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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안 발의에 대한 입장

 

 

지난 2017년부터 개헌 논의가 본격화하였다. 올해 대통령 신년사에서는 대통령이 개헌안을 직접 발의할 것임을 시사했고,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는 313일 자문안을 보고할 예정이다.

 

현재의 정치지형 및 대통령의 의지를 고려할 때 개헌안 발의는 가능할 것이나 지금까지의 절차와 논의 내용에 대하여 우리 민주주주의법학연구회는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슬란드나 아일랜드와 같이 시민참여형 헌법개정까지는 아니더라도 개헌 논의 과정에서 실질적인 국민 의견수렴은 없었다. 국회 개헌특위 차원의 10여 차례 토론회로 의견수렴이 충분했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지난 2017년 한 해 동안 지속되었던 개헌특위도 기성 정치권 그들만의 답답한 리그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자유한국당은 1년 내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만을 들먹였고, 집권여당은 제대로 된 정치적 리더쉽을 보이지 못한 채 개헌안을 성안하지 못했다. 개헌의 주도권을 대통령에게 넘긴 것은 필연적 귀결이었다.

개헌특위 자문위원회의 활동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이다. 애초 구성부터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이루어졌다. 특위가 자문위원 공개모집을 결정한 2017117일 당일부터 단 5일간만 위원을 추천받은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296명의 후보자 중 53명을 선정한 과정도 불투명했다. 특히 개헌 내용 중 가장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되던 정부형태분과의 한 위원이 사퇴하는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자문위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도 자연스럽지 못했다. 자문위원들이 여러 차례 특위에 자문위의 위상과 의견 반영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했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개헌 의견 수렴까지 기대한 점은 처음부터 과욕이었을 것이다.

 

결국 지금까지의 개헌 논의와 과정은 최소한 절차적으로 미흡하고 성급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 개헌안 발의도 613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에 부치기 위해서는 20일 이상의 필수 공고 기간 등을 제외하면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다. 국회의 지지부진한 개헌논의 때문에 불가피하다고 하나 제대로 된 의견수렴을 위해서는 너무나 촉박한 기간인 것이다.

 

물론 단순히 헌법 규정을 바꾸는 것만으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러한 헌법물신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그럼에도 헌법의 변화는 그 자체로 작지 않은 변화이다. 우리는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전세계적으로 기성 정치권이 민의를 제대로 수렴하지 못하면서 기형적인 혹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은 전자의 사례일 것이다. 최근 이탈리아에서는 좌우로 나뉜 기성 정치체제에 대한 반감을 기반으로 탄생한 반체제정당인 오성운동이 월 780유로(103만원)의 기본소득 등의 공약으로 단일 정당으로는 가장 많은 3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현재의 기득권 정치세력은 국민들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지난 촛불 정국부터 지금의 미투 현상까지 현재의 제도와 시스템은 이러한 상황을 감당하기 버겁다. 이러한 상황 변화에 대한 대처는 기존 헌법 질서에 대한 재고를 필요로 한다. 정권의 교체를 넘어 헌정에 대한 교체가 필요하다. 즉 지금 필요한 것은 제헌 수준의 개헌이다.

 

이에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개헌안 발의에 앞서 사회 전영역의 민주주의 강화라는 기조의 개헌 원칙을 강조한다. 기성 정치권에 개별 헌법 규정을 제안하는 것은 소귀에 경 읽기일 뿐이다. 우리는 제안하고 그들만이 취사선택하는 과정도 잘못이다. 촛불 정국에서 국민들이 분명히 보여주었던 민주주의를 헌법에 전면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본방향을 제시한다.

 

첫째, 헌법전문에 촛불의 정신을 분명히 담아야 한다. 개헌특위의 몇몇 위원뿐 아니라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의 위원장조차 촛불항쟁현 시점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면서 헌법전문 포함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물론 한 사건에 대하여 긴 시간을 두고 평가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특위와 자문위 모두 6·10 민주항쟁을 전문에 포함시키자는 것이 다수의견인 마당에 촛불항쟁은 그에 미치지 못한단 말인가? 더구나 헌법은 정치적 문서이기도 하다.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개헌이 논의되는 현 상황이 과연 어디서부터 출발했는가? 촛불의 민주주의 정신을 담지 않은 새 개헌안은 주객이 전도된 격이다.

 

둘째, 유신헌법의 잔재라 할 수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규정을 삭제해야 한다. 우리 헌법은 민주주의에 관한 다양한 표현을 담고 있다. 다양한 목적과 표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원리가 우리 헌법의 중요한 원리 중 하나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그 내용이 명확히 무엇인지 불분명하여 오히려 헌법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통상 자유민주주의라 하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정치원리로서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를 의미한다. 그러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이와는 상관없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냉전체제가 구축되면서 등장한 것으로, ‘자유의 적에게 자유는 없다고 하는 전투적 민주주의의 다른 말일 뿐이다. 그 결과는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 광풍이나 독일의 사회주의국가당과 독일공산당 해산 등 반대세력 탄압이었다.

전체주의를 반대한다는 반()전체주의를 취한다고 하면서 전체주의가 가지는 위험을 고스란히 만들어 낸 것이다. 1972년 개헌 과정에서 유신세력들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헌법에 끼워 넣은 까닭과 1980년 신군부 등장 이후 민주화세력에 대한 탄압논리로 이를 들이댔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역설적으로 시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탄압하고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도구였다. 따라서 이를 삭제해야만 진정으로 자유가 보장되고 민주주의가 강화될 수 있다. 헌법에 기술된 다양한 민주주의를 정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할 것이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풍부해질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를 헌법으로 포용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셋째, 민주적 기본권 보장에 힘써야 한다. 현행 헌법을 포함하여 이제까지의 대한민국 헌법 어디에도 자본주의를 규정하거나 우리 헌법질서가 자본주의 헌법질서임을 선언한 적은 없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뿐만 아니라 상당수 학자들도 우리가 자본주의 헌법을 채택한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이는 사유재산권과 자본, 영업의 자유를 마치 제1의 기본권인 것처럼 왜곡하는 경향을 만들고 있다.

소유권은 기본권 목록 중 하나일 뿐이다. 소유권과 자본을 앞세우는 곳에서 민주주의는 정체된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너무 많이 목격해 오지 않았는가? 우리 사회에는 더 많은 민주주의와 이를 보장하는 기본권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하여 우선 민주주의의 주체들을 확실히 세워야 한다. 여성, 청소년, 사회경제적 약자 등의 소수자 뿐 아니라 외국인조차도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배제하지 않는 사회여야 한다. 더 많은 표현의 자유,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통하여 억눌리지 않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그에 대하여 토론하고, 의견을 모아야 한다. 타인을 순전히 혐오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우리 사회의 표현의 자유는 더욱 신장되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참정권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 현행 헌법은 이전과 달리 선거권 연령을 헌법이 아닌 법률에서 정하도록 하고 있으나 선거 시기마다 그것이 정치권의 정쟁 사안이 된다면, 아예 헌법에 규정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그 경우 연령을 가급적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치 교육, 민주시민교육은 선거권을 직접 행사하는 경우에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민주적 기본권 신장을 위하여 저변의 사회권도 강화해야 한다. 사회권이 소위 프로그램적 규정이라는 식의 폄하는 이제 사라질 때가 되었다. 사회권도 지켜져야 할 기본권이며, 사회권을 통하여 국민들 삶의 기반이 안정될 때 민주주의도 한층 견고해진다. 특히 사회권에 대한 접근을 정부가 주고 국민은 받기만 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제는 사회권에 대한 참여와 설계에 주권자 스스로가 나설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넷째, 기성 정치권이 추진 중인 권력구조 개편은 그것이 대통령 중임제나 이원집정부제인가 내각제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주권자의 관여 가능성을 차단한 그들만의 권력구조 논의를 단호히 거부하며, 개헌특위가 국민발안 등 직접민주적 제도에 반대했던 작년 논의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권력구조 개편은 그 기저에 국민소환제 등의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전제해야 한다. 지금은 대의제로 일반국민의 정치참여를 막는 18세기가 아니다. 대의제는 국민을 대표하는 한 가지 제도적 장치일 뿐이다. 국민 대표의 무기속 위임은 그들의 부당한 특권을 제한하는 조건 위에서만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기관은 철저하게 민주적으로 구성되어야 하며, 헌법이 그것을 법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특히 대의기구의 구성이 주권자들의 의사에 부합하도록 비례성 강화를 헌법적으로 보장하는 것도 검토하여야 한다. 승자독식의 구조를 해소하고 소수의 정치적 의사가 배제되지 않도록 선거제도의 방향을 헌법에 명시할 수도 있다고 본다.

또한 권력구조의 민주적 재편에서 빠뜨려서는 안 되는 것이 사법의 민주화이다. 사법권 독립이라는 이름 하에 수많은 불공정이 정당화되는 현상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보다 더한 대법원장의 제왕적지위와 권한을 정상화하여야 한다. 사법과정 역시 국민주권의 사각지대가 되지 않도록 배심제 등 국민의 재판 참여를 헌법 수준에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

이와 마찬가지 취지로 지방분권이 지역주민의 적극적 참여를 보장하는 형태로 헌법에 규정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요람이라는 지방자치가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정부에 이전하는 것에만 치중하여 지역 기득권자들의 이해관계를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부작용은 오직 지역주민들의 감시와 참여, 분권의 범위 확대로서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를 정치 영역에 한정하지 않고, 사회, 경제적 차원으로 확장하여야 한다. 민주주의가 원래 대의제 등의 정치 영역에 국한된다는 관념은 선입견이며, 현행 헌법도 경제민주화를 명시하고 있지 않은가? 대통령도 취임 후 강조했던 경제민주주의는 60-80년대에 스웨덴 총리를 역임했던 올로프 팔메가 이미 제시했던 정치민주화, 사회민주화, 경제민주화의 3단계 중 하나일 뿐이다. 민주주의의 범위는 선험적이지 않으며, 주권자가 결정해야 한다. 토지를 비롯한 여타 공공재적 재화에 대한 공개념까지도 사회적 대화를 통하여 주권자가 정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현재 최저임금, 노동시간 축소, 재벌개혁 등 지체된 정상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실질적인 성과만큼이나 경제 주체들 간의 대화와 이해, 타협의 과정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또 그러한 절차를 존중하는 것이 결국 장기적인 성과를 이룩하는 길이기도 하다. 민주노총이 최근에 참여를 결정한 노사정대표자 회의는 가능하다면 향후 헌법적 차원에서 제도화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현행 헌법에서 명시한 경제주체 간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는 보다 구체적이고, 구속력 있는 내용으로 개헌안에 제시하여야 한다.

 

개헌안을 설사 발의하더라도 그것의 통과 여부는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 국회의 의결부터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설사 개헌안을 통과시킨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실현 여부도 불투명하다. 87년 제정된 현행 헌법에서의 경제민주화가 다시 국민의 삶 속에서 실질적으로 회자되는 데까지 무려 20년이 넘게 지체되었음을 상기하여야 한다. 결국 헌법실천은 헌법적으로 각성한 시민들이 스스로를 적극적 주체로 인식하고 행동할 때 가능하다. 베네수엘라의 혁명은 길거리에 나선 시민들이 자그마한 헌법전을 손에 들고 흔들면서 이루어졌다. 궁극적으로 정치인이 아니라 나는 내가 대표한다는 기본 정신을 개헌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끊임없는 민주시민 교육, 정치교육, 헌법교육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그 교육은 박제화된 교육, 수동적인 교육이 아니라 삶의 현장이 곧 교육의 현장이 되는 교육이며, 이번 개헌 절차가 그러한 생생한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 우리 민주주의법학연구회도 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2018312

 

민 주 주 의 법 학 연 구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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