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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574 no image IAEA, 내주말께 북핵 감시계획 발표 예정
정태욱
12590 2007-02-20
2.13합의에서도 국제원자력기구의 안전조치에 대한 언급이 있었음은 물론이고, 국제원자력기구도 이번 합의에 따라 북한의 핵 동결 및 장차의 불능화를 감시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6자회담이 NPT와 구분되지만, 결국 NPT를 구체화하는 핵 비확산의 틀이 되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국제원자력기구가 설사 이번 합의를 '정치적으로' 지지할 수는 없다라고 할지라도, 그 합의에 따른 핵비확산의 조치들은 이행할 수밖에 없다('법적으로')는 것은, 그런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IAEA, 내주말께 북핵 감시계획 발표 예정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6자회담의 '2.13합의'에 따라 북한의 핵시설을 감시하는 계획을 준비중이며 이르면 내주말께 발표할 예정이다. 멜리사 플레밍 IAEA 대변인은 17일 '미국의 소리' 방송(VOA)과의 인터뷰에서 "6자회담에서 체결된 합의문 조항에 대한 검토작업에 착수해 북한 핵시설의 감시와 검증 작업을 위한 예비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며 "새 감시계획은 다음 주말에 공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2.13합의'에는 북한이 60일 이내에 재처리 시설을 포함한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고 IAEA의 감시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아직 북한으로부터 이에 대한 요청은 없다면서 "북한이 IAEA와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를 모두 탈퇴했기 때문에 기존 회원국과는 다른 감시계획이 준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플레밍 대변인은 "(북한에 대한 새로운 감시계획은) 다음주에 IAEA 이사회의 승인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IAEA는 2.13 합의문을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합의문 이행 과정에 필요한 협조를 제공한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은 지난 13일 '2.13합의'의 북한 핵시설 폐기 합의를 환영하며 이 합의에 따라 IAEA 사찰단이 북한에 복귀할 것이라고 밝혔다. IAEA 고위 관리들은 지난 수개월간 북한 외교관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사찰단의 복귀를 준비해 왔으며 북한의 승인만 떨어지면 수일 내로 IAEA 사찰단이 북한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알려졌다. jyh@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king21c/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7/02/17 10:45 송고
573 no image DJ "김정일 위원장, 이번 기회 절대 놓치지 말아야"
정태욱
9526 2007-02-20
DJ의 얘기처럼, 결국 관건은 북미, 북일 그리고 남북 관계의 호전과 개선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입장인데요, 현재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이번 합의를 직접 재가 하였다는 점, 예전의 충신이자 총신이었던 볼튼이 북한과의 타협은 슬픈 일이며, 부시 대통령이 변했다고 비판한 것에 대하여,그것은 전적으로 옳지 않다고 직접 반박한 점 등은 매우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부시 대통령은 매우 간명한 판단을 하는 사람입니다.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핵실험까지 강행하자 그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였을 것이고, 현재 라이스를 비롯한 미 국무부 그리고 다른 관계당사국들이 모두 협상을 원하는 상황에서, 다른 길은 없다고 정리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DJ의 충고처럼 김정일 위원장이 이번에 정말로 부시와 만나는 것까지 포함하여 잘 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현재 공화당 정부와 잘 되면, 다음에 미 대통령이 누가 되든 잘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문제는 미 대통령 선거의 국면입니다. 예전의 역사를 보면 선거 국면에서는 항상 대중에 어필하는 '선명성'이 중요하고 그로 인하여 강경파들이 문제를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지요. 그런 점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올해는 남한의 대선이 있고, 내년에서는 미국에도 대선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DJ "김정일 위원장, 이번 기회 절대 놓치지 말아야"(종합) (도쿄=연합뉴스) 이홍기 특파원 = 김대중(金大中) 전(前) 대통령은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합의와 관련,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이번 기회를 절대 놓쳐서는 안된다"며 성실한 합의 이행을 촉구했다고 교도(共同)통신이 15일 보도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서울에서 교도통신과 가진 단독 회견에서 최근 베이징(北京)에서 북한 핵 포기를 향한 초기이행 조치와 대북 에너지 지원 등의 합의문을 채택한 6자회담 결과를 긍정 평가하면서 북한이 무엇보다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올해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평화의 빛이 비추게 될 것으로 본다. 미국도, 북한도 본격적으로 핵 문제의 해결 방향으로 나가고자 하고 있다"며 대화를 통한 핵 문제의 해결 가능성을 낙관했다. 김 전 대통령은 핵 실험까지 실시한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6자회담의 공동문서에) 북한이 원하는 것을 모두 제공한다고 했기 때문에 이행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행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에 북미정상회담 전망에 대해서도 "물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작년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뒤 한국이 식량지원을 중단하고 북한이 장관급 회담을 거부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남북한 관계에 대해서는 "남북 관계가 급속도로 발전할 것이다"며 한국이 식량이나 비료를 지원하고, 북한도 이산가족 만남에 협력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 전 대통령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에 남북정상회담이 연내 성사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70~80% 정도 된다"며 실현 가능성을 높게 전망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밖에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해서도 "분위기가 좋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을) 너무 몰아불일 경우 반발한다"며 일본 측에 유연한 대응을 주문했다. 김 전 대통령은 북한 측에 대해서도 "모처럼 사죄하고 협력했기 때문에, 생사의 확인 등 남은 문제도 일본 피해자 가족들이 원하는 대로 해 줘 완전히 납득할 수 있도록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충고했다. lhk@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7/02/15 21:12 송고
572 no image <북핵타결> 유럽 일제히 환영
정태욱
11366 2007-02-20
유럽은 6자회담의 당사국은 아닙니다만, 예전에 제네바합의의 체제에서도 KEDO의 후발 이사국으로 참여하고 재정지원도 많이 하였듯이, 앞으로 6자회담의 틀에 어떤 형식으로든지 관여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EU의 적극적 역할을 기대해 봅니다. -------------------------------------------------------------------------------------- <북핵타결> 유럽 일제히 환영 속 일각 신중한 반응(종합) 獨 무조건 합의이행 촉구, 블릭스 "첫걸음일뿐" (브뤼셀=연합뉴스) 이상인 특파원 = 유럽연합(EU)과 회원국들은 13일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이 타결된데 대해 일제히 환영의 뜻을 표명했다. 하비에르 솔라나 EU 외교정책 대표의 크리스티나 갈라크 대변인은 "6자회담 합의에 고무됐다"고 환영했다. EU는 북핵문제가 해결의 돌파구를 찾은 것이 이란 핵문제 해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기대하는 표정이다. EU 순회의장국인 독일은 타결을 반기면서도 궁극적으로 핵무기 폐기에 이를 이번 합의 내용의 무조건적이고 포괄적인 이행을 북한에 촉구했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외무장관은 이번 합의를 칭찬하면서도 "이번 베이징 합의가 무조건적이고 포괄적으로 이행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따라서 우리는 평양 당국이 합의내용을 지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도 베이징 6자회담에서 북한 핵폐기 이행을 담은 합의문이 도출됐다는 소식에 "긍정적인 성과"라며 환영했다. 영국 외무부 대변인은 "6자 회담에서 긍정적인 성과를 거둔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는 신중한 환영의 입장을 나타냈다. 장-밥티스트 마테이 외무부 대변인은 "아주 분명하게 돌파구가 마련됐다"며 이는 프랑스가 북핵 문제와 관련해 전적으로 지지하는 협상에서 중요한 첫 단계라고 환영했다. 그는 그러나 이번 타결은 3월 19일 6자 회담이 재개될 때 확인돼야 한다며 협상 결과가 신중하게 대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북한과 이란의 핵 문제가 크게 다르다고 해도, 북핵 문제 진전은 이란 핵문제에 관해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칼 빌트 스웨덴 외무장관도 "따뜻하게 환영한다"면서 "모든 합의가 완전히 존중돼야 한다는 점은 해결되지 않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스 블릭스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결론이 난 것이 아니며 먼 길에 첫 걸음을 내디딘 것에 불과하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블릭스 전 총장은 "북한이 (핵폐기의) 보상으로 많은 양의 에너지를 받게된데 대해 분명히 어느 정도의 협박이 있었던 것같고, 그런 점은 고무적인 일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동북아시아 지역에 핵무기 경쟁을 피할 수 있는 평양의 핵시설 폐기라는 이번 합의의 중요성을 감안할때 "환영할만한 뉴스"라고 의미를 높게 평가했다. sangin@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7/02/14 02:13 송고
571 no image 2.13합의문(전문)
정태욱
12716 2007-02-13
잘 되었습니다. 제네바합의의 발전된 형태입니다. 제네바합의를 그대로 지속하면서 발전시키면 될 것을... 하여튼 잘 되었습니다. 북한에 대한 중유제공의 분담에 관한 문제는 실무그룹에서 논의하기로 정리되었군요.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으로부터 해제하기 위한 과정을 개시하고, 북한에 대한 대적성국 교역법 적용을 종료시키기 위한 과정을 진전시켜 나간다고 한 합의도 주목됩니다. 그리고 동북아 안보와 평화 체제를 의제로 설정하고, 그를 위한 외무부장관회담을 열기로 한 것은 제네바합의 그리고 이번 합의의 모태인 9.19성명을 넘는 성과입니다.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전문) 2007.2.13 제5차 6자회담 3단계회의가 베이징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일본, 대한민국, 러시아연방, 미합중국이 참석한 가운데, 2007년 2월 8일부터 13일까지 개최되었다. 우다웨이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부부장, 김계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부상, 사사에 켄이치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천영우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분장, 알렉산더 로슈코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 그리고 크리스토퍼 힐 미합중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각 대표단의 수석대표로 동 회담에 참석하였다. Ⅰ. 참가국들은 2005년 9월 19일 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해 초기단계에서 각국이 취해야 할 조치에 관하여 진지하고 생산적인 협의를 하였다. 참가국들은 한반도 비핵화를 조기에 평화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공동의 목표와 의지를 재확인하였으며, 공동성명상의 공약을 성실히 이행할 것이라는 점을 재확인하였다. 참가국들은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단계적으로 공동성명일 이행하기 위해 상호 조율된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하였다. Ⅱ. 참가국들은 초기단계에서 다음과 같은 조치를 병렬적으로 취하기로 합의하였다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궁극적인 포기를 목적으로 재처리 시설을 포함한 영변 핵시설을 폐쇄.봉인하고 IAEA와의 합의에 따라 모든 필요한 감시 및 검증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IAEA 요원을 복귀토록 초청한다.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9.19공동성명에 따라 포기하도록 되어있는, 사용후 연료봉으로부터 추출된 플루토늄을 포함한 공동성명에 명기된 모든 핵프로그램의 목록을 여타 참가국들과 협의한다. 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은 양자간 현안을 해결하고 전면적인 외교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양자대화를 개시한다. 미합중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테러지원국 지정으로부터 해제하기 위한 과정을 개시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대적성국 교역법 적용을 종료시키기 위한 과정을 진전시켜 나간다. 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일본은 불행한 과거와 미결 관심 사안의 해결을 기반으로, 평양선언에 따라 양국관계 정상화를 취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양자대화를 개시한다. 5. 참가국들은 2005년 9월 19일 공동성명의 1조와 3조를 상기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경제.에너지.인도적 지원에 협력하기로 하였다. 이와 관련, 참가국들은 초기단계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긴급 에너지 지원을 제공하기로 합의하였다. 중유 5만톤 상당의 긴급 에너지 지원의 최초 운송은 60일 이내에 개시된다. 참가국들은 상기 초기 조치들이 향후 60일 이내에 이행되며, 이러한 목표를 향하여 상호 조율된 조치를 취한다는데 합의하였다. 참가국들은 상기 초기 조치들이 향후 60일 이내에 이행되며, 이러한 목표를 향하여 상호 조율된 조치를 취한다는데 합의하였다. Ⅲ. 참가국들은 초기조치를 이행하고 공동성명의 완전한 이행을 목표로 다음과 같은 실무그룹(W/G)을 설치하는데 합의하였다. 1. 한반도 비핵화 2. 미.북 관계정상화 3. 일.북 관계정상화 4. 경제 및 에너지 협력 5. 동북아 평화.안보 체제 실무그룹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9.19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한 구체적 계획을 협의하고 수립한다. 실무그룹들은 각각의 작업 진전에 관해 6자회담 수석대표 회의에 보고한다. 원칙적으로 한 실무그룹의 진전은 다른 실무그룹의 진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5개 실무그룹에서 만드러진 계획은 상호 조율된 방식으로 전체적으로 이행될 것이다. 참가국들은 모든 실무그룹 회의를 향후 30일이내에 개최하는데 합의하였다. Ⅳ. 초기조치 기간 및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모든 핵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신고와 흑연감속로 및 재처리 시설을 포함하는 모든 현존하는 핵시설의 불능화를 포함하는 다음단계 기간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최초 선적분인 중유 5만톤 상당의 지원을 포함한 중유 100만톤 상당의 경제.에너지.인도적 지원이 제공된다. 상기 지원에 대한 세부 사항은 경제 및 에너지 협력 실무그룹의 협의와 적절한 평가를 통해 결정된다. Ⅴ. 초기조치가 이해되는 대로 6자는 9.19공동성명의 이행을 확인하고 동북아 안보협력 증진방안 모색을 위한 장관급 회담을 신속하게 개최한다. Ⅵ. 참가국들은 상호신뢰를 증진시키기 위한 긍정적인 조치를 취하고 동북아에서의 지속적인 평화와 안정을 위한 공동노력을 할 것을 재확인하였다.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갖는다. Ⅶ. 참가국들은 실무그룹의 보고를 청취하고 다음단계 행동에 관한 협의를 위해 제6차 6자회담을 2007년 3월 19일에 개최하기로 합의하였다. <끝> (자료제공 - 외교통상부 비공식 번역본)
570 no image 탈북 청소년 1/3 `나는 여전히 북한사람'"
정태욱
9177 2007-02-12
2005년(?) 초에 세계일보에서 조사한 것과 비슷합니다. 당시 조사에서 탈북자들 가운데 3분의 1 가량이 합법적인 기회가 된다면 다시 북한으로 가고 싶다는 얘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자료집을 어떻게 좀 구했으면 좋겠네요... --------------------------------------------------------------------- "탈북 청소년 1/3 `나는 여전히 북한사람'"(종합) "北 삶 그립다"…`커서 남한사람 처럼 되길' 10% 불과 南동화 수준 한계 드러내…`학업ㆍ외모ㆍ말투' 걱정 (서울=연합뉴스) 홍정규 기자 = 서울대 김혜란(사회복지학과) 교수는 9일 서울대에서 열린 통일학 기초연구 학술 심포지엄에서 "탈북 아동ㆍ청소년의 3분의 1은 북한에서의 삶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서울대 통일연구소 주최로 열린 이날 심포지엄에 제출한 연구 보고서에서 "탈북 아동ㆍ청소년 65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이들 가운데 약 3분의 1이 `북한에서의 삶을 그리워한다'고 응답했다"고 말했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커서 남한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10%에 그쳤으며 3분의 1 가량이 `남한에 있지만 항상 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설문조사에 응한 탈북 아동ㆍ청소년들은 79%가 `현재 남한 생활에서 걱정거리가 있다'고 대답했으며 걱정거리로는 1순위와 2순위로 학업(각각 30.8%와 27.8%)을 들었으며 3순위로 외모나 말투(22.6%)를 꼽았다. 이들은 가장 절실한 복지 서비스로 진로 상담(30.7%), 직업 훈련(13.5%), 공부방 혹은 방과후 교실(13.5%) 등을 1순위로 요구했으며 교우 관계 향상 프로그램, 멘토링 프로그램 등을 남한 생활에 필요한 복지 서비스라고 응답했다. 김 교수는 "탈북 아동ㆍ청소년들은 남한 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는 높았지만 남한 사회와의 동화 수준에는 상당한 한계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이들의 욕구와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프로그램 및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연구 보고서를 발표한 서울대 이기춘(소비자아동학부) 교수는 "북한 사회의 소득 격차가 커지고 있으며 여성이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득이 많아지는 경우가 생겨 이혼과 독신 사례도 늘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 교수는 22∼63세의 탈북 남녀 11명을 상대로 개별 심층 면접을 해보니 7.1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사경제가 활성화되면서 부익부ㆍ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며, 직장에 다니는 남성의 노임보다 장사를 하는 여성의 소득이 더 많다는 응답자도 있었다고 말했다. 피면접자인 탈북자 A(50)씨는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쪽잠을 자면서 집에서 가내수공업을 하기도 하는 등 끔찍할 정도로 자본주의가 됐다"고 말했고 다른 탈북자 B(50)씨는 "여성 소득이 높아지다 보니 남편이 아니라 `불편'이라고 불리는 남성도 있다"고 전했다. 심포지엄에는 박순영(인류학과) 교수와 이근(국제대학원) 교수, 손현석(보건대학원) 교수 등이 참석해 ▲ 북한의 과학기술과 환경 ▲ 북한의 소비생활 및 유아ㆍ청소년 ▲ 북한의 역사 및 문학 등에 관해 연구 보고서를 발표하고 토론을 벌였다. zheng@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7/02/09 15:22 송고
569 no image 무디스 "개성공단, 남북의 희망적 미래"
정태욱
11344 2007-02-12
무디스라는 데에서 개성공단을 방문하여 희망적인 얘기를 하고 갔다고 합니다. 미국의 대북강경파들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곳이 바로 개성공단임을 생각하면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주지하듯이, 개성공단은 남북 협력의 하나의 시범 모델이고, 북한도 그에 대하여 아주 적극적입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적극적이고 북한이 소극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은 우리 남한기업들이 빨리빨리 입주하지 않고 정부가 그에 대하여 독려하지 않고 있는 것에 오히려 불평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와 같은 남북경제협력, 북한 경제의 변화가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 것인가 하는 것인데요, 그 경우의 수 가운데에 양극단을 생각해 보면, 한 쪽은 개성공단이 무슨 수용소 같은 곳이 되어 북한 정부가 주민들을 마치 노예처럼 남한 기업에 임대하고 그 임금을 착취하는 형태이고요, 다른 한 쪽은 북한의 경제체제가 남한 중심의 시장 자본주의로 통합되어 가는 데에 개성공단이 전초기지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연히 개성공단의 미래, 남북 경제공동체의 미래는 그 사이 어디 쯤엔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의 북한 인권특사 등이 계속 개성공단 때리기를 하는 것은 첫번째와 같은 위험성을 구실로 하여 남북의 경제협력을 방해하려는 것이고, 무디스가 개성공단을 칭찬하여 미 대북 강경파를 견제하는 것은 그러한 무지막한 주장이 자칫 두 번째의 가능성마저 막아버릴 것을 염려한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무디스 "개성공단, 남북의 희망적 미래"(종합)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김지훈 기자 =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Moody's)의 토머스 번 국가신용평가팀 국장을 비롯한 대표단이 9일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신용평가기관에서 개성공단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번 국장은 "개성공단은 남북한의 희망적 미래"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방북에 동행한 통일부 당국자가 전했다. 번 국장과 스티븐 헤스 부국장 등이 포함된 무디스 대표단은 이날 김동근 개성공단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공단 현황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입주기업들을 돌아봤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생산량을 비롯한 개성공단의 각종 경제지표와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묻는 등 깊은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무디스 일행의 방북에 동행한 재정경제부 허경욱 국제금융국장도 "무디스 대표단이 개성공단의 생산현장을 직접 돌아봤다는 점에서 `좋았다'는 반응을 보였다"면서 "이들의 평가는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서 작성하는 리포트에 상세히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디스 대표단은 이날 개성공단 방문을 시작으로 ▲12일 재경부, 한국개발연구원(KDI) ▲13일 국회, 전경련, 국방부, 외교부 ▲14일 한국은행, 한국노총 등을 각각 방문할 예정이다. 무디스는 이번 연례협의에서 우리나라의 거시경제 현황 및 전망, 중장기 성장잠재력 확충방안, 재정 및 대외부문의 건전성,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현황, 북핵 등 북한 관련 지정학적 리스크 등을 집중 점검할 것으로 알려졌다. 무디스는 우리나라에 대한 국가신용등급을 지난 2002년 3월 `A3'로 이전보다 2단계 올렸고 지난해 4월에는 등급 전망을 '안정적(Stable)'에서 '긍정적(Positive)'으로 상향 조정한 바 있다. transil@yna.co.kr hoonkim@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7/02/09 17:32 송고
568 no image <6자회담> 중유, 얼마나 누가 부담할까
정태욱
13730 2007-02-12
6자회담이 막바지 국면에 있는 듯합니다. 결국 핵시설 폐기의 경제적 댓가(그 정치적 댓가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인데, 이는 다음 번 실무회담의 의제로 될 것 같습니다.)로 얼마만큼의 에너지를 누가,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의 문제가 남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한국이 그 문제에서 주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에 정동영 장관시절 200만KW송전에 대한 얘기도 있었고, 그것이 2005년 9.19성명에서도 다시 확인이 되었으니까요. 오히려 문제는 미국 과연 그 중유제공에 어떻게 동참할 것인지 하는 것입니다. 북한은 미국의 동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양의 문제가 아니라 형식의 문제라고 봅니다. 그것은 북한으로서의 자존심(미국을 상대하고 있다는)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요, 나아가 북한은 그것을 내부적으로 미국이 대북한 적대시정책을 철회하였다는 구체적인 물증으로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부시정부로서는 중유제공이 클린턴 정부 때의 제네바합의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내키지 않는 일이 될 것입니다. 다만, 제네바합의는 미국만이 부담하는 것이었고, 지금은 6자회담의 다른 참여국들도 부담을 할 것이니 모양새는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 <6자회담> 중유, 얼마나 누가 부담할까 `핵시설 폐쇄 프리미엄' 책정과 5자분담률이 관건 (베이징=연합뉴스) 정준영 기자 = 제5차 3단계 6자회담이 대북 에너지 제공의 규모와 시기 등을 놓고 진통을 겪고 있어 북한의 요구사항과 나머지 5자의 입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을 포함한 참가국들은 중국이 제시한 합의문 초안의 틀에 공감했지만 핵시설 `폐쇄'에 따른 상응조치인 에너지 제공의 규모와 분담 문제를 놓고 치열한 줄다리기를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실제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0일 저녁 브리핑에서 "대북 경제 및 에너지 협력 문제로 회담 참가국들은 각 측의 주장을 제기했는데 현재까지 입장차는 비교적 크다"며 "절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도 같은 날 "정말 한 가지 문제가 남았다"고 말한 데 이어 11일에는 "쟁점은 합의문 한 문단에 대한 것"이라면서 "그 이슈는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다. 이런 반응을 짜맞춰 보면 쟁점은 대북 에너지 제공의 규모와 시기, 방법, 나머지 5자의 분담비율 문제 등에 집중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핵심 쟁점은 초기단계 조치를 담은 이번 합의문에 적시돼야 할 에너지 종류와 규모라는 게 현지 회담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여기서 출발점은 북한이 얼마나 어떻게 달라고 요구하는지에 놓여있다. 하지만 북한은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만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의 초기 조치보다는 많은 양을 요구하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실제 북한이 초기조치의 이행 대가로 전력 200만kW에 상당하는 에너지를 요구한다는 보도가 나오고 여기서 더 나아가 연료용 기름 200만t과 전력 200만kW를 희망한다는 이야기까지 나돌고 있다. 이 같은 증량 요구는 핵폐기를 위한 초기 조치의 내용이 제네바합의 당시처럼 단순한 `동결'이 아니라 `폐쇄'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등가성(等價性)의 원칙에 따라 과거에 `동결=50만t'이었지만 이번엔 `폐쇄=50만t이상'이 돼야 한다는 논리인 셈이다. 제네바 합의 때 50만t이 나온 것은 영변의 5MW(5천kW) 흑연감속로와 공사중이던 영변의 50MW(5만kW) 원자로 및 태천의 200MW(20만kW) 원자로를 동결할 때 사라지는 총 25만5천kW의 시설용량을 감안한 것이다. 대략 30만kW 용량의 중유발전소를 돌리는 데 연간 50만t이 들기 때문이었다는 설명이다. 결국에는 페쇄의 값어치를 중유 얼마로 쳐 주느냐에 있는 형국이다. 중유 50만t에 `플러스 알파'에 해당하는 `폐쇄 프리미엄'의 가격을 중유로 환산하는 데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중유 200만t을 요구한 게 사실이라면 이는 제네바합의가 이행됐을 경우 현재 100만kW 짜리 1기라도 돌아가고 있었어야 할 함경남도 금호지구의 경수로까지 감안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규모에 극적으로 합의한다 해도 시기와 분담 문제는 남는다. 제공 시기는 영변 핵시설 폐쇄를 2개월 내에 마무리짓는다고 할 때 북한은 중유 제공도 이 기간에 맞춰줄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이런 가능성은 동시성, 즉 동시행동의 원칙 때문에 제기된다. 적어도 폐쇄 완료 시점에는 남포항이나 청진항에 유조선이 도착해야 한다고 북한이 주장할 법하다는 관측인 것이다. 하지만 이 기간에 펀딩과 구매, 용선, 수송을 마치기는 물리적으로 힘들다는 분석이 일반적인 상황이다. 특히 규모와 제공시기 문제는 나머지 5개국의 분담 문제와도 연결된다. 분담 문제를 신속하게 매듭지어야 하는데다 규모가 크다면 당연히 국가별 부담액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더욱이 9.19 공동성명이 나올 때 까지는 성명 형태의 `말'로 끝났지만 행동에 들어가자면 돈이 들어가게 되고 이 문제를 놓고 참가국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어려움을 가중하고 있다. 또 북한이 적대시정책 포기의 잣대 가운데 하나로 미국의 에너지 지원 동참 여부를 연계해 온 점이 이번 북한의 요구사항에 반영될지도 관심사다. 현재로선 시간이 부족한 만큼 연간 기준으로 비율을 나눠 추후 정산하거나 월별로 나눠 돌아가며 부담하는 방안이 합리적인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100% 균등 분담이 가능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실제 일본이 납치자 문제에 진전이 없다면 대북 지원에 동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고 대북 채권을 갖고 있는 러시아의 참여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경우 우리 정부의 부담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북한은 무리한 것을 요구하면 안되고 다른 5개국 중에는 상응조치를 취하는 데 인색하거나 주저하는 나라가 없어야 한다"고 했다. prince@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7/02/11 14:59 송고
567 no image 북-미 베를린 합의각서 공개
정태욱
12293 2007-02-11
북한이 지난 번 베를린 양자회담 당시의 합의사항을 전격적으로 발표해 버렸군요. 이번 6자회담도 그와 같은 내용으로 타결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큰 틀은 9.19공동선언이 되겠습니다. 전체적인 구도는 역시 제네바합의와 같고, 다만 당시에는 핵시설의 동결에 중점이 놓여졌고, 폐기는 이후의 과정으로 예정되었다면, 이제는 핵시설의 폐기에 중점을 놓고 있다는 것이 차이입니다. 북한으로서는 이미 7-8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니 이제 핵시설을 폐기하여도 이른바 핵억지력(핵을 통한 전쟁억지력)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논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미국의 부시 정부는 그동안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격밖에 되지 않는 것이지요. 다만, 핵시설을 폐기함으로써 북한이 더 이상 핵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면 핵의 확산을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성과는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북한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핵물질은 자신들의 억지력을 위하여 외부로 돌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더욱이 에너지 지원 문제가 결부되어 미국은 북한에게 중유공급을 재개하여야 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미국 부시 정부로서는 조금은 민망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그토록 험담하여 왔던 클린턴 정부의 제네바합의를 북한의 발전된 핵능력에 맞추어 새롭게 개정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물론 힐 차관보는 이미 이번 초기 조치들에 대한 합의는 제네바합의의 수준과 비슷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한 바 있고, 이번에 조선신보가 공개한 각서를 보면, 미국 정부에서는 이미 그런 상황을 감안하고도 합의를 추진할 것을 정한 것 같습니다. 다만, 그에 대한 미 강경파의 반발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이고, 북한이 그에 따라 합의를 기정사실화하기 위하여 그 내용을 전격 공개한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런데, 그것이 거꾸로, 이제 전권을 위임받고 활발한 협상을 벌이는 힐 차관보의 미 국내에서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걱정이 됩니다. -------------------------------------------------------------------- <6자회담> 北 왜 '베를린 합의' 공개했나 美 압박 에너지 지원서 '통큰 결단' 촉구 분석 힐 차관보 등 美협상파 입지 축소 우려 제기도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 북한이 11일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의 베이징발 기사를 통해 북미간의 베를린 회담과 이번 제5차 6자회담 3단계 회의의 내용을 전격적으로 공개하면서 미국을 압박하고 나섰다. 조선신보가 공개한 베를린 회담 합의의 골격은 ▲30일내 방코델타아시아(BDA) 해제 ▲60일내 초기이행조치 완료 ▲북.미관계 정상화 워킹그룹에서 테러지원국 및 적성국교역법 우선 논의 ▲초기 이행조치에 따른 미국의 경제 및 에너지 지원 등이다. 또 이번 6자회담에서 북한은 베를린 회담의 합의 내용과 함께 한미 합동군사연습 중단과 미국의 한반도 인근 군사력 증강 중단 등을 요구하고 합의문서에 명시하자는 주장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조선신보가 제기한 문제들이 대부분 논의가 완료된 것들이라는 점. BDA 문제는 양자간의 문제인 만큼 이번 합의문서에 명시하지 않고 테러지원국 문제 등은 적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후문이다. 여기에다 북한이 제기한 군사문제에 대해서는 한.미 양측이 수용을 거부했고 북측도 양해를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합동군사연습 등은 북한이 항상 남북간의 대화에서도 제기해온 문제인 만큼 북한내 강경 군부의 요구에 따른 주장이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왜 북한이 베를린 회담 등의 내용을 공개했을 것인가에 의문이 남는다. 북한이 이번 6자회담이 대체에너지 제공 문제가 쟁점이 되면서 진전되지 못하자 미국에 대해 압박을 넣으려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조선신보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 소식통을 인용해 "에너지 지원문제는 산수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며 "조선의 주된 목적은 에너지 지원을 통해 미국의 정책전환의지를 가려보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베를린 합의 정신에 따라 미국이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요구인 셈이다.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초기이행조치에 대한 대가로 전력 200만㎾에 해당하는 대체에너지 지원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미국의 '통 큰 결단'을 압박하는 조치라는 지적이다. 특히 조선신보는 "이번 회담은 베를린 조미 직접대화와 거기서 이룩된 합의에 기초해 열린 만큼 그 결과는 마지막까지 지켜보아야 한다"며 회담을 결렬시키는데 무게를 싣기보다는 성과에 대한 미련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 한다. 과거 남북 장관급회담이나 경제회담이 열릴 때에도 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질 때마다 북측 대표단은 조선신보나 조선중앙통신 등을 통해 기조발언을 공개해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분명히 하면서 남측의 결단을 촉구해 왔었다. 그나마 이번에 북한이 중앙통신이 아닌 재일총련 소속의 조선신보를 통해 이같은 내용을 공개한 것은 김계관 외무성 부상 등 대표단이 언론의 취재 탓으로 돌리면서 누설의 책임으로 벗어나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조치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북한의 전격적인 베를린 합의 내용 공개가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비롯해 미국내 협상파의 입지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납치문제에 올인하면서 이번 회담의 진전을 내심 내켜 하지 않는 일본의 언론은 힐 차관보가 김계관 부상과 각서를 체결했다고 보도하는 등 흔들기에 나섰고 중간선거 이후 목소리를 낮추고 있는 미국내 강경파의 공세가 재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베를린 회담의 합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한 상황에서 미국에서도 최고 정책결정권자 소수를 제외하고 그 내용이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왔다는 점은 힐 차관보에 대한 정치적 공격과 협상파에 대한 흠집내기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파이를 키우기 위해서 베를린 합의와 이번 회담의 내용을 공개한 것으로 보이지만 자칫 판을 깰 수도 있는 어리석은 행동"이라며 "하지만 남북회담에서도 기조발언 등의 공개에도 불구하고 합의가 만들어져 왔던 만큼 부정적 결과를 예단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jyh@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king21c/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7/02/11 19:41 송고
566 no image “연합사작통권 대신 유엔사로 지휘하겠다는 것”-이시우
정태욱
9304 2007-01-31
이시우 님은 사진작가라고 하지만, 정전협정, 특히 유엔사의 문제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많은 연구와 예리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분입니다. 유엔사의 문제에 관하여 좋은 참고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통일뉴스 http://www.tongilnews.com/ 에서 퍼왔습니다. <특별기고> “연합사작통권 대신 유엔사로 지휘하겠다는 것”-이시우 벨 사령관의 유엔사 강화론에 대한 분석 2007년 01월 21일 (일) 22:57:30 이시우(사진가) www.siwoo.pe.kr 1. 벨 사령관의 최종 구상은 1950년 유엔사체계의 부활 하루가 멀다 하고 벨 주한미군사령관이 유엔사에 관한 구상과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1월 19일 외신기자클럽에서 벨 사령관은 그간 추상적으로만 언급하던 유엔사 강화론의 실체를 완전히 드러냈다. 이 회견문은 역사적인 문건이 될 것이다. 결론을 말하면 연합사의 작통권은 환수해주고 유엔사 지휘권 아래 한국군이 들어오라는 것이다. 전작권 환수는 내용상 취소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결국 1978년 연합사 창설시 유엔사 지휘권중 한국군에 대한 작통권만이 연합사에 넘어갔고, 이것도 ‘이양’이 아닌 ‘위임’된 것임을 확인시킨 셈이다. 그의 공개된 발언만으로 판단해 본다면 그는 1978년 연합사체계의 해체를 보완하기 위한 장고 끝에 1950년 유엔사체계로 복귀한 셈이다. 그러나 그것은 필연적으로 예정된 결말이었다. 전작권 환수과정에서의 실수와 착오를 뒤늦게 깨닫고 만회하려는 듯한 다급함이 느껴진다는 평가도 들린다. 치밀하게 준비된 수순이라는 분석도 들린다. 2004년 4월 23일 용산기지 장교클럽에서 있은 당시 마크 민튼 주한미부대사와의 만찬자리에서 필자는 “유엔사령관이 유엔군사참모위원회가 아닌 미 합참의장의 지휘를 받고 있기에 유엔사는 실질적으로 미군이 아니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러자 민튼 부대사의 답변이 있기도 전에 옆에 동석했던 유엔사 겸 연합사 공보실부실장(중령)이 “유엔사는 유엔의 군대다. 사실을 정확히 알고 질문하라”며 말을 가로막았고, 필자는 그녀에게 “그럼 중령님이 사실을 확인해 보시라”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밖으로 나가서 여기저기 알아본 뒤 한참 뒤에 들어왔고, 결국 미합참의장이 유엔사령관을 지휘한다는 것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유엔사ㆍ연합사의 입인 공보실에서 유엔사의 지휘체계에 대해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필자를 놀라게 했다. 벨 사령관이 시인했듯이 이러한 지휘관계는 세계 어디에서도 운용하고 있지 않은 구조이기에 특이(unusual)한 것이며, 달리 표현하면 비상식적인 것이다. 이러한 비상식이 유엔사 내에서도 혼선을 빚어온 것이다. 오랜 장고 끝에 벨 사령관은 이제 그 혼선을 완전히 정리했다. 작통권 환수과정에서 유엔사는 연합사의 작통권 환수를 합의해 주면서 연합사에 위임했던 작통권을 다시 유엔사로 복귀시키는 방법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유엔사는 웬일인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연합사로 ‘위임’됐던 유엔사의 작통권은 ‘이양’된 것으로 유권해석 하기로 합의했다는 정부당국자의 확인은 벨 사령관의 신년기자회견 발언까지만 해도 힘이 실려 있었다. 그러나 19일 외신기자클럽에서의 벨 사령관이 내놓은 유엔사 강화론은 그간의 합의과정에서의 착오와 미세한 틈을 발견하여 마침내 작통권 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린 것으로 보인다. 유엔사령관의 지휘권한 중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은 한 부분일 뿐이다. 1978년 연합사에 위임했던 것도 바로 이 한 부분만이다. 한국정부와 연합사 해체를 합의한 마당에 유엔사가 연합사에 위임했던 한국군에 대한 작통권을 돌려받겠다고 하기엔 어려운 상황일 것이다. 유엔사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의 유엔사로 돌아가서 16개 참전국의 통합지휘사령부가 되는 것 밖에 없게 되었다. 전시 또는 정전시에 독자적인 한국군사령부가 이승만 대통령처럼 유엔사에 작통권을 다시 위임하도록 하면 한국전쟁과 똑같이 유엔사체계를 부활시킬 수 있는 것이다. 1978년에 창설된 연합사만 포기하면 되는 셈이다. 벨 사령관의 시험 답안지를 국방성과 백악관이 어떻게 점수 매길지 의문이다. 벨 사령관의 발언을 분석하기 전에 몇 가지 개념을 확인하고 가자. 평시와 정전시 평시는 평화시의 준말이다. 정전시는 정전상황시의 준말이다. 평화시를 뜻하는 평시는 상대국과의 관계가 평화조약이나 평화협정 등이 체결된 상태이거나 혹은 정상수교국이어서 이미 평화조약을 포함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1994년 12월 환수 받은 ‘평시’작전통제권이란 개념은 잘못된 것이다. 당시 미군이 돌려준 것은 ‘정전시’작전통제권이었다. 일반 군정권을 제외하고는 대간첩작전 ‘진돗개’ 정도가 한국군이 수행할 수 있는 작통권의 전부이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간첩은 군인이 아니기에 전쟁법이 아닌 형법의 대상이며, 군대보다는 경찰의 영역에 속한다. 한미연합사가 정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해주면서도 남겨둔 6가지의 연합권한위임사항(CODA:Combined Delegated Authority)의 첫 번째 조항이 ‘전쟁억제, 방어 및 정전협정준수를 위한 한미연합위기관리 권한’이다. 정전협정의 당사자는 유엔사이므로 이 권한의 근원도 유엔사이다. 벨 사령관이 유엔사 문제를 언급하는 이유로 수차례나 빠지지 않고 등장한 것이 바로 정전시 위기관리였다. 전쟁절차와 위기절차 한국정부가 전쟁주권을 문제 삼아 전시작통권을 환수하고자 했던 핵심은 전쟁절차가 아닌 위기절차에 있었다. 전쟁절차는 국내법적으로는 선전포고를 위한 의회의 결의가 필요하고, 국제법적으로는 유엔안보리의 절차를 필요로 하는 등 군사, 외교, 법률분야에서의 복잡하고 장기간에 걸친 준비를 요구한다. 때문에 만일 미국이 이라크전과 같이 북을 상대로 전쟁절차에 들어간다면 국내법과 국제법의 절차를 거쳐야 하고 그동안 한국의 대통령과 정부도 충분히 정보를 교류하며 판단을 조절할 수 있기에 미국에 의한 전쟁주권의 일방적인 침해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한미연합사의 전쟁결정 구조가 한미정부의 합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전제는 전쟁절차가 진행될 때는 일리 있어 보이는 것도 그 같은 이유이다. 그런데 왜 한국정부는 전쟁주권의 문제를 제기하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제의했을까? 위기절차 때문이다. 1968년 푸에블로호사건, 1969년 EC-121기 격추사건, 1976년 판문점 미루나무 절단사건 등은 모두 위기절차로 시작되었다. 한국정부는 미국이 동해앞바다에 항공모함을 배치하고 북과의 전쟁직전까지 가는 상황에 대해 아무런 개입도 할 수 없었다. 오직 미국으로부터 받은 것은 사후통지이다. 위기절차는 전시가 아닌 평시에 적용되는 절차이다. 한국의 경우엔 평시란 없고 정전시가 있을 뿐이다. 위기관리의 핵심은 위기가 전쟁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한미간에는 오랫동안 연합위기관리에 대한 방침을 공유해 왔고 정교하게 발전시켜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관리체계가 문제가 되는 것은 위기로 규정하는 시점이다. 전 장영수 국참대총장은 “전쟁억제 방어 및 정전협정 준수를 위한 연합위기관리에 대한 위기상황의 시점 판단이 문제이다. 왜냐하면 그 시점에 따라 작전지휘권이 전환되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국회사무처 [1987년도국정감사국방위원회회의록], 피감기관함참본부, 1987.10.4, p15 참고) 6단계로 이루어진 위기조치절차(Crisis Action Procedures)중 유엔사 교전수칙이 적용되는 것은 1단계 ‘상황의 전개’부터이다. 유엔사 교전수칙이 적용될 경우 서해교전에서 보듯이 북측의 대응이 시작되고 전시상황을 향해 급박하게 진전되어 간다. 그래서 벨 사령관이 언급했듯이 한반도지역은 위기에서 전쟁으로의 진행시간이 매우 짧다. 연합사령관의 한미연합 위기 관리권한은 본질적으로 정전유지 관리임무를 수행하는 유엔사령관의 권한이다. 연합사가 위임받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위기절차의 첫 단계에 적용되는 교전수칙이 유엔사 교전수칙인 것이다. 한국군도 합참에 위기조치반이 있어 정해진 절차에 따라 대응하지만 정전시 위기관리에 대한 최종 책임권한은 유엔사에 있는 것이다. 한국군과 미군이 독자적인 지휘구조를 갖게 되어도 협조기구를 통하여 위기조치 절차를 수행해 나갈 수 있으나 양국이 위기시점에 대한 판단을 달리할 때는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점 때문에 보수세력에서 연합사해체를 반대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이것을 더욱 우려한 것은 미국이다. 1968년 1월 21일 김신조부대 청와대습격사건은 한국정부로서는 최대위기였지만 미국은 위기로 판단하지 않았고, 한국의 대응을 통제하려 했다. 그러나 이틀 뒤인 23일에 발생한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에 대해 미국은 위기조치 절차를 가동했으며 전쟁의 문턱까지 갔다.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에 불신을 갖게 됐고, 정전협정 위반이 명확한 실미도부대의 창설을 명령했다. 미국은 이를 다시 막으려 했다. 푸에블로위기가 전쟁으로 가는 것을 포기한 배경중에는 한국의 무모한 충돌에 대한 우려와 이에 대한 통제의지도 있었다. 미국의 위기판단 기준이 이해관계라면 한국은 원한관계일 때가 많고, 그만큼 위기에 대한 감수성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미국이 한반도에서의 이해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한 위기에 대한 한국과의 견해차를 조절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연합사 해체가 분명 고민거리를 안겨준 것이라면, 유엔사 강화는 반대로 명백한 해결대안을 마련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유엔사가 정전시 위기관리에서의 지휘통합을 요구하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정전후 50년간 전쟁주권의 핵심문제는 ‘위기절차’이며 위기절차는 평시절차가 아닌 정전시절차라는 사실로부터 본질적으로 유엔사 권한이었기에 작통권 환수는 연합사가 아닌 유엔사 문제부터 풀려갔어야 하는 것이다. 지리한 공방 끝에 논쟁은 결국 유엔사로 돌아왔다. 연합사와 유엔사 연합사는 한미양국의 쌍무관계이고 유엔사는 유엔안보리 차원의 국제관계이다. 1975년 유엔총회의 유엔사 해체결의가 있었고 유엔사를 책임지고 있는 미국정부를 대표하여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이 1976년 1월1일부로 해체하겠다고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약속했기에 유엔사는 어떻든 해체되어야 할 상태였다. 국무부는 이미 1973년부터 유엔사 해체 방침을 결정해 놓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키신저의 유엔사 해체 약속에 대해 미국이 드디어 한국을 포기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고 다시 미국에 매달려야 했다. 한편 유엔사 해체가 안팎으로 거의 기정사실화된 상태에서 미군의 가장 큰 고민은 유엔사를 통해 작전통제 해오던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 문제였고, 한미가 합의점을 찾은 부분이 바로 한미연합사이다. 양국은 1978년 한미연합사를 창설하여 유엔사령관의 작전지휘권중 한국군에 대한 작통권을 연합사에 위임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유엔사 해체문제는 구렁이 담넘어 가듯 넘어갔다. 유엔사는 아직도 해체되지 않았고, 유엔사의 지휘권 역시 연합사에 위임한 권한을 빼고는 유효한 것이다. 연합사 해체에 당면해서 미군은 30년간 묻어 두었던 보물을 발견한 셈이다. 유엔사령부 강화론자가 이 유혹을 견디기는 힘들 것이다. 2. 유엔사 강화론에 대한 분석 이제 벨 사령관의 유엔사강화론에 대해 분석해 보자. 벨 사령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엔군사령부의 구조, 역할, 임무에 대한 검토가 아울러 단행되어야 합니다.” 이번 회견이 단상이나 원칙 확인정도가 아닌 체계를 갖춘 구상이며 완결된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언급도 대체로 구조, 역할, 임무를 순차적으로 강조하며 전개되어 있으므로 그 틀에 맞춰 분석해 보자. 유엔사의 구조 유엔사의 구조에 대해 벨 사령관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1) (정전유지를 위해) 전시와 같이 평시에도 조직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정전에서 위기가 고조되어 전시로 전환될 때 유엔사 지휘관계에서 하나의 통합이 필요합니다. 3) 유엔군 사령관은 지원 역할을 수행하는 모든 유엔 지원전력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보유할 것입니다. 4) 일본 내 기지 접근은 유엔사 임무에 중요합니다. 5) 주한미군 사령관이 현재와 같이 유엔군 사령관을 겸직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벨 사령관의 발언을 요약하면 ‘작통권 환수로 한국군부대에 대한 즉시 접근권이 사라졌다. 그래서 미군의 정전유지, 관리가 불가능해졌다. 정전유지의 핵심은 위기관리이기에 유엔사아래 한국군과 정전유지를 위한 평시조직도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한반도는 정전시의 위기에서 전시로의 이행이 매우 짧아 지휘구조를 변환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지휘구조를 하나로 통합하자. 그러나 유엔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은 유엔사령관이 보유하며, 주한미군사령관이 유엔사령관을 겸직한다’는 것이다. 유엔사 구조와 관련한 5가지 조항을 각각 살펴보자. 1) 유엔사 평시조직 벨 사령관은 말했다. “유엔사령부는 (정전유지를 위해) 전시와 같이 평시에도 조직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연한 이야기다. 군사령부와 작전통제권을 전ㆍ평시로 나눈 것은 한국밖에 없다. 이것이 무리인 것은 군사적으로는 위기절차와 전쟁절차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엔사가 한국군만이 아닌 16개국을 다시 불러들이는 다국적군이 된다면 한미위기관리체계가 아닌 다국적 위기관리체계가 되어야 할 것이고, 벨 사령관이 자신했듯이 유엔참전국들은 이미 미군과 군사교리가 일치하므로 문제가 안 될 것이며, 유엔사령관이 그 정점에 서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미군의 입장에서 볼 때는 한미연합사보다 훨씬 강력한 사령부를 다시 갖게 되는 셈이다. 유엔참전국들은 정전유지와 관리를 명목으로 북 선박에 대한 수색권 같은 것을 행사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가능할 것이다. PSI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을 뿐 국제법적 효력이 없지만 유엔사의 모자로 바꿔 쓰면 제주해협을 통과하는 북측 상선에 대해서도 국제해양법이 아닌 정전협정을 적용하여 보다 쉽게 수색을 실시하거나 때론 유엔사 교전수칙에 따라 발포도 가능할 것이다. 북과 유엔사의 관계는 평시가 아닌 정전시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벨 사령관의 고민은 연합사 해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것이었는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연합사보다 17배는 거대해진 사령부가 다시 부활하는 셈이다. 2) 지휘의 통합 (Unity of Command) 벨 사령관은 말했다. “정전에서 위기가 고조되어 전시로 전환될 때 유엔사 지휘관계에서 하나의 통합이 필요합니다.” 미군은 9가지로 된 ‘전쟁의 원칙(United States Principles of War)이란 개념을 사용하는데 그중 하나가 지휘의 통합이다. 지휘의 통합은 ‘모든 목적에 대해 반드시 한사람의 지휘결정책임자와 노력(노력의 성과)이 통합되어야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http://www.answers.com/topic/principles-of-war) 정전시 위기에서 전시로 전환될 때 지휘구조를 변경시킬 시간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한국에서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그렇다. 백악관의 전쟁지휘부는 그대로 위기관리지휘부이다. 그래서 벨 사령관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정전시와 전시를 구분하지 않고 유엔사 지휘관계에 한국군이 통합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미군의 전쟁원칙대로 한 사람의 지휘결정 책임자인 유엔군사령관을 중심으로 반드시 통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미간에 논의 된 주제는 ‘작전통제권’인데 이젠 그보다 상위 개념인 ‘지휘의 통합’을 언급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휘관계가 작전통제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벨 사령관은 유감스럽게도 이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휘’란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벨 사령관은 오해를 줄이기 위해 다음과 같이 부언했다. “각 유엔군 부대는 거듭 강조하지만, 지금과 마찬가지로 각 국가로부터 국가급 지휘를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벨 사령관이 말한 것처럼 각 나라의 군대는 미국의 식민지가 아닌 이상 그 나라의 군통수권자로부터 지휘를 받는다. 그러나 1950년 유엔군을 편성할 때는 16개 참전국이 작전지휘권을 유엔사령관에게 위임한 것이고, 미군사령관은 위임받은 지휘권을, 자신을 중심으로 통합시켰던 것이다. 이는 연합군 구성의 상식이다. 역사적으로 다국적 군대의 편성과 지휘에 사용된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한국전쟁 때의 유엔군의 경우로서, 특정 국가를 지정하여 여기에 군대의 편성과 지휘를 위임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에 의하면 자연히 지정된 국가의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기가 곤란하다. 둘째, 수에즈 분쟁 때 국제연합 자신이 특정의 개인을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직접 유엔이 책임을 지고 그 밑에 가맹국으로 하여금 소요되는 군대를 제공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에 의하면 특정 국가의 영향을 적게 받으며 군대의 독립성을 보다 강하게 유지할 수 있으므로 국제적인 군대라고 할 수 있다. 유엔헌장에 따르면 이 경우 유엔군사참모위원회의 지휘를 받는다. 어떤 나라도 자국의 군대를 유엔사령관의 작전지휘로부터 해제하여 복귀시킬 수 있고, 지금의 유엔사도 1967년 태국을 마지막으로 모두 자국으로 복귀했다. 한국군과 미군만이 유엔사령부 산하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국적군의 편성이 반드시 유엔사일 필요는 없다. 유엔사는 엄밀히 말해 1950년 유엔안보리에서 그 창설이 결의된 바가 없다. 안보리가 결의한 것은 ‘미국정부가 책임지는 통합군사령부’였지 ‘유엔군사령부’가 아니었으며 유엔헌장에 나와 있는 유엔군사참모위원회의 지휘를 받지도 않는다. 이런 이유 등으로 인하여 1975년 유엔총회에서의 해체결의가 있었던 것이다. 벨 사령관은 그런 유엔사를 자신을 중심으로 ‘지휘의 통합’을 실현한 거대한 다국적 사령부로 재건하고자 하는 것이다. 3) 작전지휘권 벨 사령관은 말했다. “유엔군사령관은 지원역할을 수행하는 모든 유엔군 지원전력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보유할 것입니다.” 벨 사령관은 유엔사가 교리적 지원체라고 정의했다. 이에 대해선 유엔사 역할 부분에서 자세히 살펴보자. 지휘권과 작전통제권이 있다. ‘지휘’가 제반 병력에 대한 인사, 행정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라면 ‘작전통제’는 비무장지대와 같은 전구급에서 이루어지는 작전에 대한 통제권만을 의미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사령관에게 이양한 것은 지휘권이었고, 정전 후 한미합의의사록에서 이는 미국에 의해 ‘작전통제권’으로 축소, 조정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연합사와의 관계에선 ‘작전통제권 환수’였는데 유엔사강화론에선 갑자기 ‘작전지휘권’으로 상향조정되어 버렸다. 많은 전문가들이 1978년 연합사창설공문에 의해 유엔사의 모든 군사적 권한은 연합사로 이양된 것으로 착각을 했다. 그러나 유엔사령관의 지휘권은 연합사의 작통권으로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유엔사령관의 작전지휘권이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것으로 되는 것은 교전권, 점령권, 일본기지사용권, 자위대지휘권 등 바로 이 4가지 권한 때문이다. 첫째, 유엔사령관의 교전권은 유엔안보리의 결의나 한국정부와의 합의 없이도 언제든 북과의 전쟁을 개시할 수 있는 권한이다. 1950년 유엔안보리의 참전결의가 종전이 아닌 정전상태인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정전50년 체제의 수많은 위기절차의 가동을 통해 미국은 이 같은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주었다. 둘째, 북에 대한 점령통치권한이다. 1950년 10월7일 유엔총회 결의에 근거한다. 북 붕괴시 북에 대한 점령시나리오인 5029작전계획과 북침략 시나리오인 5027-98 등으로 이는 다시 확인되었다.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면 이들 작계는 유엔사작전계획이 되므로 이제 한국군이 이것에 대해 발언 할 공간은 거의 없어진다. 셋째, 일본기지를 사용할 수 있다. 넷째, 일본 자위대를 지휘통제한다. 일본 관련된 사항에 대해선 뒤에 자세히 언급하기로 하자. 이들 4가지 권한중 연합사령관 이름으로 행사될 수 있는 권한은 하나도 없다. 위임될 수 있는 권한이 아니며 연합사는 이를 위임 받을 법적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 지금까지 이런 모순이 드러나지 않은 것은 연합사령관과 유엔사령관이 동일인이었기 때문이다. 벨 사령관의 작전지휘권 운운은 안보리 유엔참전 결의로부터 연합사창설공문에 이르는 유엔사에 대한 역사적, 법적 성격을 재해석한 결과 나온 언급으로 보인다. 법적으로 따진다면 유엔사는 연합사에 위임했던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다시 가져갈 수 있다. 한국정부는 유엔사에 이양했다가 위임한 것으로 정리된 작전통제권을 다시 유엔사의 지휘부대 목록에서 해제하여 되돌려 받아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연합사령관이 곧 유엔사령관이므로 연합사 작통권 환수과정에서 합의가 되었다면 이는 문제가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연합사 작통권과 무관하게 유엔사의 지휘권은 연합사 해체 전이나 그 후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벨 사령관은 오랜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고, 유엔사의 지휘권을 다시 꺼내든 셈이다. 4) 주일미군 기지사용권, 자위대 지휘권 벨 사령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력증원 및 전투지속능력을 보장하는데 핵심은 유엔사-일본정부간 합의된 SOFA 조약입니다. 일본내 기지접근은 유엔사 임무에 중요합니다. 유엔기지사용 불가시 우리는 한국이 필요로 하는 미국 혹은 다국적군의 전력을 신속히 전개할 수가 없습니다. 동맹국을 신속히 지원할 수 있는 매카니즘은 억제력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에 이를 유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같은 매카니즘은 유엔사를 통해 가능합니다.” 1951년 9월 15일 일미안보밀약 과정에서 탄생한 요시다-애치슨 교환공문에 의하면 “한국에서의 유엔군 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일본정부는 모든 시설과 역무를 지원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7개의 기지가 유엔사 후방기지로 배정되었다. 일본의 자위대도 유엔사령관의 작전지휘를 받게 되었다. 일미 가이드라인과 유사법제에 의해서도 이같은 일미공조는 가능하지만 벨 사령관은 특별히 이 같은 매카니즘이 유엔사를 통해 가능하다고 했다. 유엔사가 해체된다면 태평양사령관의 지휘에 의해 일미 가이드라인이 적용될 것이지만 유엔사령관이 있는 이상 번잡한 유사법제를 거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미 전 라포트 사령관 시절부터 유엔사는 일본내 유엔사 후방기지문제를 다시 주목해왔다. 유엔사령관은 4성장군이기에 3성장군인 주일미군사령관은 유엔사령관의 지휘를 받게 되고, 주한미군사령관으로서는 태평양사령관의 지휘를 받지만 유엔사령관으로서는 미 합참의장의 직접 지휘를 받게 된다. 또한 한국군이 유엔사의 작전통제를 거부해도 유엔사령관 지휘하의 미일연합군 병력은 한국전쟁을 수행하게 된다. 한미일군사삼각동맹의 실체는 바로 유엔사령부인 셈이다. 유엔사령관의 이같은 지휘권은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과는 무관한 그의 고유권한인 것은 물론이다. 5) 주한미군사령관의 겸직 벨 사령관은 말했다. “주한미군사령관이 현재와 같이 유엔군사령관을 겸직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유엔사령관은 당연히 주한미군사령관이 겸직할 수밖에 없다. 미 합참의장의 작전지휘를 받아야 하는데 다른 나라의 군사령관을 그 자리에 앉힐 수 있겠는가? 따라서 유엔사는 이름만 유엔군일 뿐 내용상으로 미군을 정점으로 하는 다국적군이다. 결국 연합사의 작전통제권은 돌려주고, 한국군은 독자사령부가 된 다음, 다시 유엔사의 작전지휘권 아래 들어가야 한다는 결론이다. 유엔사에 통합되는 한국군에서 유엔사령관이 나올 가능성은 물론 제로이다. 주한미군사령관 겸 유엔사령관이 1978년 이전처럼 한국군을 작전통제 할 뿐 아니라 작전지휘까지 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1950년체계로의 복귀이다. 유엔사의 역할 벨 사령관은 유엔사의 역할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엔군사령부는 16개 회원국의 지속적인 지원으로 정전유지에 대한 책임을 수행해왔습니다.” “유엔군사령부는 대한민국에서 ‘억제와 전쟁’수행 능력에 있어 중요한 사령부입니다. 또한 유엔사는 유엔 병력, 군수, 보급 물자를 통해 한반도에서 미래 도발행위 발발시 한미동맹을 지원해야 합니다.” 요약하면 유엔사의 역할은 정전유지, 억제, 전쟁, 한국군지원이다. 억제는 정전이 전쟁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억제가 실패할 때 전쟁에 돌입한다. 50년 정전역사는 유엔사가 정전시의 위기가 돌발하지 않도록 억제하고, 위기가 발생해도 전쟁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억제를 해왔음과 동시에 그 억제를 위협으로 느끼는 북을 자극하고 오히려 위기와 교전을 유도한 측면도 있음을 증명한다. 연합사 창설 이후에 이 같은 역할은 유엔사가 아닌 연합사의 역할이었으며 용산기지에서 유엔사이름으로만 존재하는 부대는 아침저녁으로 국기게양식을 하는 의장대와 군사정전위원회가 거의 전부였다. 나머지 모든 참모부서는 연합사 겸 유엔사로서 겸직되어 있었기 때문에 참모구조만 보면 미군이 연합사 해체를 그렇게 걱정할 이유가 사실은 없는 셈이다. 연합사는 언제든지 유엔사로 전환가능한 체계를 가지고 운용되어 왔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유엔사특수전 컨퍼런스 등을 개최하며 유엔사체계로의 준비를 해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연합사 해체 후의 변화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유엔사의 역할은 한국군 지원역할이다. 벨 사령관은 말했다. “미국이건 유엔이 보낸 국가이건 대한민국의 전술적 목표를 지원하기 위해 군사력을 적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양국의 전략이나 작전에 대한 지침하에서 말입니다.” 그는 이를 교리적 지원체(doctrinally supporting entity)라고 정의했다. 군사교리는 미래 전쟁의 양상을 정의하고 그 준비를 위한 지침을 제공함으로써 ‘군사노선’ 혹은 ‘군사정책’을 함축하며 군사정책은 다시 ‘전력구조’와 ‘군사전략’을 내포한다. 미군의 군사이론 체계는 전략, 작전, 전술의 3원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북의 영토에 진입하는 문제는 전략문제이다. 비무장지대와 같은 전선이나 전구급 전투는 작전문제이다. 백마고지와 같은 특수한 지역을 둘러싼 전투 등은 전술문제이다. 전술적 목표를 지원한다는 것은 그가 예를 든 대로 한국군 사단이나 군단을 위해 미군 포병 대대가 지원적 관계에 놓이는 것이다. 미군사령관은 한국군사령관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곳에 군사력을 적용함으로써 한국군 사령관의 전술적 목표에 부응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정의한 ‘교리적 지원체’에 대한 의미와는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구체적 해석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는 각 군을 지휘하는 한국합참이 때로 단위부대의 전술작전을 지원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그 스스로의 해석에 의하면 교리적 지원체는 전략과 작전의 하위개념으로 보여진다. 한미동맹 차원에서는 양국정부가 전략과 작전지침을 토론, 조정하겠지만 유엔사 차원에서는 그것이 반드시 전제조건이 될 이유도 필요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주한미군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은 모두 워싱턴의 지휘를 받지만 지휘구조와 관계는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유엔사가 한국정부와 토론, 협의할 순 있겠지만 한국군의 지휘를 받거나 하위 사령부가 아니므로 전술차원에서는 지원하고, 전략과 작전차원에서는 지휘한다. 미국이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는 북을 억제하고, 한미합의의사록 2조로는 남을 통제하고자 했다는 것은 진보와 보수진영의 해석이 일치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한미합의의사록도 명분은 한국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하는 것이었다. 유엔사의 임무 벨 사령관은 유엔사의 임무와 관련하여 군정위와 중감위의 임무를 언급했다.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의 주요 정전유지역할은 DMZ지역으로의 접근통제를 통한 정전준수 보장, 양측의 정전위반사항에 대한 조사 및 검열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비무장지대로의 접근통제는 유엔사령관의 임무이고, 군정위의 임무는 정전위반 사항에 대한 조사이다. 유엔사령관의 비무장지대 관리권의 핵심은 출입배제이다. 대한민국헌법상 비무장지대는 대한민국 영토이지만 유엔사령관의 관리권 행사로 영토주권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다. 경의선에 기차가 다니지 못하는 구조적인 이유도 바로 유엔사령관의 관리권, 즉 출입통제권 때문이다. 미군은 이미 평택으로의 사령부기지이전계획을 한국정부와 합의하고도 한국정부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유엔사군사정전위원회 일부를 비무장지대 남북관리구역으로 전진배치 시켰고, 정전협정에서 합의된 바 없는 관할권을 주장하며 2000년 11월 17일 ‘남북관리구역에관한유엔사와인민군간합의서’의 이행에 장애를 조성하고 있다. 한편 중립국감독위원회(중감위)의 원래 임무는 ‘정전기간 동안 양측이 재무장을 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이었다. 벨 사령관이 말한 대로 중감위 회원국인 스위스와 스웨덴이 북에서 자유로이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 대해 방해를 받는다는 이유로 유엔사령관은 1956년에 중감위 철수를 주장하며 그들의 임무를 중지시켰다. 그러나 남측의 유엔사를 감시하던 폴란드 중감위원은 미군비행기를 타고 판문점으로 돌아가던 중 대표 3명이 원인모를 추락사고로 전원사망하기까지 했다. 이 사고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다음기회로 미루자. 어쨌든 1951년 정전회담에서 중감위 창설을 공산측 반대를 무릅쓰고 관철시킨 것도 유엔사이고, 중감위 임무를 공식적으로 먼저 중지시킨 것도 유엔사였다. 유엔사는 1956년 중감위 임무를 중지시키고, 연이어 정전협정13조 d항 무기반입금지 규정의 무효를 선언했다. 그 결과, 다음해인 1957년 미국이 남측에 핵무기를 들여올 때는 무기반입을 감시할 중감위도, 그것에 문제를 제기할 정전협정의 무기반입금지조항도 무력화시켜 놓은 상태였다. 중감위 철수와 정전협정 13조 d항의 무효화 선언은 핵무기배치를 위한 일련의 사전정지작업이었다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따라서 유엔사가 중감위 임무를 다시 재론하는 것이 얼마나 공론화 될지는 미지수로 보인다. 유엔사 강화와 유엔사 해체 선(先)연합사 해체노선의 한계는 이다지도 금방 드러났다. 혹시 한국정부가 연합사는 한미관계이고 유엔사는 유엔과의 국제관계란 도식에 빠져 선연합사 해체를 추진한 것이라면 이것은 분명한 오류임이 드러난 것이다. 이미 연합사창설공문에 충분히 예견되어 있는 것이다. 연합사령관은 유엔사령관직을 겸직할 때만 유효하며, 4성장군일 때만 유효하며, 작통권은 ‘이양’이 아닌 ‘위임’된 것이란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연합사 창설공문에 따르면 유엔사의 해체는 곧 연합사의 자동해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전쟁주권문제로 제기된 전시작전통제권을 진정으로 환수 받을 수 있는 것은 ‘선(先)유엔사 해체, 후(後)연합사 해체’로 가는 길이었다. 그 반대의 수순은 결국 원점으로 환원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벨 사령관은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유엔사 해체와 평화협정 체결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면 더없이 명백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나 유엔사 해체를 하고도 평화협정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의 길이 있으며 평화협정을 위한 더 좋은 조건을 마련할 수도 있다. 비무장지대 남북관리구역은 여러문제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975년 유엔총회의 유엔사 해체결의에 입각해볼 때, 유엔사가 각국에 다국적 통합군을 요구하는 것은 비공식적이고 불법적인 것이다. 그에 비해 유엔사 해체결의를 이행하도록 촉구하는 일은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것이다. 의제만을 놓고 본다면 유엔사 강화론은 어려운 길이고, 유엔사 해체론은 쉬운 길이다. 유엔사강화론은 실패가 예정된 의제이고, 유엔사해체론은 성공이 보장된 의제이다. 북은 평화협정을 위해 핵이라는 힘의 대결을 택했다. 1975년 유엔사 해체가 이루어졌다면 평화협정으로 가는 길은 어땠을까?
565 no image 한.미, 유엔사 장래 임무.역할 본격 협의
정태욱
9176 2007-01-31
작전통제권 환수와 결부하여 유엔사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실 이는 '뜨거운 감자'입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유엔사를 통하여 여전히 한국군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려고 한다는 의심도 합니다. 최근에 주한미사령관 벨의 발언이 그에 대하여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작통권환수가 그렇게 귀결되는 것은 말짱 도로묵이기 때문에 그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최근에 스티븐스 부차관보가 내한하여 그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한 것도 그런 배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사실 유엔사의 문제는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한미연합사가 해체되어도 유엔사가 자동으로 해체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작통권 환수와 한미 연합사령부 해체는 유엔사에 대한 입장정리와 병행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가장 간단한 것은 유엔사의 해체이며 그것이 상식적인 귀결입니다. 왜냐하면 유엔사의 실체는 미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에 관한 유엔의 결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유엔의 결의는 구속력이 있는 결의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유엔사령부는 유엔의 기관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기관이 아닌 조직에 대하여 해체의 결정을 내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유엔사의 성격에 대하여는 논란이 많이 있지만, 현재 유엔사는 명확하게 유엔 안보리의 결정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단지 권유하고 촉구한 것에 불과한 것이며, 유엔 깃발을 사용할 것을 허가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유엔사는 실질적으로는 미군을 중심으로하는 다국적군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유엔사의 참전은 일종의 '집단적 자위권'의 발동인 셈이지요. 하여튼 아직 정전체제가 유지되고 있다면 유엔사는 여전히 존속하는 것이고, 한미연합사령부가 해산되어도 그 다국적군의 지휘부는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바월 벨 주한미군사령관은 일찍이 미 의회에서 유엔사가 장기적으로 다국적군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가 있는데, 이는 바로 유엔 참전 당시의 유엔군의 본질과 부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작통권 환수의 문제는 유엔사의 위상과 존재에 대한 결정을 반드시 수반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것은 바로 정전협정에 대한 변경을 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바람직스럽게는 작통권 환수와 더불어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될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못하고 정전협정 체제가 지속된다면, 작통권을 환수하고, 한미연합사가 해체되어도 유엔사는 여전히 한반도의 군사적 상황을 통제하는 지휘부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심도깊은 연구가 요망됩니다. 아래는 최근에 관련 기사들을 옮겨 보았습니다. ----------------------------------------------------------------------------------- <한.미, 유엔사 장래 임무.역할 본격 협의> [연합뉴스 2007-01-30 14:07] 유엔군사령관에 '군사임무 부여' 최대 관건 SPI의제로 정식 상정해 논의키로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한국과 미국이 유엔군사령부(UNC)의 장래 임무와 역할에 대한 본격적인 협의를 시작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30일 "캐슬린 스티븐슨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의 방한(지난 26~28일)을 계기로 유엔군사령부의 임무와 역할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협의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스티븐슨 부차관보가 지난 26일 국방부를 방문해 김규현 국제협력관 등 주요 인사들을 만나 한미연합사령부 해체에 따른 유엔군사령부의 위상과 임무, 역할문제에 관한 의견을 교환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협의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한미는 당장 다음 달 8일 열리는 안보정책구상(SPI)회의를 통해 유엔사의 장래 문제를 집중 협의해 나갈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티븐슨 부차관보는 이번 방문에서 유엔사의 장래 임무 및 역할과 관련, 미국의 뚜렷한 입장은 전달하지 않았다는 게 국방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유엔군사령관겸 주한미군사령관인 버웰 벨 대장이 지난 18일 외신기자클럽 초청 연설 등에서 '연합사 해체와 전시 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은 유엔사의 군사권한과 책임의 부조화를 야기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과 관련해 앞으로 양국이 지혜를 모아보자는 취지의 이야기만 나눴을 뿐이라는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현직 사령관이 유엔사의 권한과 책임의 부조화를 왜 언급했는지, 앞으로 문제가 있다면 어떤 해결방안을 찾아야 하는지 등에 대한 개괄적인 언급만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 관계자들이 스티븐슨 부차관보와 나눈 대화 내용을 일절 함구하고 있지만 미측이 유엔사의 장래 임무와 역할 등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을 전달했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전작권 전환과 연합사 해체 이후 유엔사의 역할과 임무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벨 유엔군사령관의 발언에 이어 스티븐슨 부차관보가 극비리에 방한해 유엔사 장래 문제를 꺼낸 것만 보더라도 미국이 이미 관련 입장을 정리했을 것이란 추론이다. 일각에서는 미측은 전작권이 한국군으로 전환된 뒤 연합사가 해체되더라도 정전체제 유지를 위한 유엔군사령관의 '군사적 기능 및 임무'는 어떤 형태로든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현재 유엔군사령관은 북한군의 도발 등 정전협정을 위반하는 중대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전작권을 행사하는 연합사령관에게 정전체제 유지를 위한 군사적인 임무를 부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연합사가 해체되면 유엔군사령관은 이런 권한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말 그대로 '간판만 내건 사령관'의 역할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측은 유엔군사령관이 정전협정이 존속하는 한 연합사를 대신해 창설되는 한국군 합동군사령부에 '정전체제 유지에 한정'해 병력과 장비를 요청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한을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유엔사의 향후 역할과 임무와 관련해서는 양국의 정해진 입장이 아직 없다"면서 "다만 전작권이 전환되고 연합사가 해체된 다음 유엔군사령관의 권한과 책임을 정하는 문제는 국제법 등을 따져봐야 하는 복잡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유엔군사령부가 정전체제 유지 기능을 계속 맡아야 한다는데는 한미간 이견이 없다"면서 "그러나 한미 지휘체계 전환 과정에서 유엔군사령관이 어떤 권한과 책임을 가질지가 앞으로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반면 벨 유엔군사령관은 지난 18일 외신기자클럽 초청 연설을 통해 미래 유엔사 위상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 한.미간 협의가 순탄치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벨 사령관은 당시 "위기가 순간적으로 고조돼 전투 작전을 야기할 수 있는 한국에서는 전시조직이 필요하다. 위기가 고조됐을 때 지휘구조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유엔사를)전시와 같은 조직으로 평시에 구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앞으로도 유엔사가 한반도 위기시 '군사적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합참 관계자는 "연합사가 해체되고 난 다음 유엔군사령관에게 한국군의 일부 병력과 장비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면 전작권 전환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면서 "유엔군사령관은 정전체제 유지 기능 만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유엔군사령관이 순전히 정전협정 유지 기능만 담당해야 한다고 본다"면서 "이제 논의가 시작된 만큼 협의 과정에서 미측의 복안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threek@yna.co.kr (끝) ------ <유엔사 '전시조직 구성' 주장 배경.전망>(종합) [연합뉴스 2007-01-18 16:53] "유사시 전개되는 병력.물자 한국군 효율적 지원"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서동희 기자 =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이 18일 유엔군사령부가 전시 조직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 발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벨 사령관은 이날 외신기자클럽 초청 연설에서 "유엔사의 구조와 역할, 임무에 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유엔사가 전시와 같은 조직을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벨 사령관이 그동안 유엔사의 역할과 임무 강화 필요성을 여러 차례 거론했지만 이번처럼 구체적으로 '유엔사 장기 플랜'을 언급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벨 사령관의 발언은 ▲유엔사를 전시조직으로 정비하고 ▲유사시 병력 및 물자지원 임무를 계속 수행하며 ▲한반도에 전개되는 유엔회원국 병력에 대한 작전권을 유엔군사령관이 계속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등으로 요약된다. 한마디로 한반도 유사시 유엔군사령부가 병력과 물자 보급 등에 대한 작전권을 가지고 한국군을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유엔사 관계자는 "유엔사는 유사시 전투임무를 수행하는 부대가 아니다"면서 "유사시 전개되는 유엔 회원국의 병력과 물자를 어떻게 효울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지 그에 대한 방안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벨 사령관이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은 유엔사의 부조화를 야기할 뿐 아니라 한미연합사령부 해체 시에는 비무장지대(DMZ) 및 다른 지역에 배치된 한국군 전투부대에 대한 즉시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한 것은 유사시 지원체계 상시 가동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유엔사는 앞으로 한국군의 전술통제 아래 지원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며 "벨 사령관의 언급도 유사시 한국군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평시에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엔사 전시조직 정비 필요성을 강조한 벨 사령관의 발언을 놓고 일각에서는 연합사 해체 이후 줄어드는 주한미군의 임무와 역할을 유엔사가 대신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전작권 전환과 전략적 유연성 확보라는 대외 환경 변화에 따라 주한미군의 임무가 동북아분쟁에 대한 신속억제 기동군으로 자리를 잡는 대신 유엔사가 한반도 전쟁억지력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미군 수뇌부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는 "유엔사가 주한미군 지원 임무를 수행하고 적합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변형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벨 사령관의 발언이 잘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한 전문가는 "미국이 유엔사를 통해 병력을 투입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중감위의 부활 등을 꾀하고 있는 것은 연합사 해체에 따른 보완기능 차원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KIDA의 다른 전문가는 "유엔사를 계속 유지하는 차원에서 기능을 확대하려는 의도이거나 동북아에서 새로운 사령부를 설립하려는 장기 포석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앞으로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유엔사 해체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마당에 전시조직 정비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특정한 의도'가 있어 보인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다 전작권 전환 시기에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미 행정부의 시각과 달리 벨 사령관이 공개적으로 잇단 수위 높은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은 군의 입장을 관철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철저한 원칙주의자로 통하는 벨 사령관이 '군인적 사고'를 바탕으로 군 내부의 의견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또한 북측이 1995년 중립국 감독위원회 대표단을 강제 철수시킨 뒤 기능이 사실상 정지된 중감위 및 정전위 역할을 벨 사령관이 강조한 것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벨 사령관은 "중감위와 정전위는 한반도 평화 유지에 중요한 요소"라면서 "새로운 한미지휘구조가 발전함에 따라 중감위 및 정전위의 역할에 대한 토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 같은 발언은 지난 9일 내외신 기자회견 때 언급한 대목의 연장선에 있어 보인다. 벨 사령관은 당시 "평화협정 체결 후에는 중감위에 대한 다른 접근 방법이 적용돼야 할 것"이라면서 "예산도 지원돼 기능을 발휘토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정전협정이 유지되는 한 중감위는 기능을 발휘해야 하고 평화협정 체결 뒤에도 약간 변형된 형태의 중립감독 기구가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언급한 셈이다. 벨 사령관은 유엔사의 역할과 임무 강화 방안에 대한 한미간 협의가 곧 시작될 것이라고 설명해 앞으로 협의 과정에서 상당한 '입장차'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threek@yna.co.kr dhsuh519@yna.co.kr (끝) ---------------- <유엔사 존립 두 가지 '걸림돌'> [연합뉴스 2007-01-21 12:07]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한반도 정전체제 유지와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는 유엔군사령부(UNC)의 존립 여부를 결정하는데는 연합사의 해체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이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유엔사는 사실상 '서류상의 기구'에 불과한 실정이며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면 그 존립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구나 유엔군사령관이 사령관직을 겸임하고 있는 연합사가 2012년께 해체될 것으로 보여 연합사에 기대면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해 오던 유엔사의 위상이 지금보다 더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버웰 벨 유엔군사령관 겸 연합사령관이 18일 외신기자클럽 초청 연설에서 유엔사의 '전시조직 정비'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선 것도 존립 여부에 대한 심각한 위기의식에 따른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현재 유엔사는 참전 15개국에서 보내온 20여명의 연락장교단과 10여명의 군사정전위원으로 구성돼 정전유지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나 이들 인력 대부분도 주한 외교관직을 겸임하고 있어 활동이 미약한 형편이다. ◇ 연합사 해체로 어떤 영향 받나 = 유엔군사령관과 연합사령관은 동일 인물이다. 지금은 한 사람이 정전유지 임무와 한반도 방어(전투 포함) 임무를 동시에 수행하고 있는 시스템이지만 연합사가 해체되면 방어 임무가 사라지게 된다. 벨 사령관은 외신기자클럽 연설에서 "연합사 해체와 전시 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은 유엔사의 군사권한과 책임의 부조화를 야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전유지 임무를 수행하려면 방어 및 전투임무 권한이 즉각 발휘돼야 하는데 연합사 해체에 따른 전작권 전환으로 정전 임무를 맡는 것조차 어렵게 됐다는 지적인 것이다. '연합사령관 모자'를 쓰고 행사해오던 전작권을 한국군으로 넘겨주면 유엔군사령관의 권한도 반 쪽으로 줄어들게 된다. 특히 유엔ㆍ연합사령관의 '전작권 책임 해제'를 명시한 한미간 약정서(TOR) 체결이나 공동성명이 채택되면 과거 한 때 국군에 대한 지휘권을 위임받았던 시절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된다. 1950년 7월 당시 맥아더 유엔군총사령관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보낸 '공한'에 의거해 국군에 대한 지휘권을 이양받았고 1954년 11월 발효된 한미합의의사록에는 '국군을 유엔군사령부의 작전통제하에 둔다'고 명기되어 있다. 유엔군사령관의 작전통제권은 이후 1978년 10월 17일 한미교환각서에 의해 연합사령관에게 넘어간 뒤 지금에 이르고 있지만 연합사령관도 곧 이 권한의 '책임해제'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러나 전작권이 한국군으로 전환되더라도 법ㆍ외교적으로 유엔군사령관의 작전통제권한이 완전히 소멸하느냐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이승만 대통령의 '공한'과 한미합의의사록 등이 폐기되거나 개정이 없는 상태에서는 여전히 '유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인 것이다. 정부 소식통은 이와 관련, "이런 문제 때문에 TOR 또는 공동성명을 통해 전작권 문제를 명확히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와 유엔사, 미국은 앞으로 안보정책구상(SPI)회의 등을 통해 유엔사의 전시조직 정비는 물론 역할과 임무 조정 문제 등을 협의해 나갈 계획이어서 어떤 결과를 도출해낼 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 1953년 7월 체결된 정전협정이 폐기되고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한국전쟁은 공식 종료된다. 현재는 전쟁이 잠시 중단된 `정전'상태다. 미국은 북측이 핵을 포기할 경우 '한국전의 종료'를 선언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정전협정을 대신한 평화협정 체결 가능성이 한층 밝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평화협정 체결 논의가 본격화되면 북한이 협정 체결 전제 조건 및 역사적 사실을 거론하며 유엔사 해체를 주장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의 관영매체들은 1975년 유엔총회 제30차 회의에서 유엔사 해체와 관련한 결의안이 채택된 사실을 거론하며 해체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한 전문가는 "한반도 평화체제구축 과정에서 평화협정 체결 당사자 문제와 유엔사 존치 문제, 평화협정 이행 보장ㆍ관리기구 설치 문제 등이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평화협정 이후에도 유엔사가 존속할 것으로 전망하는 분위기다. 국방부 관계자는 "한미는 연합사의 위상이 어떻게 변화하든 유엔사가 한반도에 존속하고 주한미군도 계속 주둔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미동맹을 재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사는 군사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정치.외교적인 문제에 더 가깝다는데 한미의 의견이 일치되고 있다"며 "이런 견해로 인해 한미동맹 재조정 과정에서 유엔사의 위상 논의는 제외됐다"고 전했다. 벨 사령관도 외신기자클럽 연설에서 "동맹국의 신속한 (한반도)지원을 위한 메커니즘은 유엔사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라며 "지금과 마찬가지로 국가 급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3월 7일 미국 상원 군사위 국방예산심의 청문회에서 "유엔군사령부를 항구적인 다국적연합군(coalition)기구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유엔사 존립 문제는 한국전 종전선언이 가시화되면서 본격적으로 부각될 것으로 예측된다. threek@yna.co.kr (끝) ---<벨사령관 ‘유엔사 강화’ 발언 여진 계속> (서울신문) 한미연합사령부 해체에 대비, 유엔사령부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의 18일 외신기자클럽 발언을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미군당국이 “유엔사령관은 한국군에 대한 작전권을 행사할 수 없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유엔사 역할에 대한 의혹을 가라앉히기엔 역부족이다. 유엔사가 작전권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한국정부와의 협상에서 작전권의 ‘예외조항’을 요구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탓이다.1994년 평시 작전권 이양 과정에서도 미국은 ‘연합권한위임사항(CODA)’을 통해 ▲작전계획수립 ▲연합정보관리 ▲연합위기관리 등 6개 핵심사항을 연합사의 권한으로 위임받은 전례가 있다. ●주한미군 “유엔사, 한국군 작전통제 못해” 주한미군 사령부는 23일 긴급 해명자료를 통해 “미군이 한국군에 대한 작전권 유지를 위해 유엔사를 강화하려고 한다는 보도는 잘못된 추정”이라면서 “미군처럼 유엔사도 한국군에 대한 지원역할에 머무를 것”이라고 반박했다. 작전권에 대해서도 “세부 변경사항은 더 작업을 해야겠지만 분명한 것은 유엔사령관은 한국군에 대한 작전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못박았다. 그러나 미군당국이 유엔사를 통한 작전권 행사를 완전히 포기했다고 보기는 무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 벨 사령관은 지난주 회견에서 “연합사 해체시 유엔사령관은 연합사령관이 보유하고 있는 비무장지대와 다른지역에 배치된 한국 전투부대에 대한 즉시 접근권한이 없어져, 정전을 신뢰할 만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며 사실상 일부 한국군 부대에 대한 유엔사의 ‘접근권’을 요구했다. 한국 지상군이나 공군 일부에 대한 접근(통제)권을 작전권 이양의 예외조항으로 요구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美,‘제2의 CODA’ 요구할것” “위기가 고조되어 전시로 전환될 때 유엔사 지휘관계에서 하나의 통합이 필요하다.”는 벨 사령관 발언도 논란거리다.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정보를 분석·판단하고, 최종적으로 정전파기(전쟁재개)를 선언하는 데 있어 유엔사가 우선권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다면 작전권은 한국군이 갖되 핵심적인 권한은 정전유지와 원활한 전시지원을 명목으로 유엔사가 ‘위임’받는 형태가 된다. 한국은 작전권이라는 명분만 챙기고 핵심 결정권은 여전히 유엔사령관을 겸한 주한미군 사령관이 행사하는 상황이 빚어지는 셈이다. 참여정부에서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낸 서동만 상지대 교수도 “미군이 역대 전쟁에서 순수하게 ‘지원’만 한 사례는 없다.”며 전쟁수행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보완장치를 요구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다. 고영대 평화통일연구소 상임연구원도 “유엔사 역할변경을 둘러싼 한국정부와의 협의과정에서 미국측이 전시 작전권에 대한 ‘제2의 CODA’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기사일자 : 2007-01-24 3 면
564 no image 北-中 98년 체결 국경협정에 담긴 내용
정태욱
11084 2007-01-23
국군포로나 납북자가 아니라 원래 북한 주민으로서의 탈북자인 경우에도 그들이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면, 그들은 그들의 희망국으로 보내져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정치적 이유등에 의한 박해가 아니라 단지 경제적 목적을 위한 이주민인 경우, 이는 어떻게 처리되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 경우 이주노동자에 관한 국제적 규범들이 존중되어야 할 것입니다만, 아래와 같이 북한과 중국 사이에 일정한 협정이 있는 경우 그 협정도 또한 고려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국군포로의 경우, 북한으로 송환된다면, 그들이 정치적으로 박해를 받을 것이 틀림 없다고 할 때, 그들은 난민으로 인정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여튼 탈북자 문제에 대하여도 좀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 <北-中 98년 체결 국경협정에 담긴 내용>(종합) (선양=연합뉴스) 조계창 특파원 = 북한과 중국이 98년 7월에 체결한 '국경지역에서 국가의 안전과 사회질서 유지사업에서 호상 협조할 데 대한 합의서(이하 국경지역 업무협정)'는 당시 탈북자가 급증하던 시기에 체결됐다는 점에서 우선 눈길을 끈다. 지난 94년부터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한 탈북자는 95∼96년 대홍수에 따른 극심한 식량난으로 대량의 아사자가 발생하면서 봇물을 이뤘고 98년에 절정에 달했다. 98년 국경협정은 이러한 시점에서 체결됐다는 점에서 북중 양국이 탈북자의 대량 발생에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음을 잘 드러내주는 사례로 지적된다. 북중 양국이 탈북자 강제송환의 근거가 되는 협정을 체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양국이 60년대 초반 체결한 '탈주자 및 범죄인 상호 인도협정'이나 86년 8월 단둥(丹東)에서 체결된 국경지역 업무협정이 바로 그것이다. 98년 협정은 탈북자의 대량 발생에 대처하기 위해 처리 절차를 신속화하고 불법 월경자의 개념을 확장시킨 내용 등이 86년 협정과는 달라진 특징으로 거론되고 있다. 우선 98년 협정은 86년 협정에서는 "상황에 따라 비법월경자들의 명단과 자료를 상대측에 넘긴다"고 규정했던 것을 "비법월경자들의 명단과 관계자료는 즉시 상대측에 넘겨준다"고 명시했다. 중국이 탈북자를 체포할 경우 실제로 송환 절차를 밟기에 앞서 명단부터 북한측에 우선 넘기도록 의무화한 셈이다. 상대측 지역으로 도주한 범죄자에 대해서도 체포 즉시 넘겨주도록 했다. 이 규정이 탈북자를 겨냥한 것인지 여부는 다소 불분명하지만 북한에서는 불법으로 국경을 넘으려고 시도한 것 자체도 범죄가 된다는 점에서 탈북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있다. 탈북자와 범죄자를 북한측에 송환할 때도 양국이 그때그때 합의에 따라 임의의 장소를 택해 신병을 넘길 수 있도록 했다. 불법 월경자에 대한 정의도 확장됐다. 86년 협정에서는 불법 월경자를 '합법적인 증명(여권 또는 통행증)을 소지하지 않은 경우'로 한정했지만 98년 협정은 '정당한 증명서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에 지적된 통행지점과 검사기관을 거치지 않은 경우'도 불법월경자에 포함시키는 규정을 신설했다. 이런 규정은 여권이나 통행증을 소지한 합법을 위장한 탈북에도 양국이 강력히 대처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북중 양국은 비자면제협정에 따라 공무여행여권 소지자나 국경지역에 거주하는 양국 주민들은 통행증만으로 비자없이 양국을 드나들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북한군의 무장탈영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 98년 협정에 반영돼 있는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협정은 군(軍)이라는 표현을 명시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무기나 폭발물을 비롯한 각종 위험물품을 가지고 상대측 지역으로 도주할 우려가 있는 범죄자'에 대한 통보 의무를 규정했다. 사실상 북중 접경지역에서 '위험물품'을 갖고 탈북할 수 있는 대상은 군인 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 같은 규정은 사실상 북한군의 빈번한 무장탈영을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된다. '국경질서를 위반하는 자'가 폭력으로 반항해 쌍방 경비대와 경찰들의 생명에 위험을 주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총을 쏘지 말고 군견을 풀지 않도록 한 조항도 삽입된 것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이 조항들은 대량으로 발생하는 탈북자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갖가지 형태의 '인명사고'가 많았음을 암시한 것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도주 범죄자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북한측이 중국 영내에서 탈북자 등에 대한 수색 활동을 벌이는 것을 방지하려는 차원에서 "상대측 관할지역에서 수사활동을 진행할 수 없으며 상대측에 수사체포 의뢰를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탈북자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시 특별열차에 대한 경호를 강화하도록 한 조항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협정은 "쌍방은 쌍방의 당과 국가지도자들이 탄 특별열차가 국경다리를 통과할 때 국경다리 수역에 대한 호위경비사업을 강화한다"고 규정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단둥(丹東)에 있는 압록강철교 주변의 경비가 삼엄해지는 이유가 문서상 근거를 통해 확인된 셈이다. phillife@yna.co.kr blog.yna.co.kr/phillife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7/01/22 17:34 송고
563 no image 강제북송 국군포로 가족 1명 사망
정태욱
12773 2007-01-23
탈북한 국군포로가 북한으로 송환된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국군포로, 납북자들이 탈북하여 남한으로 오고자 한다면, 그들을 수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국군포로의 경우 이승만 정부의 반공포로 석방의 문제와 맞물려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만, 그래도 정전협정과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그들이 고향에 오겠다고 하면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러한 사건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부작용은 감안되어야 하겠지요. 하여튼 이에 대한 연구가 좀 더 있어야 하겠습니다. -------------------------------------------------- "강제북송 국군포로 가족 1명 사망"<대북소식통>(종합) "보위부 조사과정서 동사..나머지 행방 묘연" "전원 수용소 가지 않았다..일부 노약자는 석방" (서울=연합뉴스) 함보현 기자 = 지난해 10월 중국 선양(瀋陽) 한국총영사관의 보호를 받다 강제 북송된 국군포로 가족 9명 가운데 1명이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조사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대북소식통은 "북송 가족 중 노인 1명이 한 달 전 보위부에서 동사(凍死)했다"면서 "현재 나머지 가족의 행방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보위부 조사 과정에서 숨졌다는 노인은 국군포로의 부인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번에 사망한 가족이 고령으로 애초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보위부 조사과정에서 가혹행위가 있었는지 여부 등 정확한 사인은 불투명하다. 소식통은 또 "가족 전원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지는 않았다"며 "일부 노약자는 집으로 돌려보내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북송된 국군포로 가족 9명은 2명, 3명, 4명 등 세 가족으로 이뤄졌다. 한편, 송민순 외교장관은 이날 한나라당 원내대표실을 방문해 "선양에서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국군포로나 납북자, 탈북자들의 성공적 귀환에 도움이 될 지는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봐야 한다"며 신중한 접근법을 강조했다.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는 이와 관련, "정부는 국군포로 가족의 신병을 인계 받은 후 북송된 데 책임을 지고 중국과 북한에 송환을 요구해야 한다"고 반발하는 등 국군포로 가족의 북송 책임을 놓고 정부와 민간단체의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 hanarmdri@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7/01/19 18:54 송고
562 no image 北.美 'BDA 동결자금' 부분해제 급진전 조짐
정태욱
9356 2007-01-23
북-미 양자회담 이후 6자회담의 전망이 한층 밝아졌습니다. 北외무성 "베를린 회담서 일정한 합의"(종합)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황재훈 기자 = 북한 외무성은 19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와 김계관 외무성 부상간 북미간 베를린 회담 사실을 확인하면서 일정한 합의가 이룩됐다고 전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이날 베를린에서 열린 북미회담과 관련,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형식을 통해 "이번 회담은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16일부터 18일까지 진지하게 진행됐고, 일정한 합의가 이룩됐다"고 밝혔다. 외무성 대변인은 그러나 어떤 합의가 이뤄졌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대변인은 이어 "이번에 베를린에서 조선과 미국 사이의 회담이 쌍방 사이의 합의에 따라 진행됐다"면서 "우리는 핵문제에서 걸린 문제 해결을 위해 조선과 미국이 직접 대화를 진행한 데 대해 주의를 돌렸다"고 말했다. ------------------------------------------------------ <北.美 'BDA 동결자금' 부분해제 급진전 조짐> (워싱턴=연합뉴스) 조복래 특파원 = 북핵 6자회담 재개의 최대 변수로 주목받아온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동결계좌 해제 문제가 급류를 타는 분위기다. 북한 외무성이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김계관 외무성 부상간 지난 16-18일 베를린 회담에서 '일정한 합의'가 이뤄졌다고 밝힌데 이어, 힐 차관보가 서울 방문에서 6자회담 재개를 기정사실화함으로써 BDA 문제에 대한 모종의 타협이 이뤄진 게 아니냐는 관측이 꼬리를 물고 있다. 게다가 로이터 등 외신들도 미국 관리들의 말을 인용, "미 재무부가 북한의 BDA 동결자금 2천400만달러 중 합법자금을 해제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 파장을 낳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 당국이 최근 합법자금으로 추정되는 BDA의 북한계좌 5개의 구체적인 정보를 미국 정부에 전달한 사실이 확인돼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알려진 미 재무부의 BDA 조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후문이다. 물론 이 5개 계좌가 누구의 명의인지, 액수가 얼마나 되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조지 부시 행정부를 상대로 적극적인 로비를 벌임으로써 일각에서 해제 가능성이 거론돼온 평양의 영국계 은행인 대동신용은행, 세계적 담배회사인 브리티시 아메리카 토바코의 계좌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국 정부는 한국측이 제시한 정보 내용을 자신들의 자체조사 내용과 대조해 일치하고, 북한이 차기 6자회담에서 핵폐기를 향한 초기행동을 가시화할 경우 이 5-7개 계좌에 대한 선별해제에 나설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얘기가 적지 않다. 워싱턴의 고위소식통은 21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BDA 은행에 동결된 2천400만달러 규모의 북한계좌 50여개 중 합법자금으로 추정되는 5개계좌에 대한 한국측 정보가 존 네그로폰테 국가정보국장에게 전달했다"면서 "이들 정보는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파악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른 외교소식통은 익명을 전제로 "미국이 BDA 동결계좌 중 합법자금을 풀기로 결정할 경우 그 액수는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면서 "다만 BDA에 묶여있는 2천400만 달러 중 750만-1200만 달러가 될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고 추정했다. 이에 따라 북한이 영변 5MW 원자로 동결 →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허용 → 핵 프로그램 신고를 포함한 향후 핵폐기 일정 제시 등 미측이 요구한 초기단계 이행조치를 수용할 경우 BDA 동결계좌 중 합법적인 것에 한해 일부 해제해 주는 '빅 딜'이 지난주 베를린 회담에서 가닥이 잡힌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미국이 지난 2005년 9월 애국법 311조를 근거로 주요 돈세탁 우려 금융기관으로 지정하자 BDA는 북한의 불법 행위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50여개 계좌, 2천400만달러를 찾아내 동결 조치했다. 50여개 계좌는 20개 북한은행, 11개 북한 무역회사, 9개 북한 개인계좌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이들 중 개인계좌는 북한 주민들이 외국에 계좌를 갖고 있지 않는 점을 감안할 때 김정일(金正日) 위원장의 통치자금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들은 "BDA 자금을 선별해제할 경우 북한을 통제할 효과적인 수단을 잃게 된다"며 반대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이와 관련, 지난달 19~20일 베이징에서 오광철 조선무역은행 총재와 실무회의를 했던 대니얼 글래이저 재무부 부차관보가 오는 24일 워싱턴에서 기자들을 상대로 대북 금융제재에 관한 브리핑을 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어찌됐건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가시적인 조치'와 연계, BDA 계좌중 일부를 해제키로 방침을 정한다면 지난 해 12월 제5차 2단계 회의에서 제안된 '초기단계 이행조치'에 대한 논의가 차기 6자회담에서 한층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cbr@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7/01/22 13:43 송고
561 no image 유엔 개발계획 지원금 전용 논란
정태욱
9160 2007-01-23
북-미 협상이 진전되고 있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돌출변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UNDP에서 즉각 반박하여 별 문제가 안될 것 같군요... ---------------------------------------------------------------- "北, UNDP 조작 통해 수천만불 조달했을수도"< WSJ >(종합) UNDP, 3월부터 대북 현금 지급 중단 潘총장, 北 UNDP 등 유엔 사업 전반 조사요구 (뉴욕=연합뉴스) 김현준 특파원 = 핵 야망을 갖고 있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유엔개발계획(UNDP)의 대북사업을 이용해 1998년 이후 수천만달러의 자금을 조달했을 수 있다는 의혹을 월스트리트저널이 19일 제기했다. 이에 대해 UNDP는 이날 유엔본부에서 가진 긴급 기자회견에서 오는 3월 1일부터 북한 내 사업에 대한 현금지급을 중단할 것이며 대북사업에 대한 외부감사도 의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저널은 사설과 별도의 논평을 통해 UNDP의 대북사업 감독 부실이 최근 공개된 문서 등을 통해 확인됐다면서 석유-식량 프로그램을 악용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에 이어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UNDP의 대북사업을 이용해 유엔자금을 조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저널은 마크 윌리스 유엔 주재 미국 차석대사가 지난 16일 애드 멜커트 UNDP 총재보에게 보낸 서신내용을 인용, UNDP가 자금 및 재원의 전용가능성에 대한 확인 없이 북한 정권에 현금과 다른 재원들을 제공했다면서 이는 유엔규정 위반이며 더욱 심각한 문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현금을 안겨줬을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저널은 UNDP를 통해 북한에 흘러들어간 자금의 규모가 정확하지 않지만 지난 1998년 이후 UNDP가 북한에서 집행한 자금이 최소 수천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일각에서는 1억달러가 넘는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저널은 UNDP가 평양사무소 임대와 직원 채용, 급료 및 식사비 지급, 사업비 집행과정 등에서 북한 정권의 부당한 요구를 수용했다면서 특히 상당자금을 북한정권에 현금으로 지급한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널은 UNDP이 제공한 현금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주머니로 들어갔을 것이 거의 확실하며 비록 UNDP가 최근 대북사업규모를 축소했지만 북한이 핵무기 실험에 성공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 이해관계는 매우 클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저널은 규정을 위반한 채 운영돼온 UNDP의 대북사업이 북한의 핵 또는 미사일 계획과 관련된 어떤 물품의 교역도 제한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1718호를 위반한 것은 아닐 수도 있지만 그 정신을 위반한 것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멜커트 UNDP 총재보는 내부 감사관들도 북한 내 사업 관리에 많은 우려를 제기했으며 어려운 문제들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오는 3월1일부터 북한 정부와 현지 사업파트너, 현지 직원 등에 대한 현금지급과 북한정부를 통한 현지직원 채용을 중단할 것이며 대북사업에 대한 외부감사를 다음주 집행이사회에서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20년 전에는 다수의 국가들이 지금과 다른 모델 아래 움직였던 점을 감안할 때 대북사업도 이 같은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제까지 집행된 대북사업 자금에 대해 지난 십년간 수천만달러 수준이라면서 수억달러 규모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한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멜케트 UNDP 총재보와 만난 대북사업 문제에 대해 논의했으며 전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는 유엔 산하기구의 모든 활동에 대한 신속하고 전반적인 외부조사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june@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7/01/20 07:18 송고 -------------------------- < UNDP, WSJ 의혹 제기에 정면 반박 >(종합) "北핵 개발자금 전용 주장 믿을 이유 없다" "이사회가 사업중단 결정하면 따를 것" <> (뉴욕=연합뉴스) 김계환 특파원 = 유엔개발계획(UNDP)이 대북사업 자금 전용 가능성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이 제기한 의혹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애드 멜커트 UNDP 총재보는 22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을 통해 UNDP가 제공한 자금이 북한의 핵개발 자금으로 전용됐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전혀 없다면서 지난 1999년과 2001년, 2004년 감사에서도 자금전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 제기는 없었다고 밝혔다. 멜커트 총재보는 UNDP의 대북사업은 미국을 포함한 36개 이사국의 결정에 따른 것이며 최근 채택된 안보리 결의안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이뤄지고 있다면서 대북사업에 적용되는 금융규정 역시 이사회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북사업이 그동안 정기적인 감사와 통제의 대상이 돼왔지만 의혹해소 차원에서 대북사업에 대한 독립적인 외부 감사를 환영한다면서 더 나아가 북한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엔의 각 기금과 프로그램의 활동 전반에 대한 반기문 사무총장의 조사요구도 강력히 지지한다고 말했다. 멜커트 총재보는 이어 북한 내 활동이 매우 복잡한 사업이란 점을 설명하면서 한 가지 예로 북한 내에서 활동하려면 북한 당국에 대한 외환지급이 불가피한 상황이란 점을 제시했다. 그는 현지 직원과 계약자들에 대한 경화지급이나 중앙은행 환전을 통한 원화지급 모두 북한 정부에 외화가 들어가기는 마찬가지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경화 거래 최소화를 위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고 있으며 직원 직접 채용도 북한 내에서 지속적인 협력을 위해 필요한 조치로 결정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UNDP와 다른 유엔 산하기관들은 그동안 북한 주민이 지난 1990년대 대기근을 이겨낼 수 있도록 지원했으며 삶이 질 개선을 위해 지속적인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다면서 북한에 대한 모든 경화지급을 중단하려면 북한 내 활동을 중지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엔 회원국과 UNDP 이사회가 필요하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UNDP의 대북사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면서 만약 유엔 회원국과 UNDP 이사회가 북한 내 활동이 필요하지 않다고 결정하면 즉각 북한에서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UNDP는 멜커트 총재보의 기고문 외에 별도의 내놓은 해명자료를 통해 지난 10년간 대북사업 자금으로 총 2천910만달러가 집행됐지만 북한에 경화로 지급된 금액은 매년 150만달러에서 250만달러 사이에 불과하며 사업현장 방문과 사업활동 검증작업을 통해 전용 가능성을 차단해 왔다고 밝혔다. UNDP는 최근 2년 간 집행된 대북사업 자금 650만달러 가운데 북한 당국이 직접 집행한 금액은 33만 7천달러에 불과했다면서 이 역시 사업장 방문과 사업활동 검증을 통해 사용처를 확인해 왔다고 강조했다. UNDP는 이어 지난 18개월 간 북한 사업장 방문이 불허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면서 지난해 이뤄진 북한 방문조사에서도 거의 모든 사업에서 적기에 목적에 맞는 활동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UNDP는 이밖에 미국이 현행법을 이유로 대북사업에 들어갈 수 있는 자금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 상태여서 미국민의 세금이 북한의 불법활동에 사용됐을 가능성도 없다고 덧붙였다. UNDP는 지난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5천934만달러의 대북사업을 승인했지만 실제 집행된 규모는 2천910만달러이며 현재 20개 대북 사업을 집행 또는 승인한 상태이다. kp@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7/01/23 05:47 송고
560 no image 북미 양자회담-커다란 변화
정태욱
10823 2007-01-17
북미 양자회담을 한사코 거부해 온 부시정부의 이력을 볼 때, 이번 회동은 커다란 변화로 주목됩니다. <美, 對北 대화 형식 '금기' 허무나> [연합뉴스 2007-01-17 04:38] 베를린 회동서 北 답변이 6자회담 재개 관건 (워싱턴=연합뉴스) 윤동영 특파원 = 미국과 북한의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간 전격적인 베를린 회동은 북.미 양자간 직접 대화라는 형식 측면에서 특히 의미심장하다. 또 내용면에서 북한이 지난 베이징(北京) 6자회담에서 받아든 '숙제'에 대한 가.부간 답을 갖고 나왔을 가능성도 주목된다. 베를린 회동의 이러한 형식과 내용은 6자회담의 전도를 가늠해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올해들어 일각에서 거론되는 미국의 대북 정책기조의 현실주의화 여부도 검증해볼 수 있는 중요한 척도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북한 외무성 김계관 부상간 베를린 회동은 다른 6자회담 참여국 정부들에도 미리 통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 직접 대화 = 한 외교소식통은 16일 북.미 베를린 회동에 대해 "계속되는 대화의 일환"이라면서도 힐 차관보의 대북 접촉 형식에 대한 "제약이 조금씩 줄어들고 자유로와 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부시 행정부는 그동안 북한의 대미 직접 대화 요구에 대해 미국이 이를 거부한 적이 없다면서도 "6자회담의 맥락 속"임을 강조하고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초청 형식으로 베이징에서 일단 북.미.중 3자 대표가 만난 뒤 중국 대표가 자리를 비켜주는 방식으로 북.미 양자대화를 갖는 게 상례였다. 부시 행정부들어 미국의 북한 접촉 방식은 초기 제임스 켈리 차관보가 6자회담 휴식시간에 북한 대표를 만날 때 지침받은 대로 "출입문을 조금 열어두고" 차를 마시는 방식에서 저녁식사도 함께 하되 매파(媒婆)가 일단은 동석했다가 자리를 비켜주는 수준에 이어 베를린 회동 형식으로 진화한 셈이다. 이러한 변화가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이란 집중과 딕 체니 부통령 중심의 대북 강경 목소리의 약화 등과 직결된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그러나 윌리엄 테일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지난 11일 주미 홍보원 강연에서 부시 행정부가 중동문제 때문에 북한에 현실적인 접근 전략을 펼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고위급 대표단의 평양 파견 제안 가능성과 함께 "6자회담 안팎을 불문하고 북한에 직접대화를 제안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었다. 이번 베를린 회동에 대해서도 톰 케이시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장소만 다를 뿐 예전과 마찬가지로" 6지회담 틀속의 것이라고 강조했으나, 기존의 대북 대화 형식에 비해 파격인 것은 분명하다. 베를린은 1990년대 북.미 대화와 남.북대화에서 주요 회담이나 합의의 장소로 활용된 역사적 사실로 인한 상징성도 크며,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의 장소로 선호하는 장소라는 점에서 미국의 '양보'나 '변화'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작지만 의미있는 신호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베를린에선 1995년 북.미간 경수로 회담 96년 북.미간 1차 미사일 협상, 99년 북.미간 미사일 협상 타결, 2000년 1월 북.미간 고위급회담을 통한 포괄적 관계개선 합의, 2000년 3월 남북정상회담에 앞선 김대중(金大中) 당시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 2005년 1월 정동영(鄭東泳) 당시 통일장관의 베를린 연설 등이 이뤄졌다. ◇회동 내용 = 미 국무부는 16일 오전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북한 외무성 김계관 부상간 회동 사실만 발표한 뒤 오후 정례 브리핑에서 톰 케이시 부대변인을 통해 오전과 오후 여러시간에 걸친 회동에서 "좋은 의견 교환"이 있었으며,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케이시 대변인은 그러나 6자회담 재개 날짜가 정해진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회동 내용을 더 이상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힐 차관보는 베를린 방문에 이어 한국, 중국, 일본을 순방할 예정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북.미간 베를린 회동 내용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요체는 송민순(宋旻淳) 외교장관이 최근 방미 때 "조만간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 대로 김계관 부상이 베이징 6자회담에서 받아든 영변 원자로 가동 중단 등과 상응조치들이라는 미국의 제안에 대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답을 갖고 나왔느냐에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핵실험을 통해 손에 넣은 핵무기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어서 이번 베를린 회동에서도 김계관 부상이 조건부 답변을 내놓았을 가능성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ydy@yna.co.kr (끝)
559 no image "북한 위조 달러 출처는 美CIA"< FAZ >
정태욱
16645 2007-01-10
독일의 대표적 일간지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 차이퉁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냈군요. 직접 검색해 보니, 짧은 풍문성 기사가 아니라 긴 탐사보도라고 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원문도 아래에 첨부하였습니다. FAZ에 6일 짧은 보도에 이어서 8일에 긴 기사가 거푸어 나갔네요... "북한 위조 달러 출처는 美CIA"< FAZ > CIA 비밀작전 자금.. 북한에 혐의 씌워 (베를린=연합뉴스) 송병승 특파원 = 미국은 북한이 위조 달러화를 제조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위조 달러의 진짜 출처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일 가능성이 있다고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 일요판이 7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유럽 및 아시아의 위조지폐 전문가들의 조사 결과를 인용, 정교하게 위조된 50달러 및 100달러 지폐인 소위 `슈퍼 노트'는 미국 정보기관이 비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대량으로 제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는 북한에 위조 달러 제조 혐의를 뒤집어 씌우고 북한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는 2005년 가을에 열린 6자회담에서 북한이 위조 달러를 제조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회담을 틀어지게 만들었으며 이후 한반도의 긴장상황이 고조돼 왔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또한 미국은 북한이 위조 달러화를 미사일과 핵무기를 개발하는 자금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해왔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달러화를 위조한 `명백한 증거'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보안을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고 있으며 미국이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할 당시 구실로 내세웠던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도 `명백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나중이 거짓으로 드러난 바 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이 신문은 전문가들조차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한 `슈퍼 노트'가 지난 20년 동안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유통돼온 것은 배후에 국가가 개입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밝히고 미국은 북한을 위폐 제조국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북한은 가난한 나라로서 기술적으로 그처럼 정교한 위폐 제조 기술을 갖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유럽의 위폐 전문가들은 유럽에서 유통되고 있는 위조 달러화의 출처가 동아시아 지역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며 대부분은 중동, 동아프리카, 러시아 등지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인터폴이 관계기관과 전문가들을 소집해 `슈퍼 노트' 문제를 논의한 회의에서 미국 대표는 북한을 위폐 제조국으로 지목했으나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이에 의문을 제기했으며 미국 스스로가 위폐를 제조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 신문은 고도의 보안조치가 필요한 인쇄기 제조업체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 CIA가 워싱턴 근교의 비밀 인쇄 시설에서 위조 달러화를 제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CIA는 이 위조달러화를 위험 지역의 비밀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자금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비밀 공작에 대한 의회의 통제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FAZ는 덧붙였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달러화 위조를 이유로 금융제재를 가하고 있는 데 대해 북한은 화폐위조 혐의를 부인하면서 경제 제재를 풀어야 6자회담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북한은 또 "세계에서 가장 큰 화폐 위조국은 미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FAZ는 독일의 대표적 중도우파 권위지이며, 이 기사를 쓴 폰 클라우스 W. 벤더 기자는 이 신문에서 30년간 일해온 경제기자이며, 특히 위폐 분야에 대해 밝다. songbs@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7/01/09 19:55 송고 „Supernotes“ Das Geheimnis der gefälschten Dollarnoten Von Klaus W. Bender Kaum vom Orginal zu unterscheiden - Die "supernote", gefälschte 100-Dollar-Noten 08. Januar 2007 Für die internationale Polizeibehörde Interpol hat der Fall höchste Priorität. Seit fast 20 Jahren kursieren massenhaft gefälschte 100-Dollar-Noten in höchster Qualität, und so lange schon wird die Quelle gesucht, aber nicht gefunden. Im März 2005 hatte Interpol eine sogenannte „orange notice“ versandt, mit der Interpol-Mitgliedsländer üblicherweise auf eine besondere Bedrohungslage hingewiesen werden. Und Ende Juli 2006 rief die Behörde Zentralbanken, Fahnder und die Hochsicherheits-Druckindustrie zu einer „Krisenkonferenz über die Supernote“. Hauptverdächtiger der Amerikaner: Diktator Kim Jong-il Die Amerikaner glauben nämlich die Täter zu kennen: das kommunistische, diktatorische Nordkorea, Erzfeind der Vereinigten Staaten. Doch am Ende der eintägigen Konferenz herrschte weiter Zweifel an dieser Sicht. Schlimmer noch: Gerüchte behaupten, die Amerikaner selbst könnten hinter den Fälschungen stecken. Diplomaten mit ganzen Bündeln im Reisegepäck Seit die erste falsche 100-Dollar-Federal-Reserve-Note 1989 in einer Bank in Manila (Philippinen) entdeckt wurde, ist die Aufregung groß. Selbst ausgewiesene Banknoten-Druckexperten vermögen bei optischer Betrachtung und einem Fühltest - die wichtigste Echtheitsprüfung durch den Bürger - diese falsche 100-Dollar-Note nicht vom Original zu unterscheiden. Die Fahnder tauften die Fälschung daher respektvoll „supernote“. Viele Länder wurden seither der Tat verdächtigt, das Iran der Mullahs, Syrer, die libanesische Hisbullah, auch die Ex-DDR. Daran erinnert man sich in Washington nicht mehr so gerne, denn heute ist man davon überzeugt, dass es Nordkorea sein muss. Als Indiz dienen die nordkoreanischen Diplomaten und Kaufleute mit Diplomatenpass, die im Lauf der Jahre mit ganzen Bündeln von „supernotes“ im Reisegepäck abgefangen wurden. Nordkoreanische Überläufer berichten von einer staatlich gelenkten Falschgeldoperation, wobei die Verlässlichkeit ihrer Aussagen offen bleiben muss. Sich selbst einen Maulkorb verpasst Kronzeuge für diese Version ist ein ehemaliger Wirtschaftsattaché an Nordkoreas Botschaft in Moskau, der 1998 im russischen Wladiwostok mit 30.000 Dollar in „supernotes“ ertappt wurde. Er lief 2003 in den Westen über und berichtete, dass er für die Privatschatulle von Diktator Kim Jong-il zuständig und persönlich an der Produktion der „supernotes“ beteiligt gewesen sei. Seither glaubt man in Washington zu wissen, dass Kim mit den Fälschungen nicht nur seinen französischen Cognac oder sein Raketen- und Atomwaffenprogramm finanziert, sondern sein ganzes marodes Wirtschaftssystem vor dem Kollaps bewahrt. „Supernotes“ im Wert von 250 Millionen Dollar würde Nordkorea jährlich drucken und in Umlauf bringen, will man inzwischen in Amerika wissen. Zweifel sind nicht erlaubt. Die gesamte amerikanische Medienlandschaft hat sich daher bei diesem brisanten Thema selbst einen Maulkorb verpasst. Baumwolle stammt aus den Südstaaten Der Banknotendruck ist ein extrem komplexes technisches Unterfangen. Was eine Fälschung von der Qualität der „supernote“ an Fachkenntnis erfordert, vermag der Laie nicht zu erfassen. Das für die „supernote“ verwendete Banknotenpapier ist auf einer sogenannten Fourdrinier-Papiermaschine geschöpft, im korrekten Verhältnis von 75 Prozent Baumwolle zu 25 Prozent Leinen. Nur die Amerikaner machen das so. Es fehlt weder der in das Papier eingelassene hauchdünne Polyester-Sicherheitsfaden mit dem Aufdruck „USA 100“ in positiver Mikroschrift noch das abgestuft plazierte Wasserzeichen. Dafür benötigen die Fälscher mindestens eine Versuchspapiermaschine. Die chemisch-physikalische Analyse eines Papierexperten hat zusätzlich ergeben, dass die verwendete Baumwolle aus den amerikanischen Südstaaten stammt. Diese Baumwolle ist allerdings auf dem Markt frei erhältlich. Erste Fälschungen in Stichtiefdruck Sieht man von den Fälschungen der britischen Pfund-Noten durch Nazi-Deutschland während des Zweiten Weltkriegs ab, so hat es in der langen Geschichte der Notenfälschungen noch nie eine Fälschung im Stichtiefdruck gegeben. Doch die „supernote“ verfügt über einen erhabenen, perfekt fühlbaren Intaglio-Stichtiefdruck. Dafür benötigt man eine Intaglio-Stichtiefdruckmaschine, die so nur von KBA Giori (vormals DLR Giori) aus Würzburg hergestellt und von der amerikanischen Notendruckerei BEP seit Jahren für den Dollar-Druck eingesetzt wird. Diese Spezial-Druckmaschinen sind auf dem freien Markt nicht erhältlich. Selbst der Weiterverkauf einer gebrauchten Maschine wird routinemäßig Interpol gemeldet. Nordkorea besitzt eine in den siebziger Jahren des vorigen Jahrhunderts von KBA hergestellte Standard-Druckmaschinen-Linie aus Würzburg. Sie ist nach Auskunft eines Fachmanns ohne Zusatzausrüstung für den Druck der „supernote“ ungeeignet, steht aber wegen Ersatzteilmangel seit längerem still. Vermutlich druckt jetzt China für seinen Nachbarn die Noten. Sicherheitsfarben aus hochsicheren Fabriken Die Behauptung, Nordkorea habe sich in den neunziger Jahren des vorigen Jahrhunderts heimlich eine moderne Druckmaschinen-Linie von KBA Giori beschafft, ist frei erfunden. Pjöngjang versucht derzeit, in Europa neue Maschinen zu kaufen, hatte damit bisher aber keinen Erfolg - nicht nur, weil es seine alten Standard-Maschinen nie voll bezahlt hat. Die Analyse eines kriminaltechnischen Labors hat weiter ergeben, dass die für die „supernote“ verwendeten Sicherheitsfarben mit denjenigen der Originalnote übereinstimmen. Das gilt sogar für die teure OVI-Changierfarbe, die je nach Einfallswinkel des Lichtes ihr Aussehen verändert, beim Dollar von Bronze-Grün zu Schwarz. Die hochgeheime OVI wird ausschließlich von Sicpa, Lausanne, angeboten. Sie wird in der exklusiv dem BEP vorbehaltenen Farbkombination vom amerikanischen Lizenznehmer in hochsicheren Fabriken in den Vereinigten Staaten angerührt. Gleiches gilt für die sonstigen Dollar-Sicherheitsfarben. Zwar kann nie ausgeschlossen werden, dass kleine Mengen dieser Spezialfarben trotz scharfer Kontrollen bei der Produktion einmal entwendet werden, aber es bleibt eine interessante Frage, wie die für eine Massenproduktion benötigten Farbmengen in unberufene Hände gelangt sein könnten - zudem über scharf überwachte Landesgrenzen hinweg. Nordkorea war früher einmal Kunde bei Sicpa. Ob es sich auf den „supernotes“ wirklich um ihre Originalfarben handelt, wäre von Sicpa leicht zu klären. Eine geheime Markierung, das „tagging“, erlaubt die Rückverfolgung der Sicherheitsfarben bis zur einzelnen Produktionscharge. Sicpa verweigert die Aussage dazu, weil Amerika ihr größter Kunde ist. „Pjöngjang Connection“ Weitere Absonderlichkeiten betreffen die seit 1996 von Fed und BEP begebenen neuen Dollar-Noten. Die Fälscher haben seither jede einzelne Veränderung sofort nachvollzogen. Derzeit gibt es für die „supernote“ nicht weniger als 19 verschiedene Platten. Sie sind absolut perfekt. Dabei misst die auf den neuen Noten mit großem Porträtkopf versteckte Mikroschrift teilweise nur 1/42 000 Inch (1 Inch sind 24,5 Millimeter). Auf der „supernote“ ist selbst unter der Lupe keine Abweichung zu erkennen. Woher nehmen die Fälscher diese Spezialisten? Washingtons These von der „Pjöngjang Connection“ und vom „Wirtschaftskrieg gegen Amerika“ hat es also schwer. Die Fälscher beherrschen die Technik der auf den neuen Noten eingesetzten infrarotsensitiven Sicherheitsfarbe, wenden sie dann aber so blödsinnig an, dass jedes Banknotenprüfsystem die sofort als Fälschung erkennt. In Amerika haben die Super-Blüten so keine Chance. Aber sogar auf den Einsatz ihrer noch perfekter gefälschten 50-Dollar-Note verzichten die Täter, obwohl dieser Wert beim Zahlen populärer ist. Fehlinvestition Druckmaschine Sollten die Nordkoreaner mit den Fälschungen wirtschaftliche Vorteile erzielen wollen, so ist die „supernote“ eine klassische Fehlinvestition. In den 17 Jahren ihrer Existenz sind nach Angaben des für Falschgeld zuständigen amerikanischen Geheimdienstes Secret Service gerade mal falsche Noten im Gesamtwert von gut 50 Millionen Dollar sichergestellt worden. Dafür bekäme Kim Jong-il heute nicht einmal mehr eine der begehrten Druckmaschinen. Europäische Falschgeldfahnder können auch nicht bestätigen, dass die Dollar-Blüten vorwiegend aus Ostasien kämen. In Europa werden diese Falschgeldnoten meist bei der routinemäßigen Notenkontrolle in Banken aufgegriffen. Sie stammen ganz überwiegend aus dem Nahen und Mittleren Osten, aus Ostafrika, auch aus Russland. Von dort, so wird vermutet, könnten die falschen Banknoten im Zuge von Waffenkäufen nach Nordkorea gelangt sein. Japan unterhielt bisher die intensivsten Wirtschaftsbeziehungen zu Nordkorea. Die japanische Polizei hat in all den Jahren nie ein erhöhtes Aufkommen an „supernotes“ feststellen können, ganz im Gegenteil. Geheimdruckerei der CIA Und von der Polizei in Südkorea ist zu hören, dass die in Seoul tatsächlich mehrfach sichergestellten, namhaften Mengen von Dollar-Fälschungen aus Shenyang und Dadong stammen, chinesischen Städten an der Grenze zu Nordkorea. Die letzte Festnahme eines nordkoreanischen Diplomaten, der im Besitz größerer Mengen von „supernotes“ war, liegt nach Angaben von Südkoreas Polizei auch schon viele Jahre zurück. Amerikas Vorwurf an Nordkorea steht also auf wackeligen Füßen. Und das Pendel schlägt zurück: Vertreter der Hochsicherheits-Druckindustrie und Falschgeldfahnder fragen hinter vorgehaltener Hand schon lange, was eigentlich die amerikanische CIA in ihrer Geheimdruckerei druckt. In dieser Anlage, in einer namentlich bekannten Stadt nördlich von Washington, steht genau so eine Maschine, wie sie für die „supernote“ benötigt würde. Die CIA könnte sich mit den Blüten Geldmittel für verdeckte Operationen in internationalen Krisengebieten beschaffen, die keinerlei Kontrolle durch den amerikanischen Kongress unterliegen würden. Die Falschgeldaktion könnte man bequem dem Erzfeind in Pjöngjang anlasten. Angeblich „eindeutige Beweise“ Die „supernote“ hat anderthalb Jahrzehnte nur Falschgeldfahnder interessiert. Präsident George W. Bush hat sie dort weggeholt und zu einem Eckpfeiler seiner Politik auf der Koreanischen Halbinsel gemacht, indem er Pjöngjang erstmals offiziell beschuldigte. Washington verfügt angeblich über „eindeutige Beweise“, deren Offenlegung jedoch aus Sicherheitsgründen verweigert wird. Eine solche Veröffentlichung ist überfällig. Sonst könnte die Öffentlichkeit schnell Parallelen zum Irak-Konflikt im Jahr 2003 ziehen. Damals sprachen die Amerikaner von „eindeutigen Beweisen“ dafür, dass der Irak Massenvernichtungswaffen besitzt - und rechtfertigten so ihren Einmarsch. Nachher mussten sie einräumen, dass die vermeintlichen Beweise falsch waren. Klaus W. Bender schrieb „Geldmacher - das geheimste Gewerbe der Welt“, Verlag J. Wiley. Das Buch erschien 2005 in einer aktualisierten Fassung unter „Moneymakers, the secret world of banknote printing“, Verlag J. Wiley. Text: Frankfurter Allgemeine Sonntagszeitung Bildmaterial: AP
558 no image "6자회담, 지금이 아주 중요한 시점"<고위당국자>
정태욱
12492 2007-01-06
미국이 북한에 수교까지 제안하였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관련된 기사 두 개를 첨부합니다. "6자회담, 지금이 아주 중요한 시점"<고위당국자> "美, 6자회담서 9.19성명 이행 돌파구 될 제안 제시" "北, 실질적인 방안 갖고 회담에 나와야" (워싱턴=연합뉴스) 김병수 특파원 = 정부 고위 외교당국자는 4일 북핵 6자회담과 관련, "한미 양국은 지금이 아주 중요한 시점이라고 보고 있다"면서 6자회담에 대한 북한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답변을 촉구했다. 이 당국자는 이날 워싱턴특파원단과 가진 간담회에서 "미국은 지난 달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에서 2005년 합의된 9.19 공동성명 이행의 돌파구가 될 수 있는 제안을 북한에 내놓은 상태"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당시 제안은 북한 대표들이 평양과 교신을 해서 현지에서 대안을 제시하고 협상을 하기엔 어려운 수준이었다"면서 "북한 대표들이 본국에 가서 심도있게 논의하는 과정을 거쳐 돌파구를 만들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갖고 (회담에 다시)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실질적인 방안을 갖고 나오도록 상황을 조성하고 계속 `인게이지먼트(engagement.관여)'해 나간다는데 입장을 같이하고 있다"면서 "북한도 우리가 보이는 의지에 상응하는 자세로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3개월만에 재개된 6자회담에서 미국이 제시한 방안에 대해 "현재 진행중이고 (북한이) 나름대로 검토중이므로 공개할 수 없다"면서도 "(차기) 협상에 중요한 기초가 될 수 있는 제안"이라고 역설했다. 특히 그는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되거나 학자들의 얘기에서 완전히 벗어난, 기발한 새로운 것은 없다"면서 "많은 조치들을 어떻게 조합하고 순서를 매기느냐에서 여러 방안들이 창출된다"고 밝혀 미국의 제안이 9.19 공동성명 초기 이행대상 및 순서와 관련된 것임을 시사했다. 이 당국자는 한미동맹 문제와 관련, 지난 4년간 주한미군 조정 및 기지 재배치, 작전통제 이양문제 등을 추진해온 점을 상기시키며 "한미 양국은 진행중인 문제는 기존 합의대로 스케줄에 맞춰서 잘 이행해 나가는 게 중요한 과제라는 데 입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일각에서 한미동맹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제기하는 데 대해 주요현안을 처리해오는 과정에 "소리가 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릇이 부서지는 소리가 아니라 그릇을 두들겨서 난 소리"라면서 "한미간 합의된 실체에 문제가 없기 때문에 한미동맹 관계는 앞으로 잘 돼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당국자는 남북정상회담 개최 가능성과 관련, "문은 언제나 열려 있으나 (정부가)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어떤 디자인을 하고, (분위기를) 몰고가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최근 이재정 통일부장관이 북한 빈곤문제 해결을 언급한 것이 남북정상회담이나 6자회담에서 북한의 양보를 유도하기 위한 게 아니냐고 묻자 "특별히 어떤 일을 지향하기 위해 사전포석적으로 한 얘기는 아니라고 본다"면서 최근 정부내 외교안보 관련회의에서 북한 핵실험 이후 중단한 대북지원 문제를 재검토한 바도 없다고 덧붙였다. bingsoo@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7/01/05 14:07 송고 "미국, 작년말 베이징 6자회담때 북한에 국교수립등 제안했다" 지난해 12월 베이징에서 열린 북핵 6자회담 때 미국은 북한에 국교 수립, 종전 선언 등과 관련한 구체적인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외교 당국자는 4일 워싱턴특파원들과 만나 “지난해 12월 6자회담에서 미국이 현장에 있는 북측 대표단이 소화하기 어려운 제안을 했다”며 “상당히 포괄적이고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돌파구가 될 수 있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제안은 북한 대표들이 평양과 교신해서 현지에서 대안을 제시하고 협상을 하기엔 어려운 수준이었다”며 “북한 대표가 본국에서 이 제안을 심도 있게 논의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북미 간 국교 수립 등과 관련해 “9·19 공동성명에 국교 수립은 관계 정상화로, 종전선언은 관련국들이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라는 문구로 들어가 있다”며 이 같은 제안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그는 “북한이 현실적이고 돌파구를 만들 수 있는 방안을 가져오길 기대한다”며 “미국 측의 제안은 협상의 중요한 기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제안은 한국과 사전 조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 동결 해제 문제와 관련해 “지난해 3월 뉴욕 북미 회동에서는 북한 외교부 관계자(이근 외무성 미국국장)가 나왔지만 이번에 북한 은행 관계자가 나왔다는 것이 의미 있다”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있음을 암시했다. 그는 “베이징 회담에서 다 풀리지는 않았지만 서로 궁금증을 교환하면서 실질적 논의를 했다”면서 “법률적 문제가 있지만 미국이 필요하면 풀어주겠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북한 빈곤 문제 해결 발언을 남북 정상회담 개최와 연관시키는 데 대해 “문은 언제나 열려 있으나, 이를 성사하기 위해 어떤 디자인을 하고 몰고 가는 것은 없다”며 야당의 선거전략용 남북회담 의혹을 일축했다. 워싱턴=한용걸 특파원 icykarl@segye.com 2007.01.05 (금) 20:35
557 no image "美, 北기업 새 제재조치..6자회담 영향가능성"
정태욱
11999 2007-01-06
556 no image "北핵실험 동향 美로부터 못들어"<고위당국자>
정태욱
12713 2007-01-06
555 no image 미 네오콘, 동아시아에 나토를
정태욱
14818 2007-01-04
미 네오콘들의 한반도 정책은 아마도 대 중국 정책을 떠나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래는 미국 네오콘들의 사이트인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기획(Project for the New American Century)'에서 퍼온 것인데요, 그 사이트( http://www.newamericancentury.org )의 동아시아 부분의 글들을 보면, 그들의 중국에 대한 관심과 경계가 얼마나 큰지 실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대북 정책에 대한 권고도 간혹 끼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인지도 모르지만, 미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은 그들의 동아시아 전략이라는 큰 틀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 글도 제목은 '아시아에 나토를'이라고 되어 있는데, 글의 시작은 흥미롭게도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PSI에 우리 남한이 참여하지 않기로 한 것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아시아에 나토와 같은 집단적(미국 중심의) 동맹체제가 구축되어 있다면, (거기에 한국은 당연히 참가하는 것이지요.) 과연 한국이 그렇게 거부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물음은 논리적으로는 앞뒤가 바뀐 것으로, 사실은 한국의 PSI참여의 거부가 동아시아에서 나토와 같은 미국 중심의 집단안보체제가 형성되기 어려운 사정을 방증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여튼 이번 글은 미 네오콘들의 대중국 정책, 대한반도 정책이 어디에서 어떻게 나오고 있는지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네오콘들에게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부수적인 일일 따름이며, 그들은 중국에 맞서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에 진력하고 있고, 한반도 정책은 그러한 구상의 일부분이라는 것이지요. 사실 6.25 전쟁도 시작은 내전이었지만 결국은 미국과 중국의 전쟁이 되어 버렸지요. 그리고 그 전쟁이 지금까지 단지 '정전상태'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구요... 북한 문제도 6자회담이 잘되어 북한을 무장해제시키면 북한까지 미국 중심의 블록으로 가담시킬 수 있는 것이고(최소한 중국의 세력권을 축소하는 의미는 있을 것이지요), 6자회담이 안되어도 북한위협론을 빌미로 동아시아에 그와 같은 안보블록을 형성하는 데에 이익이 있을 것입니다. 6자회담에서 북한 문제를 중국에 맡긴 것도 그와 같은 심산이 깔려 있는 듯합니다. 즉 중국이 문제를 아주 잘 해결하여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개혁개방에 나서면, 북한은 결국 중국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이고, 중국이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하면, 이는 북한의 핵무장의 강화를 뜻하는데, 이는 동아시아에 미국 중심의 군사적 결속을 강화할 수 있는 빌미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A NATO for Asia Helping South Korea despite itself. Ellen Bork & Gary Schmitt Weekly Standard December 11, 2006 A bit of history comes to mind in the wake of South Korean president Roh's refusal delivered at the recent APEC summit in Hanoi to sign up as a full participant in the 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the U.S.-led effort to prevent North Korea from trafficking in weapons of mass destruction. In November 1983, the West German parliament voted to approve the deployment on German soil of medium-range Pershing II missiles as a deterrent to the Soviet Union's SS-20s. The Bundestag's approval, on a relatively close vote, came despite large antimissile demonstrations and broad public support for continued negotiations with the Soviet Union. Both Chancellor Helmut Kohl and former chancellor Helmut Schmidt strongly supported the deployment. To be sure, in advance of the vote, Schmidt criticized the Reagan administration's "missionary ideological course" and defended dialogue with Moscow--but he then implored his party to "force themselves to be rational" and support deployment. The Social Democrats "cannot influence anyone to reason and moderation if the Soviet Union can exploit our actions and at the same time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 feel they have been left in the lurch," he argued. Even allowing for his criticisms of the United States, Schmidt felt strongly about his country's mutual security obligations as a member of NATO and the difference between the totalitarian state on his border and the democratic friend that deterred it. The same cannot be said of South Korea. In recent years, despite the tens of thousands of American troops there and the U.S. commitment to help defend it, South Korea has reacted to North Korea's nuclear program, missile tests, and grotesque human rights abuses with little concern for U.S. policy initiatives either toward North Korea or the security of the region. Now, South Korea's refusal to participate in the 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raises the question: Would Seoul behave differently if Asia, like Europe, had a regional security organization committed to the survival of freedom and democracy? Currently, our Asian security arrangements run along bilateral lines from regional capitals to Washington. For decades, the conventional wisdom has been that this "hub and spokes" structure works well enough and that the multilateral system that has safeguarded Europe's security for decades would not work in Asia. Speaking of the applicability of a NATO-like organization for the region in 2002, then Deputy Defense Secretary Paul Wolfowitz said, "East Asia's a very, very different situation [from Europe], where the diversity of countries, the diversity of interests doesn't call for that kind of structure." Asia's supposed "diversity of interests" generally refers to lingering anger over Japan's wartime aggression and brutality. Certainly, visits to the Yasukuni war shrine by Japanese leaders have hardly helped put those animosities to rest; indeed, they have given Beijing, in particular, a tool to stoke anti-Japanese fires throughout the region. Moreover, when NATO was being built, its core consisted of democracies like Great Britain, France, and West Germany. In contrast, Washington's key Asian allies at the time were more of a mixed lot: defeated Japan and democratic Australia on the one hand, authoritarian South Korea and the Republic of China on the other. The situation of course has changed since them. A wave of democratization that began in the 1980s swept up the Philippines, South Korea, and Taiwan. Indonesia has joined the democratic club as well. New security problems have also emerged. In addition to the nuclear and missile threat posed by North Korea, China's economic growth has enabled it to develop a military capacity that now not only threatens Taiwan but is of growing concern to Japan and East Asia as a whole. None of these momentous changes is reflected in Asia's multilateral organizations, which downplay the importance of democratic principles and emphasize trade and talk instead. Not surprisingly, Washington's efforts to have these organizations take on security roles are so far largely unproductive. In the meantime, China has begun to assert a regional leadership role which increasingly comes at the expense of the United States. The objection that Asia's past is an obstacle to updating the region's security arrangements misses the point. In fact, tension between Japan and other countries in the region--especially in light of Tokyo's desire to revise its pacifist constitution and take on a greater role in global security affairs--can be best managed by enmeshing Japan in a multilateral alliance of democracies. Other problems would also be best solved within such a framework. For example, the incentives and constraints of an alliance structure could help Indonesia to transform its military into a transparent, humane force under civilian control. Much in the manner of NATO (and the European Union of recent years), such an alliance would serve as a magnet to countries that have not yet democratized and could help to prevent backsliding in those that have, be they Thailand or the Philippines. The historical parallels between West Germany in the 1980s and South Korea today are striking: Both had a population divided between a ruthless totalitarian system and a free, democratic society; anti-American sentiment runs strong in both, especially among the young. Both also have leaders who must strike a difficult balance between their publics and their international obligations. The major difference may be that one belonged to an alliance committed to safeguarding a free society with the help of its loyal friends, while the other sees its alliance with the United States as serving little more than a set of interests narrowly conceived. Ellen Bork is deputy executive director of the Project for the New American Century and Gary Schmitt is a resident scholar at the American Enterprise Institute. http://www.newamericancentury.org/asia-2006121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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