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한국어

토론 마당

로그인 후 자유로운 글쓰기가 가능한 게시판입니다.
이 게시판은 RSS와 엮인글이 가능합니다.
이 곳의 글은 최근에 변경된 순서로 정렬됩니다.
* 광고성 글은 바로 삭제되며, 민주주의법학연구회의 설립취지에 어긋나는 글은 삭제 또는 다른 게시판으로 이동될 수 있습니다.
* 관리자에게 글을 쓸 때, 옵션의 "비밀"을 선택하시면 관리자만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 글을 쓰실 때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주소지 등)이 유출되지 않도록 주의해주십시오
조회 수 : 14526
2000.10.25 (23:52:12)
김대통령이 영국 BBC와 회견하면서, 북한의 인권문제를 지금 거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 것을 가지고 다시 시비가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런 비난입니다. "자기야말로 내내 인권 얘기해 왔으면서도, 이제 와서는 인권을 접어두자고?"

그러나 이러한 비난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국(自國)에서의 인권개선의 요구와 타국(他國)에 대한 인권의 주장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북한은 이미 타국으로 보아야 합니다. 국제법상으로도 그렇고, 또 국가연합이니 연방이니 하는 남북관계의 진전을 도모함에 있어서도 그런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하여튼 이렇게 북한을 다른 독자적인 나라, 혹은 정부라고 할 때, 그 쪽에 대한 인권개선의 요청은 그 쪽의 주권을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북관계가 계속 변화하고 진전되면서, 앞으로 이 문제가 계속하여 불거져 나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기서 저는 국제관계에서 주권과 인권이라는 문제를 우선 일반적으로 고찰하여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만, 단순하게 다음과 같이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최근에 롤즈의 저서에서도 그렇고, 여러 사람들이 인권을 주권보다 기본적인 것으로 평가하는 입장을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아직 주권을 인권보다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권을 위하여 주권을 훼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또 다른 인권의 침해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현실적 국제관계에서 주권은 집단적인 인권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는 두 가지 차원에서 그렇습니다. 첫째는 주권이 흔들리게 되면, 그 나라는 전쟁 혹은 무질서의 위험에 처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주권의 훼손은 국민 개개인의 존엄의 훼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경우는 이런 것입니다. 즉 인권을 옹호한다고 타국의 주권을 침해하게 되면, 그 타국의 권력체계는 크게 동요하게 되고, 그것은 곧 전체 국민들의 안전판이 약화되는 결과를 의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한편으로는 국가의 공권력이 약화되면서 사회의 여러 분야의 이기적 폭력들이 발호할 수 있을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외부의 폭력 즉 다른 나라들의 무력적 간섭 혹은 침략에 대하여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울 것이란 얘기입니다. 물론 외부의 간섭이 정말로 올바르게 박애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런 우려는 하지 않아도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의 국제 역학관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권과 인권의 관계를 논의하면서 현실이 아니라 이상을 얘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타국에 대한 인권적 차원의 간섭은 비록 그 명분과 동기는 선한 것일지라도, 거기에는 피간섭국의 무력화와 관련된 많은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동기들이 개재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 째 경우는 이런 것입니다. 즉 국민의 인권을 옹호한다면서, 그 나라의 주권을 훼손하는 것은, 그 주권을 형성하고 있는 국민들 개개인의 주권자적 지위를 훼손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나라가 주권이 통일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한, 비록 인권의 측면에서 결핍을 보이고 있다고 하여도, 그 나라에 간섭하는 것은, 아무리 온정적인 것일지라도 피간섭국의 국민들 개개인의 자존감을 손상시키는 처사가 됩니다. 대외적 독립이라는 주권이 제약되면, 국민들 개개인의 정치적 자율성이 약화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피간섭국의 국민들이 일정한 대표성을 가지고 외부에 대하여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라면 사정은 달라질 것입니다. 이는 곧 그 나라의 주권의 통일성은 깨지고, 새로운 주권이 형성되는 과도적 상황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외부의 나라들은 이제 어떤 주권을 존중할 것인지의 선택의 문제를 맞게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상황에서 인권은 중요한 척도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는 앞서 말한 두 가지 우려도 해당사항이 없을 것입니다.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