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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비정규대책법안에 대한 우리의 입장


정부는 지난 10일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한다면서 그동안 숨겨놓고 있던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을 전격 공개하고 올해 정기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법안들의 골자는 현재 26개 업종으로 제한되어 있는 파견노동 허용범위를 무제한 확대하고 사용기간도 2년에서 3년으로 확대하며 동일 업무에 대한 파견노동자의 사용을 3개월의 휴지기간만 거치면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1년으로 제한되어 있는 기간제 노동의 사용기간을 3년까지 연장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대신 3개월의 휴지기간을 지키지 않고 파견근로자를 계속하여 3년 이상 사용하거나 극히 제한적이지만 금지업무에 사용할 경우에는 근로자를 직접 고용할 의무를 설정하였다. 기간제의 경우에는 3년을 초과하여 계속 사용할 경우에는 계약기간의 만료만을 이유로 해고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과 불법파견에 대하여는 처벌을 강화하고 노동위원회를 통한 차별시정절차를 새로이 도입하였다.

이 같은 비정규대책에 대하여 정부는 비정규직의 사용은 대폭 확대하지만 그 대신 남용을 규제하고 차별을 개선하면 비정규직의 임금 등이 올라가거나 궁극적으로는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정부의 낙관론에 대하여는 깊은 우려와 함께 대책의 진실성에 대하여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파견법제정 당시부터 파견노동자의 고용불안정과 비인간적인 차별대우는 예정되어 있었고 온갖 불법․편법이 난무하리라는 것도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현행법에도 차별을 해서는 안된다는 법규정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2년 이상 사용하면 직접고용으로 간주한다는 조항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항들은 남용을 규제하고 차별을 해소하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2년이 되기 전에 다른 파견노동자로 대체되거나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등 기간제고용과 파견노동은 서로 대체역할을 하면서 비정규직 고용을 양산하였다.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불안은 더욱 심화되었고 노동3권은 사실상 박탈당했으며 심지어 같은 노동자인 정규직으로부터도 극심한 모멸과 멸시를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비인간적인 상황까지 초래되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비정규직노동자가 차별철폐를 외치며 죽음으로 항의하는 비극적인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정부는 이번 대책안으로 남용을 규제하고 차별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인간적인 차별은 근본적으로 기간제와 간접고용이라는 비인간적인 고용형태 그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다. 차별의 유지와 확대가 비정규직 사용의 목적이자 의도임에도 그 원인은 방치하면서, 아니 더욱 부채질하면서 차별의 결과에만 대처하겠다는 정부의 대책에 대해서는 그 능력뿐만 아니라 의지에 대해서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고용불안정이 곧 차별의 출발점이자 노동통제의 수단이며 기업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동안 만연한 불법파견마저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던 정부가 차별시정절차를 통하여 이를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 진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법에 의한 차별의 규제라는 것이 법리적으로도 여러 가지 곤란한 문제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도 힘든 일인가는 정부도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기업들은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함으로써 차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비교대상 자체를 없애는 인사정책을 통하여 얼마든지 차별시비의 법적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 해도 노동위원회를 통한 차별의 시정절차는 결국은 노동자가 직장을 떠날 각오하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는 제도이기 때문에(계약기간의 만료나 파견계약의 해지로 인하여)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역시 의문스럽다. 이는 남녀고용평등법의 제정과 운영과정에서 보듯이 이 법이 제정된 지 십수년이 지났지만 차별해소는 여전히 요원한 과제로 남아있다는 점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또한 남용을 규제한다면서 현행법상 불법을 합법으로 다 만들어놓고 불법을 규제하겠다는 것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거니와 비록 3년 이상 사용하면 직접 고용하도록 하고 있다지만(근로계약관계의 간주가 아니라 단지 고용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음) 3년이 지나기 전에 다른 기간제 고용으로 대체하거나 아니면 3개월만 임시직을 쓰다가 다시 파견으로 사용하는 일도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다(기간제고용의 경우에는 이러한 휴지기간이 없다는 점을 주목하라). 차별을 개선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은 별 실효성 없는 대책일 뿐이고 비정규직만 양산할 것이라는 판단도 바로 이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양산은 너무나도 명백하지만 차별개선책은 실효성이 의심되니 정부의 대책안은 결국 임시미봉책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편 비정규직이 이미 우리 노동시장에서 중요한 고용형태로 자리잡고 있다거나 또는 세계적인 추세로서 선진국에서는 고용창출, 실업대책 차원에서 적절한 보호를 병행하여 활성화해 나가는 경향이라는 정부의 인식도 매우 그릇된 것이다. 선진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허술한 직업안정체계나 사회보장․사회복지 등 사회안전망이 결여된 우리의 경우에는 비정규직 확산의 폐해란 훨씬 더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부실한 실업보호제도, 과다한 의료비와 높은 주거비용, 생계를 위협하는 사교육비 등 전반적으로 낮은 사회복지수준 때문에 자신의 개인소득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조건하에서 안정적인 일자리와 근로조건의 보장은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이다. 이러한 점들은 무시한 채 선진국 운운하며 무비판적으로 비정규직의 확산은 방치하고 차별만 개선하면 된다는 식의 발상은 너무나도 형식논리적인 탁상공론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정부가 유념해야 할 것은 차별해소의 핵심이 노동자간의 차별 즉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차별에만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 소득 상위계층과 노동자간에 지속적으로 벌어져 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불평등구조의 심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번 정부의 대책은 정규직을 비정규직화 함으로써 노동자간의 차별을 줄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는 하향적 평준화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빈곤의 일반화와 고착화이며 따라서 정작 중요한 것은 사회 전체 차원의 불평등구조의 개선과 인간다운 삶의 질의 회복이다. 우리는 정부의 이번 비정규직 대책이 정규직 노동자 아래 비정규직을 두고 그 아래 다시 외국인 노동자를 배치하여 이들을 서로 차별화함으로써 노동자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하고 경쟁심을 유발시켜 서로 반목하게 함으로써 노동자들 사이에 연대의식을 파괴하는 반사회적인 조처라고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 번 정부의 대책안은 비정규직의 양산과 그들의 고통을 담보로 경영진과 소수 지배주주의 배를 불리려는 자본의 전략에 실효성있는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적 노동에 대한 공정한 가치판단과 보상의 균형을 실현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할 것을 정부에게 요구한다. 소득과 지위의 공정한 분배는 사회적 연대의 바탕이고 사회정의의 지표이다. 사회적 연대와 정의에 기초한 생존권의 보장 없이는 경제회복도 안정적인 삶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정부나 기업이 노동유연화와 인건비절감을 통한 경쟁이란 주술에 빠져있는 한 비정규직의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고용안정을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일에 보다 더 관심을 갖는 것이 제대로 된 방향일 것이다. 정부는 저임금 비정규직을 양산하여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정책을 중지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억압하고 불평등 구조를 고착화하는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일에 보다 앞장서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기득권층의 눈치만 살피면서 대다수 국민을 분열시키고 사회적 불평등을 고착화하며 사회적 약자들의 희망을 송두리째 빼앗아 갈 비정규직보호대책법안을 즉각 철회하고 보다 근본적으로 문제해결에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


2004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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