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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교수 사건은 대학, 학회, 교육부, 사법기관의

집단적 이기주의, 무사안일주의의 결과이다.


김명호 교수 사건이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좀 더 엄밀한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판결을 이유로 법관에게 위해를 가한 김명호 교수의 행위 자체를 옹호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이 사건을 대하는 책임있는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사태를 낳게 한 근본적 요인을 찾기보다 지나친 예단과 기득권 옹호에만  집착하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 사건은 근본적으로 불합리한 재임용제도에 의해 초래된 것이며, 그 이면에 대학과 교육부, 학회, 그리고 사법기관의  이기주의와 무사안일한 태도가 자리잡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김명호 교수 사건의 출발은 10여 년 전 입시에 출제된 수학문제 오류에 대한 지적으로부터 출발한다. 그 결과 김교수는 대학으로부터 재임용 탈락이라는 극단적 선고를 받았고, 사법부는 유신체제하에 만들어진 교수재임용제도와 그를 옹호한 1987년의 판례에 따라 대학당국의 손을 들어주었다.

 따지고 보면 오늘의 이러한 사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되었던 것이다. 1975년 교수재임용제가 도입된 이래 수백명의 교수가 교육이나 연구 능력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되었지만 법원은 어떠한 법적 구제 조치도 부인해 왔기 때문이다. 그나마 2003년 2월 교수재임용제를 규정한 사립학교법 조항에 대하여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하고 2005년 사립학교법 개정과 재임용탈락교원구제특별법이 제정이 이루어지면서 억울하게 지위를 잃은 교수들에 대해 구제의 길이 열리는 듯하였으나, 헌법재판소가 구제특별법에 대해 다시 위헌결정을 내림으로써 재임용탈락교원의 법적 구제 전망은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

 우리는 특히 이번 고등법원의 판결에 대해 다음 두 가지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첫째, 2005년에 개정된 사립학교법의 적용범위를 극히 좁게 한정함으로써 헌법불합치결정 이후 또는 사립학교법 개정 이후에 제기된 재임용거부무효확인소송 등에는 구법이 적용되는 것으로 본 점이다. 김명호 교수에 대한 재임용거부결정 역시 이런 논리를 근거로 무효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

따라서 구법하에서 부당하게 재임용을 거부당했지만 헌법불합치결정 이전에 이미 판결이 확정되었거나 또는 헌법불합치결정이나 사립학교법 개정 이후 소송을 제기한 경우에는 구법이 적용된다고 함으로써, 결국 구법하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부당한 재임용탈락에 대한 구제의 길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이번 고법 판결은 김명호 교수 한사람만 아니라 부당한 재임용탈락으로 해직된 교수 전체에 대하여 매우 심각한 우려를 제기하는 판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재임용탈락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대학교원으로서의 자질을 문제 삼음으로써 주관적 사유를 이유로 한 대학교원 신분 박탈을 합리화시켜줄 우려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고법의 판결문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김명호 교수의 동료교수나 학생에 대한 발언, 성적평가, 수업시간 등 근무상황 등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사항은, 만약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이를 교원 신분을 박탈하는 사유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사유의 인정에는 주관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매우 크다는 점에서, 설사 고법과 같이 이 사건에 구 사립학교법이 적용된다는 입장에 서더라도 재임용탈락의 근거로서 이와 같은 주관적 사유를 법원이 매우 적극적으로 인정한 것은 사실상 개정 사립학교법의 정신을 부정한 것이며, 나아가 헌법이 정하는 교원지위법률주의에 반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 고법은 김 교수 과목의 수강생 중 많은 학생이 수강철회를 하였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으나, 학점을 엄격하게 평가하는 교수의 과목에 대하여 많은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하지 않거나 수강신청 후 철회를 하는 것은 어느 대학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고법의 판단은 학생들이 수강철회를 하지 않도록 학점을 후하게 주지 않으면 교수자격이 없다는 뜻인가?

  또한 고법은 1주일에 2-4회 출근, 2시 이후 출근, 표지판을 ‘교내’로 해 둔 점, 수업시간이 오후에 편중된 점, 한 학기에 10학점 이상 강의하지 않은 점 등을 문제 삼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대학교원의 특성상 수업과 학생 면담 등의 특별한 일정이 없는 경우에는 출퇴근이 자유로우며, 교수의 수업시수와 강의시간은 학과회의를 통하여 결정되는 것으로 교수의 근무성실성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점은 대학사회에서 상식에 속하는 것이다. 더구나 교수가 한 학기에 10학점 이상 강의를 하는 것은 교수 개인으로 보나 학생 교육의 입장에서나 가급적 지양해야 될 일인데, 고법이 마치 강의를 많이 해야 훌륭한 교원인 것처럼 판시한 것은 이 판결이 대학교육의 기본에 대한 인식조차 결여된 상태에서 내려진 매우 조악한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물론 대학교수가 연구뿐만 아니라 교원으로서의 자질도 높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이 대학교수가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는데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다. 대학교육은 법률상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데, 대학에서 인성교육의 의무까지 대학교수가 져야한다면 아인슈타인인들 대학교수로서 자리를 보전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재임용제도가 대학이나 재단이 자신을 반대하는 교수를 억압하는 제도로 활용해왔던 점을 상기할 때 객관적인 기준보다는 자의성이 개제될 위험성이 큰 자질이나 태도를 교원의 자격을 박탈하는 기준으로 삼는다면 누가 정의의 편에 서서 양심적인 학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결과는 지성의 요람인 대학에서 비판정신의 실종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정의 실현의 사명을 가진 법원으로서는 정의에 편에 서서 이런 구태가 청산되도록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어야 함에도 정반대로 이와 같은 비판정신의 억압을 법원이 정당화준 사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학계 역시 김교수 사건의 본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애초 사건의 발단이 된 수학문제의 오류와 관련해서는 김교수의 재임용탈락 당시 전국 44개 대학의 수학과 교수 1백89명이 “김교수의 문제제기가 옳으며 이에 대한 갈등이 인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잘못”이라는 의견을 보인 바 있다. 그러나 재임용탈락 소송과정에서 재판부의 의견요청에도 불구하고 수학 학회가 침묵을 지킴으로써 학문적 판단을 유보했다. 이에 대해 세계 수학계의 거장들도 한국 수학계의 자정을 촉구한 바 있다. 오늘날 학계는 학자의 양심이나 학문의 진리보다도 파벌과 출신학교의 인맥으로 오염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수학 학계는 학문의 진리 편에 서서 양심적인 의견을 표명했어야 했다. 오류를 인정하고 시정하기 보다는 적당히 덮어두고 넘어가는 것을 최선이라고 여긴다면 관련 학회와 학자들은 집단적 이기주의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아울러 잘못을 아니라고 말하는 학자의 양심에 재임용탈락이라는 칼을 들이댄 당해 대학도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더구나 이것은 교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입시생의 인생이 달려있는 문제였다. 대학이 진리를 수호하고 양심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오늘날의 대학위기는 대학 스스로가 자초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나아가 대학의 관리감독 기관으로서 학교당국의 잘못된 행위들을 방관해 왔던 교육부도 뼈아픈 자기반성과 함께 적절한 제도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애초에 잘못된 재임용 제도를 만들고 그 제도가 최악의 방식으로 운영되도록 방조한 것도 교육부가 아니었던가?

  김교수 사건의 본질은 이와 같은 학계와 대학, 교육부에 만연한 집단적 이기주의와 보신주의의 결과이다. 합리성과 이성이 올바르게 작동했다면 이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차제에 학계, 대학과 교육당국은 집단 보신주의와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엄중한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

  아울러 사법부의 자기성찰과 신중한 태도도 요구된다. 사법부는 ‘법관테러’를 빌미로 사법부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만 이 사건을 보지 말기 바란다. ‘디케의 저울’로 상징되는 사법부의 기능은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 직후 “김명호 교수를 설득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거쳐 판결문을 작성하였는데... 회의에 빠진다”거나, “판결문도 읽어보지 않고 동정론을 편다”라는 사법부의 대응은 참으로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이처럼 사법부가 애초 사건의 발단이 된 본질은 외면한 채, 법관보호에 우선하거나 사법부의 권위 지키기에 치중한다면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기 어렵다. 이제라도 사법부는 스스로의 판단이 정의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고 국민이 왜 불신하는지 먼저 반성하고 사법부의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법원이 재임용제와 관련하여 권위를 인정받고 신뢰를 획득하는 방법은 아직 남아있다. 대법원이 나서서 헌법불합치결정의 소급효를 법개정 이전에 재임용탈락을 당한 모든 사건에 대하여 인정하고, 현행 사립학교법을 위반하여 이루어진 모든 재임용거부를 무효화하고 교원들을 복직시킬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길 바란다. 사법부는 또 하나의 집단 보신주의 보다는 억울한 이들의 인권개선에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


                                                            2007년 1월 22일 

                                                       학 술 단 체 협 의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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