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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교수님의 법과 예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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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러시아 문학

1. 도스토예프스키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흔히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1821-81)와 톨스토이는 대조적인 세계관의 작가로 평가된다. 예컨대 전자는 정신의 예언자, 후자는 육체의 예언자라는 식이다. 즉 전자는 육체를 정화하여 영혼에 이른 자이고, 후자는 육체를 부정하면서 이교적인 육체의 세계에 머문 자라는 비교이다.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바 있는 메레즈코프스키의 주장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기에 두 작가 사이에 그렇게도 큰 차이를 인정하기 어렵다.  

두 사람이 살았던 시대는 농노제를 기초로 한 제정 러시아가 서구적인 자본주의 국가를 모방하고자 한 혼란의 시대였다. 특히 1861년의 농노해방 이후 해방된 농노들이 도시로 급격히 유입되어 수도는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즉 계층분화의 파도와 함께 빈곤, 매춘, 범죄가 들끓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잡계급>, 톨스토이는 <대귀족> 출신이었다. 그들은 근대화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사랑에서는 마찬가지였으나, 톨스토이의 귀족주의에 반해 도스토예프스키는 민중주의를 실현했다고도 비교된다. 후자의 주인공은 모두 계급 이탈자로서 계급 없는 사회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 이상의 더욱 명확한 사회철학을 가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도리어 그는 <넋의 리얼리즘>이라고 하는 내면세계의 추구에 뛰어났다. 그의 관심은 내면에 있지 외면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러시아 문학의 전통처럼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도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한 지식인 문학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부르주아 지식인의 관점에서 당시의 사회를 비판하고 분석했다. 그가 추구하는 해결책은 소박하고 신앙심이 깊은 민중과 다시 하나가 되는 길이었다.  

그런 추구의 지향에서 톨스토이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나, 그는 국가와 사회라는 전체에 대항하는 개인에 대해 더욱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런 점에서 지구 차원의 위기를 살고 잇는 21세기의 인류에게 톨스토이는 중요한 시사를 한다고 생각된다. 특히 50세의 『참회록』(1878년) 이후 그가 철저히 추구한 반국가주의, 곧 폭력을 불가피한 장치로 하는 국가와 사유재산 그리고 기계문명에 대한 전반적인 부정, 나아가 악에 대한 무저항의 자세는 기술만능의 시대에 더욱 새롭게 재조명된다.

여하튼 도스토예프스키냐, 톨스토이냐 하는 식의 양자택일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이미 우리에게는 정신과 육체의 양자택일이 무의미하다. 사실 그들에게도 영과 육은 언제나 하나였지 결코 분리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 모두를 포함한 전체적인 인간존재로서 살고 고뇌하고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의 사법개혁

1864년은 러시아 역사에서 획기적인 해였다. 그것도 10년 넘어 계속된 사법개혁이라고 하는 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끈다. 그 전의 재판이란 행정부에 의존하고 박봉을 받던 판사들에 의해 복잡하고 지루하게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특히 농민은 학대당했다. 게르첸이 지적했듯이 법원과 경찰은 혼란 속에 파묻힌 야만적이고 독단적이며 사악한 집단이었으며, 사람들은 벌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법절차를 두려워했다(각주: 로날드 힝글리, 이항재 역, 러시아의 작가와 사회, 푸른산, 1989, 194쪽에서 재인용).

새로운 사법제도는 주로 프랑스의 것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우선 재판관은 종신직과 적정 보수를 보장받아 행정부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종신직이 보장되지 않지만 서양에서는 판사의 종신직이 판사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첫째 요건으로 본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논의조차 되지 않는 배심제가 중범죄에 대해 채택되었다.

중범죄, 특히 살인사건에 대한 묘사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1868년),『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79-80년)과 톨스토이의『부활』(1899년) 등에 상세히 묘사된다. 후자는 1880년대를 배경으로 한 것이나, 그 전의 사법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어느 경우에나 주인공들이 잘못된 재판의 희생자임을 잘 보여준다.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 모두가 반대한 사형제도는 살인과 황실 가족에 대한 살해모의를 제외하고는 이미 1753년에 폐지되었다. 이 점도 아직 100여 범죄에 대해 사형을 두고 있는 우리나라보다 선진적이었다.

『죽음의 집의 기록』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1864년)(각주: 채대치 역, 동서문화사, 1977)은 감옥을 묘사한 걸작이다. 그야말로 지옥이나 아수라 같은 감옥의 묘사이다. 4년간 그곳을 체험한 도스토예프스키는 예리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그 속에도 인간이 있음을 그는 놓치지 않는다. 사실 법학도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고전이 바로 이 책이다.  

제1부는 제1장 <죽음의 집>, 곧 옥사에 대한 상세한 기록으로 시작된다. 제2, 3장은 <첫인상>을 말한다. <민중이 범죄를 불행이라고 부르고 죄를 범한 사람을 불행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각주: 채대치 역, 66쪽)

이어 여러 죄수들에 대한 설명이 있다. 감옥에도 크리스마스가 있고 연극도 상연된다. 제2부는 감옥안 병원의 묘사로 시작된다. 그리고 비참한 태형을 비롯한 감옥의 권력행위에 대한 강렬한 비판이 이어진다.

포학은 습관이다. 그것은 자라나는 성질의 것으로 끝내는 병으로까지 성장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무리 훌륭한 인간이라도 습관으로 인해서 둔화되면 짐승보다도 더 포악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피와 권력은 사람을 취하게 한다. 포악과 타락은 자라난다. 지와 정은 마침내는 감미로움의 가장 기이한 현상조차도 받아들이게끔 된다. 포학자의 마음 속에서는 개인과 사회인은 영원히 멸망해 버리고, 인간의 존엄에의 복귀와 참회로 인한 속죄와 부활은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포학의 예와 그것의 가능성은 사회 전체에도 전염적인 작용을 한다. 이와 같이 권력은 유혹적이다. 이러한 현상을 무심하고 보고 있는 사회는 이미 그 밑바닥에서부터 물들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다른 인간에 대한 체형의 권리가 어느 한 인간에게 주어진다는 것은 사회악의 하나이며, 사회가 그 내부에 갖는 온갖 문화적 싹과 일체의 문화적 시도를 근절케 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의 하나이며, 사회로 하여금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붕괴로 인도하는 요인이다.
(각주: 채대치 역, 226쪽)
  
『죄와 벌』

… 지금 난 왜 이렇게 어정거리고 있을까? 정말 나는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도대체 그 일은 진실한 것일까? 쳇! 진실이라고? 진실은커녕 부질없는 망상에 불과해! 그냥 장난에 지나지 않아! 그렇다, 장난이야!
(각주: 채대치 역, 12-13쪽)

라고 중얼거리며 한 청년이 찌는 여름의 거리를 걷고 있다. 그리고 이틀 후 청년은 노파를 살해한다. 페테르스부르크 빈민가에 사는 가난한 청년 라스콜리니코프는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하여 수십만 명을 죽이면서도 영웅으로 받들어 지는 것을 보고, 자신도 인류사회를 위하여 쓰레기같은 생명을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는 전당포의 노파와 그녀의 질녀를 도끼로 죽인다. 그러나 그의 살인정당화의 논리는 곧 파기된다. 예심판사의 신문에 의해 그의 신념에 혼란이 생기고 마침내 병적인 착란상태에 빠지게 된다.

가끔 술집에서 만난 주정꾼 말메라도프가 마차에 치여 죽었을 때 라스콜리니코프는 말메라로프의 딸인 소냐와 함께 장례를 치렀다. 그녀는 창녀였으나 신을 믿고서 라스콜리니코프를 위로한다. 예심판사의 신문이 더욱 심해지자 그는 그녀에게 사실을 고백한다. 소냐는 울며 그의 호소를 듣고 함께 신에게 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대지에 입맞추어 신에게 사과하고 자수한다. 그는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고 소냐도 그 뒤를 따른다.

여기서 우리는 이 소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우선 노파 살해를 결의한 주인공의 동기는 무엇인가? 그의 <사상>이란 인간에는 보통 인간과 특별인간이 있고, 전자는 보수와 복종만으로 사는 기생충적인 존재이므로 사회정의를 위해서는 전자가 후자를 죽여도 괜찮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동기는 아니다. 나폴레옹주의라고 하는 그의 이론이지 살인의 동기였던 것은 아니다. 여기서 법리적으로 라스콜리니코프가 이른바 사상범, 확신범, 또는 양심범이냐 하는 것이 문제될 수 있으나, 그 뒤 그는 소냐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죽였다고 고백한다.

노파 살해 후 그는 절망한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부활이다. 부활의 계기는 소냐와의 만남에 있다. 소냐는 라스콜리니코프가 표상하는 서구적 합리주의와 광기를 부정하고 인간을 러시아라는 대지의 품으로 안아주고 재생시켜주는 상징이다. 여기서 노파의 질녀인 바보 리자베타가 문제된다. 주인공이 그녀를 죽인 것은 단순한 오산에 불과했다. 그러나 작가는 그것이 주인공의 운명이자 업이라고 하는 상징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죄와 벌』은 물론 단순한 범죄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러시아가 서구화되는 것에 대한 깊은 회의를 담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톨스토이처럼 법학을 공부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죄와 벌』(1865년)은 범죄심리학의 교과서라는 평가를 들었다. 이는 그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16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18세에는 농노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것을 목격했다. 아버지 살해라는 참변으로부터 그가 살인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충분히 이해된다. 이어 28세부터 10년간의 시베리아 유형생활은 형벌에 대한 그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참담한 비곤 상태에 허덕이던 도스토예프스키는 1865년 1월, 모스크바에서 27세의 청년이 두 여성을 죽인 사건을 소재로 하여 『죄와 벌』을 썼다. 당시의 모스크바나 작중 무대가 된 페테르스부르크는 모두 범죄로 들끓는 곳이었다. 소설은 바로 그런 당시의 사회상을 여실히 반영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당대 최고의 지성으로서 당시의 사법개혁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가 창간한 잡지에는 당대의 유력한 법학자들이 사법개혁에 대한 논문을 다수 썼다. 『죄와 벌』에도 그런 사법개혁에 대한 기대와 비판을 말하는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게다가 그 자신 사형체험자로서 법에 대한 관심이 당연히 깊었다. 사실 『죄와 벌』이라는 번역은 부정확하고 『범죄와 형벌』이라는 식으로 보다 법적인 번역이 적합하다는 견해도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벡카리아Cesare Beccaria(1738-94)가 1764년에 쓴『범죄와 형벌Dei Delitti e delle Pene』(각주: 체자레 벡카리아, 이수성, 한인섭 공역, 범죄와 형벌, 길안사, 1995)을 소설로 쓰고자 했었다.  

『악령』

『악령』(1871-72년)은 1869년, 모스크바에서 일어난 실제의 살인사건, 혁명결사의 일원이었다가 전향한 대학생이 밀고를 두려워한 동지에게 참살된 사건에 충격을 받고 그 사건을 모델로 하여 그 결사를 비난하고자 쓴 소설이다. 이미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사회주의로부터의 전향을 말한 작가는 그 후 혁명운동에 대해 더욱 비판적이 되었다.

그러나 소설의 주인공 스타브로긴이 악마와 같은 존재로 그려짐으로써 소설은 공격적 논문이 아니라 심각한 비극으로 승화되었다. 스타브로긴은 소설에 삽입된 <고백>에서 보듯이 절도로부터 강간에 이르는 모든 범죄를 저지르는 악인이다. 추상적인 논리의 천재인 그는 그가 보는 모든 것을 죽이고 파괴한다. 그의 귀향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여러 여자를 농락하고 결국 그도 자살한다.  

그의 범죄도 라스콜리니코프의 경우와 같이 궁극적으로 신을 죽이는 것이므로 기존의 법적 기준으로 그것을 평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단 스타브로긴의 경우는 교사(敎唆)가 이상적인 범죄이다. 그래서 타인을 교사하여 전향한 지식인을 죽이게 만든다. 라스콜리니코프의 경우도 사실은 관념에 젖어 살인을 저지르게 되나, 스타브로긴의 경우 그 관념벽은 극도에 이르러 현실로부터 철저히 유리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로부터 당시 러시아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준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 소설은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그 하나는 여자를 둘러싼 부자의 대결이다. 즉 어느 지방의 벼락부자 집안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아버지 표트르는 고리대금업 등으로 돈을 번, 야만적인 물욕과 성욕의 소유자이다. 전처의 아들인 장남 드미뜨리는 아버지의 피를 받았으면서도 그를 증오하며 순수한 것을 추구하는 분열된 감성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그 분열은 마지막에 고결한 즐거움으로 가득찬 자기희생으로 승화된다.
차남 이반은 서구적인 무신론자이자 허무주의자로 이지적이고 논리적이어서 장남과 대조적이나, 비극적인 내면 분열의 심리 상태나 아버지를 증오하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그의 사상은 소설의 제5편에서 드러난다. 그에 의하면 세계를 채우고 있는 것은 불합리, 악, 고통이고, 죄 없는 아이와 눈물 위에 만들어진 영원한 조화의 사상 따위는 인정될 수 없다. 즉 신이 창조한 세계의 존재 의의 따위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극시 <대심문관>에서 <인간은 빵을 위해서는 살아서는 안된다>는 기독교를 철저히 부인한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 따위는 처음부터 없고, 기독교를 충실히 따를 힘도 없다. 여기에는 작가 자신의 교회 비판이 숨어 있다.

그러나 작가는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신앙과 사랑에 대한 믿음 또한 견지한다. 이를 작가는 삼남 알료사를 통해서 표현한다. 알료사는 수도원에서 공부하는 천사와 같은 영혼이다. 작가의 죽음에 의해 미완성으로 끝난 제2부는 알료사가 수도원을 나와 테러리스트가 되었다가 여러 고뇌를 거친 뒤에 갱생의 길로 들어서는 것으로 예정되었다. 그리고 표트르와 백치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스메르자코프는 간악한 성품으로 차별을 받으며 산다.

이상의 가족에 두 여인이 나타난다. 아버지와 장남을 가지고 노는 그루셍카와 카테리나가 그들이다. 이들을 둘러싼 애욕의 갈등 속에서 아버지가 살해되고 장남이 용의자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다. 그러나 판결 전날 스메르자코프는 이반을 찾아가 자신이 죽였다고 고백하면서도 이반이 자신을 부추겼다고 말하고 자살한다. 재판정에서 이반은 자신이 죽였다고 말하고, 드미뜨리도 자신이 죽인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소설의 다른 부분은 신의 존재를 다룬 것으로서 이반, 알료사, 그리고 알료사의 스승인 조시마 장로가 주인공들이다. 신이 존재한다면 왜 순진한 아이가 고통을 당하느냐는 물음에 답하지 못한 이반은 무신론자가 되고 결국 미쳐버린다.

이 소설의 주제는 결국 아버지 살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자신이 어린 시절 경험한 부친의 살해를 소설로 다룬 것이다. 아버지는 스메르쟈코프에 의해 살해되나, 스메르쟈코프는 이반의 교사를 받는다. 따라서 여기서 이반은 『악령』의 스타브로긴과 같은 존재이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1957년에 미국에서 율 브리너, 마리아 셸, 클레어 블룸 주연으로 리차드 브룩스 감독에 의해 제작되었으나 명화로 취급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2시간 26분에 걸친 대작이었으나 원작의 가치를 제대로 담을 수 없었다. 외형적인 줄거리만을 좇기에도 급급했고 전체적인 분위기도 헐리우드식의 경박한 낙천주의로 흘러 만일 도스토예프스키가 보았다면 기절했을지도 모르는 작품이었다.


* 민주법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7-11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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