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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교수님의 법과 예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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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톨스토이

톨스토이와 법


톨스토이는 여전히 읽히고 있고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있다. 오늘 우리들에게 톨스토이는 무엇인가? 고리키는 그를 시대를 초월하는 <불사(不死)의 사람>으로 불렀으나 오늘의 우리에게 그는 과연 누구인가? 토마스 만은 괴테와 함께 톨스토이가 자연아로서의 거대함, 귀족으로서의 우아함을 갖는다고 했으나, 이 땅의 우리에게는 과연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일까?

교과서나 문학사는 그를 위대한 예술가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나 문학이나 러시아에 대해 특별히 아는 것이 없는 보통 사람들에게 그는 과연 누구인가? 도서관이나 서점에 그의 여러 책들이 여전히 꽂혀 있고 가정의 서재에서도 그의 책들을 볼 수 있다고 해서 그가 우리에게도 여전히 살아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는가? 그의 소설이 대부분 영화화되기도 했으나, 그것은 우리에게 과연 얼마나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일까?

젊은 시절, 나는 톨스토이를 집어 던진 적이 있다. 내가 톨스토이를 오해하고(?) 별로 열심히 읽지 않은 이유는 이광수가 그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고 하여 톨스토이 = 이광수, 『부활』 = 『사랑』이라고 생각한 탓에도 있다. 그러나 좀더 나이들어 『부활』을 다시 읽게 되면서 황당한 사랑 얘기이기는커녕 가장 뛰어난 사회소설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젊은 학생들에게 열심히 권유해 왔으나 그들이 과연 그 길고 지루한 소설을 제대로 읽었는지는 의문이다. 역시 나이가 들어야 제대로 읽힐 것인가?

그러나 나의 톨스토이 발견은 사상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제대로 알고부터였다. 그의 대학시절 일기는 그가 작가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으나 심각한 자기관조와 사색의 길을 걸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법학도였던 그는 <역사란 우화와 무익한 잡사 그리고 불필요한 숫자의 산적과 고유명사의 나열 이외의 다른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나아가 대학이란 <학문의 화장터>라고 매도한다. <고향에 돌아갈 때 우리는 이 화장터로부터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인가?>라고 그는 물었다.

그를 법학도로 이끈 교수는 그에게 에카테리나 2세의 <훈령>과 그 기초가 된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을 비교하도록 했고, 그는 그것과 루소의 독서에 열중하기도 했으나, 결국은 <공부를 하기 위하여> 대학을 중퇴한다. 그후 자기교육, 자기검증, 교훈을 구하는 태도는 그의 일생을 지배한다.

그는 이미 1857년의 편지에서 정부를 부정하고 아나키를 최고의 이상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1856년의 『지주의 아침』에서 그는 소유권에 대한 회의를 표명했고, 1857년의 『루체른』에서는 사회의 관례와 풍습을 고발했다. 그리고 『코삭』에서는 허위의 문명생활에 대비하여 자연속의 노동을 찬양했다. 그리고 뒤의 『전쟁과 평화』에서도 등장인물인 플라톤 카라타에프를 통하여 민중적 기독교사상을 말했다.

쯔바이크Stefan Zweig는 현대의 가장 정열적인 아나키스트이자 반집산주의자가 톨스토이라고 했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아나키스트는 폭력주의자라고 생각하여 자신을 그렇게 부르는 것에 반대했다. 나는 톨스토이처럼 폭력주의를 아나키즘으로 보지는 않기 때문에 그를 아나키스트로 간주한다.  

톨스토이는 1857년에 프루동의 『재산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감동을 받아 <국가주의는 자유의 성장에 대한 유일한 장애다. 가장 좋은 이상은 아나키다>라고 썼다. 1862년 그는 프루동을 만나 교육에 대해 토론하고 깊은 인상을 받아 그 뒤에 프루동을 <우리 시대의 교육과 출판의 의의를 이해한 유일한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톨스토이는 바쿠닌을 칭찬하지 않았으나 바쿠닌 이상 가는 우상파괴자였다. 물론 바쿠닌과 달리 톨스토이는 도덕적 평화적 수단에 의한 사회와 정치라는 인위적 세계의 종말을 고대했다. 그러나 톨스토이 자신과 달리 민중운동을 위해 귀족적 특권을 포기한 크로포트킨을 새로운 실천적 인간상으로서 존경하여 그의 자서전을 찬양했고 『전원․공장․작업장』이 러시아 농업개혁의 길잡이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크로포트킨 역시 톨스토이를 존경했고 그의 상호부조 개념이 바로 톨스토이의 사랑이라고 말했다.

톨스토이는 젊은 시절 코카서스의 산악부족이나 코삭크족들과 사귀면서 소박한 자연생활을 배웠고 크리미아 전쟁에서 목격한 전쟁의 참상과 파리에서 본 비인간적인 사형집행을 통해 인간성을 모독하는 국가에 대해 환멸을 느꼈다. 당시 그는 <국가는 착취의 음모에 불과하고 그 대부분이 그 시민을 타락시킨다>고 썼다. 국가와 함께 그는 재산을 부정했다.

그는 재산은 지배를 위한 것이고 국가는 그 재산관계의 영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공동사회와 평화상태에서 지배없이 자유롭게 살려면 국가와 재산은 폐기되어야 한다. 그는 민중이 권력이 해주는 것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또한 그 간섭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자치생활을 하고 있다고 본다. 예컨대 노동조합과 협동조합 그리고 민중재판 등이다. 그는 국가와 법 그리고 재산이 폐지되고 협동생산이 행해지는 사회를 꿈꾸었다.

그런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톨스토이는 정치혁명이 아니라 이성에 의한 도덕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즉 국가의 폐지를 바란다면 국가에 협력하지 않고 병역, 경찰, 재판, 납세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복종의 거부는 당연히 비폭력적 무저항이어야 한다.  
  
흔히 톨스토이를 전기의 예술가와 후기의 종교인(또는 아나키스트)으로 나누어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두 가지 측면은 톨스토이 전 생애를 관통하는 긴장으로 끝없이 나타났다. 그의 작품은 그 어느 것이나 인공적 문명에 대한 거부와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진실된 것이라는 주제를 표현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파멸하는 안나 카레니나는 도시에 지배되고 도시의 부자연스러운 규범으로 타락하나, 시골 사람 레빈은 그 반대로 자연 속에서 진실을 발견한다.  
      
톨스토이는 자연과 함께 자유와 평등, 이성, 보편적 형제애, 반진보를 추구했다. 그는 러시아 민중의 평등주의를 군대 계급조직과 대비하여 찬양했고, 중앙집권적 통치기구의 도덕적 결함과 애국주의적 위장을 폭로했다. 그는 종교의 신비주의를 비난하고 신앙이 아닌 이성의 종교, 곧 인간화된 종교를 추구했다. 그는 유익한 기술적 진보를 신뢰했으나 기본적으로는 소박하고 금욕적이며 자급자족적인 생활을 찬양했다. 그는 소수를 위한 사치스러운 예술을 경멸했고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예술을 추구했다.

공동경제와 금욕생활 및 평화주의에 바탕한 톨스토이 공동체는 범세계적으로 시도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분명한 성과는 인도의 간디에 의한 것임은 물론이다. 간디는 톨스토이와 함께 쏘로우와 크로포트킨을 읽고 자신의 사상을 형성했다. 나는 아래에서 톨스토이의 만년 작품인 『부활』을 중심으로 하여 그가 특히 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톨스토이의 법에 대한 기본인식과 그 사회배경

아나키즘을 위법운동, 범법운동 정도로 생각하는 참으로 잘못된 경향이 있다. 아나키즘은 법을 비판하고 부정하나, 그 위반을 선동하지 않는다. 다른 아나키스트들과 같이 톨스토이는 법과 법률가에 반대했다. 법과 법률가에 대한 그의 투쟁은 『부활』을 비롯하여 『신의 나라는 네 속에 있다』(종교론), 『인생론』, 『현대의 노예제도』 등과 같은 글을 통하여 평생을 통하여 계속되었다.

그의 투쟁은 전제정치 하의 악법과 그것을 운용하는 법률가에 대한 투쟁이었으나, 기본적으로는 서구 국가체제의 특징인 법치주의의 허구에 대한 반항이었고, 나아가 국가와 법 일반에 대한 거부이기도 했다. 그는 법이란 극소수 권력자의 의사에 불과하고, 대다수의 민중은 법으로부터 아무런 이익도 얻을 수 없다고 보았다. 마찬가지로 법률가란 그 극소수 권력자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지 대다수 민중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31세에 집필한 『루체른』(1857년)에서 다음과 말했다.

사람은 법앞에 평등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모든 생활이 과연 법의 범위 내에서 영위되고 있는가? 법에 속하는 것은 그 천분의 1에 불과하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그 밖, 곧 사회의 풍습이나 사고방식에 의해 영위되고 있다.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누구도 방해하지 않으며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일로 투옥된 시민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 국가가 과연 자유로운 국가인가? 문명은 선이고 야만은 악이며, 자유는 선이고 노예상태는 악이라고 하는 환상의 지식이야말로 인간본성의 본능적인 그리고 가장 행복한 원시적인 선에의 욕구를 상실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당시 러시아 사회에서의 법이란 무엇이었는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19세기 러시아의 법과 사법은 당시 서구의 그것에 비해 현저히 후진적인 것이었는데, 그것은 러시아 사회가 후진적이어서가 아니라 법과 사법이 발전할 계기가 서구와 달리 없었기 때문이다. 곧 서구에서는 무도한 군주들이 법원의 정비를 통하여 귀족에 대한 지배권을 신장하려고 하는 가운데 법의 지배가 정착되었고, 로마법학자를 그 재판관으로 임용하여 로마법의 계수가 촉진되면서 법의 지배는 더욱 깊게 뿌리내렸다. 그러나 러시아황제는 비교적 일찍부터 귀족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하여 입법이나 사법의 제도화를 통하여 지배권을 확보할 필요가 없었다. 이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근대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세기 러시아에도 법과 법원이 있었으나 법에는 일관성도 없고, 사법제도에도 통일성이 없었다. 동양과 같이 러시아에서도 헌법, 민법, 형법 등이 구별되지 못했고  법의 공포라고 하는 관념조차 없어서 법이 있어도 사람들이 알 수 없었으므로 권력은 자의적으로 행정과 사법을 농단했다. 그리하여 러시아민중은 재판을 혐오하여, <법원 있는 곳에 부정 있다>, <법원에 가도 정의는 볼 수 없다>라는 속담이 생길 정도였다.

실제로 1864년의 사법개혁 이전에는 법원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고 오직 경찰이 전능한 존재로 군림했다. 19세기 유럽에는 어느 나라에서나 재판의 매수가 행해졌으나 러시아에서는 특히 심했다. 그러나 그러한 점도 당시의 관료들이 국가로부터 임금을 받지 못하고 민중으로부터 직접 돈을 받아야 했던 사정에서 비롯된 것이지 러시아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사악했던 탓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재판할 때 돈을 주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여기서 우리는 러시아에서는 일찍부터, 유럽보다 더 빨리 재판관 선거제가 실시되었고 그것은 사회주의혁명 이후에도 그대로 계승되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것이 실시된 이유는 사법의 민주주의라고 하는 이념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표트르 2세에 의해 국가적 근무로부터 해방된 지방귀족을 다시 제국사법에 투입하고자 하는 예카테리나 2세의 정책에 근거한 것이었다. 실제로 재판관으로 선출된 자는 대부분 그러한 귀족들이었다.

그러나 재판관의 지위는 행정관의 지위에 비해 현저히 낮았으므로 재판관으로 선출된 자가 여러 가지 핑계로 취임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고, 임금이 행정관보다 현저히 낮아서 수뢰의 관행은 여전히 유지되었다. 그래서 알렉산드르 2세가 실시한 1864년의 사법제도개혁시에는 치안판사만을 선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물론 실제로 선출된 자는 역시 지주나 부르주아 계급이었다.

1917년의 사회주의혁명 이후 재판관선거제는 당연한 것으로 제도화되었다. 그것은 제정시대 재판관의 타락을 방지하고 혁명기에 법률가들이 반동적인 태도를 취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으나 재판관선거제라는 러시아적 전통의 부활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재판관의 종신임기제를 부르주아적인 비민주적 제도라고 본 레닌의 생각이 중요한 동기였다고 할 수 있다(각주: 졸저, 비교법(이론과실천사, 1993), 221쪽 참조). 그리하여 소련에서는 모든 재판관이 선거로 선출되었다(1936년 소련헌법 제105-109조, 1977년 헌법 제152조).

한편 검찰관은 표트르대제가 국정개혁의 일환으로 창설한 것으로서 당초의 검찰관은 광범한 권한을 갖는 막강한 것이었다(각주: 졸저, 비교법 226쪽 참조). 1864년의 사법개혁에 의해 서구적인 검찰관으로 탈바꿈했으나, 여전히 귀족이나 특권계급이 검찰관직을 독점했고, 19세기 후반부터의 혁명운동 고양에 의해 다시금 절대적인 권력을 갖는 기관이 되었다. 그후 사회주의혁명기에 과거의 검찰국은 폐지되었으나, 새로이 생긴 검찰국은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또한 변호사는 제정러시아에서 오랫동안 천직으로 경멸받았으나 1864년의 사법개혁시에 프랑스제도를 모델로 한 변호사제도가 창설되었다. 당시 지주는 모두 변호사가 된다고 하는 식이어서 그 자격에 문제가 많아서 레닌은 자신이 변호사였으면서도 변호사를 <지적 무뢰한> 또는 <매춘부의 자식들>이라고 매도했다. 혁명후 레닌은 변호사선거제를 채용했으나 실제로는 과거의 변호사들이 대부분 변호사가 되었으므로 곧 공무원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들이 비능률적이라고 하는 이유에서 다시 자유업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권력분립이 일찍부터 확립되지 못하여 사법권의 독립이라고 하는 관념이 생기지 못했고, 직업법률가의 양성도 18세기말 모스크바대학에서만 겨우 시작되었으며, 법률서적도 19세기말에 와서야 발행되기 시작했다. 크리미아전쟁의 패배로 인한 위기의식에서 1864년, 서구제도를 모방하여 사법제도가 개혁되어 법원구성법, 형사소송법, 민사소송법, 치안판사가 선고하는 형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이에 따라 권력분립, 사법권의 독립, 재판관의 신분보장과 대우의 개선, 신분제법원의 폐지, 보통법원체계의 정비, 치안판사제도의 채택, 재판절차의 구두주의와 공개주의 및 배심제 채택 등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그 개혁이 러시아법의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고 곧 반동화되었다.

톨스토이의 반법 사상은 그러한 시대적 배경하에서 생겨났다. 그의 사상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민화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 민화에 나타나는 오판, 가혹한 형벌, 신앙과 용서, 선인이 범죄자보다 더 나쁠지도 모른다고 하는 사고방식은 법과 재판에 관한 톨스토이의 기본사상을 잘 보여준다.

젊은 상인 악쇼노프는 아무 죄도 없이 억울하게 태형을 받고 징역에 처해져 시베리아에서 26년을 보내었다. 그러나 언제나 신에게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열심히 성가를 불렀다. 죄수들은 그들 사이에 다툼이 있으면 언제나 악쇼노프에게 판단을 구했다. 그런데 26년이 다 되어가던 어느날 옥중에서 우연히 진범을 만나고부터는 가족과의 즐거웠던 나날과, 고통스러웠던 감옥에서의 생활을 생각하며 노구의 외로움과 진범에 대한 증오로 참을 수 없게 되었다. 밤을 새워 기도했으나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러다가 그는 진범의 탈옥미수를 알게 되었다. 경찰이 조사를 나왔을 때, 그는 진범에게 복수하고자 생각했으나, 끝내 그 사실을 밝히지는 않았다. 그 다음 날 밤, 진범은 악쇼노프를 찾아와서 무릎을 꿇고 울면서 용서를 구했다. 그도 울면서 <신이 당신을 용서할 것이요. 어쩌면 내가 당신보다 몇백배 더 나쁠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비로소 편안해 진 것을 느꼈다. 진범은 자수했다. 그런데 마침내 악쇼노프의 석방일이 찾아왔을 때 그는 이미 죽고 없었다.

톨스토이의 법률가에 관한 생각

죄없는 자를 벌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법의 원칙은 오판사건에서 곧잘 깨어진다. 톨스토이의 『부활』은 캬츄샤에 대한 오판사건을 다룬 것이다. 그것은 어려운 사건이 아니었으나 법률가들의 태만과 실수로 캬츄샤는 시베리아로 보내어진다. 『부활』에는 그 사건을 다룬 법률가들이 리얼하게 묘사되고 있다.

먼저 재판장은 키가 크고 희끗희끗한 볼수염을 기른 뚱뚱한 몸집의 사내이다. 아내가 있는 그였지만 그도, 그의 아내도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 그들은 서로 간섭하지 않기로 하고 있었다. 재판 당일, 그는 별장에서 어떤 여인과 밀회할 예정이었으므로 재판을 빨리 끝내고자 했다. 그는 캬츄샤의 무죄를 확신하면서도 애인과의 약속시간에 쫓겨 유죄판결을 내린다.

다음 배석판사 중 한 사람은 언제나 찌푸린 얼굴의 금테안경을 쓴 매우 소심한 남자로 그날 아침에도 낭비벽이 있는 아내와 돈문제로 언짢은 말다툼을 했다. 게다가 재판 시작 직전에 처남으로부터 아내가 저녁식사를 준비하지 않겠다고 하는 얘기를 들어서 그는 더욱 침울하다. 그는 여전히 기분이 나빠서 자신이 캬츄샤를 무죄로 하면 신문에서 떠들어대니까 절대로 무죄로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 한 사람의 배석판사는 언제나 지각을 하는 <턱수염이 더부룩하고 눈꼬리가 밑으로 쳐진 선량해 보이는 큼직한 눈을 가진> 남자로 위장병의 치료때문에 늦었다. 그는 모든 생활을 숫자로 점쳐보는 버릇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그를 언제나 사색하고 있는 것으로 오인하게 한다. 캬츄샤에 대해서도 점을 쳐서 무죄라고 하나 결국 유죄가 된다. 여하튼 <깃을 금실로 수놓은 법복을 입고 단상에 나타난 재판장과 판사들의 모습은 그곳의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느끼게 했다.>   위의 책, 41쪽.
실제로 판사는 주위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는 자기 목소리에 황홀해 했다.

톨스토이는 위와 같이 판사의 경우 조롱하는 것에 그쳤으나, 검찰관에 대해서는 우둔한 엘리트의식을 통렬하게 비난했다. 당시의 검찰관은 판사보다도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엘리트로 통했기 때문이다. 사건을 담당한 검사보는 어제밤, 친구의 송별회로 술을 많이 마신데다 2시경까지 노름을 한 다음 6개월전까지 캬츄샤가 있었던 유곽에 놀러 갔었기 때문에 사건의 조서를 읽을 겨를조차 없었다. <강한 허영심과 입신출세를 굳게 마음먹고 있는 그의 집념은 자신이 논고를 맡은 사건은 모두 유죄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검사보는 천성적으로 우둔한 데다 불행하게도 금메달을 받고 중학을 졸업했고, 대학에서는 로마법에서의 용익권에 관한 논문으로 상을 받기도 하여 아주 득의양양해하고 스스로 만족해 하고 있었다>(각주: 위의 책, 111쪽). 그는 범죄란 유전된다고 믿었다.

또한 변호사는 돈을 받은 피고인을 위해 자기 나름의 열변을 크게 토하려했으나, 듣기 민망할 정도여서 재판장으로부터 사건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말도록 주의를 받는다고 묘사된다. 당시의 변호사는 판사나 검찰에 비해서는 사회적으로 매우 약한 지위에 있었으므로 톨스토이의 비판은 그 정도에 머물고 있으나 소설의 곳곳에서 돈에 팔리는 변호사를 비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배심원들은 피로에 지쳐 쉽게 엉터리로 <유죄>로 평결을 내리고 살인의 의도가 없었다는 점을 부가하는 것을 잊어 무죄인 캬츄샤를 유죄로 만든다. 배심원들도 속물로서 경멸되나 도시의 경우 대체로 지식인들이어서 무죄를 평결하여 법률가들과 대립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당시의 보수주의는 배심원제도를 반대했다. 배심원인 네플류도프는 자신은 재판할 자격이 없다고 괴로워한다.

이상의 법률가 묘사끝에 톨스토이는 네플류도프로 하여금 <도대체 정신이 건전한 사람들이 형사재판 따위의 바보스럽고 잔혹한 일에 참가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고백하게 한다.

이어 『부활』에서 톨스토이는 비인간적인 감옥, 시베리아유형 도중 일사병(네플류도프는 그것을 살인이라고 본다), 무책임한 관료들을 묘사하면서 그 근원을 국가기구 자체에서 찾는다. 톨스토이는 법률가의 엘리트의식, 법적 정의나 법적 논리가 어떤 특수한 정의이며 논리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 법조문에 대한 노예적 숭배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톨스토이는 법률가에게 보통의 인간이기를 요구한다. 법률가가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판결을 내리는 자동기계로 타락한다면 그는 피고를 인간이 아닌 물건으로 보는 것이고, 사랑과 증오가 뒤엉킨 인간 사이의 분쟁을 단순한 사건으로만 보는 것이 된다. 실제로 캬츄샤의 재판에서 사건은 기계적으로 심리될 뿐이다. 그녀의 인간적 애환, 영육의 갈등 - 요컨대 고뇌에 찬 과거는 깡그리 무시된다. 재판이 끝나서야 비로소 그녀의 인격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네플류도프가 나타나 <사건>이 하나의 <인간문제>로 전개된다. 재판시에는 전혀 인간으로 취급되지 않은 사람이 비로소 인간으로 취급되고 인간적인 사랑이 생겨나는 곳에 구원이 이루어진다. 진정한 구원은 재판을 넘는 곳에서 생긴다. 『부활』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주제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의사로부터 물건취급을 당하여 느끼는 고급재판관의 심각한 자기반성으로 되풀이된다.

요컨대 톨스토이는 법률가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법학 자체가 기만적인 학문이고, 수백년간 수많은 책이 간행되었으나 법학자란 모순에 가득찬 논의만을 되풀이했다고 톨스토이는 비난한다. 그는 법의 교육적 의의를 부정하며, 법의 논리성도 거부한다. 톨스토이의 법학자에 대한 비판은 이미 『청년시대』에서 비롯되고 있다. 실제로 당시의 교수들은 정치적으로 억압되어 지극히 무기력했고 관료화, 반동화되어 있었다(각주: 졸저, 비교법, 224-226 참조).


톨스토이의 범죄와 형벌에 관한 생각

톨스토이는 위에서 보았듯이 재판을 하는 법률가를 진지하지 못한 인간으로 경멸하나 반면에 재판을 받는 사람을 보통의 인간으로 본다. 그는 범죄자를 결코 악인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부활』에는 캬츄사 외에 낡은 멍석을 훔친 젊은이가 나쁜 환경 탓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묘사된다. 여기서 톨스토이는 범죄는 국가와 사회의 문제로 보고 있다. 사회야말로 범죄의 온상이고 범죄는 바로 하나의 사회현상이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처럼 범죄를 인간의 악마성 탓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범죄자를 처음부터 악인으로 보지 않는다. 그리고 죄수의 반 이상은 오판으로 인한 희생자로 보고 있다.

톨스토이는 자신들이 선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임금 착취나 세금 탈취와 같은 더 큰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말한다. 곧 재산은 절도라고 하는 프루동적인 아나키즘사상으로서, 그것은 뒤에 레닌의 범죄사상으로 이어진다.

범죄자가 악인이 아니라고 한다면 형벌은 무의미한 것이 된다. 톨스토이는 형벌이 존재하는 이유는 형벌이 유익하고 정의라고 하는 관념이 유아시절부터 교육된 탓으로 본다(각주: 『인생론』 참조). 톨스토이는 어떤 형벌도 악을 악으로 갚는 이상 그 목적을 이루기는 커녕 인간을 타락시킬 뿐이고 오직 선에 의해서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톨스토이는 공자의 덕치주의를 반영한다. 특히 그는 비인간적인 감옥과 유형을 비판하며 그 속에서 인간을 개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신체형과 사형만이 합리성을 가지나 그것도 비윤리적이라고 하는 점에서 부정하여 결국은 모든 형벌을 부정한다. 결국 그는 국가를 부정하고 종교를 추구했던 것이다.

톨스토이는 법을 지배계급의 의사표현으로 본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의 법개념과 지극히 유사하다. 그가 법을 그렇게 본 이유는 법을 위반하는 사람이나 위반하고자 생각하면서도 단지 형벌을 두려워하여 위반하지 않는 사람들이 법준수를 바라는 사람보다 언제나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을 만드는 지배자들은 법위반자에게 무장경찰을 파견하고 무장경찰은 위반자를 구타하고 죽이기 때문이다. 법률가는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법은 필요악이라고 말하나, 톨스토이는 형벌을 조직적인 폭력으로 본다. 그 이유는 법을 제정하는 지배계급이 악인이고 악의 수행자이기 때문이다. 톨스토이가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는 기준은 권력과 폭력 및 지배가 문제되는 경우이다.

따라서 톨스토이는 결코 법을 좋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 도리어 법은 인간에 대한 착취를 허용하고 전쟁이라고 하는 살인 행위에 사람들을 몰아세운다. 민법은 토지와 생산수단의 사유를 허용하고, 그것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노동을 팔고 생명을 팔아서 궁핍과 기아에 허덕일 권리를 부여한다. 또한 형법은 어떤 사람들이 추방, 구금, 교수형에 처해질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자를 그렇게 처벌하기 위한 법이며, 수형자 측에서 본다면 권력자가 과형의 필요가 없다고 보는 순간에만 처벌하지 않는 법일 뿐이다.

톨스토이는 당시의 러시아를 노예제국가로 비판한다. 그것은 인위적인 법률, 곧 토지, 조세, 소유권에 관한 법률에 의해 생겨나므로 노예제를 폐지하기 위해서는 법률 자체를 폐지하여야 한다. 예컨대 토지소유권법을 폐지하여도 새로운 토지임대차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새로운 노예제를 낳을 것이므로 결국 법률 그 자체를 폐지하여야 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톨스토이는 아나키스트이나 그는 결코 자신의 이상을 폭력혁명으로 달성하고자 하지 않았다. 폭력의 열쇠인 법을 폐지하기 위하여 폭력 행사를 인정함은 자기모순이다. 그리고 폭력을 사용하여 타인을 복종시키는 것은 동물만이 할 일이고, 힘에 의한 지배를 주장함도 역시 동물의 영역이다. 톨스토이는 종교라고 하는 사랑의 열쇠로 법을 대신하고자 시도한다. 곧 적을 사랑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이반 일리치의 <인간을 인간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하는 마지막 말과도 같다.

3.  솔제니친

솔제니친


솔제니친은 1918년생이니 올해 81세이다. 그는 인텔리 가정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제2차대전에 참전한 후, 27살이던 1945년, 대위로 근무중 스탈린을 비판한 편지를 썼다가 구속당하여 강제노동수용소에서 8년형, 추방 3년형을 받은 이래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았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탄광지대에서 보낸 수형생활을 작품화한 것이다. 그후 석방되었으나 암에 걸려 병동생활을 한다. 그것이 『암병동』의 소재가 된다. 그후 시골 중학교의 수학교사로 근무하면서 38세가 되는  1962년에 발표한 처녀작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로 세계적인 작가가 되나, 곧바로 후루시쵸프정부가 끝나고 브레즈네프와 코시킨정부의 탄압에 부닥친다.

1966년에는 반국가적인 소설을 국외에서 발표했다는 이유로 시냡스키와 다니엘이 각각 7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1967년에 죽음을 무릅쓰고 검열폐지를 주장했으나, 1969년에 작가동맹으로부터 제명당했고, 『암병동』(1966-67년), 『제1권』(1968년), 『1914년 8월』(1971년), 『수용소군도』 (1974년) 등의 작품은 해외에서 출판되었다. 1970년, 그는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나 『수용소군도』가 발표된 1974년에 강제추방을 당하여 20년간 미국에서 살다가 귀국했다.

솔제니친은 수용소의 경험을 쓴다. 그는 그것을 공산주의의 병리로 고발하나 그의 문학은 단순한 반공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수용소라고 하는 극한상황 속에서 그는 인간성을 발견하고 민중의 생명력을 확인하여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아오지탄광이나 러시아벌목공의 참혹한 인권실태식의 보도자료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솔제니친은 윤리 또는 사회문학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이유에서도 밝혀졌듯이 러시아문학의 전통인 윤리적인 노력이 높이 평가되어 그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서구식의 민주주의나 인권보장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새로운 러시아사회의 정치 모델로 상정하는 것은 러시아 정교의 이념을 구현하는 온정적인 권위주의 체제이다. 여기서는 그러한 그의 이념에 대해서까지 논의할 필요는 없을 것이나, 파스테르나크를 비롯하여 솔제니친에 이르는 러시아의 반체제 문학인들이 사회주의와는 무관한 러시아 정교에서 그 정신의 고향을 찾고 있음은 매우 흥미있는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이를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반동이라고 볼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정신주의에의 회귀로 볼 것인지는 독자의 판단문제이나, 우리나라에도 최근에 동학이나 유불교를 비롯한 민족종교에의 회귀라는 것이 이런 저런 경향으로 생겨나고 있음을 아울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이를 우려하며 민족 또는 정신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보수라고 보고 있으나 여기서는 그것을 토론할 여유가 없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암병동』,  『제1권』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수용소의 비인간적인 하루를 묘사한 것이다. 1951년 초, 수용소생활 8년째를 맞는 이반의 하루, 혹한의 시베리아 수용소가 유일한 무대이다. 그의 죄명은 <조국에 대한 배신>. 백야 현상으로 밤이지만 밝고 온도는 영하 40도. 41도만 되어도 야외 작업은 중단되나 이상하게도 그 1도가 잘 내려가지 않는다. 주인공인 이반 데니소비치는 열이 나고 고통이 극심하여 기상시간인 5시에 도저히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으나 감시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가 그의 이름이다. 그는 제대로 기상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3일간 영창에 갇히고 작업계속의 처분을 받으나 그것은 위협이었고 실제로 본부에 가서는 간수실 청소로 끝난다. 그는 즐거운 기분으로 청소를 하고 노역에 나선다. 경찰견과 자동소총을 갖춘 간수가 모자, 가슴, 무릎, 등에 번호를 단 그들을 인도한다. 대열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간수가 발포한다.

그들은 몇 킬로나 눈밭을 밟고 가서 체중의 감각조차 없어질 무렵, 겨우 현장에 도착하여 해가 질 때까지 쉬지 않고 일한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생각해서는 안된다. 오직 요령있게 일하고 얼음과 같은 스프 속에서 요행히 건더기라도 하나 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표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점호와 신체검사. 언제나와 같이 하루가 끝나고 침대에 들면서 이반은 오늘도 좋은 날이라고 생각한다. 영창에도 들어가지 않았고 날씨도 좋아 작업중 태양이 내려 쪼였다. 담배도 구했고 저녁식사 시간에 오트밀도 먹었다. 형기는 아직도 10년, 곧 3653일이 남았다.

『암병동』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보다 시간이 몇 년 지난 1955년을 시대배경으로 한다. 그것은 스탈린의 죽음, 그의 심복이었던 비밀경찰의 우두머리인 베리야의 죽음, 스탈린의 후계자인 말렌코프 수상의 해임을 거쳐 해빙 무드가 진전되어 가는 시기에 권위주의적인 당관료이자 입신 출세한 고급 공무원인 루사노프가 타슈켄트의 암병동에 입원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죽음에 직면해서도 공산당의 지위나 특권만이 의미가 있다고 믿고 있다. 밀고나 숙청은 필요악이며 자신만이 그 짓을 한 것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그가 입원한 방에는 여러 유형의 환자들이 있다. 의사들은 열심히 환자들을 돌보나 절대 안정 외에 치료법이란 없다.

어느 날, 수용소에서 온 코스트그라토프가 입원하여 간호사와 연애를 하고 다시 여의사를 짝사랑한다. 그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의 상징으로 도덕적으로 건전한 사회가 올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병동에 수용되어 죽음의 공포에 쌓여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삶에 집착하는 환자들은 여러 가지의 모습을 보여주나 코스트그라토프에게는 병동생활이 수용소의 그것보다 훨씬 행복하다. 그러나 과거에 숙청 작업에 협력했던 루사노프는 숙청된 사람들의 명예회복이 이루어지는 해빙 무드에 공포를 느끼고 있다. 코스트그라토프와 루사노프는 격렬한 논쟁을 하며, 루사노프는 그의 무죄를 주장하는 딸의 위안을 받아 퇴원하고, 코스트그라토프도 뒤이어 퇴원한다. 그가 짝사랑한 여의사가 코스트그라토프에게 자기 집에 머물도록 권유하나 그는 떠난다.

『제1권(圈)』은 강제 수용소를 말한다. 소설의 무대인 마브리노 수용소에는 주로 지식인들이 수용되어 있다. 그들은 독재자를 위하여 봉사한다. 기사인 네르진은 스탈린이 도청당하지 않고 전화를 할 수 있는 장치를 발명하도록 요구받고 있으나 저항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는 결국 다른 수용소로 이감당한다. 『제1권』을 비롯한 솔제니친의 모든 소설은 권력에 대한 저항이다. 1974년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권력은 거짓의 가면을 쓰지 않으면 자신을 숨길 수 없고, 거짓은 권력의 힘에 의해서만 지속된다. 가장 단순하고 손쉬운 해방의 열쇄는 ‘함께 거짓말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거짓이 모든 것을 뒤덮고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우리는 가장 작은 영역에서도 이에 저항할 수 있다. <나는 빼놓고 해라>고!


* 민주법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7-11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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