이 책의 목차를 보았거나 이 책의 대강을 눈치챈 독자라면 금방 알 사실이지만 <법과 예술>이란 주제로 다룬 우리 나라 작가나 작품은 그야말로 눈을 씻고 살펴봐도 찾기 어렵다. 이에 대해 독자들의 항변이 예상되지만, 불행히도 나는 영화에서 세 작품을 들고, 문학가로서 시인 김남주 등을 든 것 외에 전혀 우리 작품을 고를 수가 없었다. 동양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중국영화 한 편의 소개에 그쳤다.

이는 우리 예술이 다루는 세계가 그만큼 좁다는 것을 뜻한다. 더욱 근본적으로는 <법과 예술>이 서로 울타리를 치고서 서로를 별개로 보아온 탓이기도 하다. 법은 예술에 무지하고 예술은 법에 무지하다. 서로 잘 알아야 비판도 가능하다. 알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 법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도 예술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고, 예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도 법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나는 오랫동안 이런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나 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이런 공부를 해볼 기회가 없어 혼자 이런저런 책과 글을 썼다. 몇 년 전부터 대학의 교양과정에서 이런 강의를 해보고자 했으나 언제나 좌절 당했는데, 2000년이 되어 세상이 좋아진 탓인지 내가 있는 대학에서 <법과 예술>이라는 강좌를 개설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그 교양다운 교양의 교재로 마련되었다.  

한 학기 대학의 강좌는 보통 16주로 구성되나 두 번의 시험을 빼면 수업은 14주이다. 그리고 교양강좌는 보통 1주 2시간이다. 그래서 14주의 강좌를 각각 2시간 정도로 설명하고자 이 책을 구성했다. 강좌의 내용을 여러 가지로 구상해 보았으나, 서론과, 본론으로 13개의 주제를 선택하여 해설하기로 했다. 그리고 가능한 한 그림도 많이 넣어 보면서 읽는 책으로 만들고자 했고, 하나의 장을 30쪽 전후로 하여 2시간 수업에 적합하도록 구성했다.  

우선 학생들이 접근하기 쉬운 영화를 두 개의 주제로 정리하여 1백편 정도를 소개하고, 문학에서 20명의 작가, 미술에서 10명의 화가를 선택했다. 영화는 주로 우리말 자막이 있는 비디오로 소개된 것, 문학은 우리말로 번역된 작품, 미술도 우리말 화집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으로 했다. 그렇지 않은 것들을 소개하는 것은 적어도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처럼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문학의 셰익스피어, 미술의 고야 등, 선택된 문학자나 미술가들에 비해 영화감독들이나 배우들은 흔히 세계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예술가의 반열에 들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이른바 영화예술의 차원에서도 그들은 예술 영화나 작가 영화의 대표 주자들이 아니다. 예컨대 이 책에 소개된 영화로서 한국의 영화 평론가 5인이 선정했다는 <세계 영화 100선> 등에 포함된 것은 <욜> 단 한 편 뿐이다. 그러나 나의 관심은 그런 관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법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게 한다는 점에 있다.  

나는 이 책이 <법과 예술>이라는 강좌 이외의 수업에서도 이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우선 지금까지의 무미건조했던 <법학개론>이나 <생활법률> 등의 수업은 물론 <법제사>나 <법사회학>, <법철학>이나 <영미법>과 같은 수업에도 이용될 수 있고, 나아가 세계사 내지 서양사 관련 수업에도 이용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이 책에서 처음으로 정리한 1백여편의 비디오는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법과 정의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서 선택된 문학자 20명과 미술가 10명은 어디까지나,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예술가 중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보다 많은 예술가와 작품을 다룬 책들이 우리 나라에 이미 나와 있다. 예컨대 서울대 법대의 안경환 교수가 쓴 『법과 문학 사이』와 최종고 교수가 쓴 『법과 미술』 등이다. 이 책들은 나의 이 책과는 다른 각도에서 쓰여졌으나, 좋은 참고 문헌임에 틀림없다.

특히 『법과 문학 사이』는 문학에 관심을 갖는 법학도에게 반드시 읽기를 권유한다. 나의 이 책에서 문학자가 20명만 언급된 것은 이미 『법과 문학 사이』가 쓰여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책에는 또한 우리말로 번역되지 못한 많은 작품들이 설명되어 외국어 독해가 가능한 사람들이라면 <법과 문학>의 전반에 대한 연구의 지침으로 삼을 수도 있다.  

나는 몇 년전 신문에 연재한 글들을 모아 『시대와 미술』이라는 책을 낸 적이 있다. 미술을 시대상황에 비추어 나름대로 새롭게 설명한 것이었다. 그후 19세기 영국의 예술가이자 사상가였던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과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예술을 다룬 『내 친구 빈센트』를 내었고, 조만간 도미에와 밀레, 그리고 쟈코메티의 삶을 다룬 책들을 출판할 예정이다. 그밖에도 신문 잡지에 영화나 미술 또는 문학에 대한 잡문을 썼다. 그런 것들은 모두 이 책과 관련되므로 참고가 되기를 빈다.  

IMF로 더욱 어려워진 출판 사정에도 불구하고 새 학기의 수업을 위해 바쁜 가운데서도 기꺼이 이 책을 출판해준 영남대학교출판부에 감사한다. 이 책은 처음 시작하는 강의의 교재이므로 앞으로 더욱 좋은 영화, 문학, 미술 작품을 골라 얼마든지 그 속편을 쓸 수 있다. 아무쪼록 법과 삶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이 책이 우리 사회에 법과 정의가 뿌리 내리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빈다.


2000년 1월 1일

박홍규


* 민주법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7-11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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