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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교수님의 법과 예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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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영미 문학 - 셰익스피어, 모어, 스위프트, 디킨즈, 드라이저

1.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는 법에 정통했는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세계 최고의 문학인이다. 여기서 그의 문학 세계 일반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독자들은 얼마든지 그런 이야기를 다른 책에서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실 신비의 인물이다. 1564년 영국에서 태어나 우리의 초중고에 해당하는 그래머 스쿨을 다녔고 대학에는 진학하지 못했다. 18세에 8세 연상인 여자와 결혼하여 쌍둥이를 낳았으나 그 후 1584년부터 12년간의 20대에 대한 기록은 없다. 여하튼 30세 이후 그는 런던에서 유명한 시인이자 극작가로 활동하며 많은 작품을 썼다. 그러나 그 후에도 명확하게 알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셰익스피어를 필명으로 하여 작품을 썼다는 학설도 있다. 그 다른 사람이란 예컨대 당시의 석학이었던 베이컨Francis Bacon(1561-1626) 등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도 우리의 관심이 아니다. 우리의 관심은 셰익스피어가 법률가였다고 하는 견해에 있다. 18세기말에 이런 얘기가 나왔고 1858년에는 『셰익스피어는 법률가이다』라는 제목의 책도 나왔으며 그런 논의는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공백기인 20대에 법률을 공부했거나 법률직에 취업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법을 공부하거나 법률직에 있어야만 법에 관한 것을 쓸 수 있다고 하는 전제에서 나오는 주장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셰익스피어의 아버지는 일생 몇 번이나 소송을 했고, 특히 처의 형제와 20여년에 걸쳐 토지를 둘러싼 소송을 벌였다. 셰익스피어 자신도 1596년에는 자신의 극장 경영권을 둘러싸고,  1604년에는 이웃과의 소액 금액을 둘러싸고, 1609년에는 투자를 둘러싸고 소송을 했다. 그밖에도 많은 소송에 연루되었다. 따라서 꽤나 소송을 좋아한 탓으로 법률에 소상할 수 있었다고도 짐작된다. 또한 당시의 극단에는 법률가들이 많았고, 자신의 희곡을 법률학교Inns of Court에서 상연한 경우도 있어서, 그곳 사람들로부터 법을 배우거나 법률가인 청중들을 상대로 작품을 써야 했던 사정도 무시할 수 없다.    

더욱 중요한 점은 셰익스피어 시대의 영국이 법이 지배한 사회였다고 하는 점이다. 그래서 셰익스피어 당시에 쓰인 희곡의 3분의 1이 법정 장면을 포함했고 셰익스피어의 경우 그 비율은 3분의 2를 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근현대에 와서도 널리 읽힌 이유 중의 하나는 역시 법이 지배하는 사회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미국의 판결문에 셰익스피어를 인용한 것은 8백 정도이고 그 종류는 257개 정도이며 최근에 더욱 증가하고 있다. 여하튼 여기서는 그런 논의가 셰익스피어 작품에 법적인 소재가 많다는 점을 것을 평가한 하나의 자료로 보고서 바로 작품에 대한 설명으로 들어가자.  

셰익스피어의 현대법적 조명

셰익스피어에 대한 법학적 연구에는 오랜 역사가 있고 최근에도 관련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1994년 미국에서 크론스타인Daniel J. Kronstein이라는 변호사가 쓴 『법률가 살해? 셰익스피어의 법적 매력Kill All the Lawyers? Shakespeare's Legal Appeal』이라는 책이 주목된다(각주: Daniel J. Kronstein, Kill All the Lawyers? Shakespeare's Legal Appeal,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4).

이 책은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한 새로운 법적 분석을 가한 책으로 흥미 있다. 특히 현대법을 비교한 점에서 특징적이다. 이 책에서 힌트를 얻어 우선 셰익스피어 작품 전체에 나타난 법적 문제를 현대적으로 조감해 본다. 물론 그 책을 그대로 따른 것은 아니고 나름대로 취사선택한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극작품은 흔히 희극과 비극 그리고 사극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여기서는 과감하게 법적 주제별로 분류해보자. 우선 첫째, 남녀관계 내지 정조에 관련된 것들이다. 『햄릿』을 비롯하여 셰익스피어 극에는 이런 문제가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주제 자체가 그런 경우만 살펴보자.

먼저 희극 중에는 『눈에는 눈으로Measure for Measure』가 있다. 이는 십수 년간 적용되지 않았던 법률을 돌연히 끄집어내어 약혼자를 임신시킨 남자를 혼외간음fornication이라는 죄로 사형시키고자 한 권력자의 이야기이다. 이런 식으로 법을 악용하는 사례는 지금도 흔하다. 예컨대 미국에서 수십 년간 포기되다시피 한 법을 적용하여 합의상의 동성애에 징역을 부과한 사건이 있었다.

이에 대해 연방 대법원은 1986년, 이는 그동안 방치되어온 사람들간의 균형을 상실하고 국민에 대한 공정한 예고가 없었다고 하는 이유에서 무죄를 선고했다(Bower vs. Hardwick).  『눈에는 눈으로』의 경우에도 그런 판결이 필요했다. 곧 당시에도 작용된 로마법상의, 영속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규범의 효력을 부인하는 desuetude에 의해 법률의 실효를 선고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그것을 몰랐는지 희화적인 해결을 도모한다. 작중에서 권력자는 <법이란 강력하고도 엄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피고의 자매는 <거인의 힘을 갖는 것은 좋으나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폭력이다>라고 반론한다. 이는 영국에서의 커먼로Common law와 형평법equity의 관계를 설명한다. 당시 영국을 지배한 왕에게 형평법을 알려주기 위한 연극이었다고도 한다.  

역시 희극인 『헛소동Much Ado About Nothing』은 여성의 정조를 비방한 사건을 다룬 것이다. 결혼식에서 주인공인 신부는, 그녀의 정조에 대한 헛소문을 믿은 신랑에게 창부라고 불려 결혼이 파기된다. 과거의 영국법에서 구두비방slander 소송은 원고가 손해를 입증할 책임을 졌으나, 정조에 대한 것과 같은 비방에 의해 큰 고통을 받은 경우slander per se에는 그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도 정조에 대한 비방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까? 적어도 현대 미국에서는 문제가 아니리라.

유사한 이야기가 역시 희극인 『겨울밤 이야기The Winter's Tale』이다. 처의 부정을 의심한 남자가 스스로 재판관이 되어 처를 사형시키고자 하자, 처는 아폴로 신에게 부탁하여 결백을 증명한다. 흔히 보수주의자로 간주된 셰익스피어이나 이 희극의 경우 권력자의 자의적인 재판에 대해 자연법에 의거해 용기있게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베트남 반전운동이나 워터게이트 사건을 비롯한 시민적 용기의 선례라고도 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하게 시민 불복종의 전형을 보여주는 『한여름 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은 결혼에 반대하는 아버지를 피해 숲속으로 도망한 젊은 연인들의 이야기이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아버지의 뜻에 따르지 않고 결혼을 강행한 딸을 처벌했다. 셰익스피어는 자연의 사랑과 인위적인 법을 대비시키고 전자를 긍정한다.    

유사한 이야기이지만 여성의 정조를 둘러싼 비극의 하나인 『오델로Othello』를 살펴보자. 이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O. J. 심슨 사건인데 크론스타인의 책이 나온 뒤의 사건이라 심슨 사건은 다루어지지 않았으나, 대신 1930년의 영국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국외에 있는 와트가 현지의 여성과 사랑하는 것을 친구가 본국의 사장 롱스던에게 알리고 그는 다시 부인에게 알려 이혼소송을 당하자, 와트가 사장을 상대로 문서비방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었다. 하급심은 롱스던을 지지했으나 상급심은 사장의 행위가 지나치다고 보아 와트를 지지했다.  

이상은 남녀관계를 주제로 한 것들이었으나, 다음은 둘째 주제로 상속의 문제가 있다. 그 전형으로는 『리어왕King Lear』이 있다. 유산 상속은 부당이득이므로 폐지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으나 부모의 재산처분권도 무시할 수 없어 그 타협책으로 나온 것이 상속세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차별이다. 특히 사생아인 에드몬드는 그 차별에 항변한다. 1968년 비적출자에 대한 평등을 논하면서 연방 대법원의 진보측을 대변하는 더글러스 판사는 에드몬드를 인용한 바 있다(Levy vs. Louisiana).

다음 셋째 주제로 독재자와 그에 대한 반역이라는 정치적 주제를 살펴보자. 우선 비극인『쥴리어스 시저Julius Caesar』. 시저의 독재에 저항한 브루터스는 역사상 모든 모반의 영웅이 되었다. 전형적인 독재자를 다룬 것으로는 『리처드 3세Richard III』가 있다.

『리처드 2세Richard II』는 반역죄 재판으로 시작된다. 재판관은 왕은 사실상 이해관계자의 한 사람으로서 불공정한 판결을 내린다. 그런 정치재판의 배후에는 <권력자는 법 위에 있다>는 반법치주의 사상이 있다. 미국에서도 그런 정치가는 같은 리처드 (닉슨)의 이름으로 등장했다. 이 작품에서 읽을 수 있는 셰익스피어의 정치사상은 입헌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주제라기보다는 셰익스피어가 이상적 법률가를 그리는 경우를 살펴보자. 『헨리 4세Henry IV』는 무법자의 집단에 몸을 던진 황태자가 훌륭한 왕이 되는 변신의 이야기인데 그 속에 법률가의 이상적 체현자로 대법원장이 등장한다. 왕이 화를 내면서 대법원장에게 과거 황태자였던 시절 자신을 투옥한 적이 있었음을 상기시키자 대법원장은 왕권의 대표로서 법과 정의를 행사했다고 주장한다. 그러자 왕은 그에게 저울과 칼을 위임하며 자신의 아들이 자신처럼 굴면 과거처럼 처벌하라고 말한다(각주: 셰익스피어 전집, 제4권, 휘문출판사, 1964, 526쪽).
    

『베니스의 상인』

법적인 차원에서 가장 흥미있는 작품은 <베니스의 상인>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 줄거리를 알겠지만 여기서 간단히 그 대강을 정리해보자. 샤일록이라는 유태인 고리대금업자가 베니스의 귀족 안토니오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만일 기한에 갚지 않으면 1파운드의 살을 베어내겠다는 약속을 받은 것이 재판에서 다투어진 것이다. 안토니오의 친구 바사니오의 연인인 포샤가 판사로 가장하여 정확하게 1파운드를 떼어내되, 한 방울의 피도 흘려서는 안된다는 판결을 내린다.  

이 작품은 소위 <인육 계약 the bond of flesh>을 둘러싼 재판을 다루고 있다. 포오샤의 재판에 대해 독자들은 명판결이라고 박수를 보내지만, 샤일록과 같이 유태인인 예링이나 슈탐러 같은 법학자들은 비판적이다. 말하자면 그 계약은 우리 민법의 반사회질서(민법 제103조)에 해당하여 계약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한다. 특히 예링은 셰익스피어 정도는 아니지만 법률가들에게는 『베니스의 상인』에 버금가는 명저인 『권리를 위한 투쟁Der Kampf ums Recht』(1872년)(각주: 심재우 역, 박영사, 1977 외에 몇 가지 번역이 있다)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다. 그 후 <베니스의 상인>을 둘러싼 논쟁은 그 소개만으로도 한 권의 책이 될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그 요지만을 검토해보자.

예링은 포오샤처럼 만약 그 계약이 유효라고 하면 살을 떼어낼 때 피를 흘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곧 우리 민법 제100조에서 말하는 종물에 대한 권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1파운드의 살을 뗀다는 계약이라면 그 이하를 떼어내는 것도 유효하고, 따라서 샤일록이 원금 배상까지 거절당한 것은 문제가 된다. 샤일록은 권리확인을 요청했으나 법원은 생명과 재산의 몰수를 명령하여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우리 법체계에서도 당연한 결론이다. 따라서 근․현대 민법의 차원에서 위법성은 도리어 포오샤의 판결에 있다. 그러므로 법을 조금이라도 아는 자라면 그런 희곡을 쓸 리가 없고 만약 썼다면 무식하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포샤의 피에 관한 논술이나 샤일록의 계약에 관한 궤변은 모두 무시되어야 하고 올바른 재판관이라면 아주 단순하게 <돈을 갚으라>는 채무 이행의 명령을 내려야 한다. 또한 재판 절차에서도 포오샤가 판사를 가장하여 판결을 내린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다.  

이 계약을 우리 민법 107조의 진의 아닌 의사표시로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샤일록은 ‘장난삼아 애깁니다만’하고 그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샤일록의 의사는 표면상으로는 장난을 가장해도 사실은 살을 뗄 생각이 있었으므로 사기에 해당하고 안토니오로서는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  

반면에 도리어 목숨을 노린 샤일록의 사권의 남용에 대한 법원의 배상요구는 당연하다는 주장도 있고, 나아가 당시 베니스법은 약속 이행의 절대성에 입각, 인육계약을 허용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포오샤의 재판은 정의에 대한 재판관의 감각의 표현으로서 19세기 말엽에 유행한 자유법 운동의 상징으로도 여겨지기도 했다. 또한 당시 해상법상 배 침몰시 변상은 면제되었으므로 샤일록이 그 사건을 재판으로 다툴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베니스의 상인』은 샤일록이라는 유태인을 극악한 인물로 그린 점에서 반유태인적 요소가 강하여 교육용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있는 문제작(문제가 많다는 뜻에서)이다. 그러나 보기 나름으로는 샤일록이 기족과 유태인 사회에 성실하고 인간적으로 솔직하며 정의감이 풍부한 인물로 그려졌다고도 볼 수 있다. 반면 포오샤는 위선적이고 안토니오나 바사니오는 샤일록 못지않게 복수심에 불타는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여하튼 『베니스의 상인』은 유태인 차별, 『오델로』는 흑인 차별, 『리챠드 3세』는 장애인 차별이라고 하여 출판이나 상연을 금지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부당하다.

문제는 포오샤의 판결인데 두말할 필요도 없이 샤일록과 안토니오 사이의 인육계약은 반사회질서라는 점을 이유로 무효로 판결해야 했다. 또한 민사재판임에도 불구하고 샤일록에게 재산몰수와 기독교에의 개종을 명하는 판결을 내림은 재판관으로서의 권한을 초월한 것이었다. 재산몰수의 근거가 된 법이 당시의 외국인법이라고 하나 그 법은 미국의 흑인 차별법, 남아연방의 아파르트헤이드법, 나치의 법 이상으로 악법이었다. 그리고 포오샤 자신이 피고의 친구와 약혼한 사이라는 이유에서 제척(除斥)사유에 해당되므로 당연히 그 재판을 맡지 않아야 했다.      

『햄릿』

『햄릿』은 『베니스의 상인』처럼 재판극이 아니라 법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살인 및 복수극다. 따라서 이 책의 기본적인 대상인 좁은 의미의 재판 영화나 재판 소설의 범주와 같이 그것을 다룰 수는 없다. 우리가 『햄릿』을 다룬다면 모든 비극을 다루어야 한다. 『햄릿』만이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모두 살인 등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는 그런 것이 특히 법적인 문제로 엉켜있다는 이유로 검토하도록 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유명한 『햄릿』은 수없이 연극무대에서 상연되었고 지금까지 네 번이나 영화화되었다. 흔히 우유부단한 고뇌형의 전형이라고 하는 햄릿을 표상하는 앞의 독백의 번역에는 의문이 있다. 누구는 <이대로 좋으냐, 좋지 않느냐, 그것이 문제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아버지의 복수라고 하는 자신에게 주어진 무거운 임무에 고민하는 햄릿의 말로는 후자가 더욱 정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한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로다>라는 유명한 독백은 페미니즘시대에 와서 여성차별로 비판받고 있다.

대부분 다 아는 스토리지만 다시 요약해보자. 지금부터 7세기전인 13세기, 덴마크왕국의 수도인 엘시노아성에 선왕의 유령이 나타난다. 왕자인 햄릿은 부왕의 죽음으로 슬픔에 잠겨 있다. 게다가 어머니인 왕비 거트루드는 남편이 죽고 난 뒤 왕위를 계승한 시동생 클로디어스와 서둘러 결혼하여 왕자를 더욱 수치스럽게 한다. 그것은 햄릿 왕자에게는 아버지의 죽음 이상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는 가운데 햄릿은 선왕의 망령을 만나게 된다. 망령은 그의 숙부인 클로디어스가 왕비를 유혹했고 자신을 독살했다고 밝히면서 복수를 당부한다. 햄릿은 망령이 자신을 미치게 하려는 악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복수를 주저한다. 위의 독백은 바로 그 심정의 토로이다.

햄릿은 숙부를 경계하고자 거짓으로 미친 체 하며 연인 오필리아에게도 냉정하게 대한다. 그때 궁정에 찾아온 유랑극단에게 국왕 살해의 연극을 상연케 하여 숙부를 떠본다. 국왕 살해의 장면을 보고 당황한 숙부가 뛰쳐나가서 기도하는 것을 본 햄릿은 그의 죄를 확신하나 죽이지는 못한다.

어느 날, 왕의 침실에서 어머니를 비난하던 햄릿은 문 뒤에서 엿듣고 있던 오필리아의 아버지를 다른 사람으로 오인하여 죽인다. 이에 충격을 받은 오필리아는 미쳐서 물에 빠져 죽는다. 실성한 오필리아가 머리에 꽃을 달고 냇물에 빠져 자는 듯이 숨을 거두는 장면은 『햄릿』의 가장 슬픈 장면이다.

햄릿을 의심하게 된 클로디어스는 그를 영국으로 보내고서 영국 왕에게 그를 죽이라고 부탁하나 실패한다. 오필리아의 오빠인 레어티즈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돌아오고, 왕은 감언이설로 그를 꾀어 독이 묻은 칼로 햄릿과 펜싱 시합을 벌이게 한다. 햄릿은 상처를 입으나 그 칼을 빼앗아 레어티즈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그로부터 왕의 음모를 듣게 된다. 그 사이 왕비는 왕이 햄릿을 독살하고자 준비한 독주를 마시고 죽고, 왕을 죽인 뒤에 자신도 죽는다. 결국 모두가 죽는다.

이처럼 『햄릿』에는 각종 죽음이 등장한다. 곧 왕에 의한 선왕의 살인과 왕비의 독살, 햄릿의 죽음, 왕의 죽음, 오필리어의 오빠인 레어티즈의 죽음 등이다. 그것은 살인과 복수, 자살과 결투 등이다. 그 중에서도 기본은 복수이다. 즉 햄릿의 왕에 대한 복수이다. 그밖에도 레어티즈의 햄릿에 대한 복수가 있다. 물론 중요한 것은 전자이다. 이를 강조한 콜러는 『햄릿』의 주제가 복수를 용인하는 고대법사상과 그것을 금지하는 근대법사상 사이의 갈등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복수 용인의 고대법사상과 복수 금지의 근대법 내지 근대도덕과의 갈등 속의 고뇌라는 견해는 햄릿의 성격과 관련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성격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외적 곤란설은 햄릿이 복수의 곤란으로 고뇌한다고 본다. 반면 내적 곤란설 또는 양심설은 햄릿이 복수를 부도덕하다고 생각했다고 본다. 그러나 햄릿이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자책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법사상은 복수를 당연시한 점에서 그런 견해는 반박을 받았다. 따라서 콜러의 견해는 옳다고 볼 수 없다. 당시에는 복수가 용인되었다. 이는 왕이 레어티즈에게 복수를 권유하는 장면에도 나온다. 곧 <복수에는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복수 사상은 함무라비 법전이나 모세 10계에도 나오는 고대 법사상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햄릿』에 등장하는 최악의 범인인 왕은 살인범이다. 왕은 햄릿의 아버지를 죽였고, 다시 그 복수를 하려는 햄릿을 죽이고자 하나(살인음모) 왕비가 죽는다. 후자는 형법 제15조의 사실의 착오에 해당하는 것인데 문제는 객체의 착오인가, 방법의 착오인가 라는 것이다. 객체의 착오란 A를 총으로 죽이고자 했으나 B가 죽는 경우이고, 방법의 착오란 탄환이 빗나가 A아닌 B에 맞는 경우를 말한다. 왕은 햄릿을 햄릿으로 인식했고 왕비로 착각하지 않았으므로 방법의 착오, 구체적 사실의 착오에 해당한다.

그런데 방법의 착오에 대해서도 학설이 갈린다. 예컨대 법정적 부합설에 의하면 고의 성립은 ‘사람’이면 되므로 햄릿에 대한 살인미수와 왕비에 대한 살인의 기수가 관념적으로 경합하는 것이 되고, 구체적 부합설에 의하면 고의 성립은 ‘구체적인 누구’여야 하므로 각각 살인미수죄와 과실치사죄가 성립된다. 결국 그 차이는 왕비에 대한 왕의 죄가 살인죄냐 아니면 과실치사죄냐 하는 것이다. 살인죄로 보는 구체적 부합설은 하나의 고의에서 두 개의 고의범을 인정하는 것이 되므로 문제가 있다.  

『햄릿』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죽음은 자살이다. 오필리아는 자살한 것이 아니라 사고사였다는 견해도 있으나 염세자살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명예로운 동기에 의한 자살은 인정되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자살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자살이라고 해도 그것은 제도에 따른 형벌이었음을 주의해야 한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자살을 죄악으로 보아 나라에 따라서는 19세기까지 국왕에 대한 범죄로 인정되었다. 즉 영국에서는 1961년 자살법The Suicide Act이 제정되기 전까지 살인으로 처벌되어 시신에 대한 손상 및 재산몰수가 가해졌다. 동반자살(현재도 처벌)과 자살미수도 처벌되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1789년 혁명시 자살금지법은 폐지되었다. 한국에서도 자살은 처벌되지 않으나 단 형법 제252조 2항은 자살관여죄를 처벌한다. 동반자살이 처벌되는가에 대해서는 학설이 대립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결투에 대해 살펴보자. 극중 결투는 햄릿의 아버지와 포틴브라스 1세의 결투와 햄릿과 레어티즈의 결투이다. 결투에는 룰이 있으나 레어티즈와의 그것은 룰을 무시한 살인계획이었다. 봉건사회에서는 재판상 결투, 근대에는 명예 결투가 용인되어 뒤마, 바이런, 푸시킨 등의 문인들도 결투를 했다. 1817년까지 영국에서는 그것을 재판의 일종으로 허용했으나 1819년 법으로 금지되었다.

『멕베드』역시 『햄릿』처럼 범죄 이야기이다. 범죄심리학에서 보면 멕베드는 유혹에 의해 범죄를 저지르는 허약한 성격의 전형이고 그를 유혹하여 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부인 역시 그런 여성 범죄자의 전형이다. 부인의 범죄는 우리 형법 제31조에서 말하는 교사에 해당된다. 『리어왕』도 『오델로』도 죽음으로 뒤범벅된 비극이다.

영화로 보는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벌써 4백 년 전에 쓰여진 고전인데 여전히 희곡으로도, 연극으로도, 영화로도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그 중요한 이유로 셰익스피어가 대영제국을 대표하는 극작가여서 그렇게 보편화되었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우리가 몇 백년간 세계를 지배하여 한국어를 국제어로 만들었다면 ‘춘향전’도 그렇게 세계적인 걸작으로 전 세계에서 읽혀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그런 정치적인 배경도 하나의 이유는 될 수 있지만 역시 셰익스피어는 몇 세기를 넘어, 수많은 나라를 넘어 보편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위대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셰익스피어를 영화로 본다. 영국의 저명한 영화평론가인 로져 만벨의 명저 『셰익스피어와 영화』(1971년)에 의하면 셰익스피어 작품의 영화화는 무성영화시대에 이미 400편 가량 제작되었고, 토키가 발명된 이래 1970년경까지 50편이 넘었다고 한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 중에서 영화사에 남을 걸작들이 만들어진 것은 1940년대 이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모든 여건이 어려웠던 전쟁중인 1944년에 로렌스 올리비에Lawrence Olivie가 제작한 『헨리 5세』는 그 금자탑이었다. 그 후 오손 웰즈Orson Welles(1916-85), 세르게이 유트케비치, 그레고리 고진세프, 피터 브루크, 프랑코 제피렐리Franco Zeffirelli(1923-)(우리가 본 <로미오와 줄리엣>과 <햄릿>의 감독) 그리고 일본의 세계적인 감독인 쿠로사와 아키라黑澤明(1910-98)(1985년에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 일으킨 <란>은 『리어왕』을 자유자재로 번안한 것) 등이 셰익스피어영화를 적극 제작했다.

90년대에 와서 다시 셰익스피어 영화의 선풍이 불고 있다. 이는 전후 올리비에의 <헨리5세>로부터 바람이 분 것과 묘하게도 일치하여, 89년에 제2의 올리비에라고 하는 케네스 브래너Kenneth Branagh(1960-)의 <헨리 5세>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현대물인 <환생>(1991년) 이후 역시 셰익스피어물인 <헛소동>(1992년)을 제작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된 그것들의 제작을 전후하여 제피렐리의 <햄릿>(1990년), 피터 그리너웨이Peter Greenaway(1942-)에 의한 <프로스페로의 나무>(1991년. 원작은 『템페스트』) 등이 제작되었다.

그런데 지휘자에 따라 같은 악보의 음악이 완전히 달라지듯이 같은 <헨리 5세>라도 올리비에와 브렌너의 작품은 다르다. 전자는 전쟁을 영국 찬양의 차원에서 미화했으나, 후자는 전쟁비판의 차원에서 비하한다. 이는 분명히 1945년과 1989년, 전시와 평화시의 차이이다. 다른 작품들도 감독에 따라 그 해석이 천차만별이다.

<햄릿>도 예외가 아니다. 전후에 그것은 올리비에, 고진세프, 토니 리차드슨, 그리고 제피렐리에 의해서 4회나 제작되었다. 그 중에서 올리비에와 고진세프의 작품은 이미 걸작으로 정평이 나있다. 올리비에의 1948년작에는 햄릿으로 올리비에, 오필리어에 진 시몬즈가 출연했고, 그것은 1948년에 베니스 영화제의 그랑프리, 아카데미상의 작품상, 주연상, 의상상, 미술상을 수상했다. 그것은 역사상 최고의 셰익스피어 배우였던 올리비에가 제작, 감독, 주연까지 맡아 만든 희대의 걸작이었다. 올리비에의 햄릿은 연극을 그대로 재현한 느낌을 준다. 무대장치는 추상적이고 안개가 자욱한 것도 연극적이다. 1장면이 길고 컷 수도 적어서 영화를 보고 있다는 것을 잊게 한다. 그러나 망령의 눈으로 변한 카메라는 관중을 망령과 일체화시켜 복수극의 재미를 극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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